[칼럼] 누구의 삶도 잘못되지 않았다
[칼럼] 누구의 삶도 잘못되지 않았다
  • 염형국 변호사
  • 승인 2018.10.05 1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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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끔씩 장애인시설조사에 처음 갔을 때의 장면이 떠오른다. 2004년 경기도에 있는 미신고시설에 갔을 때의 일이다. 왠지 시설 안으로 들어가기 꺼려지는 느낌이 들었지만 "나는 조사하러 온 것이니까"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시설 안에 발을 내디뎠다. 시설 안에 발을 내딛자마자 풍겨오는 퀘퀘하고 토악질 나올 듯한 내음, 문명에서 벗어난 듯한 낡고 오래된 가건물과 대낮에 불을 켜도 묵직한 어둠이 가시지 않은 무거운 공기.... 그곳에 사람이 있었다. “야!”로 호칭되는 수많은 이들, 하지만 그들에게도 이름이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는 그들의 이름이 딱히 불리우지도 않았고, 부를 일도 없었다.

계속 잊히지 않는 장면 2가지가 있다. 하나는 똥방이라고 불리우는 공간이었다. 한 평도 채 되지 않은 좁은 공간에는 창문도, 형광등도, 가구도, 변기도 없었다. 처음 시설에 입소하거나, 시설 내에서 질서를 지키지 않고 소란을 피우면 들어가는 곳이라고 했다. 입구 문을 닫으면 창도 등도 없이 완벽히 먹방이 되었다. 그곳에선 화장실에서 풍기는 똥냄새, 오줌냄새가 진동했다. 먹방 안에 들여보내지면, 밖에서 문을 열어 내보내줄 때까지 그 안에서 소, 돼지처럼 먹고 자고 싸야 했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당연히도) 그 안에 사람은 없었지만, 얼마 전까지 사용하던 흔적과 냄새가 풍겼다.

두 번째 장면은 초점을 잃은 시설생활자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장애가 있거나 정신질환이 있거나 알콜중독이어서 가족들에 의해 그곳에 보내졌다. 그들은 방 한쪽 구석에서, 낯선 우리들을, 두려움이 섞인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시설에 조사를 하러 들어간 우리와 가족들에 의해 시설로 보내져 그곳에서 생활하던 그들은, 같은 공간에서 만난 사이이지만 서로 건널 수 없는 강이 그 사이에 놓여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설 조사를 갔던 우리는 (우리 자신들의 의사에 따라) 그곳에 (인권침해가 있는지 조사를 하러) 들어간 것이어서 어느 때이건 그곳에서 나오고 싶을 때 나올 수 있는 자유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반면에 그 시설에 가족들의 의사에 의해 보내진 생활자들은 자기가 원해서 들어간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시설 밖으로 나가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나갈 수 없었다(법상 강제입소가 허용되는 시설이 전혀 아니었지만, 가족들이 나오길 원하지 않았고 그곳에 있는 생활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유로운 외출이 허용되지 않았다).

2.

‘시설화’ 혹은 ‘시설병’이라는 말이 있다. 오랫동안 (집단거주)시설에서 새로운 자극 없이 단조롭게 반복되는 생활로 인해 사람들이 꿈과 욕구,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상실하고 무기력해지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시설에서 오래도록 생활하면 시설 바깥의 삶이 너무나 갈급하여 당장이라도 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 것도 같은데 시설화 혹은 시설병으로 인해 모든 꿈과 희망을 잊고 혹은 잃고 지내면 오히려 시설 밖에서의 생활이 두려워진다. 그래서 정신병원, 정신요양시설 혹은 장애인시설 등에서 10년 혹은 20년 이상 생활하였던 분들에게 “시설 밖에 나가 자립해서 생활하고 싶으세요?” 하고 여쭤보면 “여기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해서 편해, 좋아”라고 하시며 탈시설 욕구가 없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상당수 있다.

누가 이들에게서 꿈과 희망을 앗아갔는가? 누가 이들에게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자존감을 상실케 하였는가? 누구도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았지만, 사회 구성원 우리 모두가 그들의 자존감을 상실케 하였고, 그 결과 그들의 꿈과 희망을 앗아갔다. 그곳에서 이들은 자신의 고유한 인격을 존중받지 못해 왔다. (그야말로 최소한의 프라이버시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개인의 속옷도 자신 것이 아닌 공용으로 사용해왔으며(물론 모든 시설이 그렇진 않고 극히 일부 시설이 그랬다), 개인의 사적 공간은 1도 허용되지 않았다. 정해진 시간에 집단적으로 기상하고, 식판에 배식을 받으며, 공용화장실을 사용하였다. ‘원복’이라고 하는 집단복을 입고 생활하고 있는 모습은 교도소의 재소자와 다를 바 없었다(교도소 재소자들은 형기가 있지만 시설생활자들은 그런 기약도 기대도 없었다).

3.

최근에 김원영 변호사가 쓴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잘못된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에 따르면 ‘잘못된 삶’은 착하지 않거나 나쁜 짓을 저지른 삶이 아니라 존중받지 못하는 삶, 하나의 개별적 존재로 인정받지 못하는 실격당한 삶이라고 한다. 아무리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도 가난하거나 교육받지 못하고, 장애나 정신질환이 심한 사람은 ‘잘못된 삶’이 되기 쉽다. 이들을 사회에서 밀어내고 배제하는 강고한 사회구조로 인해 이들은 ‘잘못된 삶’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사회 밖으로 밀려난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존엄한가? 존엄함의 정도에는 차이가 있는가? 아무리 당위적으로 이론적으로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고 얘기하더라도 실제 현실에서 만나는 한사람 한사람을 존엄하게 대우하지 않는다면 모든 인간이 존엄하다는 말은 공염불이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당위로 부르짖는 말이 아니(어야 한)다. 우리 삶에서 마주하는 모든 사람을 존엄하게 대우할 때 비로소 각자가 존엄해진다(김원영 변호사의 책에 따르면 ‘존엄이 구성된다’). 인간인 우리들이 다른 인간을 서로 존엄하게 대우하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가 ‘잘못된 삶’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개개인으로서 존중받는 삶,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워지고 인정받는 삶일 때만이 우리의 삶은 존엄해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존엄하다. 그렇다. 누구의 삶도 잘못되지 않았다!

염형국 변호사
염형국 변호사

염형국 변호사님은...

2001년 제43회 사법시험을 합격하고 현재 서울지방변호사회 프로보노지원센터장,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를 맡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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