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야기] "신뢰가 쌓이면 상대의 내면이 보이고 공감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이야기] "신뢰가 쌓이면 상대의 내면이 보이고 공감할 수 있습니다"
  • 임형빈 기자
  • 승인 2018.10.10 1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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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등대 같은 역할하고픈 당사자 이성일 씨
청춘 시절 찾아온 사랑과 헤어지고 발병
아버지 때문이라는 피해의식에 늘 부딪혀
지금은 아버지가 고마운 존재로 느껴져
신뢰와 긍정이 스스로를 성숙하게 해

"시간이 약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땐 청춘이란 젊음 밖에 없었는데 아버지의 반대가 너무 원망스러워 기대 밖의 행위로 대못을 박아 드린 것이 너무 죄송스럽습니다. 지금은 가벼운 안부를 물을 정도로 친근한 사이입니다."

13년 동안 외롭게 병원에서 입원생활을 해 왔던 이성일(46) 씨. 그는 자기를 입원시킨 아버지(73)를 향한 원망보다는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푸념을 먼저 내놓았다.

대학 시절, 짧은 열풍처럼 불어왔던 사랑은 자신의 예민해진 심장을 파헤진 사건이었다. 드라마 속 내용처럼 부잣집 딸을 사귀던 성일 씨는 "분수에 맞는 사랑을 하라"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너무나 가난했던 현실과 작위적인 열등의식에 빠져 그녀와 헤어지게 된다.

그 괴로움이 심해 아버지가 가꾸던 밭 작물들을 모두 훼손해버렸다. 아버지가 아끼던 옥수수, 오이, 호박 등은 넝마가 되어버렸고 화가 난 아버지는 그를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너무 원망스러웠습니다. 아버지가 한 번쯤 생각을 하시고 나의 손을 잡아 주었더라면 내가 정신적인 충격을 받지 않았을 겁니다. 너무 가슴이 아파 순간적으로 냉혹한 현실을 부수고 싶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고 할까요. 서로 사랑한다는데 무엇이 문제입니까. 저는 잡을 수 없는 부평초 같은 희망을 놓아 버린 겁니다."

성일 씨는 가슴 아픈 사연을 이런 식으로 해소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입원생활이 시작됐다. 처음 병원은 '부천고려병원'이었다. 부천 시내에서 정신병원이 한정돼 있어 그곳으로 입원하게 됐다. 경찰차에 태워져 고려병원에 입원하게 된 성일씨는 처음에 적응을 못했다.

폐쇄병동의 이물질 등이 눈에 거슬렸고 똑같은 환자복에 똑같은 머리들, 퀭한 두 눈동자들은 그를 힘들게 했다. 한쪽 병실에서는 환자가 강박되어 있었고, 난리를 치는 환자들에게는 간호사가 진정제를 놓아 잠들게 했다. 이후 성일 씨는 조현병 판정을 받았고 그는 혈기 왕성했던 자신의 20대를 못 견뎌했다. 병동 내에서 보호사들과도 잦은 다툼을 벌였다.

"처음에 병원에 들어와 코끼리 주사를 맞고 몇 시간 동안 정신없이 잠을 자댔습니다. 며칠 동안 힘 없이 잠만 자다가 좀 진정을 해 주사를 맞지 않고 약을 처방 받았습니다. 그때가 2005년이었고 주치의가 조현병 증세 판정을 내리고 적지 않게 환청과 피해망상, 관계망상에 시달렸습니다. 약을 먹어도 나를 조종하는 환청은 나의 영혼을 갉아 먹었고 대책없는 피해망상증은 날 벼랑으로 옭아 매었죠."

성일 씨는 갑자기 찾아온 불면증에 당황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열려지지 않을 병원생활에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는 생각으로 병실에서 모범적인 생활을 해 나간다.

그러다가 환자들 중에 정신이 괜찮다는 판정을 받아 병실 담당 식당 일을 맡게 된다. 식당 배식, 식당 테이블 나르는 일 등 보호사들이 하는 소일거리를 도맡아서 하게 되면서 간호사들과 주치의로부터 신뢰를 받게 된다.

"아버지가 입원비, 간식비 지원을 잘 안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봉사라도 하면 담배가 지원되고 간식도 지원돼 본격적인 병원 모범생활을 하게 된 겁니다. 환자 중에 열악한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 일을 내가 도맡아서 하고 병실 청소를 하루에 한 번 이상 쓸고 닦고 깨끗이 환기시켜 칭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성일 씨는 병원 생활을 모범적인 행동으로 잘 해 나갔다. 그렇게 병원 입퇴원을 반복하다 6년이 지날 무렵 입원 생활의 막을 내린다.

그런데 돌아온 집에서는 아버지의 기독교 전도가 본격화됐다. 성일 씨는 원망이 남아 있는 아버지에게 반항하기 위해 사사건건 대립했다. 어느 날, 전도사와의 일대일 교육이 시작됐고 그는 부모님 면전에서 전도사 체면을 깎는 행동을 벌인 후 다시 이음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이음병원에서는 처음에 강제 입원이었다. 2년 후 다시 자의입원을 하게 된다. 사회에 복귀하기 위해 잠시 병원을 나와 택시기사 일을 하다 다시 조현병이 도져 이음병원에 자의입원한다. 견딜 수 없는 날들이었지만 견뎌야 했던 젊은 시절이었다. 그는 곧 병원생활에 적응한다.

다시 병원에서 모범적인 생활을 하던 중 주위에서 식당일 아르바이트 권유를 받게 된다. 주치의의 소개로 점심, 저녁 식당 배식 담당원으로 일하게 된 것이다.  8개월 동안 식당 배차를 맡아 환우들에게 모범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식당 배식 일로 한 달에 40만 원을 아르바이트 급여로 받게 된다. 이음병원에서 입원생활은 사회 복귀를 위한 전초전이었고 도전이었다.

"신뢰가 쌓이면 그 사람의 내면이 보여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여유의 공간이 생깁니다. 그땐 그것이 통한 것이었죠. 보호사와 간호사들과의 관계, 환우들과의 친숙한 관계들이 저를 새롭게 해주었습니다. 조현병이기에 눌려 사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성장하며 어우러져 살면 나름 보람있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병원에서 알게 된 거죠."

성일 씨는 7년 동안 이음병원에서 입원생활을 하게 된다. 지금은 병원의 재활 프로그램인 낮병원에 충실히 참여해 정신적 안정감을 찾았고 동아리 모임의 '고참생활'도 몸소 보이고 있다. 한 달 전부터는 '공동생활 가정인 시설'에 입소해 제2의 인생을 꿈꾸고 있다.

기나긴 13년 동안의 입원생활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택시기사의 일을 다시 준비 중인 성일 씨는 "재활을 통한 신뢰와 긍정의 마음은 나를 성숙하게 하는 힘이 됐다"고 말했다.

당사자 이성일(c) 마인드 포스트
당사자 이성일 씨 (c) 마인드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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