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인 당사자는 왜 당당하게 요구하지 않는가”
“정신장애인 당사자는 왜 당당하게 요구하지 않는가”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8.10.12 0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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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인의 지역사회 삶 “선장 없는 배” 같아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서비스 제도 전무
당사자들은 사회적 모순의 피해자들
정신질환에 대한 ‘너그러운 무관심’ 필요
평범하고 당당하게 살아갈 자세 필요
미디어가 정신장애 부정적 이미지 강화시켜
평생교육센터를 통한 시민 교육 절실
전문가중심주의에서 당사자주의로 나가야

송파구정신건강복지센터와 송파어우러기는 정신건강의 날을 맞아 ‘익숙하지 않은 이웃-정신장애인’이라는 제목의 토크콘서트를 11일 송파 한성백제박물관 백제홀에서 진행했다.

이정하 정신장애와인권 파도손 대표는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산다는 의미와 관련해 “선장이 없는 배와 같았다”며 “바람도 불고 비도 내리고 폭풍이 치는데 내가 방향 없이 떠가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바람은 많이 불지만 나를 지탱해 주는 무엇이 없는 상태로 살아갔던 시간들이 정신장애인의 삶이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을 어렵게 하는 요인에 대해서도 “내가 아프거나 질환이 있을 때 돌봄이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불면증이 심했을 때 환청이 심하면 일상생활을 할 수 없다. 심지어 보름 동안 밥을 안 먹은 적도 있다. 아프게 될 수밖에 없다. 지역사회에서는 정신장애인에 대한 돌봄 서비스가 없다.”

그는 현재 자신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가족이 없다. 관심을 가지는 가족이 있을 때는 그나마 들여다보는 이가 있어 생활이 가능했다. 그러나 관심을 줄 가족이 사라지면서 그는 그때의 자신을 “노숙인”이라고 말했다.

“시설에 가야 하고 센터도 자기 발로 가야 한다. 그러나 집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집으로 찾아오는 이들도 없다. 한국 사회는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가 제도적으로 마련된 게 없다.”

정신장애라는 특정 장애유형에 맞는 서비스 또한 없다는 지적도 내놓았다.

이 대표는 “질환을 없애는 것에만 관심이 있지 그 질환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며 “시각장애인들에게 점자책을, 청각장애인들에게 수화방송을 하듯이 정신장애 유형에 맞는 사회적 서비스가 구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 사회는 정신적 병을 가진 이들을 범죄자와 살인자로 몬다”며 “당사자들은 사회적 모순의 피해자들”이라고 언급했다.

그에 따르면 한국 사회는 ‘가해자 중심주의’ 나라다. 성폭력 피해자가 성폭력을 고발하면 가해자 입장에서 피해자가 진술을 해야 한다. 정신장애 영역도 마찬가지다. 전문가 중심주의의 나라라는 게 그의 지적이다. 당사자 중심주의가 필요한 이유다.

그는 “우리 사회는 강박증의 사회다. 이건 조현병보다 더 무섭다”며 “줄을 맞추지 않고 살아도 되는 그런 비켜섬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때 잘나가는 애니메이션 작가였다. 자신이 일하는 회사는 맨발로 뛰어다녀도 되고 소리를 꽥꽥 질러도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았다. 회사가 요구하는 건 그림만 잘 그리는 것이었다. 그는 그 공간에서 광인처럼 행동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환각과 불면증을 안고서도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그런 ‘너그러운 무관심’ 때문이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사회는 그런 행동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 불관용으로 그는 ‘병자’로 낙인찍힌다.

그는 “정신장애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한 명도 없다”며 “너그러운 무관심과 부드러움이 사회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성호 가족대표 겸 송파어우러기 운영위원은 “나의 자녀가 정신질환에 걸리지 않았다면 나도 정신질환에 대해 편견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며 “따라서 그들(정신장애인들)이 잘못됐다기 보다는 우리의 평범한 삶을 당당하게 살아갈 그런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자녀가 정신장애인이라는 것이 사회적으로 부정적 시선이 많기 때문에 드러내지 않고 싶어했다. 그렇다고 기죽어 사는 건 아니다. 그의 말처럼 “당당하고 평범한 엄마의 삶”을 살고 있다. 그는 이 같은 태도를 “이중적 삶”이라고 표현했다.

이 가족대표는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걸 어렵게 만드는 장치로 ‘미디어’를 꼽았다.

“장애를 이해시킬 역할을 방송이 많이 해줬으면 좋겠는데 부정적인 것이 너무 많이 나오기 때문에 가족과 당사자들이 병을 밝히기 어렵게 만든다.”

그는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기 위해서 평생교육센터를 통해 시민들에게 정신장애인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규설 정신재활시설 ‘라온’ 시설장은 장애인고용촉진공단 관계자가 한 얘기를 들려줬다.

그 공단 관계자는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왜 요구를 하지 않는가. 우리(공단)는 다 준비돼 있는데. 우리는 서비스를 해 주고 싶은데 어느 누구도 요구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결국 공단 관계자는 집 근처의 피시방에 들어가 공단 사이트에 들어가서 정신장애인을 위한 직업훈련 서비스를 해 달라는 청원을 스스로 했다.

임 시설장은 “이 모습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당사자와 가족들은 여전히 목소리를 작다”며 “지체장애인협회를 보면 목소리가 커서 예산이 집중되고 있지만 정신장애인은 그 예산 집중에서 예외 대상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정신장애 분야는 종합복지 서비스가 없다. 재활서비스의 경우 공동생활가정, 지역사회전환시설, 직업훈련 시설 등으로 나눠져 있지만 토탈 서비스를 할 수 있는 중심 기관이 없다. 복지관 역시 없다.

그는 “가족과 당사자가 전문가들과 함께 이 부분을 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민을 간 자신의 처남이 호주에서 정신질환이 발병해 그곳 병원에 일주일 간 머무른 적이 있다. 그곳에서 호주의 지역사회 정신건강 서비스 체계를 직접 목격했다.

“처남이 병원생활을 하자마자 세 분의 전문가가 매일 방문해서 약을 먹었는지, 증상은 어떤지 등을 점검해줬다. 약물 또한 최소한의 원칙을 지켰다. 덕분에 2주일만 입원하고 지역사회로 나갈 수 있었다.”

임 시설장은 한국 사회에서 그 정도의 증상으로 입원을 하게 되면 과연 2주 만에 퇴원할 수 있었을까에 회의적이었다. 퇴원을 한 처남은 현재 호주에서 아이 둘에 직장생활까지 무리 없이 해 나가고 있다고 한다.

그는 “우리 스스로 지역사회 일원이고 우리도 지역사회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는 역할이 필요하다”며 “시민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의 기본적 서비스 환경 또한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영문 서울시공공보건의료재단 대표이사는 “당사자주의의 반대 개념으로 전문가중심주의로 흘러왔다는 건 전문가 중심으로 정책을 먼저 만들다보니까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걸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신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살기 위해서는 정신병원과 정신요양원을 모두 없애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탈리아처럼 (우리도) 우리도 다 지역으로 나오겠죠. 시간이 걸렸지만 그만큼의 개혁적 사고를 가지고 병상수를 줄일 수 있는 탈원화 정책이 도입돼야 한다.”

그는 21세기를 면역의 시대를 넘어 ‘심리학의 시대’로 진단했다. 외부에서 침입해온 것과 싸우는 시대가 아니라 내부의 피로감으로 인해서 여러 사회적 문제들이 발생한다는 의미다. 내부 성찰이 많아지면 정신질환에 대한 이해도 높아진다는 개념이다.

이 대표이사는 “자신의 욕망에 응답하고 자기 자신에 충실하면 타인들의 시선에 대해서 신경을 많이 안 쓰게 된다. 사회 역시 좀 더 포용적이어야 한다”며 “강박적인 사회를 이길 수 있는 힘은 정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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