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탑방 일기장] 여섯 번째 페이지. 힘든 건 힘든 거니까
[옥탑방 일기장] 여섯 번째 페이지. 힘든 건 힘든 거니까
  • 이관형 기자
  • 승인 2018.10.19 23:25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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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시점 : 나에게 일상적이고 남에겐 특별한 하루 이야기

마음 날씨 : 가끔은 화나고 싶은 날이 있어.

내 머리 속에는 지우개가 없다. 그래서 힘들다. 좋은 기억, 행복한 추억만 남아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내 머리 속은 정 반대다. 나쁜 기억, 괴로운 추억만 남아 있다.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 샤워를 하러 화장실에 들어가는 것이 두렵다. 스마트 폰으로 음악을 틀고 샤워기를 든다. 한 5분 정도 지나면 그때의 상처와 말들이 떠오른다. 다행히 오늘은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밖으로 나와 드라이로 머리를 말리고 아침밥을 먹는다. 이번에도 스마트 폰으로 TV 영상을 틀어 놓고 밥을 먹는다. 밥을 먹는 도중에도 그때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급하게 밥을 먹고 가방을 챙겨 사무실로 향한다. 20분 거리의 사무실을 걸어가는 동안 또 생각이 떠오를까봐 버스를 탄다. 고작 두 정거장 후 내려서 사무실에 도착한다. 노트북을 켜고 캡슐 커피머신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따라 마신다. 아침을 거를 때는 대신 빵과 함께 먹는다. 그러면 허기가 가신다. 다행히 사무실에 사람들이 있다. 간혹 대화도 나누고, 밥도 함께 먹는다. 하지만 2시간, 3시간 혼자 작업에 몰두하다보면, 또 기억들이 떠오른다. 탄산음료를 마시기도 하고 초콜릿도 먹어본다. 그러면 왠지 기분이 좋아질 것 같았다. 나쁜 기억들도 사라지고 말이다.

그렇게 저녁 6시까지 일한 후 집에 가서 저녁을 먹는다. 이젠 운동을 해야 한다. 그동안 살이 너무 쪘다. 병이 시작되기 전인 스무 살 때보다 20킬로 넘게 쪘다. 집 바로 옆에는 운동하도록 잘 조성된 개천이 있다. 하지만 홀로 개천을 걸으며 운동하는 것이 두렵다. 아무리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어도, 걷다보면 옛 생각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나마 방에서 침대에 누워 티비를 보면 좀 낫다. 옛 기억들이 덜 떠오른다. 하지만 마음 속 공허함과 허전함이 밀려오기 마련이다. 이유 없이 우울하거나 불안하기도 하다. 또 어서 잠을 이루어야 한다는 압박감도 몰려온다. 그래서 야식을 먹는다. 기분 좋게 하는 탄수화물이 땡긴다. 먹고나면 편히 잠에 들지만 아침에 일어나 거울 속 내 얼굴을 보면 자괴감이 밀려온다.

한때 마르고 괜찮았던 내 외모는 더 이상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출근하기 위해 일어나 샤워실에 들어간다. 또 나쁜 생각들에 시달리면 어쩌지? 하는 걱정과 두려움을 안고 샤워실로 들어간다.

내 머리 속에 지우개가 있었으면 좋겠다. 늘 떠오르는 그 생각들, 계속 되풀이 되는 그 기억들을 모두 지워 버리고 싶다. 어떻게 해야 지울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의사이든, 상담사이든, 성직자이든, 묻고 싶다. 어떻게 해야 내 머릿속 그것들을 지울 수 있는지. 그리고 언제까지 시달리면서 살아야 하는 지도 묻고 싶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잠들기 까지, 심지어 꿈속에서 조차 그 기억들로 시달린다. 평생을 이대로 시달리면서 살아야 하는 것인지. 없애지 못하면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스마트 폰으로 음악을 듣고 티비를 보는 것 말고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없는지 묻고 싶다.

나도 과거에는 정신적으로 건강했던 시절이 있었다. 약을 먹지 않아도 잠들 수 있고, 시도 때도 없이 나쁜 기억들에 시달리지도 않았다. 혼자 있어도 될 만큼 건강한 생각 속에서 살았다. 물론 스무 살 전의 어린 시절, 혹은 학창시절이었지만, 그때는 이런 고통에 시달리지는 않았었다. 가끔은 그 때의 건강상태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아무리 책을 쓰고 특강을 하고 나름대로 극복을 했다 한들, 여전히 병이 완전히 나은 것은 아니다. 지금도 약을 먹고 상담을 받는 조현병 환자다. 남들처럼 건강해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환자다.

그런데 조현병 환자로서 살다보니 이런 1차적인 고통보다 남들에 의한 2차, 3차적인 고통도 만만치 않았다.

“나도 너처럼 힘든 시간이 있었어. 세상엔 너 말고도 힘든 사람들이 많어. 너만 힘든 게 아니야. 그런 나약한 정신력으로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려 해? 강한 의지로 버텨봐. 왜 약에 의존하려고 해? 기도를 해 봐. 밤에 잠이 안와? 하루 종일 빡 세게 운동을 해봐. 그럼 잠이 잘 올 거야. 넌 너무 온실 속에 화초처럼 자라서 그래. 살다보면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 일이 많은데.”

모두가 그런건 아니지만, 가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꼭 있었다. 또한 말로 표현만 안했지,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방송에서 조현병을 다중인격자나 사이코패스처럼 왜곡되게 다루는 것보다, 내 주위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는 게 더 상처가 된다는 사실을 알기나 할까?

단 하루만 나처럼 살아가보고 걱정이든, 위로의 말이든 했으면 좋겠다. 조현병 환자의 삶을 일부라도 체험해 보는 건 어려운 문제도 아니다. 그동안 살면서 겪었던 아픈 추억과 괴로운 생각, 상처를 준 말들을 20가지 정도 종이에 적으라. 그리고 직접 말로 읽고, 휴대폰에 녹음을 하라. 녹음된 음성을 이어폰을 통해 아침에 기상하며 저녁에 잠들기까지 무한 반복 재생하며 들어라. 그 상태로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해보라.

참고로 여기에 우울증과 불안증, 불면증이 동반된다는 사실도 알아줬으면 좋겠다. 또한 눈이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나를 헤치려 하거나 싫어한다는 착각에도 빠져보라. 양성의 경우는 눈에 헛것이 보이는 환시와 헛것이 들리는 환청까지 추가 된다. 우리가 매일 수년째 겪는 이 고통들을 당신은 하루라도 버틸 수 있을까?

이런 어려움을 겪어보고 위로의 말이든, 걱정의 말이든 해주었으면 좋겠다. 왜 많은 환자들이 스스로 삶을 마감했는지, 지금 살아 숨 쉬는 우리들을 왜 생존자라고 부르는지,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 '바울의 가시' 작가 겸 옥탑방 프로덕션 대표 이관형의 일기

otbp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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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형 2018-10-26 11:46:08
전민님 댓글 감사합니다ㅎㅎ 제 글에 대한 피드백(공감)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증상이 저랑 비슷한 부분이 많네요.. 저도 위로가 많이 됩니다.
그래도 꿋꿋이 이겨내며 살아가야죠~ 화이팅!!^^

전민 2018-10-25 21:14:26
저 역시 조현병 당사자로서 이관형기자님의 생생한 체험담이 읽는 재미를 주고 있습니다.
아, 내가 혼자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동지가 있다는 든든함이 있습니다.

전민 2018-10-25 21:11:12
한 스님은 말하기를 번뇌와 고민이 일어난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다. 죽은 사람은 번뇌가 없다.

번뇌를 다스리는 길은 번뇌가 일어나는 대로 내버려두는 것이다. 막지도 말고 붙잡지도 마라.

혹 이 말이 도움이 될지 모르겠네요. 이관형기자님도 많은 시도를 해 보셨을 텐데 괜히 간섭을 해서 오히려 불쾌하게 만들어드리는 것이 아닌지 걱정도 됩니다.

옥탑방 일기장 애독자로서 이관형기자님의 행복한 삶을 기원하며 긴 댓글을 쓴 점 용서바랍니다.

행복하십시요.

전민 2018-10-25 21:08:04
과거의 안좋은 기억이 한참 지난 후에서야 지금 시점에서 떠오르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고 그걸 스스로 조절하거나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제 친구들 중에도 이관형기자님의 경험처럼 의지로 이겨보라고 권하는 친구들이 꼭 있었습니다. 정말 펀치를 한방 먹이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나는데 어쩌겠습니까? 걔는 내 병이 어떤 건지도 모르고 내가 조현병환자라고 고백해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를 못하는데 말입니다. ㅎㅎ 어쨌든 결국엔 제가 그 기억을 피하려고 하기 보다 직접 마주해서 경험했다는 것이 제 경우에는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이 되기도 했다는 경험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이관형기자님에게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으나 기자님의 오늘 글을 읽고 혹 도움이 될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이렇게 길게 글을 썼습니다.

전민 2018-10-25 21:04:16
어느 시점에 이르니 결국 바닥에 도달한 공이 다시 튀어오르는 순간이 오더군요. 일상생활도 해야 하고 일도 해야 하는데 그런 경험을 해보니 정말 말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과 있을 때는 생각안나다가 혼자 뭘 할때면 어김없이 그 기억이 떠올라서 정말 레퍼토리도 다양했고 계속해서 반복해서 떠오르는 기억들 때문에 그 감정(분노/적개심/원망/자괴감)을 컨트롤하기도 어렵더군요. 저는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는 걸 막지는 않았습니다. 생각이 떠오르면 계속 그걸 하고 경험을 곱씹고 그렇게 하다보니 어느 순간 점차 안 떠오르기 시작하고 또 새로운 과거의 안 좋았던 기억이 떠오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