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자가 손해를 끼쳤을 때 배상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정신질환자가 손해를 끼쳤을 때 배상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8.10.24 01: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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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경 교수, 성년후견제도 토론회에서 문제 제기
성년후견인제도는 당사자의 사회복귀 주 목적
후견인에게만 감독 책임을 지울 수 있는가 의문
후견인 법적 감독의무 부정되면 손해배상 주체 사라져
사회보험 통한 손해배상도 그 재원의 빈곤이 문제
형사적 면책하고 민사적으로 배상책임 지도록 해야

정신질환자가 타인에게 손해를 끼쳤을 경우 이에 대한 배상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문제제기와 함께 피성년후견인의 불법행위의 경우 형사는 면책으로 하되 민사에서 배상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23일 용산 드래곤시티호텔에서 열린 한국 성년후견제도 쟁점 토론회에서 이재경 원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성년 무능력자가 불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 책임 능력이 없다고 할 경우 누구에게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가”를 중심으로 발제를 했다.

현행법에서는 피성년후견인이 책임 무능력자일 경우 그를 감독할 법적 의무가 있는 사람은 사실상 없다. 이 경우 가해자가 책임 능력이 없어 배상 의무에서 면책되면 그 손해를 누구로부터 받아야 하는가의 문제가 발생한다. 현행 민법 750조는 일반 불법 행위에 대한 책임 인정이 있지만 754조의 경우 심신상실의 경우 책임 무능력자를 면책시키고 있다.

이 교수에 따르면 현행 성년후견인 제도의 시행 목적은 정신장애인과 같은 피성년후견인들이 사회로부터 격리되지 않고 사회생활을 영위하도록 하는 데 있다. 그런데 그들이 책임 능력이 없다고 해서 자신이 저지른 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을 하지 않을 경우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가 성년후견인 제도의 도입 이후 지속적 문제가 돼 왔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민법 755조는 행위에 대한 배상에 이를 감독할 법적 의무가 있는 사람으로 하고 있지만 누가 법적 의무가 있는지 따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이전 한정치산, 금치산의 경우에는 가족이 당연히 후견인이 됐기 때문에 가족을 부양의무로부터 감독 의무를 인정해왔다. 지금은 후견인이 감독 의무를 지기 때문에 이들에게 치매 환자, 정신질환자, 발달장애인을 감독할 의무를 지울 수 있는가가 문제가 된다.”

만약 후견인에게 손해배상 의무를 지우게 된다면 후견인 제도가 활성화될 수 없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그는 “피성년후견인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위험에 노출된다면 그 사람을 감독한다는 것은 그를 치료기관에 입원시키고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차단한다는 것은 후견인의 업무 범위하고 일치하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결국 후견인에게 법적 감독의 의무를 규정한 법은 정신건강복지법으로 좁혀진다. 이 법 40조는 정신질환자가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보호의무자의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는 선언적 의미만 들어있다.

이 교수는 “그가 정신질환자이고 책임 능력이 없다면 후견인은 정신건강복지법이 규정하듯이 피후견인이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도록 유의했어야 하는데 유의하지 않았으니까 후견인에게 손해배상을 하도록 결론이 내려질 수밖에 없다”며 “손해에 대한 배상의무를 정신건강복지법이 말하는 것처럼 ‘유의해야 한다’는 조문을 통해 그 의무를 도출해낼 수 있는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신건강복지법이 말하는 후견인은 정신질환자가 자신을 해치거나 타인을 해칠 염려가 있을 때 이 사람을 적극적으로 입원시켜라, 혹은 격리시키라고 하는 적극적 권리 내지는 의무를 부여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정신건강복지법 역시 후견인은 피후견인의 일상적 의사가 무엇인지를 찾아내고 동의해주는 소극적 의무를 규정하고 있지만 자타해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그를 입원시키고 격리시키라는 적극적 의무는 두고 있지 않다.

금치산자, 한정치산자를 두고 있던 구 민법에서는 감독자의 책임을 미성년자의 경우 친권자에게, 그리고 금치산자, 한정치산자의 경우 법적 후견인으로 지정하고 있다. 그러나 성년후견인제도에서의 법적 감독 의무자가 단순히 후견인으로 단정적으로 정의할 수 없다는 게 이 교수의 지적이다.

민법과 정신건강복지법, 장애인복지법 등은 후견인의 의무, 보호의무자의 의무, 국가와 지자체의 의무 등에서 포괄적이고 선언적인 규정이 있지만 피성년후견인을 감독해야 할 적극적 의무를 찾기 어렵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교수는 “피후견인이 책임 무능력자인 경우에 후견인이 법적 감독의무자가 된다면 (발생한 손해에 대해) 후견인으로부터 손해배상을 받게 될 것”이라면서 “그러나 만약 후견인이 법적 감독의무자가 부정된다면 결과적으로 피해자는 피후견인과 후견인으로부터 그 누구로부터도 배상을 받지 못하는 결과가 발생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서는 후견인이 가지고 있는 배상보험을 통해서 해결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이 교수는 “후견인이 자기가 후견 의무를 잘 못해서 피후견인에게 손해가 발생했을 때 그 보험을 통해서 해결하는 것”이라며 “피후견인이 타인에게 발생시킨 손해를 후견인 보험을 통해 해결하는 건 이해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후견인의 임무는 피후견인을 보호하고 그가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이 있는 것이며 피후견인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제3자를 보호하고 그 피해를 구제해주고 보상해주는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후견인에게 법적 감독 의무가 부정될 수밖에 없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이 교수는 “후견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고민해야 되는 건 후견인에게 법적 감독 의무가 없다면 그 피해자를 어떻게 구제해 줄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다”며 “사회보험 같은 공적 보험을 통해 해결하자고 하면 결론이 쉽게 나겠지만 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이며 그게 가능하겠는가”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렇다면 법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가?

이 교수는 대안적 논의로 미국의 경우처럼 애초에 정신질환자의 면책을 부정하는 것을 내놓았다.

이 교수는 “미국의 경우 정신질환자의 면책은 형사에서는 당연히 이뤄지지만 민사에서는 면책을 부정하는 방법을 두고 있다”며 “독일의 형평 책임의 경우 과실책임에 대한 예외로 무과실책임을 두고 있는 것처럼 과실책임에 대한 책임 능력이 없으면 책임지지 않는다는 예외적 조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토론회는 같은 장소에서 열리고 있는 제5차 세계성년후견총회의 세션 일부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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