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호소할 곳이 없다, 그러므로 사과드린다
우리는 호소할 곳이 없다, 그러므로 사과드린다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8.10.25 23: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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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자 묻지마 흉기 난동 발생
그가 정신병원 10년 입원은 피할 수 없는 팩트
정신장애에 대한 사회적 온정의 시선 거세당해
그렇지만 우리의 인권적 요구는 멈출 수 없어

사과한다.

25일 인천 중부경찰서는 대낮에 행인을 흉기로 찌른 조현병 전력의 50대 남성을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긴급체포된 A(58)씨는 이날 오전 11시 40분 인천시 중구의 공원 앞 도로에서 자신의 옆을 지나던 B(67·여)씨의 목 부위를 한 차례 찌른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이를 목격하고 도움을 주러 온 유치원 교사 C(37·여)에게 안면 부위를 한 차례 찌른 혐의도 받고 있다.

B씨는 인근 대학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으나 생명이 위중한 것으로 알려졌다. C씨는 병원 치료를 받고 귀가했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조현병으로 인천의 한 병원에서 2006년부터 2016년까지 10년 간 입원 치료를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퇴원한 뒤에는 올해 5월까지 이 병원에서 운영하는 노숙인 쉼터에서 지낸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A씨는 노숙인 쉼터를 나온 뒤에는 일정한 주거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한 것 같다”며 “범행 동기에 대해서는 횡설수설하고 있어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시 정신장애인, 아니 정신질환자에 의한 강력 사건이 발생했다.

정신장애인을 사회 구성원으로 보살펴야 한다는 온정적 담론도 냉랭하게 식어버렸다. 사회는 두려움에 대한 방어기제로 이들의 격리와 감금을 합리화하고 있다.

지난 7월 경북 영양군에서 경찰을 흉기로 살해한 이도 조현병 당사자였다. 그 역시 정신병원에 입원한 전력이 있다. 지난 24일에는 “왜 자신을 정신병원에 보냈냐”며 아버지를 폭행하고 이를 말리던 어머니를 흉기로 살해한 40대 남성이 체포됐다.

정신장애인은 다시 잠재적 범죄자로 공동체의 ‘조리돌림’을 받을 것이다. 조현병은 이유없는 살인의 표상이 되고 조현병 당사자는 잠재적 범죄자로 위험성 이데올로기에 포섭된다.

그러므로 <마인드포스트>는 우선 사과한다.

인간의 생명한 부정한 행위는 인간의 존엄을 훼손한 것으로 어떤 변명의 여지가 없다. 저 살해범은 조현병이라는 정신질환으로 10년간 정신병원 생활을 했다는 명백한 팩트가 있다. 그리고 이유 없이, 한 생명에게 흉기를 들이댔다. 그리고 그 이유 없는 폭력으로 한 생명이 중환자실에 들어가 있다.

거듭 사과한다.

<마인드포스트>는 정신장애인의 권리와 인권 옹호를 위한 대안언론으로 지난 6월 창간됐다. 당시 <마인드포스트> 창간사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정신과 약물과 진단명 아래 침묵했던 우리가 더 이상의 예속을 거부하며 자기결정권과 존엄한 삶의 방식을 주장하게 될 것이다. 우리를 가두고 사육했던 정신병원과 정신요양시설의 모든 부조리함을 고발할 것이며 이들 기관들이 폐지되는 날까지 문제의식을 던질 것이다.”

또 이런 문장도 있다.

“마인드포스트는 낙인과 예속에 저항하는 정신장애인의 떨림을 안고 인간 해방을 위해 온몸으로 전진해 나갈 것이다.”

엄숙하게 씌어져 내려가던 창간사다. 그런데 지금 저 정신질환자의 폭력적 상황 앞에서 이 창간사는 힘을 잃어버린다.

아무도 돌아봐주지 않던 시절. 그리고 정신질환이 있다는 이유로 짐승처럼 밧줄에 묶여 정신병원 폐쇄병동으로 들어가야 했던 시절들. 한번 들어가면 어떤 방법으로도, 절규로도 나올 수 없었던 병동 안에서의 삶. 어떤 이는 이렇게 살 바에 자신을 죽여달라고 호소했다. 강제입원은 곧 인간 존엄에 대한 훼손적 행위였다.

그래서 우리는 외쳤다. 우리를 가두지 말라고. 우리를 빼고 우리에 대해 이야기하지 말라고. 그것은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인간에 대한 존엄을 요청하는 약자들의 호소였다.

사회는 아주 가끔씩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듯했다. 아, 너 힘들구나. 괴로웠구나. 억압당했구나. 인간의 존엄이 훼손되는 경험을 했구나. 강제입원이 너의 존재성을 무의미하게 만들었구나. 그렇다면 우리가 함께 이에 대한 정치적 담론을 만들고 공론화해 보자.

그렇지만 거기까지다. 그 당연한 이야기도 우리는 힘겨운 싸움 끝에 얻은 성과물이다. 누군가가, 아니 사회가 우리를 이해해주기 시작했다는 거. 그래서 우리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누군가는 우리를 대신해 국가에 정신병원과 정신요양시설의 폭압적 규율 체계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고 정신장애인들이 공동체로 나와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그런 사회를 만들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한 번 인간의 죽음이라는 폭압적 상황이 되면 사회는 그 죽임의 주체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가 질병적으로 포섭돼 있는 조현병 환자는 더 그렇다. 그는 사회적으로 쓸모없는 자이다. 그는 게으르고 더럽고 나태하고 이유 없이 시민에게 흉기를 휘두르는 잠재적 범죄자일 뿐이다. 범죄인만큼 두려운 그 존재를 왜 우리 사회가 포용해야 하는가.

인간의 존엄을 요청하는 정신장애인과 범죄를 저지른 정신장애인은 공동체 안에서 가치의 충돌을 겪는다. 너의 병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극단적 살인사건까지 일으키는 너희들이 결코 안전한 존재라고는 말할 수 없다는 의미다.

사회는 이성적 존재들에 의해 작동한다. 여기서 비이성은 사회적 관계를 구성하지 못한다. 비이성은 비정상이며 그것은 두려움을 유발한다. 두려움을 어떻게 할까. 바로 제거하는 것이다. 공동체에서의 영원한 격리. 그것이 표상된 두려움을 거세하는 지름길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이 순간, 다시 배제돼 끌려간다. 어디로? 정신병원과 정신요양시설로. 우리가 아무리 존엄을 이야기해도 이 같은 사건 하나가 발생하면 그 담론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광기와 같은 격리 이데올로기만 사회적으로 강화될 뿐이다.

우리는 호소할 곳이 없다.

우리가 다 그렇지 않다. 우리는 개미 한 마리도 못 죽이는 연약한 심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를 인간으로 대우해 달라. 우리는 사회적으로 시민적 권리가 있으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혹은 조현병 당사자가 저지르는 범죄는 전체 범죄의 지극히 사소한 비율에 불과하다고 탄원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를 잠재적 범죄자로 몰지 말라.

이 말이 힘을 얻을 수 있을까. 이 호소를 사회가 받아들일까. 그러므로 우리는 호소할 곳이 없이 오롯이 범죄의 주체로만 구성될 뿐이다.

그러므로 <마인드포스트>는 사과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다. 우리를 위해 사회적 안전 인프라를 만들고 퇴원했을 때 생활할 주거공간을 배려해 주고,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절차보조 서비스를 해 주고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고 단 얼마만큼이라도 생활비를 국가가 제공해 달라는 요구사항은 저 범죄 앞에서 다시 힘을 잃고 만다.

<마인드포스트>가 지금 할 수 있는 대응은 사과뿐임을 안다. 그리고 우리가 호소할 곳이 없다는 것도 안다. 우리는 외로운 섬처럼 떠 있을 뿐이다. 누구도 구원의 손길을 보내지 않는다. 난파당한 배처럼 우리는 갈 곳을 잃었다. 그러므로 사과한다. 할 수 있는 것이 그것뿐이므로.

그렇지만, 정말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의 존엄과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요청할 것이다. 국가를 상대로 우리의 인권을 요구할 것이다. 이 사건으로 우리가 주저앉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언론이 만들어 낸 정신질환자에 대한 프레임. 지금 우리는 그것을 넘어설 방법이 없다. 그리고 격리 이데올로기는 더 강화됐고 우리는 이에 대해 해명할 어떤 언어도 갖고 있지 않다.

말하고 싶은 게 있다. 그 어떤 경우에도 우리가 인간이라는 가치를 훼손시키지 말라고. 저 범죄는 개별적 특이성이 빚은 사건이며 대다수의 우리 조현병 당사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이 누추한 이야기를 마지막 절규처럼 말하고 싶은 것이다. 범죄에 대해서는 관용 없이 집행해 달라. 그러나 우리를 집단적으로 비난하지는 말아 달라. <마인드포스트>가 요청하는 건 그것이다. 오늘은 존엄이 살해당한 날이다. 개인으로서 한 사람이 다쳤고, 집단으로서의 정신장애인이 거세의 표상이 된 날이다. 사과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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