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적 언론을 위해… 우리는 인간이며, 자유로운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주체
대안적 언론을 위해… 우리는 인간이며, 자유로운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주체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8.05.31 1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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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정신장애인 당사자 권리선언 토론회 개최
각 분야의 목소리를 통일시켜 권리대장전 만들 것

<편집자 주>

정신장애인 당사자 권리선언 토론회가 내달 1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개최된다. 이번 토론회는 지난해 시행에 들어간 정신건강복지법 안에서 당사자의 인권과 권리를 확인하고 정신장애인 권리 대장전을 만들기 위해 마련됐다.

토론회는 이용표 가톨릭대 교수, 제철웅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이 좌장을 맡았다. 발표는 이정하 장애와인권 파도손 대표, 유동현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장, 김순득 수원마음사랑 회장, 박종언 마인드포스트 편집국장, 김도희 변호사 등이 진행한다.

이어지는 토론에서는 신하늘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 사무관, 서동운 서울시 장애인인권센터장, 손주영 대한간호협회 정신간호사회 정책이사 등이 주재한다.

아래 글은 박종언 편집국장의 발표문이다. 정신장애인 당사자를 위한 대안 언론이 만들어져 온 과정을 담았다. 마인드포스트는 정신장애인 권리선언을 지지하며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켜내려는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공동체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한다.

당사자 언론의 준비 과정

정신장애인 당사자 언론을 만들자는 ‘뜻밖의’ 논의가 시작된 건 2015년 7월 무렵이었다.

당시 이용표 가톨릭대 교수와 최정근 한울법인 국장이 세상사를 이야기하다가 기자 출신의 정신장애인이 있다는 정보가 나왔고 그걸 토대로 정신장애인 신문을 만들어보자는 계획이 만들어졌다. 비정신장애인인 이들의 논의와 아이디어가 없었다면 당사자 신문은 애초에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자 출신의 그 정신장애인은 나였다. 당시 나는 정신장애인 주거시설에서 6년째 생활하던 중이었다. 그리고 토요일마다 정신장애인 당사자 문학모임에 참여하며 앞으로 뭘 해야 할까를 고민하던 시점이었다. 그리고 주거시설에서 퇴소를 앞둔 시점이기도 했다.

그해 어느 무더운 날, 최 국장이 연락을 해 왔다. 당사자 신문을 만들자는 제안이 들어왔고 나는 조금 망설였다. 시설을 나가 혼자 살면 혼란스러웠던 지난 시절을 돌아보지 않고 ‘소설 창작’에만 전념할 계획이었기 때문이었다.

그해 10월이면 나는 퇴소해야 했다. 그런데 무슨 이유였는지 나는 순순히 “하겠다”고 답했다. 대신 모임 참여는 퇴소 이후인 10월 이후로 잡았다.

그렇게 신문 만들기가 시작됐다. 우선은 기자 경력 10년의 최 국장이 매주 수요일에 모여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을 대상으로 역피라미드 글쓰기 등 신문 기사쓰기를 훈련시켰다.

그 기간 나는 퇴소했고 인천에서 임대주택에 당첨돼 방 두 칸의 넓은 집에서 살 수 있게 됐다. 주거가 안정되면서 나는 새로운 신문 만들기라는 당사자 운동에 뛰어들 수 있었다. 나는 약속대로 10월에 당사자 모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기자생활을 조금 했다는 이유로 나는 데스크라는 지위를 부여받았다. 당시 기사쓰기 모임에 참여하는 당사자는 7명쯤이었다. 이들은 열정적으로 기자 훈련에 임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아는 한의 지식을 모두 쏟아부었다.

몇 달이 흘렀다. 그 동안 어떤 정신장애인은 아무 말 없이 모임에 나오지 않았고 어떤 이는 병이 재발해 입원하기도 했다. 어떤 이는 나오기도 하다가 한참 보이지 않다가 어느 날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나타나기도 했다.

고민이 그렇게 시작됐다. 정신장애인이기 때문에 무작정 온정주의로 나가야 하는가의 문제였다. 신문 만들기는 많은 인내와 긴장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그런데 이들이 이 버거운 작업을 견뎌낼 수 있을까의 문제도 제기됐다. 게다가 이들이 쓰는 기사는 90% 이상 내가 데스킹(수정)을 해야 할 정도로 일정 정도의 기사쓰기 수준에 한참 모자랐다.

기사쓰기의 도전과 절망

비정신장애인을 기자로 채용하는 문제가 수위로 떠올랐다. 이 교수와 최 국장, 그리고 나는 이 문제를 고민해야 했다. 그리고 기자들과도 이 문제를 논의해야 했다. 대안적인 좋은 신문을 만들자는 건 당연한 결론이었다.

그런데 우리의 기사가 내용이나 형식적으로 모자라더라도 온정적으로 우리를 봐 달라는 건 신문기자로서 용납될 수 없는 시각이었다. 그렇지만 우리의 현재 수준을 생각하면 비정신장애인 기자의 충원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논의가 길어졌고 마침내 우리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가 조금 늦더라도 우리의 힘으로 신문을 만들자. 조금 모자라더라도 우리의 신체와 정신을 사용해 이 세계를 전복해 보자. 그러니까 정신장애인 신문은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책임지고 만들자는 결론이었다. 정체성을 지키자는 결말이었다.

다시 신문 만들기 과정은 길고 지루하게 이어졌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당사자 기자들과 만나 기사쓰기와 기사 아이템 찾기 등의 기본적 스킬을 가르쳤다. 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늘 한 가지였다. “스트레이트를 잘 써야 한다”는 것.

그렇지만 기자들의 스트레이트 기사는 여전히 나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이제 와서 돌아설 수는 없었다. 나는 기자들을 다그쳤고 그 와중에 또 누군가는 병을 핑계로 나오지 않았고 어떤 이는 취업을 했다며 모임을 떠났다. 막막한 벽 앞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시인 김수영은 “시(詩)는 온몸으로 밀고 가는 것”이라고 했다. 나 역시 ‘온몸으로’ 우리의 모임을 밀고 나가야 했다. 전후좌우의 논리는 필요 없었다. 중요한 건 신문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창간일 전까지 기자들은 일정 정도의 수준까지 올라와 있어야 했다. 나의 욕심이 과했다는 걸 깨달은 걸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잠깐의 절망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우리는 걸어가야 했다. 애초에 길은 없었다. 우리가 길을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다시 시인 김수영은 말했다.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다”고. 나는 “기자의 기사에는 땀과 수고로움이 섞여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오마이뉴스 본사 방문 ©마인드포스트.
오마이뉴스 본사 방문 ©마인드포스트.

우리는 땀이 없었고 수고로움을 이어나갈 정신적 의지도 모자랐다. 정신장애인 당사자에게 갑작스럽게 많은 로드(일)를 주면 열에 아홉은 재발을 경험하게 된다. 이건 기후가 바뀌면 병이 재발하는 계절성 징후와도 비슷한 일이다. 이 정신을 어떻게 단련시켜야 할까. 고민은 더 깊어졌다.

시간을 흘렀고 우리는 2017년 1월을 창간일로 명시했다. 많은 시간이 남아 있어 안도하기도 했지만 우리의 기사쓰기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었다. 그 기간 동안 우리는 장애인 신문인 에이블뉴스를 방문했고 오마이뉴스를 방문하기도 했다. 나 또한 그들이 어떻게 기사를 생산하는지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는 기회였다.

우리는 늘 그렇듯 수요일마다 모여서 기사쓰기를 공부했다. 또 취재거리가 있으면 현장에 나가 기사를 쓰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병을 이유로 나오지 않았다. 또 누군가는 아무 말 없이 모임에서 사라지곤 했다. 자주 겪다보니 이제는 그 불참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될 정도였다.

기사에는 땀과 수고로움이 섞여 있어야

데스크인 나의 리더십도 부족했다. 나는 그들에게 함께 가야할 가치를 공유하지 못했다. 나 혼자만의 매너리즘에 빠져 이들을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것으로만 나의 역할을 한정했다. 나도 견디기 힘들어,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건 해야 할 소리는 아니었다. 그래도 몇 명은 긴 전투가 끝난 후의 병사들처럼 꿋꿋하게 남아 있었다. 그들을 붙잡고 그들에게 가치를 공유해야 했다.

나는 자주 말했다. “기사는 기자의 수고와 땀방울이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독자들이 읽고 감동한다.”

그런데 나의 노력은 수고로웠던가. 나 역시 편한 방식을 찾고 있지는 않았던가. 반성의 시간은 길어졌다. 그렇게 2017년 1월이 다가오고 있었다. 2016년 12월, 최 국장이 내게 다가왔다. “경영상의 문제, 재정상의 문제로 신문 창간일을 일 년 늦춥시다.”

나는 그때 후유,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시 우리는 수요일마다 만나 기사쓰기 공부를 계속해 나갔다. 참 긴 시간이었던 것 같은데 돌아오면 이토록 찰나 같다니. 우리는 모였고 썼고 발표했고 강의했고 토론했다. 그리고 어떤 이는 또 아무 말 없이 나오지 않았다. 누군가는 자살 충돌이 올라와 더 이상 기자생활을 하지 못하겠다고 나가버렸다. 나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그러는 동안 또 하나의 문제가 불거져 나왔다. 우리가 채용한 이 기자들에게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그들의 노력에 상응하는 보수를 줄 수 있는가였다.

우리는 돈이 없었다. 가난했다. 그렇지만 그게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됐다. 어떤 경우에도 노동에 대한 대가를 보상하지 못한다면 그건 또 하나의 착취라고 생각했다. 이들에게 월급을 주지 않으면서 밀린 월급의 지급을 요구하는 집회에 가서 취재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그런 상황에서 기자에게 취재지시를 내리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재정적으로 열악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논의는 이어졌고 결론이 나왔다. 일단 신문을 만들어야 한다. 그 다음은? 그것은 과정 속에서 해결해 나가자. 다행히 어떤 단체에서 광고를 내겠다는 연락을 해 왔다. 다른 곳에서도 광고를 내겠다는 연락이 이어져왔다. 이제 기사만 잘 쓰면 되겠구나 싶었다.

2018년 1월. 우리가 신문을 창간하는 디데이였다. 그렇지만 또 다른 이유로 우리는 창간을 미뤘다. 나는 또 한숨을 쉬었다. 만들어야 하는데 만드는 과정이 자꾸 지연되면서 나는 어느 날은 신문에서 손을 떼고 잠적하고 싶었다. 잠수를 타고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건, 내 삶의 운명이었다. 세상의 모든 움직임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다. 나는 내가 해야 하는 이번 생애의 한 의무를 기꺼이 받아안아야 했다. 이용표 교수와 최정근 국장이 주변에서 지지하지 않았다면 나는 어느 자리에서 걷기를 멈추고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열악한 조건에서 한 걸음 걷기

사르트르는 인간에게 타자는 지옥이라고 했다. 인간이 인간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지옥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말한다. 인간에게 인간만큼 유익한 것은 없다고. 나는 스피노자의 공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인간은 인간을 통해 치유되고 인간을 통해 병적 징후에서 해방된다. 나는 요즘 그런 의미를 온몸으로 경험하고 있다. 내가 하나의 일을 갖고 사람들을 만나고 사람들 속에서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토론하고 부딪히는 그 과정이 치유의 과정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는 것이다. 내게 타자는 나를 치유시키는 사랑이었다.

2018년 1월이 지났다. 그 동안 우리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우선 우리 신문을 경영적으로 지원해줄 대표를 한 명 모시게 됐다. 조금은 한숨을 돌리게 된 셈이다. 그리고 신문기자 경력이 있는 30대 중반의 남성 한 명이 우리 신문사로 들어왔다. 그는 신문의 인터넷 홈페이지 구축에 결정적 도움을 주었다.

또 영국에서 공부했고 최 국장의 제자인 20대 후반의 청년이 기자로 편입하게 됐다. 그는 우리 신문의 외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당사자 기자도 4명이나 된다. 우리는 어느 순간 많은 양적이고 질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최 국장은 더 이상 신문 만들기를 연기하면 안 되겠다고 했다. 나도 동의했다. 우리는 올해 5월 30일을 디데이로 잡았다. 1년 전 정신건강복지법 시행일이 그날이었고 상징성을 부여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내가 다시 날짜를 미루자고 했다. 그날 창간이 내겐 왠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6월 11일 월요일. 우리는 역사적인 창간의 날을 맞이하게 된다. 이 토론회가 끝난 열흘 후 우리는 2년 6개월간의 긴 준비를 마치고 출항하는 신문의 배에 올라타게 될 것이다. 긴 여정이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정신장애인 당사자 기자들은 그 여정 속에서 치유되고 프로페셔널한 기자로 성장해 갈 것이라 나는 확신한다.

당사자 언론의 정치적 전망

우리 신문의 정치적 지향점은 정신장애인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옹호, 권리의 보장이 핵심이다. 사회정치적 편견에 대한 저항도 담고 있다. 오랜 시간 정신장애, 즉 광기는 수용소에 머물러야 했다.

1995년 정신보건법 시행을 앞두고 부산을 진원지로 정신장애인 가족 모임이 전국적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정신장애 운동은 정신장애인 당사자보다 그를 보호하는 가족이 먼저 시작했다. 정신장애인 당사자 그룹도 만들어졌지만 정치적 영향력이 미미했다. 그때는 우리의 권리를 이야기할 언론 또한 부재했다. 가족은, 그리고 일부 치유된 당사자들이 정치적 담론을 만들어갈 공론의 장이 없었다.

그리고 10년의 기간을 지나 정신장애인 당사자 운동이 폭발적으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자생적인 정신장애인 당사자 운동은 그렇게 21세와 함께 시작됐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특히나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을 기폭제로 곳곳에서 당사자 운동단체가 탄생했다. 이들은 당사자의 존엄에 대한 국가의 법적 제도적 보장, 언론의 무분별한 정신장애인 희생양 만들기에 대한 저항을 이어갔다.

이들은 정신장애인이 사회적 복지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안이 생기면 국가를 상대로 복지서비스를 요구했다. 또 정신병원에의 강제입원이 인간의 자기결정권과 존엄을 무시한 폭력으로 규정하고 점점 타 조직과 연대해 이를 철폐해 나가는 행동을 보였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재입원하고 자살하는 과정도 겪어야 했다. 어떤 이들에게는 아무 일도 아닌 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절박한 생존의 가치가 된다. 그 운동이 온건하든 급진적이든 우리는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요청에 답해야 할 의무가 있다. 특히 국가는 인권이 폭력적으로 무시당하는 정신병원에서 생존해 나온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들의 민주적 의견에 응답해야 한다.

마인드포스트 편집회의 ©마인드포스트.
마인드포스트 편집회의 ©마인드포스트.

그러나 국가는 우리의 요구를 외면했다. 긴 시간, 정신장애인의 목소리는 사회의 자장 바깥에서 겉돌았다. 무엇보다 주변화되고 단일화되지 못한 사회적 약자로서의 정신장애인은 국가가 굳이 보살필 필요가 없는 존재로 인식돼 왔다.

이 같은 국가의 비민주성에 대항하기 위해 어떤 정신장애인 단체는 급진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급진적인 이데올로기도 우리의 목소리였다. 그렇다면 이 정치적 정파성을 띈 목소리를 누가 담아내느냐의 문제가 제기된다.

현재의 매스미디어는 정신장애인의 이야기와 실존 자체를 왜곡한다. 문제는 그 왜곡이 왜곡이라는 걸 모르고 기사를 쓰는 기자들의 윤리의식이다. 이들은 정신장애인이 사고를 일으키면 집중적으로 이를 보도한다.

기자들은 정신장애인이 속성이 무엇인지, 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국가에 요구하고 있는지 인간적 사유와 행동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방송법과 신문윤리강령에는 정신장애인의 인권을 옹호하는 선언적 의미들이 다수 녹아 있다. 그렇지만 일상적 상황에서는 기자들은 정신장애인의 사고를 공동체에 대한 심각한 위협처럼 왜곡시킨다.

기자들은 왜 왜곡된 정신장애인 기사를 남발하는 것일까?

나는 그들의 사유 밑바닥에는 ‘정신장애인에 대한 깊은 두려움’이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정신장애인을 만나볼 기회가 없었고 그들이 얼마나 사회적 약자인지, 벌레 한 마리도 제대로 죽이지 못하는 약한 심성을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무지(無知)가 만들어내는 것은 공포이여 공포는 차별과 배제를 낳는다.

기자들도 인간인지라 이 왜곡된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는 관리받아야 할 대상이자 사회정치적 타자이며, 이성적으로 사유할 능력이 박탈된 존재다. 예측불가능하며 위험한 행동을 하고 이유 없이 사람에게 위협을 가하는 이들이며 따라서 우리는 공동체 바깥에 격리되어야 할 존재일 뿐이다.

지식인들도 미셸푸코를 비롯한 서구 철학자들을 인용해 수용소, 격리, 배제, 소외의 메카니즘을 이야기하지만 그들은 정신장애가 무엇인지, 정신장애인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들이 생산하는 장애학의 텍스트 안에서 우리는 다시 소외된다. 그들은 우리는 우리를 모르면서 우리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를 더 왜곡시키는 담론을 생산해낼 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게 왜곡하고 있다.

정신장애인의 삶의 무능력자이며 정치적 자기결정권이 있는 법적 주체로도 인정되지 않는다. 기자들의 인식도 이 같은 프레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게다가 정신장애인은 정신보건법이 주는 제도적 혜택에서도 소외된 낯선 타자들이다. 우리는 장애인 세계에서도 이중으로 소외된 존재들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은 그렇게 시작됐고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를 좀 더 사회에 폭넓게 확장시키기 위해 신문이 필요했다. 우리의 정치적 이야기를 우리의 시각으로 풀어내는 대안적 언론의 요구가 아주 낮은 수위에서 흘러나왔다.

신문을 만들어야 했다. 그것은 우리가 정치적 주체이며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존엄한 인간임을 선포하는 선언적 상징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신문은 공명정대함을 넘어 ‘정파적’ 시선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정신장애인이 자유로운 정치적 담론을 생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당사자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영토를 만들어주고 그들이 세상을 향해 더 이상 온정주의적 시각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타당한 관념으로 권리를 옹호하고 사회적 부조리를 지목하고 그것이 정신장애인의 삶의 존엄을 훼손할 수 있을 때 그것을 거부할 수 있는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자연히 우리의 신문은 정파성을 띌 수밖에 없다. 우리가 우리의 권리를 옹호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우리를 끊임없이 공동체에 노출시켜야 했다. 비정신장애인과 더 많은 접촉함으로써 그들이 이유 없이 가지는 불안함과 공포심을 덜어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래서 우리가 정치적 목소리를 낼 주체라는 것을 그들이 인정하게 된다면 더 이상 정신장애에 대한 막연한 공포에서 기사를 생산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못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세계에 우리를 온몸으로 노출시켜야 한다.

신문 만들기는 이 같은 지평에서 시작됐다.

강제력이 없는 인권 옹호는 선언에 불과하다. 우리가 만들어갈 신문은 인권의 선언성을 넘어 보다 강제력을 갖춘 제도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언론 방송법의 권유문에 불과한 정신장애인 보도에서의 주의 사항이 하나의 강제력을 갖추도록 하기 위해 목소리를 낼 것이다.

정신장애인 인권에 대해 언론은 그동안 많은 말들을 해 왔다. 그렇지만 정신장애인은 여전히 관리의 대상에 머물러 있다. 정신장애인의 삶이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게 언론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나는 현재의 왜곡된 이데올로기 하에서는 그 같은 자유로움을 획득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정신장애인은 위험이라는 사회적 표상을 갖는다. 그 위험은 상징화되어 이를 가두어야 할 공간이 필요하게 된다. 표상은 병원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 표상은 병원 안에서만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것이 인간을 대하는 세계의 태도인가. 우리의 신문은 이 같은 타당한 의문에서 출발한다.

정치적 소수자이고 약자인 당사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 갈 때 사회는 조금은 더 나은 쪽으로 진보해가지 않을까. 그러므로 우리 대안적 언론은 요구한다. 더 이상 우리를 빼고 우리를 이야기하지 말라. 우리가 있어야 할 공간은 공동체 안이며 외부의 병원이 아니다.

우리는 온정 대신 권리를 선언한다. 우리를 가두지 말라. 우리가 만든 정치적 담론을 들어달라. 그리고 우리의 자유로운 자기결정권을 법적 제도적으로 지켜달라. 자유로운 우리의 삶을 더 이상 국가 청결성 이데올로기와 시민적 편견으로 왜곡하지 말라.

우리의 대안적 언론은 사회와 장애를 읽는 신뢰할 수 있는 텍스트가 되고 당사자들에게는 자유의 영토가 될 것이다. 그것은 곧 우리의 정치적 전망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우리 신문 마인드포스트의 신문사 소개로 발언을 마무리하려 한다.

신문사 소개 글

정신장애인은 사회적 청결성이라는 이데올로기 명목으로 정신병원에 격리되어야 했고 스스로의 목소리 없이 의료 권력의 언어 아래에서 침묵하는 존재였습니다.

정신장애에 대한 보편적 인식은 ‘위험함’, ‘예측 불허의 존재’ 혹은 ‘두려운 존재’였습니다.

정신장애는 사회의 주변부에서 겉돌았고 정신장애에 의한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격리 이데올로기가 더 강화되는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우리는 이야기가 필요했습니다. 왜 우리는 끊임없이 배제와 격리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는지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걸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정치권력이든,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든 그들에게 우리의 존엄이 왜 훼손돼서는 안 되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의 정치적 목소리를 내기 위해 오늘, 조금은 엄숙한 마음으로 신문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미쳤다고 규정한 사회의 법적 제도적 이데올로기에 정치적 저항을 하려고 합니다.

큰 것을 얻으려는 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를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이제 그 시작을 마인드포스트의 이름으로 시작하려 합니다.

모든 편견과 차별을 생산하고 확장시키는 정치권력과 제도는 바뀌어야 합니다. 그래서 ‘다르다’는 이유로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되는 세상을 넘어서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말하겠습니다.

끊임없이 공동체에서 무시되고 배제돼 왔던 우리가 이제 우리의 이야기를 정치적으로 담론화하고 평등한 사회를 위한 저항의 자리에 서 있겠습니다. 외롭고 고독하고 길고 어려운 길이겠지만 예속된 정신장애인의 해방을 위해 한발 한발 걸어가겠습니다.

“우리를 빼고 우리에 대해 이야기하지 말라”는 우리의 슬로건입니다.

마인드포스트와 함께 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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