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자=흉악범죄’라고? 또다시 불거져나온 정신장애인 혐오 기사
‘정신질환자=흉악범죄’라고? 또다시 불거져나온 정신장애인 혐오 기사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8.05.31 21: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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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매체 ‘비온뒤’, “정신질환자 흉악범죄 계속 늘어” 주장
정신질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전근대적 프레임
정신장애계 강한 반발, “성명서 내고 항의 방문할 것”

 

정신장애인을 위험하고 흉악한 존재로 부각시킨 인터넷 언론 기사에 대해 정신장애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31일 의학전문 인터넷 매체 비온뒤는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1주년-정신질환자 흉악범죄’라는 제하의 기사를 내보냈다.

매체는 “정신질환자의 흉악범죄가 늘고 있다”며 “일부라도 흉악범죄를 저지를 소지가 있는 환자가 병원에 수용되어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난 1년간 정신질환자의 범죄 증가율이 늘었다는 실증적 조사결과는 없다”면서 “그러나 시민들이 피부로 체험하는 공포심은 크다”고 강조했다.

매체는 지난 2017~18년 간 발생한 15건의 정신장애인 사건사고를 나열한 후 “환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정신건강복지법을 개정하는 흐름과는 다르게 정신질환 범죄자 수는 꾸준히 늘고 있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매체는 법무부의 ‘2016년 범죄백서’를 인용해 정신질환 범죄가 2006년 4천889건에서 2015년 7천16건으로 10년 간 43% 늘어났다며 ‘위험성’을 강조했다.

이어 폭력적 행위와 중증정신질환의 연관성이라는 해외 연구결과를 인용해 보도했다.

“2009년 JAMA에 발표된 옥스퍼드 시나 피젤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폭력적인 범죄는 정신분열증으로 진단된 사람들 사이에서 일반인 비교 집단보다 약 2~10개 더 흔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 10월 정신의학학술저널 정신과 의사 플라이시먼의 연구결과에서도, 정신분열증 환자의 폭력 범죄는 일반인에 비해 4.3배 더 많이 발생했다.”

이 매체는 “지난해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으로 우리 마을이나 동네에 과거 병원에 수용되어 치료받았던 정신질환자들이 크게 늘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매체는 이어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해서 흉악범죄를 일으킬 위험 인물로 낙인찍는 것을 옳지 않다”며 “일반인구에 비해 정신질환자의 흉악범죄 발생률이 높다는 증거도 부족하다. 정신병이 있다고 무조건 격리하고 배척해선 안 되는 이유”라고 톤을 낮추는 제스처를 취했다.

매체는 “그러나 환자의 인권 못지않게 시민들의 안전도 우리가 지켜야할 중요한 가치”라며 “극히 일부라 할지라도 조현병이나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 심하게 앓게 되면 망상과 환각은 물론 감정기복과 폭력성 노출로 충동적이고 비이성적인 흉악범죄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또 “이들이 적절히 치료받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시민의 안전은 물론 환자의 인권을 진정 생각하는 길이라고 믿는다”고 적었다.

매체는 “지금이라도 관계당국과 전문가들은 맹목적인 환자 인권보호보다 극단적 행동을 보여 범죄로 연결될 조짐이 있는 환자들의 경우 정신병원 강제수용이 어렵다면 외래치료만이라도 의무적으로 받도록 해야 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매체는 마지막으로 “법개정 1년이 되었으니 입원 취지대로 잘 시행되고 있는지 행여 치료에서 누락된 정신질환자들은 없는지 살펴볼 수 있는 기본적 통계라도 내놓아야할 것”이라고 기사를 맺었다.

이에 대해 정신장애계는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지난 1996년 시행된 정신보건법의 독소 조항인 강제입원이 정신장애인의 인권과 자기결정권을 침범해 왔다는 사실을 돌아보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당시 보호자 한 명의 동의와 정신과전문의 일인의 서명이 있으면 비정신장애인도 응급이송단에 묶여 정신병원에 강제입원 당하는 사건이 비일비재했다. 이로 인해 많은 이들이 여전히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재산 문제 등으로 정신병원 강제입원이 악용돼 왔다는 점도 오랜 시간 지적돼 온 문제다.

정신장애계는 이 매체가 법무부 2016년 범죄백서를 인용해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이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이는 이 기사를 쓴 최초희 PD가 자신의 기사 내용을 정당화하기 위해 ‘침소봉대’했다며 반발했다.

법무부 범죄백서에는 매년 비정신장애인들이 저지르는 범죄건수가 120만 건~140만 건에 이른다는 현실을 의도적으로 무시했다는 지적이다. 수치를 굳이 환산하자면 비정신장애인들의 범죄건수의 0.4%에 불과한 수준이다. 이는 택시 운전사가 여자 승객을 성폭행했다면 다른 택시운전자들도 다 같은 성폭력범으로 몰자는 이야기나 다름없다는 게 정신장애계의 지적이다.

또 “극히 일부라 할지라도 조현병이나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 심하게 앓게 되면 비이성적인 흉악범죄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는데 우울증은 우리나라 국민 누구나 쉽게 걸릴 수 있는 질병 중의 하나다. 의사들은 이를 ‘마음의 감기’라고까지 언급한다. 그 우울증이 범죄를 일으킨다는 건 최 PD의 부정확한 정보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정신장애인 A씨는 “조현병을 가진 주체를 무조건 격리시켜야 하고 사회에서 배제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전 근대적 발상”이라며 “조현병과 우울증을 정신질환으로 비이성적인 잠재적 범죄자로 모는 건 비정신장애인이 바라보는 참담한 인권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정신장애인 B씨는 “(이 매체가) 일반인구에 비해 정신질환자의 흉악범죄 발생률이 높다는 증거도 부족하다고 했는데 흉악범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확신하는 기사를 내보냈는지 어이가 없다”며 “이는 자신이 정신장애인에 가진 불안함과 두려움을 투사해 팩트를 왜곡하는 태도를 보인 증거”라고 비판했다.

이 기사를 쓴 최 PD가 정신장애인의 범죄가 일반인보다 4배 높다는 외국의 연구 결과를 인용했지만 정신장애계는 이 역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 1970년대부터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서는 정신장애인의 탈시설화라는 공통의 목표를 갖고 정신장애인들을 공동체 속으로 내보냈다. 이 과정에서 준비되지 않는 집단적 탈시설화로 돌아갈 집이 없고 길거를 떠돌 수밖에 없는 이들이 적응하지 못하고 일련의 범죄를 저지른 사건은 있었다.

그렇지만 환자라는 이유로 시설에 가두고 사회와 격리시켰을 때 이들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보장받지 못하고 시설에서만 존재를 확인하는 ‘시설병’에 걸리는 것보다는 낫다는 세계적 합의가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는 게 정신장애계의 설명이다. 외국의 연구 결과만으로 정신장애인을 ‘괴물’로 만들어버리는 데 동의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신장애인 C씨는 “한 명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1만 명을 시설에 가둬야 한다는 건 어떤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가”라며 “개미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할 정도로 마음이 여린 이들이 바로 정신장애인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신장애계는 최 PD가 우려하는 범죄는 일반적 정신장애인이 아니라 사이코패스 등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이들이 저지르는 경우가 많으며 이를 언론이 무작정 ‘조현병 환자’로 몰아가려는 언론의 보도 태도도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공동체가 정신장애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정신장애인은 격리와 배제에서 나올 수 없으며 이로 인해 공포와 차별은 더 커질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공동체의 태도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이정하 정신장애와인권 파도손 대표는 “(항의하기 위해) 해당 매체에 월요일에 방문하겠다고 했더니 (비온뒤 관계자는) 언론중재위원회에 진정을 하라고 했다”며 “월요일에는 이 매체 대표 홍혜걸 씨는 선약 때문에 그날 부재한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정신장애계는 이번 왜곡된 언론 보도와 관련해 성명서를 준비하는 한편 다음 주 매체 본사를 항의방문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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