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형 기자의 변론] 동네 '바보 아저씨'가 사라진 자리에 들어선 혐오와 차별들
[이관형 기자의 변론] 동네 '바보 아저씨'가 사라진 자리에 들어선 혐오와 차별들
  • 이관형 기자
  • 승인 2020.08.04 20: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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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마녀사냥'은 권력이 만든 가상의 적..사회 안정 위한 '희생양'
나치 역시 사회 안정 위해 유대인을 적으로 만들어
한국 근대사에 '사회정화' 차원의 인권 유린도 '마녀사냥'
조현병은 예비적 범죄, 언론이 만든 '허구'

저는 서울 강북구 미아리에서 유년 시절의 대부분을 보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 동네는 참 못 살던 달동네였죠. 언덕을 따라 허름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골목길도 계단이 많아 꽤 복잡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친구들 중에는 집이 가난한 아이들도 있었고, 이혼 가정의 친구들도 많았어요.

국민학교에는 특수반이 있었는데, 지적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모아 놓은 학급이었던 것 같습니다. 가끔 특수반 아이들을 놀리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특수반 아이들을 학교에서 쫓아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부모들은 한 명도 없었죠.

그리고 동네에는 꼭 한 두 명의 바보가 있었습니다. 그중 야채가게에서 일한다고 해서 ‘야채 바보’라 불렸던 아저씨는 우리가 바보라고 놀리는 노래를 하면 화를 내며 쫓아왔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겁이 나서 멀리 잽싸게 도망쳤는데, 그 바보 아저씨는 몇 미터만 따라오다가 자기 가게로 돌아가곤 했어요.

거기서 재미를 느꼈던 아이들은 또 야채가게 근처에서 바보 아저씨를 놀리다가 도망가기를 반복하곤 했습니다. 그 바보 아저씨는 아이들이 놀릴 때마다 화가 났을 법한데, 금새 돌아가곤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아저씨는 처음부터 아이들을 해코지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동네가 많이 변했습니다. 수억 원의 가치를 가진 아파트가 들어서고, 골목길 계단 대신 도로가 들어섰습니다. 이제는 코흘리개 아이들이 골목에서 공을 차는 대신, 무거운 가방을 멘 아이들이 셔틀 차량을 타고 학원을 오고 갑니다. 그리고 우리는 더 이상 바보를 찾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직 학교에 특수반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영재학교가 새로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오래전 야채 장사를 하던 가게 대신 대형 마트가 들어선 것처럼, 화물차에서 야채들을 옮기던 바보 아저씨의 모습도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어졌습니다. 몇 년 전, 강서구의 특수학교 건립에 반대하던 주민들 앞에서 장애 아동의 학부모들이 무릎을 꿇었죠. 아마 강북구에 특수학교가 세워진다면 많은 주민들이 반대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더 이상 장애인들이 살아갈 수 있는 서울 땅은 없는 거죠. 그래서 깊은 외곽으로, 멀리 떨어진 지방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바보라 불렸던 지적장애인을 더 이상 품어주지 않습니다. 야채가게에서 일 시키고 정당한 월급을 줬던 멋진 가게 주인도 없어졌고, 그런 가게에서 바보 아저씨에게 가격을 물어보며 말을 거는 이웃들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바보라고 놀리며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의 모습도 사라졌고요. 그렇게 세상은 더욱 각박하게 변해갔던 것 같습니다.

언젠가 장애인 주차장에 다음과 같은 벽보가 붙여져 있어서 뉴스가 된 적이 있었죠.

“장애인이 이 세상사는 게 특권입니까? 장애인은 특권이 아니라 일반인이 배려하는 겁니다.”

전 이 벽보가 다음과 같이 느껴졌습니다. 

“장애인은 일반인들이 같은 공간(아파트)에서 살 수 있도록 배려해준 것이다. 우리의 배려가 아니면 너희들은 우리와 함께 살 수도 없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의 이러한 배려(허락)를 받지 않고 한 공간에서 사는 집단이 있습니다. 바로 조현병과 같은 정신질환을 숨기고 사는 당사자들이죠. 만약 우리 옆집에, 우리 아파트 윗층에 조현병 당사자가 살고 있다면? 주민들은 범죄에 대한 공포와 떨어지는 집값을 걱정하며 생활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국가와 정부가 나서서 이러한 조현병 환자들을 관리해주길 바라는 것이겠죠. 정확히 말해서 이웃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조현병 환자들을 멀리 외딴 섬이나 정신병원의 창살에 갇혀서 떨어져 살기를 바랄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적이 더 무섭다고 하죠. 정신질환은 눈에 띄지 않는 병입니다. 누가 조현병 환자인지 판단 할 수 없다 보니 그 공포심은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조현병 환자들을 색출하여 동네에서 쫓아내야만 마음이 안정되고 편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이는 불가능하죠. 결국 조현병에 대한 공포는 조현병 환자에 대한 분노와 증오로 바뀌게 됩니다. 이로 인한 폐해는 과거 중세 시대 유럽의 마녀사냥과 맥락이 맞닿아 있습니다.

17세기 전 유럽이 경제적 빈곤과 실업, 가난에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거리에 노숙자들은 넘쳐나고 정부에 대한 시위와 폭동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유럽의 권력자들은 대중의 분노와 증오를 해소시킬 목적으로 가상의 적을 만듭니다. 그 적은 바로 마녀입니다. 당시 기득권 세력은 범죄자나 정치범, 매춘부는 물론, 장애나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을 대중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잔인하게 고문합니다.

“어느 악령을 주인으로 섬기고 있느냐?”

“마법 집회에 어느 악령이 오며, 집회에 참석한 공범자는 누구인가?”

그들은 마녀 재판에 처해진 사람들에게 악령의 하수인임을 인정하라며 고문을 가합니다. 못 박힌 철제 의자에 앉힌 두 밑에서 불을 때기, 바늘 꽂힌 혁대 채우기, 가시 박힌 신발 신기기, 불에 달군 쇠로 지지기 등 다양한 방법의 고문을 했습니다.

그래도 스스로 마녀임을 시인하지 않으면 기발한 방법으로 마녀인지를 판별합니다. 예를 들어, 손과 발을 묶고 물에 빠뜨린 뒤 떠오르면 마녀고, 그대로 빠져 죽으면 마녀가 아닌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결국, 마녀 재판에 처해진 사람들은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죠.

이외에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마녀 재판에 의해 교수형이나 화형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대중들은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마녀 재판을 통해 공포에서 오는 분노와 증오를 표출하고 해소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눈앞에 있는 것은 사람이 아닌, 주술과 마법을 부리는 악마의 하수인, 마녀였기 때문입니다.

불과 100년도 채 지나지 않은 독일의 역사 속에서도 히틀러는 경제적 침체와 대중들의 불만을 표출시키기 위해 유대인을 적으로 만듭니다. 독일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유한 유대인들을 분노와 증오의 대상이 되기 쉬웠죠. 이들을 적으로 삼아 재산을 몰수하고 대학살을 자행합니다. 이때도 많은 독일인들은 나치의 선전과 잘못된 교육을 통해 유대인은 마땅히 죽어야 할 존재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가까운 나라인 일본에서도 비슷한 역사가 있었습니다. 1923년 일본 간토·시즈오카·야마나시 지방에 대지진이 발생해 12만 가구의 집이 무너지고, 45만 가구가 불탔으며 40만 명의 사망자와 실종자가 발생한 사건입니다. 이 관동대지진으로 인해 민심이 흉흉해지고 일본인들은 공포와 분노에 휩싸입니다. 그러자 야마모토 내각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조선인과 사회주의자들이 폭동을 일으킨다’, ‘우물에 조선인이 독을 넣었다’라는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립니다. 이에 일본인들의 공포와 분노의 화살은 일본 내각이 아닌 사회적 약자이자 소수였던 조선인들을 향합니다. 이로 인해 수천 명의 조선인들이 살해를 당하게 되죠.

한국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전두환 정권의 신군부 세력이 ‘국민적 기대와 신뢰를 구축한다’는 명목으로 이른바 ‘사회 정화’ 작업을 추진합니다. 그 일환으로 1980년에 삼청교육대가 설치됩니다. 사회 질서를 해친다는 이유로 전과자, 노숙자, 불량배 등을 검거해 삼청교육대로 보냅니다. 이들은 게으르고 나약하며 국가에 도움이 안 되는 존재들로 낙인이 되죠. 이를 통해 민주화를 후퇴시킨 신군부를 향한 국민들의 분노와 증오는 삼청교육대로 향하게 됩니다. 결국 대중들은 ‘범죄와의 전쟁’으로 정의사회를 구축했다며 신군부에 대해 지지를 보내기도 하죠. 

지금도 언론은 조현병 환자들에 대한 마녀사냥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조현병 환자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마구 살해하는 악마의 하수인, 국가와 사회에 공포심을 일으키는 가상의 적, 게으르고 나약한 존재로 낙인되고 있습니다.

조현병과 관련된 각종 사건과 사고를 보도하는 행태가 결국 “너희 조현병 환자들은 예비적 범죄자임을 인정하라”는 고문과 같이 느껴집니다. 대중들은 잔인한 고문과 같은 뉴스를 보며 교수형을 당해도, 화형을 당해도 당연하다는 식으로 우리들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죄책감이나 이성적 판단은 잃은 채 말이죠.

어릴 적, 우리 동네 아이들은 동네 바보를 놀리기는 했지만, 무서워서 도망가거나 숨지는 않았습니다. 어른들도 바보를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같은 사람으로서 대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동네 바보들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코를 흘리던 특수반 아이들도 더 이상 찾아 볼 수가 없고요.

그들이 사라지고 나서 동네는 더 차가워진 것 같습니다. 이웃 간에 인사도, 새로 이사 온 사람이 떡을 돌리는 풍경도 사라졌습니다. 그 빈자리는 서로에 대한 무관심과 쌀쌀함, 그리고 이상한 사람이 아닌가 하는 의심으로 채워지고 말았습니다. 경제적으로 더 잘 살고 살림살이도 넉넉해졌지만 옛날과 같은 인심과 정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죠. 언제부터 우리는 혐오와 배제의 시대 속에서 살아가게 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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