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형 기자의 변론] 영화 '솔로이스트'를 보며...내 곁을 지켜주는 친구와 가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우리는 회복될 수 있다
[이관형 기자의 변론] 영화 '솔로이스트'를 보며...내 곁을 지켜주는 친구와 가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우리는 회복될 수 있다
  • 이관형 기자
  • 승인 2021.01.19 22: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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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영화 '솔로이스트'

조현병 하면 떠오르는 가장 대표적인 영화는 ‘뷰티풀 마인드’일 것입니다. 수학 천재 존 내쉬라는 사람이 병을 극복하고 교수가 돼 노벨상까지 받은 성공 스토리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 오늘, 조현병을 다룬 또 다른 영화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2009년 개봉한 조 라이트 감독의 영화 ‘솔로이스트’입니다.

아이언 맨으로 유명한 '로버트 다우닝 주니어'가 LA 타임즈 기자 '로페즈' 역으로, '제이미 폭스'가 조현병을 가진 노숙자 '나다니엘'로 등장합니다. 지금부터, 이 영화의 각 장면마다 설명과 해석을 통해 글을 전개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1.

출처 : 영화 솔로이스트
출처 : 영화 솔로이스트

특종을 찾아 발로 뛰는 기자, 로페즈는 도로변에서 우연히 바이올린 소리를 듣게 됩니다. 알고 보니, 한 흑인 노숙자가 현이 두 개밖에 안 남은 고장 난 바이올린으로 연주를 하고 있었습니다. 두 줄의 바이올린으로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해내는 노숙자에게 흥미를 가진 로페즈 기자는 호기심에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노숙자는 자신의 이름은 ‘나다니엘 앤서니 에이어스 주니어’이며, 줄리어드 음대 출신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로페즈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무실로 돌아와 대학 사무처에 학적을 문의했습니다. 실제로 나다니엘이 2년간 학교를 다니다 자퇴했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로페즈는 본능적으로 흥미로운 기사감이라고 생각하여 다시 나다니엘을 만나러 도로변으로 향합니다.

조현병은 본래 정신분열증으로 불렸습니다. 바이올린의 줄을 튜닝하는 것처럼, 현을 조율해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는 뜻으로 탄생한 단어죠. 나다니엘은 바이올린이 두 줄밖에 남지 않은 것처럼, 정신질환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음악적 재능과 천재성은 두 줄의 한계마저 뛰어 넘게 만들었죠. 마치 많은 정신장애인들이 환각과 망상에 시달리면서도 다양한 문학 작품을 창작하는 것처럼 말이죠.

#2. 

출처 : 영화 솔로이스트
출처 : 영화 '솔로이스트'

로페즈 기자는 나다니엘의 이야기를 연재 기사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최대한 도움도 주겠다고 다짐하죠. 먼저 나다니엘을 차가 빠른 속도로 오가는 위험한 도로변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마침, 기사를 본 한 독자가 나다니엘을 위해 첼로를 기증해 주었습니다. 로페즈는 나다니엘에게 첼로를 주는 조건으로 램프 공동체(LAMP COMMUNITY)라는 시설에 입소하기를 권했습니다. 로페즈 기자는 램프 공동체 시설 직원에게 나다니엘의 병명에 대해 묻습니다. 하지만 시설 관리자는 관심이 없다는 듯이, 모른다고 대답합니다.

저는 로페즈 기자와 시설 관리자와의 대화 내용이 기억에 남습니다. 로페즈는 나다니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정신과 치료와 병명에 대한 진단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시설 관리자는 병명에 관심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진단명을 받는 것보다, 옆에서 약을 먹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들이라고 말하죠.

다수의 조현병 범죄 보도는 “흉악한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 알고 보니 조현병 환자였다”라는 틀에 갇혀 있습니다. 기자들은 범죄자의 진단명에 관심을 갖고 부각시키며 기사를 씁니다. 반면, 꾸준한 약물치료를 통해 증상을 완화하고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는 설명은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진단명에 사로잡혀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지 않았나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의 회복에 도움을 주는 소중한 사람들의 존재를 말이죠.

#3. 

출처 : 영화 솔로이스트
출처 : 영화 '솔로이스트'

나다니엘에 대한 기사가 나간 뒤, 해당 도시의 시장은 나다니엘과 같은 노숙인들을 위해 재정을 5천만 달러 늘리겠다고 공약합니다. 로페즈 기자도 이 연재 기사를 통해 ‘올해의 언론상’을 수상하죠. 또한, 나다니엘도 로페즈 기자의 도움으로 소규모 극장에서 연주회 기회를 갖게 됩니다.

그런데 정장을 차려 입은 상류층 관객들 앞에서 나다니엘은 불안과 공포를 느끼게 됩니다. 증상이 시작된 것이죠. “이들에게서 도망쳐! 넌 여기에 온 적도 없고 와서도 안 돼! 사람들이 너를 비웃고 있어!”라는 환청이 머릿속에 가득 울립니다. 결국 그는 무대를 뛰쳐나와 도망가게 됩니다.

당사자들에게는 재정적 지원이나 교육과 취업의 기회도 소중합니다. 또한, 그에 못지않게 당사자들에 대한 이해와 지식도 필요합니다. 당사자들이 왜 아파하는지, 증상을 나타내는 이유가 무엇인지, 가족과 사회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속, 나다니엘의 환청 내용을 보면, 어려서부터 극심한 인종차별을 당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상처가 되었던 말들이 계속 들리고, 스스로를 지키지 못한 죄책감으로 외부와 단절한 채,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었죠. 하지만 증상에 대한 지식이 없던 로페즈 기자는 나다니엘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재정적, 사회적 기회를 주었음에도, 이를 걷어 차버린 나다니엘에 대해 실망하고 분노할 수밖에 없었죠. 그저 병원에서의 약물치료가 증상을 완화시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 믿었습니다. 

#4.

출처 : 영화 솔로이스트
출처 : 영화 '솔로이스트'

결국, 로페즈 기자는 나다니엘을 돕는 것을 포기합니다. 그리고 치료만이 답이라고 생각해 병원 입원 서류를 가져 오죠. 서류를 본 나다니엘은 갑자기 흥분하여 폭력적으로 돌변합니다. 서류에 ‘정신분열증’이라 적힌 병명을 봤기 때문입니다. 나다니엘은 로페즈에게 “난 정신분열증이 아니라 나다니엘 앤서니 에이어스 주니어다!”라고 고함칩니다.

그리고 영화는 나다니엘의 과거를 보여줍니다. 누군가 자신을 해칠 거란 환청에 시달리던 나다니엘은 어머니에게 폭력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그리고 다짐합니다. 환청으로 사랑하는 가족과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인적이 드문 도로변에서 혼자 살겠다고 말이죠. 그때부터 나다니엘은 줄리어드 음대를 그만 두고 노숙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제 이름은 이관형입니다. 이 글을 보는 당사자 분들도 각자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편견과 차별에 사로잡힌 사회는 우리의 이름보다 ‘조현병 환자’라는 수식어를 더 기억할 것입니다. 매우 폭력적이고 무서운 사람들로 생각할 겁니다. 사실, 환청과 망상에 시달리는 당사자들이 가장 괴롭습니다. 때로는 통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환청과 망상이 선명하게 나타납니다.

그러나 환청과 망상에 시달리는 우리는 괴물이 아닙니다. 증상에 시달려 자해를 하고 스스로의 생명을 포기할지언정,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노력하는 당사자들이 대다수입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 지금도 아무렇지 않게 떳떳이 건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진짜 괴물 아닐까요.

#5.

출처 : 영화 솔로이스트
출처 : 영화 솔로이스트

로페즈 기자는 고민 끝에 나다니엘을 도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냅니다. 나다니엘의 여동생을 수소문한 것이죠. 로페즈는 오빠의 행방을 몰랐던 여동생을 데리고, 램프 공동체로 찾아갑니다. 여동생은 노숙자가 된 오빠의 곁에 살포시 앉습니다. 그렇게 두 남매는 재회했고, 로페즈 기자도 계속 나다니엘의 친구가 되어주기로 결심합니다. 이어, 그들이 함께 나란히 앉아 연주회를 관람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이 납니다. 마지막에 로페즈 기자는 다음과 같이 독백합니다. 

“여전히 그의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내가 나다니엘에게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정신의학 전문가들은 친구가 돼주는 것만으로도 두뇌의 화학 성분이 바뀌고 그의 뇌가 더 잘 기능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사실, 우리 우정이 도움이 됐을지도, 안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 자신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다. 나다니엘의 용기와 겸손, 예술의 힘에 대한 그의 믿음을 보면서 자신의 믿음에 충실한 것이 얼마나 존엄한 일인지 배웠다.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것 말이다.”

이제 나다니엘은 로페즈라는 친구와 여동생인 가족을 갖게 되었습니다. 내 곁을 지켜주는 친구와 가족이 있다는 것은 분명 회복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제게도 저를 믿고 지지해주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사자 분들도, 가족과 친구들이 분명 도움이 될 거라고 믿습니다. 그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가장 훌륭한 회복의 비결입니다.

 

출처 : 영화 솔로이스트
출처 : 영화 '솔로이스트'

이 영화에는 조현병 당사자는 물론, 기자와 시설 종사자, 가족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나다니엘이라는 당사자를 지지하고 도움을 주기 위해 저마다의 방법으로 노력했습니다. 나다니엘은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성공으로 연결하지 못했고, 병의 증상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램프 공동체의 여러 노숙자들 앞에서 연주하는 그의 모습은 어떤 음악가보다도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그리고 행복해 보였습니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메시지처럼 큰 업적을 이룬 존 내쉬와 같은 당사자의 인생도 위대하지만, 영화 ‘솔로이스트’처럼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이 곁은 지켜주는 나다니엘과 같은 당사자의 인생도 충분히 아름답지 않나요. ‘솔로이스트’, 인생에서 꼭 한 번 봐야 할 영화로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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