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형 기자의 변론] "정신장애 학문 개척해 당사자 회복시키는 상처받은 치유자 되고 싶어"
[이관형 기자의 변론] "정신장애 학문 개척해 당사자 회복시키는 상처받은 치유자 되고 싶어"
  • 이관형 기자
  • 승인 2022.02.20 19: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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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평생교육원 강의 맡으며 당사자 철학 알리고 싶어
수강생들도 전문적 지식보다 당사자로서의 이야기 원할 것
향후 정신장애학 학문 분야 만들고 개척할 희망 가져

저는 최근 강의 준비로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동안 대학이나 센터, 시설에서 일회성 당사자 강의를 해왔습니다. 그러다 작년 말, 한동대학교 교수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평생교육원에서 한 강좌를 맡아보지 않겠냐고 말이죠. 전 흔쾌히 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다만, 8주의 기간은 너무 길고 자신이 없어서, 6주 짜리 강의를 맡기로 했죠.

한동대학교는 제가 책을 내고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강의를 했던 곳입니다. 당시, 학생들 앞에서 강의를 할 기회를 주셨던 교수님이 이번에는 한 강좌를 맡게 해 주신 것입니다.

나름대로 6주 과정의 커리큘럼을 짜보았습니다.

첫 시간은 제가 살아온 당사자의 삶에 대해 발표하고, 두 번째 시간은 의료적 시각으로 DSM-5에 대해 강의하며, 세 번째 시간은 동료지원가 관점으로 정신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네 번째 시간은 당사자를 위한 회복의 10가지 원리, 다섯 번째 시간은 시대별 정신장애인의 인권, 그리고 마지막 시간에는 당사자 철학으로 커리큘럼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각 커리큘럼에 맞게 필요한 책과 논문, 자료들도 배치해 보았습니다.

아직 강의안의 절반도 완성하지 못한 상태지만, 개강일 전에 충분히 준비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번 강의를 준비하면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그리고 관심이 적었던 분야에 대해 저절로 공부가 되었습니다. DSM(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 책이 왜 중요하고, 꼭 필요한지? 그리고 어떤 비판을 받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바라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정신장애 당사자와 살아가는 가족들에게 방법론적으로 도움을 주고 싶고, 수많은 당사자들과도 회복의 과정을 나누고 싶습니다. 과거 정신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차별의 역사를 통해, 현재는 당사자들이 좀 더 존엄한 존재로 대우받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런 점에서, 무거운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고 강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책을 출판하고 판매하여 돈을 버는 것처럼, 강의를 하면 강사비도 받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당사자와 가족 분들, 그리고 관련된 종사자 분들의 도움을 통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었습니다. 더 이상 부모님으로부터 용돈을 받지 않게 된 것이죠.

제가 책을 만들거나 강의를 하는 것도 경제적으로 자립하기 위함이 큽니다. 30대 후반이라는 나이와 또래 친구들의 수입을 생각하면 많이 부족하고 부끄럽지만, 저 역시 정신질환을 가진 당사자로서 적어도 내 식비와 필요한 용돈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합니다. 공부하는데 필요한 다른 책들도 살 수 있고요.

다만, 제 책을 읽는 독자 분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제 강의를 듣는 분들에게 실망을 끼치지 않도록 열심히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제 강의를 좀 더 많은 분들이 들어 주셨으면 좋겠고, 도움을 받으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 역시도 강의료가 아깝지 않은 수업이 되도록 노력 중입니다. 이를 통해, 저도 노력의 대가에 따라 떳떳하게 돈을 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만 더 많은 책을 구입해서 공부할 수 있고, 1인 출판인으로서 인쇄비를 마련해 계속 좋은 책들을 출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가족 행사가 있을 때, 장남으로서 외식비도 부담할 수 있고요.

제가 책과 강의로 수입을 얻는 것은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버는 수입만큼의 노력을 하지 않고, 대충 살려는 태도가 부끄러운 것이지요. 그래서 이렇게 <마인드포스트>를 통해 강의를 알리는 글도 쓰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20년간 조현병과 함께 살아와서인지, 아니면 과거의 아픔들이 떠오르는 증상을 재우고자 약을 먹어서인지, 혹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자연스러운 현상인지 모르겠습니다.

전 이해력과 판단력, 암기력과 순발력이 과거보다 떨어짐을 느낍니다. 누군가와 중요한 통화를 할 때는, 늘 통화 녹음 기능을 자동으로 설정해 놓습니다. 전화를 마치고 난 뒤에,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녹음된 통화 내용을 듣고 나면, 제가 잘못 이해하거나 오해한 부분들이 꼭 나타나곤 합니다.

한편으론 카페나 식당에서 많은 음식이나 음료를 주문하고 나면, 영수증에 적힌 액수나 수량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할 때도 있었습니다. 종업원에게 확인을 하고 나면, 제 실수였음을 깨닫고는 부끄러워했죠. 누군가와 약속을 할 때도, 꼭 온라인 달력에 메모를 하는 습관이 있는데, 메모를 하지 않은 약속은 꼭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운전면허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운전을 두려워 하는 것은 순간적인 판단력과 순발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죠. 하지만, 통화 녹음이나 달력 메모 습관처럼 저 만의 노력과 방법을 계속 만들다보니, 이제는 익숙하게 대처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강의에 있어서, 저를 초대해 주신 분들이 제게 기대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교수님들처럼 전문적인 지식과 이론보다, 현장 전문가들처럼 경험에서 나오는 노하우가 아니라, 당사자로서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신다는 사실을요.

한때는 저도 책상에 앉아 책과 논문으로 지식을 쌓는 고상한 연구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제 길이 아니었습니다. 좀 더 당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경험을 공유하며, 살아있는 지식과 경험을 나누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올해부터 정신장애 당사자와 가족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는 신앙공동체로 교회를 옮겼습니다. 그리고 당사자들의 자조모임에도 가급적 자주 참석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눈으로 배우는 책과 논문의 이야기가 아닌, 진짜 살아있는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공부하고 배우기 위함이죠.

이번에 강좌를 맡게 되면서, 제게도 하나의 꿈이 생겼습니다.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 아닌, 좀 더 큰 꿈과 비전을 품고자 합니다.

현재 공부 중인 장애학 박사과정을 졸업하고 나면, 언젠가는 한국에 ‘정신장애학’이라는 학문 분야를 만들고 싶습니다. 제가 배우는 장애학뿐 아니라, 정신의학과 사회복지학, 심리학과 상담학을 총 망라한 ‘정신장애학’이란 학문 분야를 개척하고 싶습니다. 더불어, <정신장애학> 또는 <광기학>이라는 학술 교재도 집필하고 싶고요. 어쩌면 너무 큰 꿈이고, 실천이 불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해외의 사례를 통해 희망을 얻고자 합니다.

미국에는 정신병원에 세 번이나 입원한 경험이 있는 조현병 당사자이자 정신과 의사이며 교수이신 ‘다니엘 피셔’ 박사란 분이 계십니다. 한국에서도 출간된 ‘희망의 심장박동’이란 책을 써서 많은 당사자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엘린 삭스’라는 당사자도 로스쿨 석좌 교수이자, 정신과 교수로서, 테드 강연을 통해 대중들의 편견과 인식을 깨우치는 데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저 역시도 단순히 돈을 버는 직업으로서가 아닌, 보다 좋은 책과 강연으로 세상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키고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한동대 평생교육원 강의는 저를 보다 발전시키고, 노력하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당사자로서의 경험과 학문으로서의 깊이를 갖추어, 책과 강의로 당사자를 회복시키는 상처받은 치유자가 되고 싶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의 많은 신청 부탁드립니다.

강의 신청 : 한동대 평생교육원 (https://ecampus.handong.edu/hgu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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