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탑방 일기장] 두 번째 페이지. 목욕탕에서 만난 할아버지
[옥탑방 일기장] 두 번째 페이지. 목욕탕에서 만난 할아버지
  • 이관형 기자
  • 승인 2018.09.21 19:5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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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탑방 일기
옥탑방 일기

 

기록 시점 : 사업 시작을 앞두고 여러 생각이 많았을 때.

마음 날씨 : 걱정과 불안의 파도가 물러가고 넓은 바다는 이내 잠잠해짐.

난 평소 목욕탕 가는 것을 좋아한다. 따뜻한 탕 안에 몸을 담그면 세상의 모든 걱정과 염려가 녹아내리는 것 같기 때문이다. 특히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가면 더 기분이 좋다. 서로 속마음까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목욕탕은 옷만 벗는 곳이 아니다.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소속 회사, 학교의 명찰을 모두 벗어 던져야 한다. 옷차림이나 장신구로 경제적 형편을 알 수도 없다. 바깥세상에서는 알아볼 수 없는 모두가 꾸미지 않은 본연의 모습으로 만나게 된다. 그래서 더 솔직해지고 그 사람의 진실한 마음을 알 수 있다.

그날도 친한 교회 동생과 목욕탕에 가서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자연스레 신앙 이야기도 나오게 되었다. 신앙에 대한 열띤 토론을 이어나가던 중 옆자리에서 씻고 계시던 할아버지가 말을 걸어오셨다. 그분은 자신도 교회를 다니는 장로라고 소개했다. 우리 이야기를 듣고 어른으로서 잔소리를 하시려나 걱정이 되었다. 한편으론 평소 대화 나눌 기회가 없는 나이 많은 어르신과 말을 섞으려니 기대도 되었다.

그러다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자신은 나이가 80을 넘었는데, 얼마 전 병원에서 검진을 받았단다. 의사에게 암으로 의심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며칠 뒤 최종 결과가 나온다고 말했다. 사느냐 죽느냐의 갈림길이 며칠 뒤에 정해지는 것이다. “얼마나 초조하고 걱정될까?” 나 같으면 결과를 기다리는 것조차 견딜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 될 것이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놀라운 말씀을 해주셨다. 결과가 암이든 아니든, 크게 상관치 않는다는 것이다. 조금 빨리 가고 늦게 가고의 차이가 있을 뿐 어차피 사람은 죽어서 하늘나라에 가지 않느냐고 말이다. 그래서 느긋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분의 표정과 말투에서도 여유가 느껴졌다. 정말 신앙을 통해 해탈의 경지에 오르면 생과 사조차도 아무 문제가 아닌가 보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약 15년 전, 두 번째 수능시험을 봤었다. 세 군데의 대학교에 지원했다. 모두 합격 기준이 내 점수로는 아슬아슬했다. 그래서 붙을지 떨어질지 예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1차 결과도, 2차 결과도 모두 예비번호였다. 앞선 합격자들이 더 높은 점수의 대학에 붙어야만 내 차례가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수능을 치른 11월을 지나 12월이 되고, 해가 바뀌어도 내 차례는 아직 멀었다. 결국 개학을 한 달 남긴 2월까지 기다려야 했다.

합격자의 여유를 즐길 수도, 재수를 다시 준비할 수도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날마다 인터넷으로 빠져나간 합격자들의 수를 헤아렸다. 그 과정 속에서 초조함과 걱정으로 인해 병이 더 악화되었던 것 같다. 결국 개학을 3일 앞두고 집에서 가까운 대학에 최종 합격할 수 있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조마조마하다. 그때는 대학이 인생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믿었다. 합격하면 인생이 성공하고, 불합격하면 삼수생이자 인생의 패배자가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대학의 이름이 내 행복을 결정하지 못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대학 졸업 뒤에는 취업의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기업은 바라지도 않았다. 작은 중소기업 위주로 지원했는데 서울에 있는 대학을 나와서인지 척척 붙었다. 하지만 병 때문인지 회사 적응이 쉽지 않았다. 상사의 압박과 부족한 잠으로 인해 너무 괴로웠다. 10일 만에 관두기도 했고, 3개월의 수습기간을 겨우 채우고 퇴사하기도 했다.

그렇게 대여섯 군데의 회사를 다녔지만 경력을 모두 합치면 2년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회사를 퇴사할 때마다 나약한 내 인생도 망했다고 생각했다. 나이는 많아지고 경력은 한없이 초라했다. “이런 나를 받아 줄 곳이 있을까? 앞으로 난 회사생활을 영영 못하는 것은 아닐까?” 물론 개인 사업자를 내고 출판일을 하는 지금 생각하면 실력과 경험을 쌓을 좋은 기회였다. 회사 생활이라는 시스템 자체가 맞지 않았을 뿐, 그동안 조금씩 일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점점 나이가 들수록 대범해지고 인생을 깨닫는 지혜가 깊어짐을 알 수 있다. 발병 초기인 스무 살 때는 너무 어려서 조현병이 나를 삼켰다. 낮에는 집 밖에 나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할까 무서워서 일주일씩 외출을 하지 않았다. 밤에는 작은 잡음에도 천장이 무너질까 무서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랬던 내가 서른다섯 살이 된 지금 조현병을 잘 극복해내고 있다. 더 이상 병이 주는 걱정과 염려에 시달리지 않는다. 오히려 남들이 보면 무모하고 대책 없이 살고 있다. 모두가 만류했음에도 불구하고 출판사를 시작했다. 자금도 인맥도 경험도 없이 사명감 하나만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평생 감추고 살아야 할 조현병을 책으로 써서 온 천하에 공개했다. 심지어 방송에도 모자이크 없이 출연해서 병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려 노력했다. 지금 <마인드포스트>에 내 이야기를 기고하는 것도 남들이 보면 아마 미친 짓일 거다.

사실 날 대범하게 만든 건 바로 조현병이었다. 처음 발병했을 때, 병원에 갇혀 평생을 보낼 뻔했다. 이후로도 20대 대부분의 시간을 하루에 12시간씩 잠에 빠져 지냈다. 한마디로 난 숨만 붙어 있었지 죽은 것과 다름없는 삶을 보낸 것이다.

하지만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더 큰 어려움을 극복한 사람들의 자서전을 읽으며 나도 꼭 저렇게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동안 나름대로 조현병에 대해 공부도 하고 연구도 하며 버텨왔다. 그렇게 10년 정도, 세상에 나아갈 준비를 한 것이다. 더 높이, 더 멀리 아름다운 날개로 비상할 준비를 해왔다.

80살의 할아버지도 오랜 시간 인생의 희로애락과 온갖 풍파를 겪으며 대범해졌을 것이다. 내게도 조현병은 다른 사람들이 겪지 못할 소중한 경험이다. 이 경험을 통해 인생을 보다 뜻깊고 용감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앞으로도 여러 경험을 통해 더 성장하고 인생을 가치 있게 살아가야 하겠다.

 

 

- '바울의 가시' 작가 겸 옥탑방 프로덕션 대표 이관형의 일기

otbp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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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결 2018-09-30 21:45:19
삶의 깊이는 개개인마다 다르겠지요. 작가님의 삶의 깊이를 감히 짐작할 수 없지만 글 속에서 굴곡진 삶의 고민과 인고가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려요^^!

전민 2018-09-22 19:11:37
멋진 글입니다! 이관형님의 인생에 파이팅을 보냅니다. 저도 비슷한 인생을 살아왔기에 더 와 닿네요. 서로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 조만간 메일 한번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