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수 “저는 주거도 주거지만 가장 중요한 건 정신장애인 활동지원이라고 봅니다”
장윤수 “저는 주거도 주거지만 가장 중요한 건 정신장애인 활동지원이라고 봅니다”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0.07.06 2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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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수 한국정신장애가족지원활동가협회 이사 인터뷰
가족은 정신장애 당사자에 눈높이 맞추고 함께 해야
당사자가 원하는 것을 해주면 100% 치유된다고 확신해
의사 100% 믿어라..대신 약 안 맞으면 인내심 대신 의사 바꿔야
발달장애는 전국 지회 293개 갖춰...정신장애는 조직 미약해
조현병 당사자 있으면 가정 피폐해져...안타깝지만 그게 현실
복지 정보 많이 알고 흘러가는 방향 알아야...걱정만으로는 해결 못해
단기입원 환영하지만 치료 안 되고 지역사회 복귀는 신중해야
정신건강복지센터 업무는 당사자와 가족이 팀원으로 들어가야
겪어보니 연세 많고 경험 많은 정신과 의사가 치료술 더 나아
정신장애 교육은 한 사람이 아닌 가족 전체가 받아야 효과 커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그는 대기업에 들어갔다. 1970년대였다. 그는 그때 그 기업에서 노조를 만들려 했다는 이유로 좌천성 인사를 당한 후 회사를 그만뒀다. 그의 말대로 인생은 평탄하지 않았다.

그는 회사를 나온 후 영업직에 뛰어들었다. 외판원, 지금 말하면 세일즈맨이다. 그 당시 사람들은 외판원을 얕잡아보고 멸시했다. 고정적 수입 없이 판매한 만큼의 이득을 가져가는 외판일을 20년간 했다. 그때 그의 수익은 대기업 직원보다 3~4배 많았다. 1990년대 들어 수원에 총판을 두고 경기도 지역에 11개 지사를 둘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직원만 100명이 넘었다. 그렇게만 생이 이어진다면 그의 삶도 충분히 안정됐을 것이다.

그러나 호기심과 욕심이 많았다는 이유로 사업이 휘청이기 시작했다. 김영삼정부의 금융실명제가 선언되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 경제적 이슈가 터지면서 1997년 그의 사업은 부도가 났다. 그 부도 나기 일 년여 전이었다. 딸만 셋이었고 아이들은 할머니와 살고 있었다. 그와 아내는 주중에는 사업에 바빴고 주말에 한 번씩 할머니와 아이들을 찾았다.

어느 날이었다. 집에 가니 아이들 할머니가 서진이(그의 둘째딸)가 5일 동안 잠을 안 자고 돌아다닌다고 말했다. 그게 환청이나 망상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그는 아이를 데리고 집 주변의 정신건강의원실을 찾았다. 의사는 바로 소견서를 써주면서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큰 병원에서는 바로 입원을 권했다.

아이를 입원시키고 오면서도 그는 이 병이 며칠 안정되면 낫는 병이라고 생각했다. 사업은 바빴고 아이에게 더 이상 신경을 쓸 수가 없던 상황이었다. 병원이 지시한 대로 입원 보름 후에 아이를 보러 갔다. 아이는 완전히 변해 있었다. 약물 중독으로 강시처럼 걸으며 엄마, 아빠만 찾았다. 병원은 아이가 집에 가겠다고 하자 끈으로 묶어버렸다고 했다. 당시 딸아이는 중학교 3학년의 꿈 많은 소녀였다.

조현병 진단은 그렇게 찾아왔다. 그는 곰곰이 생각해 봤다. 아이가 중학생이던 시절, 같이 살고 있는 아이 할머니가 담배를 피웠고 같은 방에서 지내던 아이는 담배 냄새가 머리카락에 밴 채 학교를 갔다. 또래 친구들은 딸아이를 향해 ‘담배를 피운다’고 조롱했다. 집단따돌림은 그렇게 왔다. 그것이 결정적 이유였을까. 아이는 이후 5번의 강제입원을 경험하게 된다.

어느 병원에서는 아이가 신체질환을 보이자 다른 병원으로 입원시켰고 그와 아내에게는 면회를 오지 못하게 했다.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아내와 찾아간 그 병원에서 아이는 식물인간으로 6개월을 지내야 했다.

그는 비로소 이 병이 신체질환과 달리 짧은 기간 안에 치유되는 질병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이후 그는 아이의 치유에 모든 것을 던진다. 한방과 민방, 민간요법, 식이요법 등 치료와 관련된 정보가 있으면 국내 어느 곳이든 찾아가 배웠다. 아이는 퇴행을 거듭했고 심리검사와 작업능력을 검사한 결과 아이큐(IQ) 70에 인지능력 4.5세로 나왔다.

그는 아이의 치유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아이가 국가로부터 받을 수 있는 혜택을 하나씩 채워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현병과 지적장애로 중복장애를 등록했고 기초생활수급권자로 만들었다. 그는 부모들이 늘 걱정하는 ‘나 죽은 후에 내 아이는 어떻게 하나’라는 슬픔에 공감하지만 그 시간에 정보를 얻고 국가의 정책 방향을 읽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법안을 고치고 아이가 더 좋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힘을 써야 한다는 조언이다.

무엇보다 활동지원사 제도가 보편화돼 정신장애인도 이 혜택을 누릴 수 있을 때 고립되고 배제된 정신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고 심리적 안정을 가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현재 그는 한국정신장애가족지원활동가협회에서 이사로 일하고 있다. 장윤수(69) 이사를 만난 건 지난 3일 경기 화서역 인근의 그의 개인 사무실에서다. 그가 차를 몰고 역에 먼저 도착해 있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장윤수 한국정신장애가족지원활동가협회 (c)마인드포스트.
장윤수 한국정신장애가족지원활동가협회 이사 (c)마인드포스트.

-따님이 초기 정신증 발생했을 때 아무 정보도 없어서 헤맸을 것 같습니다.

“그렇죠. 아무것도 몰랐죠. 그때 아이가 잠만 안 잔 건데 지금은 왜 안 잤는지를 알아요. 아이가 학교 가서 왕따(집단 따돌임)를 당했는데 피눈물 나는 건 제가 그때 사업에만 미쳐있었다는 거예요.

그 당시 아이가 할머니랑 같이 한 방을 썼는데 할머니가 담배를 피우니까 아이 머리에서 담배 냄새가 난 거예요. 그러니까 아이들이 너 담배 피운다고 그러고. 그런 걱정을 부모가 알지 못한 거예요. 그게 가슴 아프고, 딸을 반드시 회복시키겠다는 극한 마음을 갖고 있어요.

지옥에 가더라도 아이를 고치겠다, 그게 부모가 할 도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2008년에 경기 안성에 황토로 만든 치유센터 집을 차렸어요. 그런데 아이가 집을 나가면 산속에서 길을 잃어버리니까 (안 되겠다 싶어 정리하고) 다시 도시로 내려왔죠.”

-당시 황망해서 깊이 좌절하고 괴로웠을 거 같습니다.

“어휴, 그때는 정말 몰랐어요. 전 그냥 간단하게 애가 치유되는 걸로 알았어요. 당시에는 좌절할 겨를이 없었거든요. 사업이 부도가 나느냐, 안 나느냐라는 정신 상태에 있어서 부모 노릇을 제대로 못했다는 자책감이 있어요. 그래서 병원만 의지했던 게 사실이죠.

그런데 달이 가고 해가 가도 치료가 안 돼요. 저희는 부도가 나서 병원비 200~300만 원 내기가 힘들어졌고요. 그게 불행의 시초가 된 거죠. 물질적인 게 없으니 퇴원을 시켜야 됐고 아이가 집에만 있다 보니까 집에서는 난리가 나잖아요. 아이 언니하고 동생이 있었지만 걔들은 아이가 불쌍하다는 느낌만 들지 (대처할) 방법이 없어요. 할머니는 아이가 불쌍하다고 계속 좋은 음식을 먹이죠. 식탐(食貪)이 약 때문에 많이 생기는데 아이가 그냥 먹고 자고 먹고 자요.

당시 아이 몸무게가 100킬로그램을 넘었어요. 힘이 세지니까 체구가 작은 할머니와 엄마를 밀어버리고 나가면 집을 못 찾아서 헤매도 돌아다닌 게 한두 번이 아니에요. 나가서 들어올 줄 모르니까 제가 팔찌 목걸이를 아이에게 해 놔서 지인들이나 경찰서에서 찾아주고.”

-아까 병원을 믿었다고 했는데 거기에서 무슨 잘못이 있었습니까.

“병원을 믿은 게 잘못이었죠. (아이가) 지금까지 병원을 다니고 약을 먹는데 (그렇게 해서) 치유가 된 사람이 있습니까. 아이가 아침저녁으로 20알 정도 약을 먹는데 그 약이 다른 신체 기능에 지장이 없겠어요. 저희 아이는 신염증으로 두 번이나 죽을 뻔했다가 살아났어요.

한 번은 병원에서 식물인간이 됐어요. 그런데 이 병원에서는 정신병원이 아닌 다른 병원에 아이를 입원시켜 놓고 연락도 안 해주고 면회도 가려고 하면 다음에 오라고 자꾸 그래요. 이상한 예감이 들어서 집사람하고 병원에 가봤죠. 갔더니 다른 병원에 입원해 있어요. 거기를 갔더니 사람 몇 명이 모여서 기도를 해 주고 있어요. 그분들은 아이가 부모가 없는 줄 알았다는 거예요. 식물인간으로 6개월 병원 생활을 하고 제가 몇 군데 병원을 옮겨서 단국대학병원으로 갔고 거기서 어느 정도 치유가 됐어요.

병원 비용은 계속 나오고 치료가 빨리 안 되니 제가 의사 선생에게 ‘제 자식이니까 제가 죽여도 제가 책임지겠으니 퇴원시켜 달라’고 했어요. 의사는 안 된다고 그러고. 그래서 제가 ‘박사님이 병원비 대 줄 수 있어요? 저희는 할 수가 없어요. 능력이 안 되는데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라고 말해서 강제 퇴원시켰어요. 다행히 서진이는 종교적으로 믿음이 좋아서 교회만 가면 아무 이상이 없고 찬송가만 틀어놓아도 좋아하고 기도만 해도 차분해져요.”

-따님의 입·퇴원 과정에서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존재를 알고 있었습니까.

“첫 입원 때는 몰랐죠. 그때가 1996년이니까. 그때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시범사업이었어요. 거기 서진이가 나갔을 때 그런 불합리가 있어서 제가 방어를 하게 되고 안 내보낸 거죠. 지금은 안 다녀요. 그냥 한 달에 한 번 관리만 해 주고 있어요.”

-정신건강복지센터가 뭘 잘못했습니까.

“관리가 제대로 안 됐다는 거죠. 왜냐하면 (등록 정신장애인들) 행동반경을 선생님 한 사람이 찾아다닐 수도 없고 인원이 많은데 선생님 몇 명이서 어떻게 다 관리를 합니까.”

한국정신장애가족지원활동가협회 이사 (c)마인드포스트.
한국정신장애가족지원활동가협회 이사 (c)마인드포스트.

-강제입원과 관련해서 따님이 부모님을 원망하지는 않았나요.

“원망 많이 했겠죠. 아이가 초발 정신병 걸리고 5~6년 지나 식물인간이 한번 됐잖아요. 그러고 나니 인지능력이 조현병 환자들하고 달라요. 제가 40~50만 원 들여서 심리검사부터 작업능력까지 모든 걸 검사해 봤어요. 그랬더니 아이큐가 70에 인지능력이 4.5세밖에 안 돼요. 그래서 중복장애로 만들어 놨어요. 지적장애와 조현병요.

그런데 식물인간으로 있다가 살아난 것만 해도 감사한 거고 인지능력이 모자라는 게 문제가 저희에게 문제가 아니에요. 아이를 중증장애로 해서 기초생활수급권자로 만들고 주택도 지원받게 되면서 아이 때문에 저희 삶이 좋은 쪽으로 달라진 거예요.

제가 지체장애협회에서 봉사를 하면서 배운 게 도움이 됐어요. 서진이는 어차피 치유가 안 될 바에는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자(고 했죠). 삶의 질을 높여주자는 거죠. 그래서 그때부터 민영이가 장애인복지관도 가고 지적장애 주간보호도 가고 보건센터도 가고, 가고 싶은 곳 다 갈 수 있게 만들어준 거죠.”

-따님 같은 경우 장애인복지관을 이용할 수 있겠네요.

“주간에 지적장애, 자폐성장애, 정신장애 모든 아이들이 모여서 하는 장애인주간보호시설에 3~4년 다녔죠.”

-따님은 가족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역할은 한다고 지금 그렇게 말하지 못하죠.”

-정신장애인을 둔 가족은 자식을 어떻게 대하고 취급해야 합니까.

“저는 같은 ‘정신병자’가 돼야 한다고 표현해요. 눈높이를 같이 맞춰야 해요. 가장 중요한 건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 주면 치유가 됩니다. 저는 당사자들이 원하는 대로 해 주면 100% 치유가 된다고 믿는 사람이에요. 저는 그렇게 했어요. 어떤 부모님들은 저에게 ‘어떻게 아이에게 100%를 맞추냐’고 하지만 저는 맞춰야 된다고 외치는 사람이에요. 강의할 때도 그래요. 아이가 뭘 원하는지, 무엇이 불만인지 그것만 알면 치유가 되는 거예요.

저는 가정이 어렵지만 아이를 고치기 위해 전국의 지인들을 찾아다녔어요. 내로라하는 박사, 한방, 민방, 양방, 민간요법, 식이요법 안 해 본 게 없어요. 아이가 너무 임상시험의 대상이 됐지만 아이와 호환성이 맞아서 그걸 다 해 볼 수 있었어요. 서진이는 조현병 1급에 지적장애 1급이 나와서 집에서 생활할 수 있는 아이가 안 됩니다. 병원에 가든가 시설에 가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지금 가족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에 감사해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100% 같은 조현병 환자가 돼서 눈높이를 맞춰서 그를 도와줘야 한다. 내가 당사자가 돼야 하는 겁니다.”

-똑같은 조현병 환자가 되면 생활 자체가 잘못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좋은 질문이에요. 똑같은 조현병 환자가 되라는 게 아니라 형태를 내라는 거예요. 연극을 하든, 흉내를 내든, 마인드 컨트롤을 하든, 내가 배워서 그렇게 하라는 거예요. 우리가(가족들) 패밀리링크에서 배웠고 가족활동가에서도 배우고 자료도 많잖아요. 그 배운 거를 10분의 1이라도 참작을 해서 다 못하더라도 최소한으로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저는 일단 어떻게 됐든 간에 아이의 모든 불만을 받아줘야 한다(고 봐요). 어디 가고자 하면 데려가 주고, 먹고 싶다면 이건 먹지 말고 이걸 먹으면 어떻겠느냐고 교환해서 말해 주고. 예를 들어 돈가스를 먹고 싶다면 돈가스보다 비빔밥이 더 낫다는 걸 가르쳐주는 거죠.”

-자식이 정신질환에 걸리면 점을 보고 기도원을 찾다가 병이 만성화된 이후에야 겨우 정신과를 찾는 가족이 많습니다. 선생님의 경우는 어땠습니까.

“저는 바로 병원에 갔어요. 병원에 입원시켰다가 물질적으로 어려워서 퇴원을 시켰지만 저도 (개인적으로) 기도원을 많이 갔어요. 광적(狂的)인 건 아니고 기도를 통해서 우리 서진이가 나아지기를 바랐기 때문에요. 민영이는 교회만 가면 진정되고 완화되고 침착해져서 봉사도 잘 해요.

그런데 스트레스가 쌓이면 재발되는 건 당연지사입니다. 그러니까 스트레스가 안 쌓이게 100% 맞춰야 합니다. 100%가 안 되더라도 10~20%라도 맞추려고 노력하는 게 당사자들을 치유시킬 수 있어요.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건 사랑이죠.”

장윤수 한국정신장애가족지원활동가협회 이사 (c)마인드포스트.
장윤수 한국정신장애가족지원활동가협회 이사 (c)마인드포스트.

-좋은 주치의를 만나는 게 치료의 지름길입니다. 선생님의 경우는 어땠습니까.

“저도 100% 공감해요. 서진이가 병원 다섯 군데를 입원했어요. 조그만 병원들이 아니고 대학병원 등 브랜드가 있는 곳이에요. 저는 병원에 가서 치료가 하나도 안 됐다고 보는 사람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부모님들에게 제가 말씀드리는 건 의사를 믿었을 경우 100% 믿으라는 거예요.

대신 의사와 커뮤니케이션이 안 되든가 약이 안 맞으면 인내심을 갖지 말고 의사를 바꿔야 해요. 제 경험인데 어느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는데 거기 젊은 의사들이 경험이 없다 보니까 이 약 처방하고 저 약 처방하고 해 보는 대로 해 보는 거예요. 아이가 얼마나 혼란이 오겠어요. 서진이는 입원시켜서 이빨도 안 닦고 묶여 있다 보니까 치아가 다 썩어서 빠져요. 그 치아 고치는 데 2천만 원 들고 10년이나 걸렸어요.

중요한 건 치아를 해 주니까 뇌가 살아나고 회복이 돼요. 제가 자연치료를 공부했는데 인체가 잘못되고 뇌가 잘못된 것을 어떻게 약으로만 (치유가) 되나. 그 수준에 맞춰서 행동을 해 주고 거기에 맞춰서 도와줘야죠. 가정에서 부모들이 (아이가) 당뇨병이나 고혈압 질병을 갖고 있으면 환자로 보고 입원시키고 병간호도 하잖아요.

그런데 왜 조현병 당사자들은 환자로 안 보느냐는 거예요. 정신질환자도 환자다. 환자로 예우해 주면 얼마든지 100% 맞출 수 있어요. 환자에게 반항하고 거부하고 수발을 안 해 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저는 일부 잘못된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환자로도 봐 줘라. 아픈 환자다. 아픔을 달래주고 병간호를 해 줘야 한다(고 강조해요).”

-따님을 돌보면서 국가가 해 줬으면 하는 아쉬운 부분들이 뭐가 있습니까.

“많았죠. 우리 서진이는 중복장애 만들고 2011년에 기초생활수급자로 만들었어요. 다음이 활동지원인데 제가 활동지원사로 8년째 일하고 있어요. 서진이를 활동지원 받을 수 있도록 했는데 어떻게 보면 제가 보건복지부에서 민영이에게 해 줄 수 있는 혜택을 다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 조현병 가족들이 서진이하고 형태가 다르고 조건이 안 되겠지만 너무 (대처가) 미흡해서 안타까워요.

제가 최고 잘할 수 있는 것이 연세가 많은 분이나 장애인증을 못 갖고 계신 분들, 조현병 가족 중에서 기초생활수급을 못 받거나 받을 수 있는데 신청하지 않은 사람, 아니면 활동지원을 못 받는 이들을 위한 봉사를 하는 거예요. 이건 자랑이 아니라 제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먼저 알고 길을 닦아서 했으니까 내가 알고 있는 걸 알려주는 거죠. 가족들이 (국가 책임에 대해) 너무 몰라요.”

-가족이 제일 힘들어하는 게 자식의 재발이라고 합니다. 어떻습니까.

“자식의 재발도 문제지만 병원 입원해서도 문제, 나와서도 문제예요. 조현병은 일률적으로 진정이 되는 게 아니다 보니까 항상 불안 상태고 긴장 상태에요. 안타까운 건 조현병 환자를 가진 가족은 가정이 다 피폐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부부간에 사랑도 없다고 봐야죠. 왜? 아이 때문에 억지로 사는 거니까. 제 표현이 강할지 몰라도 억지로 사는 거고 사랑은 있겠지만 표현을 못 하고 살아요. 모든 것이 황폐하죠.”

-그게 가장 힘든 부분입니까.

“그렇죠.”

-부모는 자신의 사후(死後)에 자식을 누가 돌보느냐로 고민합니다.

“저도 분명히 그랬어요. 그랬는데 기초생활수급권이나 복지에 대해 찾아보면서 인터넷 검색의 일인자가 됐어요. 전 메일도 잘 못하고 글도 못 쓰는데 검색은 몇 시간이라도 할 수 있어요. 그 정도로 정보를 많이 알게 된 거죠. 정보를 많이 알아야죠. 복지가 지금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절대적으로 부모는 알아야 돼요. 조현병이 어떻게 가고 있는지 <마인드포스트> 기사도 많이 읽어야 되고 거기 나온 인터뷰도 참고를 해야 해요.

저는 아이러니하게 지체장애협회에서 복지부장을 하다보니까 다른 장애단체를 다 섭렵했어요. 그건 제가 잘못된 생각일 수도 있고 잘한 생각일 수도 있어요. 반반이죠. 왜 그러냐면 우리나라 장애유형 15개를 다 아우를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왜 조현병만 갖고 해야 되느냐라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먹으면서 이쪽(정신장애)으로 방향을 바꾼 거죠.”

-따님이 부모님 돌아가신 후에 잘 살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나라를 믿습니다. 지금도 현재도 보장해 주고 앞으로도 보장해 줄 거거든요. 실례를 하나 들게요. 제가 와상(臥床) 환자를 활동지원하고 있어요. 제 나이가 70인데 일할 수 있는 곳이 있고 보수도 연봉 3000~4000만 원됩니다. 이 와상환자는 나라가 100% 다 도와주고 있어요. 24시간을 케어해 주고 있어요.

그래서 ‘아, 이렇게 복지가 잘 돼 있는 걸 우리 부모님들이 알아야 되는데’라는 생각이 크죠. 그걸 모르고 걱정만 하시잖아요. 복지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고 나라가 흘러가는 방향을 알아야죠. 꼭 걱정만 해야 될 건가. 우리 아이들이 더 좋은 세상을 만날 수 있게끔 대책을 세우고 법안을 고치도록 힘을 써야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야지, 단순히 ‘내가 아이보다 3일 더 살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은 아니죠.”

장윤수 한국정신장애가족지원활동가협회 이사 (c)마인드포스트.
장윤수 한국정신장애가족지원활동가협회 이사 (c)마인드포스트.

-정신장애인 돌봄을 가족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저는 100% 동의합니다. 왜 뇌병변이나 지체, 와상환자들은 100% 정부가 24시간 케어까지 해주고 생활비 대 주고 하는데 조현병은 그게 안 되는 건가요. 조현병 환자가 지금 50만 명입니다. 이중 40만 명이 질환자고 10만 명만 장애인증을 갖고 있어요. 안타까운 건 정신질환자로 있는 분들이 회복이 되면 장가가야 되고 취업해야 되고 생활해야 되니까 장애인증을 안 만드는 분이 80~90%이더라고요. 부모님들을 만나보니까 그래요.

제가 그분들에게 장애인증 만들라는 소리를 못 해요. 진짜 우리가 발전이 안 되고 도움을 못 받고 있는 거는 거기에 문제점이 있었던 거예요. 정부는 보건복지부를 통해서 보건소 정신건강복지센터를 만들어서 우리에게 최고의 혜택을 주는 것처럼 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여태까지 후진적으로 대우를 못 받게 된 배후라고 생각합니다. 조현병은 2000년부터 장애인증이 나왔는데 지금 10만 명밖에 안 돼요. 그러니까 부모님들이 힘이 없어요. 정부에 가서 말해도 먹히지 않아요.

그런데 발달장애나 지체장애 보세요. 전국의 지회가 293개 다 돼 있고 조직이 완벽해요. 제가 그들과 데모를 해 봤는데 (한 번 시위하면) 전국에서 관광버스 100대가 여의도에 모여요.”

-가족이 가장 선호하는 국가 정책이 정신장애인 주거서비스라고 합니다.

“저는 주거도 주거지만 가장 중요한 건 활동지원이라고 봅니다. 안인득 사건 같은 정신장애인에 의한 사건이 몇 번 일어났잖아요. (안인득 사건: 2019년 4월 경남 진주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안인득이 집에 불을 지르고 대피하던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20여 명이 사상한 사건-편집주) 만약에 그 사건을 저지른 사람들에게 제대로 맞춤형 진단을 해서 장애인활동지원사들을 붙여줬다면 그런 일이 있었을까요.

제가 와상환자를 보고 있는데 24시간 대소변 다 갈아주고 밥 먹여 주고 하지만 아무 탈 없이 잘 살고 있잖아요. 그걸 제가 8년간 하면서 느끼는 게 왜 조현병이 가장 위험한데 왜 조현병 활동지원은 없을까예요. 자폐장애도 힘들고 발달장애도 힘들지만 조현병도 이런 큰 사건이 나고 하는데 왜 활동지원이 없냐는 거예요.

그게 왜 없냐면 장애인복지법 15조에 우리는 보건복지부 소관이어서 장애 쪽 혜택을 못 받는 거 때문 아닙니까. 그것 때문에 이게 문제가 되는 거죠. 그래서 저는 주거는 2순위고 1순위는 활동지원을 꼭 받아야 된다라고 생각합니다.”

-정신장애인이 국가가 지원한 집에 혼자 살고 이따금 부모와 가족이 들여다보는 시스템이 좋지 않을까요.

“굉장히 좋은 방법인데 거기에 활동지원사가 따라붙어야 하는 거죠.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가족이 가끔 가다 가 본다, 이건 아니죠. 만약에 독립을 시켜줬으면 거기에 따르는 대응 방법도 있어야죠. 예를 들어 몇 시간마다 방문한다든가.

만약 활동지원사를 붙일 수 없고 예산도 안 된다면 열 가구를 묶어서 거기 2~3명이 투입해서 계속 돌 수 있는 방법이 있겠죠. 순찰을 한다면 이상한 거지만 그래도 두 시간씩 가서 확인하고 잘 지내고 있는지 상담도 해 주고 부족한 부분을 도와줄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이 된다면 금상첨화죠.”

-정신장애인종합복지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큽니다. 왜 이것이 지금 이토록 필요한 걸까요.

“만들어야겠죠. 저는 그것이 문제가 아니고 당사자한테 실질적인 복지가 갔으면 좋겠어요. 여태까지 저는 많은 후원을 했고 봉사도 11년간 해서 자원봉사증도 있고 호스피스, 요양보호사 안 해 본 거 없이 다 했지만 가장 중요한 건 당사자에게 실질적 복지가 가야 한다는 걸 늘 느껴왔어요.

국장님(기자)도 신문사를 이끌고 있지만 이게 무보수라면 어떻게 이런 좋은 일을 할 수 있겠냐고요. 당사자들이 이런 일을 더 할 수 있도록 하는 거라면 본인들한테 복지가 갈 수 있는 혜택이 더 우선적이다. 그 다음에 복지관도 중요하고 다른 시스템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따님께서 지금 혼자 살고 계십니까.

“아니요. 지금 아이 엄마하고 같이 살고 있죠. 저희도 독립을 시키려고 합니다. 독립시킬 때도 됐고요. 지금은 서진이 때문에 전세 자금을 지원받아서 LH(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 살고 있지 않습니까. 서진이가 8~20평 정도의 아파트에서 혼자 독립해서 살고 우리가 가끔 가다가 들여다보고 거기 활동지원사를 붙이려고 합니다. 서진이는 지적장애를 받아서 150시간의 활동 지원을 받고 있거든요.

저는 서진이의 맞춤형 지원이 불합리해서 자꾸 (국가를 상대로) 재심, 삼심까지 했어요. 우리 아이도 최소한 24시간은 아니더라도 낮에 8시간, 한 달에 240시간 활동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거죠. 낮에만이라도 와서 관리를 해 주고 저녁에는 자니까 부모가 같이 있어줄 수 있으니까요. 그래야 부모들의 삶도 나아지고 취업도 해서 가정을 이끌 수 있는 부가가치도 할 수 있는 거죠.”

장윤수 한국정신장애가족지원활동가협회 이사 (c)마인드포스트.
장윤수 한국정신장애가족지원활동가협회 이사 (c)마인드포스트.

-정신장애인은 일을 하고 싶은 욕구가 큽니다. 그런데 일자리가 없습니다. 어떻게 일자리를 늘려야 할까요.

“가장 첫 순위죠. 수원의 장명찬 마음샘정신재활센터장이 지금 130명 정도의 조현병 가족들을 커피숍이나 사회복지로 해서 취업을 시키고 운영하고 있어요. 저는 진짜 존경합니다. 전국에서 그렇게 하는 분이 없어요. 조현병 당사자들에게 100% 눈을 맞추고 같이 생사고락을 하는 분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그런 일을 할 수가 없어요.”

-장기입원이 아닌 단기입원과 지역사회 복귀로 국가 서비스 정책이 전환되고 있습니다.

“당연한 거죠. 해야죠. 그런데 거기에 당사자나 부모가 다 동의하는 건 아니잖아요. 예를 들어 단기로 내보낸다고 해서 다 치료가 돼서 나오는 게 아니잖아요. 조현병은 평생 약을 먹어야 되니까. 단기간에 나와서 사회적으로 취업이나 모든 게 다 이뤄진다면 환영할 만하지만 그것이 안 됐을 경우에는 다시 또 대물림되는 거죠.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이.”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기 위해서 어떤 국가 지원들이 필요할까요.

“정부가 정신장애인의 질환 등을 데이터를 갖고 맞춤형으로 지원했으면 좋겠어요. 인구 5천500만 중에 (조현병 환자가) 50만 명밖에 안 되는데 조현병 당사자 한 분 한 분의 매뉴얼을 갖고 맞춤형으로 도와서 취업도 시키고 생활에서 도움받을 수 있는 복지도 지원하고요.”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치유된 당사자가 팀원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요구도 있습니다.

“환영합니다. 회복이 되고 어느 정도 근무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되겠지만 어쨌든 당사자들이 90%를 차지해야 한다고 봅니다. 정신건강복지센터나 유사한 정신장애인 단체에서는 업무 자체를 일반인보다 가족이나 당사자가 해야 해요. 그래야 서로 간에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어요.”

-초발 정신질환자 가족에게 어떤 조언을 해 주고 싶습니까.

“알아야 한다. 정보를 알아야 한다. 초발자에 대한 모든 정보를 알고 상태를 알아야 한다. 인터넷을 통하든 유튜브를 통하든 아니면 지인들과 통하든, 의사들한테 통하든 알아야 대처가 된다. 그렇지 않고는 당할 수밖에 없어요.

의사들에게 다 맡긴다고 해서 의사들이 다 좋은 사람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의사들 약 처방 잘못할 수 있어요. 그건 실수가 아니라 그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피해자가 되죠. 저희 아이는 약이 잘못돼서 말 한 마디도 못하고 사지가 오그라들어서 걷지도 못했어요. 그런데 어떤 연세 많은 의사를 찾아갔더니 하루 만에 약을 바로 잡아주더라니까요.

그래서 안 맞으면 의사를 바꿔야 한다. 팁을 드린다면 그래도 연세가 많고 경험이 많은 분들이 낫더라. 그렇다고 젊은 의사분들이 나쁜 게 아니라 그래도 경험은 못 속이고 체험해 오고 난관을 이겨온 사람들이라 연세 많은 분들이 하면 빨리 약 조정이 되더군요.”

장윤수 한국정신장애가족지원활동가협회 이사 (c)마인드포스트.
장윤수 한국정신장애가족지원활동가협회 이사 (c)마인드포스트.

-더 하실 말씀이.

“저는 많은 유관단체들이나 조현병 가족들을 위해 힘쓰는 분들에게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단체에 있는 분들이 개인적인 목소리가 아닌 한 목소리가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저희 한국정신장애가족지원활동가협회에서는 목소리를 내지 말자고 그랬어요. 우리는 목소리가 아니라 행동으로 하자.

우리 활동가협회를 주시해 줬으며 해요. 활동가협회가 하는 이 교육이 초발자 가족이나 당사자들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를 인식시켜줘야 합니다. 지금 너무나 모르고 교육 자체도 안 받으려고 해서 안타까워요. 또 교육은 저만 받으면 안 됩니다. 우리 집사람도 받아야 하고 서진이 언니, 동생도 받아야 되는 겁니다. 그러면 조현병 가족은 삶이 달라지고 행복해지고 사랑이 가득해집니다.

그런데 나 혼자 교육받고 집사람이 모르는데 내 말을 들어줍니까. 안 됩니다. 그래서 가족이 다 교육을 받아야 돼요. 알아야 면장도 하는 겁니다. 모든 당사자 가족에게 중요한 건 정보예요. 보건복지부, 다른 장애인 단체들도 어떻게 하는지 봐야 벤치마킹이라도 할 거 아닙니까. 제발 많은 정보를 가졌으면 해요. 간절히 바랍니다.”

인터뷰가 끝나자 그는 일어서며 “할 말이 참 많은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이 때문에 공부를 하다 보니 지금은 식이요법과 음식으로 치유가 되는 방법을 알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기자는 다시 앉아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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