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형 기자의 변론] 마이클 잭슨은 백인이 되고 싶지 않았다
[이관형 기자의 변론] 마이클 잭슨은 백인이 되고 싶지 않았다
  • 이관형 기자
  • 승인 2020.11.06 2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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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이 흑인 정체성에 열등감 가졌다는 건 주류언론의 폄하
조현병은 극복이 아닌 정체성 갖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
사회가 편견 갖고 장애인에 정체성 숨기라고 강요...다름 존중해야

마이클 잭슨. 영화처럼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그의 인생은 어떤 수식어로도 설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의 음악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문화의 아이콘이기도 했죠.

1984년 발매된 앨범 ‘Thiller’는 사상 최고로 많이 팔린 앨범으로 인정되었고, 1993년 오프라 윈프로 쇼에 출연했을 때는 토크쇼 사상 가장 높은 시청률(전 세계 시청자 9000만 명)을 기록하였습니다. 또한, 백악관으로부터 ‘1980년대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 상’을 수상했으며, 2008년에는 가장 성공한 연예인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그는 음악을 통해 세상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구요.

하지만 그의 말년은 그리 평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1993년 아동 성추행 혐의에 연루된 재판을 받아야 했고, 거액을 들여 설립한 놀이동산 ‘네버랜드’는 돈 문제로 인해 폐쇄되어 재정적으로 위태로운 상황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09년 6월 25일 정맥 주사 투입에 따른 급성 프로포폴 중독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51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당시 잭슨의 사망으로 인해, 미국 언론들은 여러 추측 기사를 쏟아냈죠. 자살이라는 설도 있었고, 슈퍼 박테리아에 의한 감염, 피부암, 성형 후유증 등으로 인한 사망이라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특히 성형 중독에 의한 사망이라는 설과 관련하여 언론은 다음과 같이 보도했습니다. 어릴 적과 달리 얼굴이 하얗게 변한 마이클 잭슨에 대해 “마이클 잭슨이 스스로가 흑인인 것이 싫어했다.”, “백인이 되기 위해 박피 성형 수술에 집착했다”와 같은 기사들을 쏟아냈습니다.

하지만 마이클 잭슨의 피부가 하얗게 변한 것은 다른 이유 때문입니다. 1984년 광고 촬영을 하던 도중, 조명에서 튄 폭죽이 그의 머리에 떨어지며 불이 붙었습니다. 머리에서 불이 번지기 시작하고 나서야, 이를 알아채고 급히 불을 껐지만, 화상을 입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화상은 그가 선천적으로 갖고 있던 백반증 증세를 악화시켰습니다. 백반증으로 인해 그의 피부는 점점 하얗게 변해갔고, 메이크업도 하얗게 할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언론과 사람들은 이런 마이클 잭슨의 외모를 보며, 백인이 되고 싶어 성형수술을 받고 있다고 오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언론은 왜, 마이클 잭슨이 백인이 되고 싶어 성형 중독에 빠졌다고 보도했던 걸까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가 활동했던 시기는 백인 우월주의에 의한 인종차별이 심했던 시기입니다. 백인들이 주름잡고 있던 음악 시장도 마찬가지구요. 하지만 그의 등장은 음악 시장은 물론, 미국의 대중문화를 180도 바꾸어 놓았습니다. 마이클 잭슨은 흑인뿐 아니라, 백인, 그리고 전 세계인들의 우상이 되었죠.

또한 그가 던지는 메시지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과 울림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미국 사회의 주류와 언론들은 마이클 잭슨을 폄하하기 위해 확인 되지 않은 소문을 퍼뜨렸죠. 뮤지션으로서 성공하고,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끼치는 마이클 잭슨조차, 흑인 정체성에 대한 열등감으로 백인이 되기 위해 성형 중독에 빠져 스스로의 목숨마저 잃었다고 말이죠.

저는 지금도 여러 학교와 기관들에서 장애인식개선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주로 제가 조현병을 겪기까지 살아온 과정과 이를 통해 이루었던 꿈에 대한 내용으로 강의를 합니다. 강의를 하고 나면 가끔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조현병을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조현병을 떨쳐내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가요?”

아마도 제가 학업과 사회생활을 하고 있고, 강의를 하며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듣게 되는 질문 같습니다. 저는 이런 질문이 다시 나오지 않도록 강의 말미에 항상 추가 설명을 덧붙입니다.

“많이 회복되고 건강해진 건 맞지만, 저는 여전히 2주에 한 번 병원에서 상담을 받고 매일 약을 먹습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덧붙이는 건, 제가 조현병을 극복 내지 떨쳐냈기 때문이 아니라, 조현병을 가진 환자로서도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음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조현병을 갖고 있으면 학업도 사회생활도 정상적인 삶이 어려울 것이라고요. 하지만 전 조현병을 안고도 충분히 자기 능력과 성과를 나타낼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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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 있어서 조현병은 의지가 약하거나, 범죄를 일으킬 수 있는 불쌍하고 무서운 무지의 영역일 것입니다. 그래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혹은 성과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조현병과 같은 요소는 방해물이라 생각하죠. 즉, 사회는 건강한 육신과 정신을 정상적인 인간의 표준으로 제시하며, 조현병과 같은 병이나 정신적 장애는 그 표준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대다수의 사업체나 기관은 정신장애인을 취업시키기도 전에 미리 탈락시키거나 진급에 불이익을 주기도 합니다. 장애를 안고서는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다는 인식과 기준이 있기 때문이죠. 이처럼 능력 이데올로기는 모든 사람들에게 비장애, 즉 아프거나 훼손되지 않은 정신과 신체를 요구하며 이에 부합하지 않은 당사자들과 장애인들의 능력은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전히 정신적 치료를 받지만 사회생활과 능력에 문제가 없는 당사자들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불이익을 당하지 않고자 자신의 병을 감추고 다른 사람들처럼 지내면서 능력을 발휘할 것인지, 아니면 병을 밝히고 당사자로서의 능력을 입증할 것인지를 말이죠.

이론적으로, 자신의 병에 대한 당사자로서의 긍정적인 정체감은 종종 ‘병밍아웃’, 즉 ‘커밍아웃’을 가능하게 하고 자신만의 삶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하게 만듭니다. 물론, 사회가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인식의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비교적 건강한 편인 많은 당사자들은 자신의 병을 숨기고 대중 속에 파묻혀 살아갈 수밖에 없죠.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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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당사자의 정체성을 감추고 살아간다고 해서 아무도 그들을 비판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당사자들에게 ‘커밍아웃 할래?’, ‘숨기고 살래?’라고 선택을 강요할 수도 없습니다. 그것은 개인의 자유와 선택을 침해하는 또 다른 폭력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진정 비판받아야 할 대상은, 진정 변화되어야 할 대상은 이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사회는 은연중에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우리와 같은 회사에서 일을 하려면, 우리와 같은 학교에서 공부하려면, 당신은 장애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이죠. 또한, 그런 병이 있더라도 극복하고 떨쳐 내거나 최소한 드러내지 말고 평생 숨기기를 요구합니다.

내가 출근하는 회사에, 내가 공부하는 학교에 정신질환자가 함께 일하고 공부한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힘들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와 언론은 말합니다. 행복한 삶의 기준에 조현병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그래서 정신질환을 겪고 있는 당사자들은 건강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꿈꾼다고 말이죠.

예전에 한 뉴스 프로그램에서 인터뷰를 하며 다음의 내용을 말한 적이 있습니다. 

“과거에 성공과 욕심에 눈이 멀어 일상 속 소소한 행복을 잃고 살았다. 하지만 조현병을 통해 이제는 평범하지만 소중한 일상의 가치를 깨닫고 감사하게 살고 있다”

하지만 해당 언론은 제 인터뷰 내용을 편집하여 “조현병 환자들은 다른 건강한 사람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기를 꿈꾼다”라고 방송했습니다. 즉, 당사자들이 병에서 벗어나 타인의 평범한 삶을 동경하는 나약한 집단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마치 무수한 성과와 업적을 쌓은 마이클 잭슨마저도 백인이 되기를 꿈꾸었다고 보도했던 미국 언론처럼 말이죠. 

마지막으로 1991년 싱글로 발표되었던 마이클 잭슨의 곡 ‘Black or White’의 가사 몇 구절을 소개합니다.

전 피부색 문제로 인생을 낭비하지 않을 거예요

당신이 흑인이든 백인이든 상관없어요

저는 당신이 저와 형제가 되고 싶다면

당신이 흑인이든 백인이든 상관없다 말했어요

 

우리에게는 그 어떤 차별도 할 권리는 없어요

다르다 하여 틀리다 말할 수 없어요

우린 저마다 다름이 존재하고

만남과 만남 안에서는 그 다름을 존중할 필요가 있지요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존중할 때에 비로소 하나가 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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