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연 “간호사 한 명 당 환자 수 법제화해야...우리는 희생하는 존재가 아니라 전문 직업인이에요”
이나연 “간호사 한 명 당 환자 수 법제화해야...우리는 희생하는 존재가 아니라 전문 직업인이에요”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0.11.03 2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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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연 행동하는간호사회 회원 인터뷰
‘응급오프’라는 강제적 휴일 권장으로 환자 사각지대에 방치
체계적 교육 없이 도제식 훈련...한 달 교육받고 현장 투입
대학병원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미국의 3배
민간병원 비율 절감 위해 간호사들이 가장 먼저 ‘구조조정’ 당해
간호대 정원 늘리기보다 현장 간호사들의 인권 강화해야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적을수록 환자 치료율 유의미하게 변해
양보와 희생?...간호사는 희생하는 존재 아닌 전문 직업인
간호사 일인 당 환자 수 법제화해야
스트레스와 ‘태움 문화’로 사직하거나 극단적 선택하기도
간호협회 회장 간선제 없애고 직선제로 뽑아야
정신질환은 흔한 병...병원 격리실 갇히는 건 인권 침해
뇌전증 환자도 훈련 통해 일상회복...정신장애도 충분히 가능해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응급오프’라고 했다. 간호사들이 원치 않은 날짜에 강제로 연차를 쓰게 하는 관습적 휴일이라는 뜻이다. 그 용어를 이해하는 데 아둔한 기자는 몇 번의 질문을 던져야 했다.

이나연(24) 간호사를 만난 건 지난달 29일 강서구 화곡역 인근 커피점에서다. 기자가 그를 만난 건 지난달 10일 광화문에서 열린 제2회 매드프라이드서울 행사에서다. 조울증 당사자라고 자신을 밝힌 그녀는 간호사로서 참여한 것이 정신장애인과의 ‘연대’를 위해서라고 했다. 이후 기자는 그에게 전화해 인터뷰를 요청했다.

인터뷰 질문지를 준비하면서 기자는 많은 간호사들이 정신과 약물을 복용하며 현장에서 일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사실 놀랐다. 흔히 간호사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태움 문화’와 수직적·위계적 구조에서 발생하는 인권 침해적 괴롭힘으로 인해 줄줄이 병원을 떠나게 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어렵게 간호사 면허증을 따도 ‘장롱면허’가 됐고 현장에서 일하는 비율은 50%에 불과했다. 이 간호사는 간호대 학생들을 증원하면 현장의 부조리가 사라질 거라는 정부의 인식이 부당하다고 했다. 일반 회사의 경우 보통 6개월의 수습 기간을 두기도 하는데, 일부 병원에서 간호사들은 중환자실 기준 2개월, 일반 병실 기준 1개월의 교육을 마친 후 바로 현장에 투입된다고 한다.

그렇게 들어온 인력만큼 떠나는 간호사들이 많다. 온전하게 쉴 수 없는 인력 구조, 흔히 ‘밥을 마신다’고 하는 현장의 바쁜 생활을 견뎌야 하는 간호사들에게 우리 공동체가 양보와 희생만을 요구한다는 게 타당한 윤리일까. 특히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맞서 감염 현장을 지키는 간호사들을 영웅으로만 이미지화할 뿐 그들이 겪고 있는 내적 고통과 환경적 어려움에 눈 감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 간호사는 고등학생 때 대입 스트레스로 폭식을 하면서 체중이 증가했다. 대학 시절에는 과체중으로 인한 외모 콤플렉스를 겪는다. 취업 원서를 넣은 곳마다 떨어졌고 우울증이 밀려오면서 침대에서 누워만 있었다. 이때 남자친구가 그에게 정신과 진료를 권했고 병원에서 그는 처음에는 우울증 진단을 받는다. 대학 졸업반 무렵부터 약을 먹기 시작한 후 다른 증상으로 찾아간 대학병원에서 이번에는 양극성 정동장애(조울증) 진단을 받게 된다.

정신과 약을 먹으면서 직장 일을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는 그의 말대로 ‘잘 견디고 있다’. 그는 현재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행동하는간호사회) 회원이다. 3년 전 조직된 이 협회는 전국의 간호사와 간호학생 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환자의 안전과 건강권 실현을 위해서는 현재의 간호사 인력 구조와 시스템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병원들이 지출을 줄이기 위해 가장 먼저 ‘손 보는 곳’이 간호사라는 이유다. 공공병원의 간호사 인력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다. 가장 밀접하고 환자 곁에서 일하는 전문직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간호' 분야가 저평가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행동하는간호사회’는 간호사 일인이 담당해야 하는 환자 수가 과잉되면서 환자 치료에 집중할 수 없게 되고 조직 내에서의 스트레스와 교육 부족으로 간호사를 떠나게 만드는 현재의 의료 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2018년 2월 서울아산병원 간호사로 일했던 박선욱 씨가 ‘태움 문화’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때 추모식에 참석했던 한 간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너였다. 너는 우리다. 스스로가 잃어간 아픈 우리다.”

병원 간호사들의 구조적 피해가 그랬다. 나는 너라는 절규는 지금, 간호사들이 겪고 있는 모순적 지점에 공동체가 시선을 모아야 한다는 의미로 전환된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나연 행동하는간호사회 간호사 (c)마인드포스트.
이나연 행동하는간호사회 간호사 (c)마인드포스트.

-행동하는간호사회가 조직된 건 언제였습니까. 현재 어떤 일을 하고 있는 조직인가요.

“만들어진 지는 3년 정도고요. 저희가 환자들을 돌보는 직종이잖아요. 그런데 간호사들이 일손이 바쁘다 보니까 환자들을 제대로 간호하지 못해요. 그걸 개선하기 위해 간호 인력 충원과 간호 인력 법제화를 요구하고 있어요. 또 사회 구성원들의 건강권을 위해 연대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간호사들은 식사한다는 표현을 ‘밥을 마신다’고 하더군요.

“네. 저도 전에 밥을 못 먹고 일한 적이 많아서 그 표현에는 공감해요.”

-그렇게 바쁩니까.

“먹어도 마음이 편치 않아서 ‘마시면서’ 일하는 경우가 있죠. 일이 밀려 있는데 밥은 먹어야 하고 마냥 마음 놓고 점심시간을 누릴 수가 없어요. 그 정도로 업무량이 많아요.”

-‘응급오프’가 작동하면 원치 않고 예측할 수 없는 시간에 휴일을 가진다는 거잖아요. 정당하게 휴일을 쓸 수 있는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건 일하다가 인원이 남으면 그 사람보고 가서 쉬라고 그러는 거죠.

“내가 근무를 해야 하는데 환자가 별로 없다 그러면 ‘오늘 쉬어’ 그러는 거예요.”

-우리가 일요일이면 다 쉬잖아요. 간호사 경우에 일요일에 쉬는 게 아니고 인력이 남아 돌때 이런 식으로.

“3교대다 보니까 3일 일하고 하루 쉬는 것과는 별개예요. 응급오프는 쉬는 날과는 별개로 내가 일을 해야 하는 날인데 그날 못 나오게 하는 거죠.”

-그럼 그게 좋지 않나요. 쉬는 날 따로 정해져 있고.

“환자한테는 굉장히 위험해요. 만약에 환자 수가 적어서 제가 쉬었는데 그날 응급실에 환자가 막 밀고 들어와요. 그럼 적은 간호 인력으로 많은 환자를 봐야 되잖아요. 간호사들이 모든 환자를 다 볼 수가 없어요. 사각지대에 있는 환자들이 위험에 노출돼요. 응급실에는 환자가 언제, 어떻게 올지 아무도 몰라요. 그래서 응급오프가 위험해요.”

-정해진 요일에 쉬는 게 가장 좋다 이런 말씀인가요.

“그렇죠. 응급오프를 하면 하루를 쉴 수 있지만 제 동료들이 환자가 많아지면서 힘들어져요. 그럼 환자들도 위험해지죠. 제가 기자 한 명과 인터뷰를 하는 것과 기자 2명이 인터뷰를 하는 건 내용과 깊이가 다르잖아요. 간호사도 환자를 한 명 볼 때와 두 명 볼 때가 확실히 달라요.”

-간호사들끼리 서로 도와줘야 하는데 내가 쉬어버리면 그쪽에서 많은 응급입원 등으로 힘들다?

“그런 거죠. 내가 원치 않는 연차를 쓰게 하거든요. 쉬는 게 공짜가 아니라 연차로 쉬는 거예요. 쉬는 그날이 강제로 연차가 돼 버리는 거죠.”

-이건 기본권 침해 같은데요.

“그렇죠. 휴일은 예상이 가능하고 예정되어 있어서 나름의 휴일 계획을 세울 수 있어야 하잖아요. 예상치 못하게 휴일이 주어지고 휴식을 강요받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나연 행동하는간호사회 간호사 (c)마인드포스트.
이나연 행동하는간호사회 간호사 (c)마인드포스트.

-어떤 간호사는 충분한 교육 없이 의료 현장에 투입되면서 모든 간호 행위가 두려웠다고 토로하더군요.

“동의해요. 많은 신규 간호사들이 똑같이 느끼고 있을 거예요.”

-교육이 열악하다는 말씀입니까.

“네. 체계 같은 게 전혀 없고 도제식(徒弟式)으로 교육을 하니까 사람마다 교육 방식에 차이가 나죠. 교육 기간도 짧고요. 제가 경험한 바로는 교육 기간은 중환자실 기준 2달이고 병동 기준 한 달이에요. 교육 받고 바로 투입돼요.”

-일반 회사들은 수습 기간을 6개월 정도 주지 않습니까. 그럼 다 배우지 못한 채로 현장에 투입되는 거네요.

“그렇죠. 모르는 거 있을 때 그때그때 질문하지만 질문을 받아주는 선생님도 자기 할 일도 바쁘니 여력이 안 되죠.”

-OECD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한국의 간호사 1인당 환자 수는 상급종합병원은 미국의 3배, 병원급 간호사들은 8배 이상의 환자를 돌본다는 통계가 있더군요.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 의료 시스템은 90%가 민간병원이에요. 민간병원은 어떻게든 예산을 줄이려고 하죠. 장비와 시설은 이미 투자한 거라 줄일 수 없잖아요. 의사를 줄일 수 없으니까 간호사 인력을 줄이는 거예요. 간호사 인력을 가장 만만하게 보고 간호사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더 많은 간호사들이 일해야 하는데 애초에 적게 뽑는 거죠.”

-그런데 정부가 간호사의 근무 환경을 개선하지 않은 채 간호대 정원만 늘리는 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정책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인력이 확대되면 좋지 않은가요.

“간호대학 정원이 늘어나는 이유는 간호사들이 계속 일을 그만두기 때문이거든요. 그 악순환을 끊어야죠. 병원의 근무 조건이 개선되면 병원을 떠나는 간호사들도 줄어들고 그럼 간호대 정원을 늘릴 필요가 없잖아요. 면허를 갖고 있어도 일을 안 하는 간호사들이 많아요. 그런 간호사들을 활용할 방안이나 복지를 강구해야죠. 그게 해결이 안 된 채 간호대 정원만 늘린다면 앞으로도 사직자 수는 계속 늘어나겠죠.”

-미디어에 비치는 간호사는 주사 놓는 모습, 의사를 짝사랑하는 단역 정도로만 인식됩니다. 이건 어떤 편견을 생산할 수 있을까요.

“지금 핼러인 데이(10월 31일)가 다가오잖아요. 거기서도 코스튬(costume·간호사 의상)을 판매하거든요. 그게 성적인 묘사가 되고 간호사에 대한 편견을 재생산하는 거 같아요. 대중이 우리를 주사 놓은 직업으로만 보거나 의사를 짝사랑하는 존재로 묘사하는 건 인식 개선이 필요해요. 저희도 전문직으로 의료를 수행하기 때문에 정부나 간호협회가 인식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해요.”

-임상 현장에서 일하는 활동 간호사 수는 2016년 기준 50.2%에 불과합니다. 왜 그렇게 많은 이들이 일을 하지 못하는 걸까요.

“근무 환경이 열악하고 교육이 제대로 안 되니까 많은 간호사들이 사직을 해요. 업무의 강도가 높고 스트레스가 심하거든요. 사직하면 그 빈자리를 신규 간호사들이 메꾸게 되고 신규 간호사들도 부족한 교육으로 스트레스를 받아요. 그럼 또 그만둬요. 5년차 된 간호사도 신규 간호사들을 계속 교육해야 하니까 감당을 못 하고 나가거든요. 가면 갈수록 경력자는 부족해지고 신규 간호사들로만 채워지는 현상이 지금 일어나고 있어요.”

-OECD 국가 공공병원 평균 73%, 한국은 10%에 불과합니다. 공공병원이 왜 우리에게 그렇게 중요한 걸까요.

“민간병원들이 이익 창출을 목표로 하다 보니까 간호사 수를 줄이잖아요. 그럼 환자 건강에 직접적으로 위해(危害)가 가요. 많은 논문들이 그걸 증명해요. 간호사 한 명 당 간호하는 환자 수가 적을수록 환자의 사망률이나 치료율이 유의미하게 변화가 있다는 논문들이 많아요.

민간병원은 이런 걸 생각하지 않아요. 자본에 눈이 멀어서 최대한 비용 절감을 하려고 하겠죠. 그 비용 절감의 대상이 간호사라고 생각하는 거죠. 간호 인력을 법제화하고 공공병원이 강화되면 공공성이 강해지니까 국민 건강권 보장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

이나연 행동하는간호사회 간호사 (c)마인드포스트.
이나연 행동하는간호사회 간호사 (c)마인드포스트.

-권력은 간호사들에게 ‘너희가 양보하고 더 희생하라’고 요구합니다. 이는 2차 가해가 아닌가요.

“분명히 2차 가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더 어디까지 양보하고 희생할 수 있을까요. 2018년에 박선욱 간호사가 비극적 선택을 했는데 일부의 사람들이 ‘박선욱 간호사가 일을 못했다’는 식으로 2차 가해를 했거든요. 저는 일단 간호 인력 확충을 요구하고 싶어요. 인력을 확충해서 저희가 희생하는 존재가 아니라 전문 직업인이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대한간호협회(간협)는 간호사들의 회비로 운영되면서도 대의원들 총회를 통해 간선제로 회장을 선출합니다. 게다가 신임 간협 회장은 2008년, 2011년, 2018년에 회장을 연임한 사람입니다. 뭔가 문제가 커 보입니다.

“간협 회장이 장기집권을 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현장 간호사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어요. 장기집권으로 인해서 간호사들이 원하는 회장을 뽑지 못하니까 회장도 간호사들을 위해 일하지 않아요. 그런 의미에서 직선제가 필요하다고 봐요.”

-간협에서도 정책 공약으로 간호사법 법제화를 외치더라고요. 자기들도 노력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아닐까요.

“그것보다도 현장에서 외치는 목소리들을 귀담아 들어주지 않고 있잖아요. 눈앞에 보이는 보여주기식 목적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어요.”

-간호사 1명 당 환자 수의 법제화를 요구했습니다. 좀 더 설명해주시면요.

“간호사 한 명 당 환자 수 기준이 전혀 없어요. 현재 간호 등급에 따른 간호사 대 환자 수 비율은 병원에게는 선택의 문제일 뿐이에요. 좋은 등급을 받아 좋은 수가를 적용받을 의지가 없는 경우엔 최고 낮은 등급을 받아서 간호사 구하기가 힘들다는 핑계로 ‘박리다매(薄利多賣)’ 하겠다는 거죠.

낮은 수가를 받더라도 열악한 간호 인력을 유지하겠다는 거고요. 이게 오히려 병원 수익에 득이 된다는 뜻이죠. 현재 간호등급은 선택의 문제일 뿐이에요.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 숫자는 환자의 생명이 달린 문제에요. 중증도에 따른 적정 간호 인력을 정하고 지키지 않았을 때는 처벌할 수 있어야 해요.

이것이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국가의 책임 아닐까요. 간호사 한 명당 담당하는 환자 수를 몇 명으로 정할지는 부서별로, 부서 특성마다 다르기 때문에 논의가 필요하지만 일단 법제화를 진행하면서 논의해야 할 부분이죠.”

-많은 간호사들이 정신과 상담을 병행해 간호 현장을 지키고 있다는 말에 놀랐습니다.

“저도 그렇고요. 밝힐 수는 없지만 많은 간호사들이 그렇다고 들었어요.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가 있고 신규 간호사 때 교육을 제대로 못 받기 때문에 내가 환자에게 위해를 가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거든요. 두려움이 커지면서 그 상황 자체가 무서워지는 거예요. 병원에 출근하는 자체가 무서워지고요. 그럴 때 이 두려운 상황을 도피할 목적으로 자살을 생각하게 되는 거죠.”

-‘태움 문화’에 대한 설명이 좀 필요할 것 같아요.

“태움 문화라고 하고 싶지는 않아요.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고쳐주셨으면 해요. 이게 간호사 직종에만 만연한 건 아니죠. 직장 내 괴롭힘의 한 종류로 이해해주시면 돼요. 이 직장 내 괴롭힘이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조직 문화 속에서 계속 심화되다 보니까 태움이라는 언어가 생겼거든요. 저는 태움이 간호사들의 특징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용어 같아서 잘 안 써요.

어느 직장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직장 내 괴롭힘인데 간호사들에게서 많이 나타난다는 건 아무래도 많은 업무량이 원인이고 구조적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구조적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간호사 한 사람 당 담당하는 환자 수가 너무 많아요. 업무량이 계속 늘어나는 거죠. 또 신규 간호사로서 투입됐을 때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서 일하는 데서 오는 위압감도 크고요.”

-선생님은 병명이 조울증입니다. 간호사로 일하면서 일 스트레스로 더 힘들어지는 건 아닐까요.

“전 취업 스트레스 때문에 발병했어요. 취업이 안 되니까 우울해지고 침대에 누워 지내는 시간이 길어졌어요. 결국 아무것도 못 하게 됐고요. 그때가 23살. 남자친구가 정신건강의학과 내원을 권유했어요.”

-남자친구가 좋은 분이네요. 부모님은 무슨 말씀이 없었던가요.

“처음에는 별로 안 좋아하셨고 지금은 좀 체념하신 정도.”

-23살 때 발병하면 가족은 이해를 잘 못할 걸요.

“그렇죠. 의지가 부족하다, 잠만 잔다, 게으르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말씀하시고요. 네가 생각을 긍정적으로 안 하고 부정적으로 하니까 그런 거다 식으로 말씀하시죠.”

이나연 행동하는간호사회 간호사 (c)마인드포스트.
이나연 행동하는간호사회 간호사 (c)마인드포스트.

-정신과 약은 복용하고 계신가요. 어떤 약을 먹습니까.

“어떤 약인지까지는 밝힐 수는 없어요. 지금 필요할 때 먹는 약 하고 그냥 매일 먹는 약하고 그렇게 두 가지 종류를 먹고 있어요.”

-조증도 문제지만 울증 시기에는 간호 현장에서 일하는 게 더 힘들 것 같습니다.

“울증 때도 일을 하기는 했는데 거의 밥을 못 먹었어요. 바빠서도 그렇고 일이 끝나도 입맛이 없었어요. 그런 방식으로 울증이 발현이 되더라고요. 일이 끝나고 나오면 스트레스를 받아서 아무것도 먹기가 싫고 더부룩하고 소화도 안 되고 다음날 출근 생각에 잠을 못 잔다든가 그런 것들이 있었어요.”

-정신병원에 입원한 적은 있습니까.

“아니요. 저는 외래 치료를 받고 있는데 외래가 되게 열악한 거 같아요. 교수들이 환자를 많이 보니까 환자들하고 대화를 제대로 나눌 시간도 없고 진단과 처방만 반복하는 현실이 안타까워요. 이것도 결국 사립병원의 문제거든요. 민간병원은 환자를 많이 유치해야 돈을 버니까 짧은 시간 안에 환자를 많이 봐서 수익을 창출하려고 하는 구조죠.”

-그러고 보면 정신적 질환으로 간호직을 떠나야 했던 이들도 있을 거 같습니다.

“아마 그럴 거예요. 자살 충동이 많이 드니까 사직을 생각하는 선생님들도 많아요. 꼭 정신적 질환이 아니더라도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사직하는 분들이 많아요. 정신과를 가는 게 사회적으로 터부시되다 보니까 진단을 꼭 받지 않아도 정신적 스트레스 때문에 그만두는 경우가 정말 많아요.”

-지난 10월 10일 제2회 매드프라이드 서울 개최를 지지한다는 입장문을 냈죠. 직접 참여도 했고요. 어떤 이유에서였을까요.

“정신과 폐쇄병동 근무 경력이 있는 행동하는간호사회 회원 분이 계세요. 거주하는 지역에 조현병을 가진 지인이 있어서 작년부터 매드프라이드 소식을 공유해 줬어요. '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로서 정신건강 영역에도 당연히 연대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당사자로서 발언하고 연대하면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그래서 현장에 발언하러 갔어요.

예전에 실습을 갔을 때 정신병원의 열악한 시설에 충격을 받았거든요. 정신질환자들이 병원에만 갇혀 지내지 말고 사회로 나올 수 있게 재활을 해야 하거든요. 그렇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매드프라이드와 연대하게 됐어요.”

-올해 처음 참여하신 거죠.

“작년에도 있다는 걸 알았는데 그때는 이미 참가 신청이 끝난 뒤여서.”

-조울증을 가진 분이 간호사를 하고 싶다면 어떤 조언을 해 주고 싶습니까.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편견이 많지 않습니까. 선생님은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다고 드러내셨지만 보통 사람은 편견 때문에 낙인이 무서워서 숨기거든요. 정신적 질병이 취업을 막아버리는 거죠.

“조울증이 있어도 약으로 증상을 조절하면서 충분히 일할 수 있어요. 일상생활 영위를 위해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병행하고 운동도 병행하면 충분히 기능이 회복돼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나연 행동하는간호사회 간호사 (c)마인드포스트.
이나연 행동하는간호사회 간호사 (c)마인드포스트.

-스트레스 강도가 너무 강하면 힘들지 않을까요.

“스트레스 강도가 강하면 조울증 유무 상관없이 누구나 힘든 거 아닐까요. 그런 스트레스를 낮추는 노력이 직장 내에서 있어야 하는 게 우선이죠. 차선책으로 스트레스가 덜한 부서로 이동하거나 스스로 다른 경로의 간호직을 선택해 볼 수는 있겠죠.”

-조울증이고 스트레스가 심한데도 버티는 거잖아요. 대단한 영웅일 수도 있겠어요. 몇 살 때까지 간호사 일을 하시려고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제가 원하는 걸 다 이루는 때까지는 하지 않을까.”

-원하는 바가 뭡니까.

“간호 현실을 바꾸는 데 한몫을 하고 싶어요. 당장은 아니지만 교과서를 집필하는 것도 생각하고 있고요. 아니면 연구를 통해 한국인에게 맞는 치료 가이드라인을 개발하고도 싶어요. 한국인의 환경을 고려해서 정신질환을 분석한다든가. 국민 건강권에 이바지할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싶어요.”

-코로나19는 가장 먼저 정신장애인이 살아가는 정신병원과 정신요양시설을 덮쳤고 수십 명이 사망했습니다. 이는 무슨 의미일까요.

“높은 환자 밀도와 열악한 정신병원 시설 때문이죠. 정신장애가 있으면 다들 시설에 가도록 하잖아요. 그게 제일 문제였다고 생각해요. 정신장애인들이 사회에서 재활을 받고 있었다면 그렇게 밀접접촉을 할 기회가 더 적지 않았을까요.”

-정신병원과 정신요양시설에 있는 분들이 탈원화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분들의 삶의 질을 위해서라도 탈원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신적 질환이 있으면 바로 사회에 융화되는 건 어렵겠지만 융화될 수 있는 발판을 놓아주면 충분히 살아갈 수 있거든요. 조현병이 생각보다 흔한 질환이잖아요.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병인데 내가 그 병에 걸렸다고 해서 햇볕을 못 보고 격리실에 갇혀서 인권을 침해받는 게 당연한 건 아니잖아요. 입원만 계속하면 사회와도 격리되고 삶의 질도 떨어져요. 그건 오히려 정신질환의 악화를 불러올 수 있어요. 이분들이 사회에 편입될 수 있도록 상호작용 기술, 의사소통 기술을 배울 수 있게 센터나 낮병동이 적극적으로 활용됐으면 합니다.”

-대다수 정신장애인들은 취업도 못 하고 대부분 집에서 자고 먹고 하는 반복만 합니다.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선생님은 병을 갖고 훌륭하게 생활하는데 대부분은 그렇지 못해요.

“탈원화가 하루빨리 이뤄져야 해요. 그들이 사회에 나와서 당장 정상적인 기능을 할 수 없더라도 연습할 수 있는 트레이닝 시스템을 만들 수 있거든요. 카페에 와서 바로 음료수는 만들 수 없지만 아메리카노 정도는 만들 수 있잖아요. 단순하더라도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배분해 주는 게 사회가 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해요.

자본주의 사회는 경제활동이 중요하잖아요. 자아실현과도 연관이 있는데 작은 일이라도 해내다 보면 성취감도 느끼고 증세에도 호전이 있을 거예요. 재활을 시켜야죠. 뇌전증 환자들도 마비가 되면 마비된 곳을 살리려고 운동을 하잖아요. 처음에는 아예 움직이지도 못하다가 주먹을 쥐고 팔을 움직이고 해요.

정신장애인들도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단계적으로 재활해야 하고 거기서 국가적 개입이 적극적으로 있어야 해요.”

-국가가 어떻게 개입해야 할까요.

“프로그램을 만드는 거죠. 직업재활센터나 장애인 일자리 사업도 만들어서 정신장애인들이 단순한 노동이라도 할 수 있게 해야죠. 발달장애뿐만 아니라 정신장애 대상으로 많이 생겨야죠.”

이나연 행동하는간호사회 간호사 (c)마인드포스트.
이나연 행동하는간호사회 간호사 (c)마인드포스트.

-정신장애인들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해 주고 싶습니까.

“어떻게 보면 대단한 사람들인 거 같아요. 정신질환을 갖고 있다는 게 눈으로 보이지 않은 거니까 사람들이 과소평가하기 쉬운데 그런 편견에 맞서서 살아가고 있잖아요. 저는 이번 매드프라이드를 보면서 감명을 받았어요.

비장애인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이 정신장애인에게 굉장히 어려운데도 노력하는 모습이 멋지다고 해야 할까요. 남들보다 몇 배나 힘든 상황에서 그렇게 하려고 하는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자신을 학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고 박선욱 간호사의 추모식에서 나온 한 간호사의 발언을 다시 읽었다. “나는 너였다. 너는 우리다. 스스로가 잃어간 아픈 우리다.” 하이데거가 묘사한 미치광이는 신(神)의 죽음에 공모한 이들이 우리 모두였다고 절규한다. 우리 모두. 내가, 너와, 그래서 우리 모두가. 세계의 한 곳에서 억압받는 이들의 모순은 바로 우리 모두의 모순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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