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가슴을 열어보면 아마 잿빛이거나 흙빛일 거예요”
“가족의 가슴을 열어보면 아마 잿빛이거나 흙빛일 거예요”
  • 권혜경
  • 승인 2021.05.03 2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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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병한 딸, 처음에는 4개월만 약 먹으면 나을 거라 믿어
일하고 월급 받으면서 딸의 자존감 올라가는 경험
회사일 힘들어하면 “우리 딸 최고”라고 자존감 높여줘
“절대 돈 빌리거나 빌려주지 마라” 유언처럼 자주 말해

이 글은 지난달 21일 국립정신건강센터 가족교육에서 발표했던  윤환숙 가족강사의 강연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동병상련(同病相憐), 같은 마음을 가지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의 자녀도 회복 과정 중에 있습니다. 딸아이를 위해 부산에서 수원까지 이사를 왔었습니다.

딸아이는 22살 때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뭔가를 계속 잃어버리고 정신이 없어서, 결국 학교를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한국에 와서도 일상생활을 전혀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정신과에 데리고 갈 엄두를 못냈지요. 주변에서 하도 말을 해서 겨우 정신과에 데리고 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우울증이라고 4개월만 약 먹으면 낫는다고 해서 저는 순진하게 그걸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라디오에서 정신과 의사 선생님 이야기를 들었는데, 우리 아이랑 너무 비슷한거예요. 그래서 그럼 입원을 시켜야 하나 해서 그 선생님과 의논해서 입원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입원하는 모습을 보기가 너무 괴로운 거예요. 그래서 그다음에 정신재활시설을 알아보다가 수원의 사회복귀시설에서 바리스타 등 활동을 3~4년 했습니다.

그 후에 지인 소개로 국비 컴퓨터 교육을 받으면 40만 원을 준다는 거예요. 그때 시급 2100원 받았는데 40만 원 준다는 말에 우리 아이가 힘들어도 간다고 하는 거예요. 거기서도 '왕따'도 당하고 힘든 점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걸 끝까지 해내더라구요.

그 후에 국비 교육 컴퓨터 선생님이 아이들을 데리고 취업박람회를 다니면서 잘해줬어요. 그리고 취업이 되어서 1년 근무를 마치고 100만 원 넘게 돈을 받고 퇴직금까지 받았어요.

그러니까 아이 자존감이 굉장히 올라가더라고요. 지금은 컴퓨터 엑셀 입력 등 사무보조 등 일을 하면서 하루 8시간 일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 아이도 피곤해하고 피해망상도 있지요. 하지만 좀 이상하면 제게 문자를 하거나 하면 제가 화장실에 가서 큰 숨을 쉬어보자 이렇게 달랬지요.

지금도 아이가 스스로 노력해서 몸무게 23킬로그램을 감량했어요. 물론 회사일이 힘들어서 짜증을 내고 할 때가 있지요. 그럼 엄마 아빠가 “우리 딸이 최고다” 하면서 자존감을 높여주지요.

자녀의 미래 독립을 위해서 다른 자녀들하고도 의논했었어요. 뜬구름 잡는 것보다는 실질적인 것, 구체적인 것을 중심으로 계획을 세웠지요. 주거, 독립생활을 위한 요리 등 실질적인 기술을 배우게 했지요. 이렇게 독립생활을 할 수 있게 엄마가 해 주면 형제들은 정기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고 하더라구요.

제가 이제 나이 70이 되니까 이런 말 습관이 붙었어요. “이 말은 엄마 유언처럼 들어라.” “절대로 누구한테든 돈을 빌려서도 안 되고 빌려줘서도 안 된다.” “네가 너의 삶을 꾸려야 한다. 언니 오빠는 호적상은 함께 있지만 관계가 없다.” 이렇게 일러두곤 하지요.

제가 이런 꿈을 한번 꿔봤어요. 빌딩이 하나 있으면 아래는 정신과 의사가 있고 위에는 주거시설이 있어서 아픈 아이들이 생활하다가 힘들면 아래로 내려가서 쉬고 이런 시설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다른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우리 가족들이 이런 교육이 있을 때라도 뭉치고 한마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화분에 꽃이 올라오다가 어떤 이유로 대가 상하면 아무리 비료를 잘 주고 해도 옆에 예쁜 꽃처럼 안 자라더라고요. 상처가 있는 꽃이 절대로 상처 없는 것처럼 자랄 수가 없고, 잡초를 안 뽑아주면 꽃이 약해서 먼저 죽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부모가 부지런히 잡초를 뽑아주자고요. 그런 꽃을 피우는 마음으로,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도와주면 좋겠어요.

신문지상에 부모가 정신질환 아이랑 같이 목숨을 끊은 이야기가 나오면 우리 아들이 전화가 와요 “엄마, 별일 없어요?” “그럼 별일 없지.”

제가 습관처럼 이야기를 해요. 내 죽고 나면 가슴을 열어보면 잿빛이 아니면 흙빛일 것이다.

아마 다른 가족들도 그럴 거예요.

그래도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꽃을 가꾸는 마음으로 아픈 우리 아이들이 지역사회에서 섞여 살아갈 수 있도록 곁에서 지켜주자고요. 끝까지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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