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형 기자의 변론] "정신장애인 당사자 강사에 도전해 보세요"
[이관형 기자의 변론] "정신장애인 당사자 강사에 도전해 보세요"
  • 이관형 기자
  • 승인 2020.08.12 1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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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가 쓴 에세이들 출판 봇물...2년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
책 출간 후 강사로 바쁜 생활...나의 이야기 들려줄 기회 생겨
정신장애인 인식 변화 위해 당사자들이 나서야
장애인식 개선 강사 모집 때 적극적으로 도전해야

언제부턴가 출판업계에 심리 에세이 책의 붐이 일고 있습니다. 백세희 작가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해외의 론 파워스가 쓴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 이라하 작가의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같은 베스트셀러는 이미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책들입니다.

그리고 코리안매니아 운영자 정안식 님의 '조울증은 회복될 수 있다', 강연과 상담 활동을 하는 장우석 님의 '당신은 아파했던 만큼 행복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처럼 오래된 책들부터, 최근 '삐삐언니는 조울의 사막을 건넜어', '내 마음속의 신을 움직이다', '조울증은 회복될 수 있다', '죽고 싶은데 살고 싶다', '나는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판타스틱 우울백서', '나는 내가 우울한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정신과는 후기를 남기지 않는다'에 이르기까지 정말, 수많은 당사자들의 에세이 서적이 서점에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책을 통해 조현병, 조울증, 우울증 등 다양한 당사자들의 인생과 삶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런 책이 많이 읽힐수록 사회와 대중은 언론을 통해서만 바라봤던 정신장애 당사자들에 대한 좁은 인식과 편견을 깰 수 있을 겁니다.

저 역시 '바울의 가시(나는 조현병 환자다)'라는 책을 낸 것에 보람을 느낍니다. 이 책이 2018년 초에 처음 전자책으로 나올 때만 해도 당사자가 쓴 책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불과 몇 년 만에 더 다양하고 수많은 당사자들의 이야기가 책으로 만들어져 기쁘게 생각합니다.

책이 주는 유익은 많습니다. 단순히 책을 팔아 돈버는 걸 넘어 직접 사람들 앞에 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기회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책을 내고 한동대학교를 시작으로 서울정신요양원, 심리상담 센터, 당사자 시설에 초청받아 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보건복지부 장애인개발원에서 장애인식개선 강사로 위촉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장애에 대해 워낙 아는게 없다 보니 대학원에 진학하여 장애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방학 기간인 7월과 8월에도, 크고 작은 강연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와 지방 서점, 기관에서도 강연을 하게 됐고 이를 통해 정신장애와 관련된 주제들과 제 인생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도 당사자 가족들이 주로 활동하는 한국조현병환우회(심지회)에서도 불러 주셔서 강연을 했었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몇몇 회원들과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에 함께 동승했습니다. 그때 어머님과 함께 참석했던 한 어린 여학생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 여학생은 “저도 선생님처럼 강사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나요?”라고 제게 물었습니다. 워낙 어리고 인생 경험이 적어서 모두가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대답했지만 전 그 학생이 대견하고 멋있게 느껴졌습니다. 지금 당장은 어려울 수 있겠지만, 언젠가 사람들 앞에 서서 당당하게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펼치는 미래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동안 제가 걷는 길이 조금은 외로웠습니다. 보건복지부에서 강사 교육을 받을 때, 30여 명의 후보생 중 정신장애 당사자는 저 혼자뿐이었습니다. 후보생들은 시각, 청각, 지체와 같은 신체장애인이 대다수였기 때문입니다. 대학원에 가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석사와 박사를 합쳐 30명이 넘는 학생들 중, 정신장애 당사자는 저 혼자였습니다.

강사 교육을 받으면서,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 “혹시나 동기들이 나를 이상하게 보면 어쩌나?”, “날 무섭게 생각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 속에 지내기도 했습니다. 제가 신체장애인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그들도 정신장애 당사자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사실 장애 중에서도 가장 인식이 나쁘고 개선되어야 할 숙제가 많은 유형이 바로 정신장애입니다. 하지만 정신장애 당사자가 장애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강사로 활동하는 경우는 많이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신체장애 강사들이 정신장애를 정확히 이해하고 깊이 있게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정신장애인들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우리 당사자들이 직접 나서야 가능하다고 봅니다.

물론 각자의 영역에서 각자의 모습으로 당사자 운동을 하는 분들이 계시긴 합니다. 그러나 정신장애, 혹은 정신질환 인구의 숫자에 비해 앞에 나서서 활동하는 분들은 극소수라 여겨집니다. 소수이나마 앞서 길을 가고 있는 장우석 선생님과 마인드포스트 박종언 국장님, 한 번도 직접 뵌 적은 없지만 파도손의 이정하 대표님의 활동을 보면서 왠지 모를 용기와 희망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저 역시, 함께 동역할 수 있는 20대 후배들에게 본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외국에 유학을 다녀 온 뒤 한국에서 상담사 일과 책 집필을 병행하는 조울증 당사자 후배도 있고, 한국 사회의 정의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활동하는 우울증 당사자 후배도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당사자 운동이 모든 세대에 거쳐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은 소수만의 행동에 그쳐서는 한계가 있습니다. 더 많은 당사자들이 동참하고 적극적으로 나서야만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오늘은 그 흐름에 동참할 수 있는 한 가지 길을 소개하기 위해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5인 이상 사업장은 필수적으로 4대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산업안전 보건 교육’, ‘성희롱 예방 교육’, ‘개인정보 보호 교육’, 그리고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이 있습니다. 여기서 ‘직장 내 장애인인식개선 교육’은 장애인고용공단에서 일정 교육을 받은 뒤 기준에 통과하면 강사로서의 자격이 주어집니다.

장애등급이 있을 경우 더욱 유리하지만 꼭 장애등급이 없거나, 당사자가 아니라도 누구나 신청이 가능합니다. 물론 신청한다고 해서 모두가 교육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일정 정원에 맞춰 후보생을 선발하기 때문입니다. 사전에 관련 학위나 자격증이 있다면 교육 신청을 할 때 가산점이 주어집니다. 하지만 학위나 자격증이 없더라도 미리 포기하기보다, 자기소개와 지원 동기를 성실히 써내면, 충분히 합격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교육생 선발에 합격된 뒤에는 보통 일주일의 집합교육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현재 코로나 시국인지라, 온라인 화상 수업으로 대체된다고 합니다. 최종적으로 강사 자격이 주어진다고, 저절로 강의가 들어오는 건 아닐 겁니다. 하지만 이 역시도 본인의 노력과 준비에 따라 더 많은 강의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시간당 강의료는 제가 알기로 최저 10만 원이라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스스로 강사로서 실력과 경험을 쌓는다면 더 많은 강의료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강사 활동으로 대한민국 사회의 장애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싶다면, 꼭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직장내 장애인 인식개선 강사' 신청 방법 : 검색창에서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 포털' 입력 혹은 아래 클릭 후 공지사항 참조.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 포털(클릭)

앞서 몇몇 당사자들의 노력과 용기로, 출판 시장에 심리 에세이가 유행했듯이 강사계에도 더 많은 정신장애 당사자들이 활동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당사자들이 활동해야 할 분야는 출판과 강의 말고도 많습니다. 더 나아가 언론계에도 당사자들이 직접 기자로, 피디로 참여하여 더 이상 마녀사냥과 같은 잘못된 보도 행태를 사라지게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학계에도 당사자들이 직접 공부하고 연구해서 유의미한 학술 결과물들을 내놓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때로는 적극적인 유권자로서 정책과 법안에 영향을 끼치고, 법과 제도를 통해 당사자들이 더 이상 숨어 살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건강이 허락된다면, 환경이 주어진다면, 옳다고 생각되는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고 노력해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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