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형 기자의 변론] 법이 우리를 수용소로 보낼 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나요?
[이관형 기자의 변론] 법이 우리를 수용소로 보낼 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나요?
  • 이관형 기자
  • 승인 2020.08.07 19:16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산서 발생한 의사 사망 사건...정신질환 예비범죄자로 낙인
장항 수심원의 생존자들 트라우마로 극단적 선택 잇따라
김삼식 씨 "저를 구해주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다" 절규
당사자 운동에서 커밍아웃 더 많이 나타나야
회복 후의 삶에서 당신은 동료를 도울 수 있는가?

지난 주 멀리 지방에서 강의가 있었습니다. 조현병 환자로서 치유되어가는 과정을 나누는 자리였죠. 정신장애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을 개선하고자 전 불러주면 어디든 달려갔습니다. 몇 명이 모이든 중요하지 않았죠. 단 한 명이라도, 생각을 바꿀 수 있다면 전 보람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한 청중이 제게 말했습니다. 자신은 조현병 환자가 무섭다고 말이죠. 저를 쳐다보는 것조차 겁이 난다고 말했습니다.

요즘 학교에서도 아이들에게 조현병 환자와 눈을 마주치면 안 된다고 가르친다며 제 눈을 피했습니다. 아마도 조현병 환자는 누가 쳐다보면 공격 신호로 알고, 해코지한다고 오해하신 것 같았습니다.

전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오히려 잘 오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조현병에 대해 올바로 인식하는 사람들보다, 뉴스를 보고 막연히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제 이야기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강의를 하며 저도 모르게 많은 눈물을 흘렸던 것 같습니다. 그날만큼은 제 진정성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다행히 강의가 끝나고 그 청중 분은 제 눈을 쳐다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강의에 대해 좋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나중에 제게 시집도 내라며, 자신이 꼭 구입해 주겠다고 약속도 해주셨습니다.

그러나 보람을 느낀 것도 잠시, 지난 5일 부산의 한 정신과 전문병원에서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의사가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해 왔던 작은 노력들이 소용이 없겠구나 싶었습니다. 예상대로 언론들은 앞다투어 이 사건을 보도했고 댓글에는 이젠 놀랍지도 않은 악플들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물론, 살인을 저지른 환자를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해서, 심신미약이라는 명분으로 그의 죄를 씻을 수는 없습니다. 마땅한 처벌과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의사들은 물론, 당사자들조차 피해를 입게 될 것입니다. 정신과 치료를 받고 약을 먹는다는 이유로 예비 범죄자라는 주홍글씨가 더욱 선명하게 낙인 될 테니까요.

해당 기사들에 달린 악플만 봐도, 앞으로 당사자들의 삶이 더욱 녹록지 않아질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 이러한 악플들을 보면서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장항 수심원’에 수용되어 있던 ‘김삼식’ 씨입니다.

장항 수심원은 1975년부터 1997년까지 충청도 서천군 장항읍의 유부도라는 외딴 섬에 있던 정신질환자 수용 시설입니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 취재진은 1992년을 시작으로 1997년, 2016년, 총 3차례에 거쳐 이 시설과 이곳에 수용되었던 사람들을 취재합니다.

특히 1997년에는 취재진이 경찰의 도움으로 이 시설의 폐해를 낱낱이 보도할 수 있었습니다. 직원의 제재를 뚫고 철제문을 열어 수심원 건물에 들어서자, 쇠창살이 박힌 창문으로 사람들이 손을 내밀며 도움을 청합니다.

이곳 수용자들은 하루에 20대, 30대씩 얻어맞는 것은 기본이고 반발하면 몽둥이로 맞고 밥도 굶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건물 안 복도에 들어서자 어떤 두 사람은 작업을 나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8일째 팔목에 수갑이 하나씩 채워져 있었습니다. 수용자들이 생활하는 방은 눅눅한 장판 위로 한 번도 빨아 본 적이 없는 이불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매일 염전에 나가 작업을 하고 짠 바닷물을 대야에 받아 샤워를 해야 했습니다. 말 그대로, 그들은 사육되는 동물 이상의 의미가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다 취재진은 자물쇠로 굳게 잠긴 독방을 발견합니다. 그 안에는 양손에 수갑이 채워지고, 윗옷도 입지 못한 김삼식 씨가 한 달 넘게 갇혀 있었습니다. 시설 내에서 소란을 일으켰다는 이유 때문에 말이죠. 김삼식 씨는 문을 열고 들어온 취재진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죽기 직전까지 맞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한 가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저 이렇게 취재하면서요, 이렇게 다 진술하고 나서는, 저를 구해주지 않으시면 저는 그대로 이렇게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꼭 좀 구해주십시오.”

다행히 취재진과 변호사, 경찰들의 도움으로 김삼식 씨를 비롯한 많은 수용자들은 섬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김삼식 씨를 비롯한 수용자들의 비극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2016년, 수심원에서 탈출했던 다른 수용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지금도 그 소리가 막 들려요. 막 맞고 악 지르는 거 살려달라고 했던 비명 소리. 그런 것들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어요.”

그리고 그 수용자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원장이 기분 나쁘면 패거든요. 하루는 원장이 몽둥이로 여자 원생을 패는데, 자기가 지치니까 네가 패라 그러더라고, 안 패면 안 되거든요. 팼는데 죽어버렸어요. 나는 그 여자를 그 정도로 패야 될 이유가 없거든요. 거기서 패 죽이라면 패 죽여야 해요. 사람을 죽이는 건 일상이에요.”

그리고 취재진은 김삼식 씨를 만나 인터뷰하기 위해 행방을 수소문합니다. 20년이 넘는 오랜 시간이 지나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취재진은 어렵게 김삼식 씨가 다녔었다는 교회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회 집사에게 전화를 걸어 김삼식 씨의 근황을 묻게 되죠. 수화기 너머로 교회 집사는 “자살했어요”라는 짧은 대답을 남깁니다.

집사의 말에 따르면 김삼식 씨는 사회에 적응을 하지 못했고, 잠을 자다가도 ‘으악’하고 소리를 지르며 깨어나기를 반복했다고 합니다. 그 고통스런 후유증 속에서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된 것입니다.

취재진은 다른 수용자들 중, 비교적 나이가 젊었던 사람들의 근황을 조사합니다. 주민센터에 도움을 요청하여 신분을 확인했지만 대다수가 이미 김삼식씨처럼 생을 마감한 상태였습니다.

그들은 수심원에 갇혀 목숨을 빼앗기면서도 왜 그렇게 당하고만 있었을까요? 수적으로 다수였을 수용자들은 왜 힘을 합쳐 원장과 직원들에게 반항조차 하지 못했을까요? 그들은 왜 원장의 지시대로 서로가 서로를 매질하고 죽여야만 했을까요?

김삼식 씨가 독방에 한 달 넘게 갇혀 있던 이유는 시설에서 소란을 일으켰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마도 원장과 직원들에게 반항을 하거나 대들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수용자들은 그런 김삼식 씨를 도와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방관하고, 누군가는 이미 겁에 질려 이 상황을 피하려 했겠죠. 심지어 누군가는 왜 소란을 일으켜서 우리까지 피해 입게 만드나 불만을 품었을 겁니다.

또한 원장의 지시대로 수용자가 수용자를 매질하고 죽여야 했던 상황을 보면, 아마 수용자들끼리도 내부에 갈등이 생겨나고 단합이 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원장의 입장에서는 수용자들이 단합하여 힘을 합치는 것만큼 두려운 것이 없으니까요. 어쩌면 분열을 조장하기 위해, 서로에게 매질을 시킨 것은 아닐까요.

저는 정신장애 당사자들 중에서도 김삼식 씨 같은 사람들이 더 나타났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병을 밝히고 커밍아웃하게 되면, 독방에 갇히는 것만큼 인생이 고달파질 것입니다. 손목에 수갑이 채워지고 한 달 넘게 독방에 갇히지는 않겠지만 댓글에서 알 수 있듯이 사회의 질타를 경험할 것입니다. 취업이 안 되거나, 회사에서 짤릴 수도 있고 친구라 믿었던 사람들마저 곁을 떠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병을 밝히고 앞에 나서 당사자 운동을 하는 이들이 분명 존재합니다. 그들에게 힘을 모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관망만 하지 마시고, 최소한의 힘이라도, 응원과 격려의 목소리라도 보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번에 정신장애 관련 논문을 준비하면서 조금이나마 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 온라인 카페에 논문을 위한 설문조사를 요청하면서 수천, 수만의 회원들 중 103명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저로서는 이쪽 분야를 연구하겠다는 의지가 있었고, 경품까지 내걸었지만 참여율이 너무 적어서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단어 상의 표현으로 인해 공격적인 댓글도 경험해야 했습니다. 생애 처음으로 악플도 겪어야 했고요. 카페들끼리 서로 단결하지 못하는 모습도 지켜봐야 했습니다.

많은 당사자들과 가족들은 하루속히 정신질환에서 벗어나 사회생활도 하고 정상적인 일상을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어느 병원, 어느 의사가 괜찮은지, 어떤 약을 먹어야 증상이 완화되는지 큰 관심을 갖고 연구합니다.

저 역시 17년째 조현병을 겪어온 당사자로서, 증상의 고통을 알기에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여러 당사자 카페에 올라오는 글들도, 병의 증상과 회복에 대한 내용들이 대다수일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당사자 분들이 빨리 병에서 회복되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저도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데 병에서 회복되어 건강을 되찾은 이후의 삶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아직 병에서 낫지 않은, 어쩌면 평생 병명의 꼬리표를 달고 살아가야 하는 다른 당사자들을 위해서 살아갈 마음이 있으신가요? 본인 혹은 자녀의 회복과 사회로의 복귀에 그치지 않고, 아직 회복되지 못한 사람들도 떳떳하고 행복하고 살 수 있도록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신가요?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가든, 언론에 항의를 하든, 정신장애 관련 연구에 참여를 통해서, 유권자로서 제도와 정책에 목소리를 높임으로서, 혹은 인권과 권리를 되찾기 위해, 어떠한 방법으로든 사회를 변화시켜 나갈 의지가 있으신가요?

병에서 회복되는 것을 너머, 아직 회복되지 않는 당사자들, 평생 정신병자라는 타이틀을 갖고 살아야 할 사람들까지도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할 마음이 있으신지 묻는 겁니다.

회복된 뒤 취업이 힘들까봐, 사회생활에 지장이 생길까봐 걱정 속에서 평생 병을 숨기고 사는 것이 아니라, 병이 있었음을 당당히 밝히고, 우리도 당신들과 똑같은 인간이고, 훌륭하고 멋지게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줄 용기가 있으신지 묻는 겁니다.

수심원 안에 갇혀서 원장에게 덜 맞고, 굶지 않고, 밉보이지 않는 것이 수용생활의 목적이던 다수의 수용자들. 김삼식 씨가 소란이라 불리는 행동을 하는 동안 그 많던 수용자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왜 김삼식 씨를 도와 원장과 직원들을 제압하고 모두가 함께 수심원을 빠져나올 생각은 하지 못했나요?

그리고 여러 당사자 카페에 가입된 수만의 회원 분들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

조현병 등 중증정신질환자가 전체 인구의 1%인 50만 명에 달한다고 하던데, 그분들은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 언론이 무분별한 보도를 하는 동안, 여론이 악화되어 국민들의 인식과 편견이 심해지는 동안, 정책과 법이 우리를 저 외딴 수용소로 보내려 하는 동안, 여러분은 어디에 계신가요?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ㅇㅇ 2020-08-09 22:22:33
당사자한테 정중하게 참여 부탁해도 모자른 게 현실인데 같은 당사자한테 호통이라뇨... 그 많은 사람들이 왜 운동에 참여 못하는 건지 잘 아시는 분이 그런 어투로 기사를 쓰시면 어떡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