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집단수용 시설로 변질된 정신요양시설 강제입소 조항 폐지돼야”
인권위 “집단수용 시설로 변질된 정신요양시설 강제입소 조항 폐지돼야”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0.08.18 1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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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 기능 아닌 장기 거주서비스로 기능 변질
치료 기능 없는 시설 강제입소는 자기결정권 침해
입소자 절반이 60대 이상 고령자들…감염병에 취약
국가정신건강 5개년 계획에 탈시설 구체적 계획 세워야

끊임없이 문제로 제기됐던 정신장애인의 정신요양시설 비자의입소(강제입소) 제도가 폐지될까?

18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정신요양시설 비자의 입소 조항을 폐지하고 입소 심사 절차를 마련하라고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권고했다. 또 정신장애인이 거주할 공간에 인원수를 최소화하고 인력 배치 기준도 개선하는 한편 장애인권리옹호기관에 정기적인 모니터링을 제도화하라는 권고도 내렸다. 이는 2019년 인권위의 정신요양시설 방문조사 결과에 따른 조치다.

현행 정신요양시설은 정신건강복지법 상의 정신의료기관(정신병원)과 동일한 입·퇴원 절차를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정신의료기관처럼 정신과 전문의가 상주하지 않고 있고 치료 기능이 없는 사회복지시설인 정신요양시설에 정신장애인을 강제 입소시키는 것은 사회복지사업법에 위반된다는 지적이다.

현행 사회복지사업법 제1조의2 제1항은 ‘누구든지 자신의 의사에 따라 서비스를 신청하고 제공받을 수 있다’고 규정해 정신요양시설 강제입소가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게 인권위의 판단이다. 또 입·퇴소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 것은 헌법의 거주이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인권위는 지적했다.

또 정신요양시설은 정신건강복지법 제3조에서 ‘정신질환자에게 요양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로 정의돼 있으나 실상 촉탁의 1명이 8시간에 걸쳐 집단진료를 하고 입소자 68명당 간호사 2명, 입소자 28명당 생활복지사 2명이 배치돼 있어 효과적이고 실질적인 ‘요양’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인권위는 “10년 이상 입소자가 46.8%로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을 만큼 요양시설이 아닌 사실상 거주 서비스 제공시설”이라고 보았다.

인권위는 “정신요양시설이 사실상 정신장애인에게 장기 거주시설 역할을 하고 있다”며 “인력 배치 기준에도 장애인복지법 상의 장애인 5~10명 당 생활교사 1명이라는 기준에도 상당히 못 미친다”고 규정했다.

장애인복지법에 따르면 장애인 거주시설은 30인 이상 시설로 설치 운영을 제한하고 있고 서비스 최저기준에서 침실 인원도 4인 이하로 설정하고 있다. 그러나 정신요양시설은 입소정원 300명 이하, 거실 정원 10명 이하로만 기준을 정하고 있어 정신장애인에게만 ‘집단 수용시설’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고 인권위는 봤다.

현재 정신요양시설은 60세 이상의 고령 입소자가 50%에 이르는 등 입소자의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인력과 편의시설이 현저히 미비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입소자들의 경우 당뇨와 고혈압 등 복합질환을 갖고 있고 오랜 투약과 실내 생활로 저항력이 현저히 약해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 감염병이 확산될 경우 대형 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인권위 분석이다.

인권위는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권고에 따라 장애인 탈시설 정책이 국정과제로 채택돼 추진 중임에도 정신요양시설의 정신장애인에 대한 탈시설 논의가 미비하다”며 “국가정신건강 5개년 계획(2021~2025년)에 정신요양시설의 정신장애인에 대한 탈시설에 대해 구체적인 목표치와 실질적 추진 방안을 포함하라”고 권고했다.

이 같은 권고는 인권위가 2019년 11월부터 같은 해 12월까지 전국 9개 정신요양시설에 대해 정신건강복지법에 의한 입·퇴소 절차, 기본권 보장 수준 등을 방문조사한 결과에 따른 것이다. 인권위는 조사대상 시설을 포함해 전국 59개 정신요양시설이 공통적으로 직면하고 있는 인권 현안에 대해 정책 개선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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