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 소비자 운동의 핵심 믿음은 사람이 회복될 수 있고 회복한다는 것”
“당사자 소비자 운동의 핵심 믿음은 사람이 회복될 수 있고 회복한다는 것”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0.08.19 2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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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정신장애인 당사자 컨퍼런스 첫날 모임 진행
정신건강 시스템의 변혁은 회복된 경험 가진 당사자들이 주도해야
오픈 다이얼로그는 억압받는 자의 서사 공유할 수 있어
동료주도 위기쉼터는 정신병원과 달리 희망을 제공
살아남은 동료들의 경험이 당사자에게 깊은 지혜 제공해
동료 소비자운동이 주류 정신건강 시스템 바꿀 수 있어

제1회 전국 정신장애인 당사자 컨퍼런스 ‘새로운 대안’이 19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호암교수회관에서 열렸다. 이번 행사는 21일까지 진행된다.

기획주제에서 다니엘 피셔 미국 정신과 의사(박사)는 영상 강연을 통해 정신장애인 당사자 운동의 국제적 현황과 한국 정신장애인 운동과 정신건강 시스템의 변혁을 위한 제안을 제시했다.

피셔 박사는 정신장애인 당사자이면서 회복 후 정신과 전문의 자격을 획득한 미 진보주의 운동가다. 1991년 쥬디 챔벌린과 함께 제약회사들의 지배담론에 대해 본격적인 대항 운동을 펼쳐왔다.

피셔 박사는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회복의 단계를 지원하는 정서적 심폐소생술(eCPR)을 설명했다. CPR(심폐소생술)이 신체적 박동을 건강하게 회복시키는 것처럼 eCPR은 트라우마 기반 접근법이다. 트라우마로 인한 심각한 결과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는 효과적 치료법이라는 설명이다.

이는 ▲중립적인 공간으로 들어가서 판단하지 않기 ▲자신의 진정한 목소리를 사용하기 ▲깊이 경청하기 ▲자신의 신념을 유예하기 ▲서로를 동등한 인간으로 대하기 ▲마음과 마음의 공유 등의 과정을 적용하는 치료법이다.

피셔 박사는 “eCPR은 내가 갇혀 있던 극심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나에게 사랑하는 방법, 사랑을 받는 법을 가르쳐주었다”며 “나는 살아있음을 느끼고 매 순간 꽃처럼 펼쳐지는 호기심과 경의로움이 상태에 머물르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관계의 정서적 차원은 내 주변의 세계를 직접 경험하는 것, 그리고 나를 거기에서 분리시키는 경향이 있는 어떤 단어와 개념보다 내게 더 큰 흥미로움을 준다”고 전했다.

그는 핀란드에서 개발된 오픈 다이얼로그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오픈 다이얼로그는 정신과적 위기 시 당사자의 가족, 친구, 전문가, 경찰 등 사회관계적 인물들이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고 입원 여부를 최종적으로 당사자가 결정하도록 하는 치료 체계다.

피셔 박사는 “오픈 다이얼로그에서 어려움(문제)은 특정 개인에게 존재하는 게 아니라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 존재한다”며 “절망의 지배 담론에서 동료는 당사자의 인생사, 그리고 트라우마로부터의 치유가 강조되는 억압받은 자의 서사를 공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가족은 오픈 다이얼로그를 통해 함께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생성하고 세대간 트라우마가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며 “‘지금-여기’에서 사랑과 연민으로 서로에 대한 반응의 새로운 방법을 배울 수 있다”고 조언했다.

동료지원 운동의 중요성도 강조됐다. 피셔 박사는 “동료들이 전문가들을 위해 일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동료가 우리 자신의 서비스를 주도할 때 우리는 보다 자유롭게 동료 가치를 준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동료 주도 서비스의 예로 위기쉼터, 웜라인(warmlines), 회복학습공동체가 거론됐다.

피셔 박사는 “동료주도 위기쉼터는 정신병원과 다르게 처음부터 희망을 제공한다”며 “케어의 연속성에서도 강점을 가지는데 왜냐하면 거주자가 7~14일 정도 쉼터에 머무르는 동안 지역사회 정신건강 종사자를 계속 만날 수 있도록 권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동료주도 웜라인은 정신적 위기에 놓인 사람들이 핫라인 위기센터의 대안을 원할 때 전화를 거는 곳이다. 이는 전면적 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 정신응급의 상황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피셔 박사는 “웜라인 상담사들은 살아있는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희망과 회복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발신자와 더 깊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회복학습공동체 및 동료주도 드롭인센터(drop in centers·자조단체)의 경우 동료에 의해 개발된 회복 지향 지원의 한 예다. 이 경우 의료적 환경과 달리 회복에 중요한 동료들을 사귈 수 기회가 더 많다. 친구나 동반자가 없을 경우 주기적으로 자살을 생각하는 당사자들이 많은 점을 고려할 때 이 같은 학습 공동체는 유의미하다는 조언이다.

그는 한국 정신건강시스템의 변혁에도 제안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중독 영역은 중독에서 회복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주도해 온 것처럼 정신건강 시스템의 변혁은 정신건강 어려움으로부터 회복의 살아 있는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주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회복에 대해 우리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은 당사자가 경험하는 차별과 편견을 뒤집을 수 있다”며 “낙인을 감소시키는 또 다른 방법은 이러한 정신건강 어려움이 화학적 불균형에 기인한다는 신화를 더 이상 영속시키지 않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산티아고 이론(Santiago Theory)을 제안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마음과 물질은 더 이상 별개의 범주로 간주되지 않는다. 이 이론은 정신건강의 어려움이 뇌의 화학적 불균형에서 기인한다는 주장에 대한 전면적 반(反)주장이다. 약물만으로 복잡한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이유가 담겨 있다.

피셔 박사는 “나는 약물치료에 반대하지 않지만 사람의 행동을 통제하기 위해 약물을 사용하는 것이 반대한다”며 “산티아고 이론이 자기 창조에 중점을 둔 것은 우리 동료 운동의 중심 가치, 즉 자기결정권을 반영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이론은 내면에서 우리 자신을 위한 새로운 삶을 창조할 수 있을 때 우리의 삶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도와준다”며 “삶과 회복은 당사자가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있을 때에만 일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피셔 박사는 “동료가 주도하는 위기쉼터 및 eCPR과 같은 프로그램을 한국에 도입하기 위해서는 강하고 두려움 없는 옹호자들을 키워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영상을 통해 주제발표를 한 닐 투턴 레인 당사자 운동가는 호주 정신장애인 당사자운동의 역사와 비전에 대해 설명했다.

닐 투턴 씨는 호주 멜버른 정신병원에 입원한 후 40년 간 지속된 정신적 질환과 고통을 바탕으로 회복에 대해 말했다.

호주에서 소비자 운동은 빅토리아주 정신과 환자 협회를 비롯해 정신의학적 불평등과 강압에 반대하는 CAPIC 캠페인과 같은 조직이 형성된 1970년대에 시작됐다. 당시 CAPIC은 급진적이고 반정신과적 입장을 취했다.

이후 1990년대 중반에 정신건강 서비스 내에서 최초의 소비자 운동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는 당사자들이 정신병원 내에서 변화의 대리인으로 일하면서 환자의 경험과 서비스를 개선할 수 있는 피드백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호주 정신장애인 운동은 진보적 심리사회적 재활지원 서비스를 통해 나타난다. 이 운동을 통해 브리즈번 퀸즈랜드에서 호주 최초의 동료들이 운영하는 동료지원(Peer Support) 서비스가 시작됐다. 그리고 2000년 브리즈번 퀸즈랜드에서 호주 최초의 완전히 동료들이 운영하는 ‘동료지원 서비스’가 시작된다.

또 2006년에는 멜버른 대학교 정신간호센터에서 정신건강 간호사에게 소비자 관점의 교육을 제공하는 세계 최초의 소비자 학업 역할을 창안했다.

닐 투턴 씨는 “지금 우리는 동료 노동과 소비자 운동이 주류 정신건강 시스템의 일부로 더 가치 있게 받아들여지는 시기에 있다”며 “인력 개발에 노력을 기울여 지금은 개인 및 체계적 옹호자, 동료 지원 근로자, 교육, 감독 및 리더십, 정책 연구로 일하는 사람들을 보게 됐다”고 전했다.

이어 “소비자 운동의 핵심적인 믿음은 사람들이 회복할 수 있고 회복한다는 것”이라며 “정신질환으로 인한 단절, 혼란, 불안, 절망감은 압도적으로 느껴질 수 있기 때문에 회복 여정에 있는 사람들을 지원할 수 있는 서비스와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또 “호주에서는 환상적인 동료지원가들을 개발했고 고립된 제도적 복지 사고와 관행에서 벗어난 그룹들을 운영해 왔다”며 “자신의 입장이 된 기분을 아는 사람으로부터 지원과 옹호를 받으면 사람들이 인생의 장애물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정신사회적 장애를 가지고 사는, 소외되고 억압된 공동체가 진실을 말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한 시점에 와 있다”며 “변화에 대한 우리의 지지는 우리가 하는 일을 통해서 이뤄져야 한다. 우리가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우리가 보고 싶어하는 변화가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1회 전국 정신장애인 당사자 컨퍼런스는 이날을 시작으로 21일까지 진행된다. 이튿날인 20일에는 ▲정신장애와 공공후견 ▲인생 리모델링, 당사자 자조모임 ▲지역 이해 기반 지지의 전략적 접근 ▲정신장애인 당사자 Live Talk! ▲정신장애인 권익옹호와 장애정체감 ▲정신장애인 당사자 운동과 인권 ▲참여자들의 이야기로 풀어보는 절차보조사업Ⅰ ▲정신장애인의 경험과 당사자연구의 중요성 ▲자가활동약과 자기옹호진술문의 적용 ▲노동과 사람: 정신장애인 노동권과 일자리 ▲참여자들의 이야기로 풀어보는 절차보조사업 Ⅱ ▲당사자연구의 실제와 참여 경험이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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