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복지법 개정 핵심은 당사자 편에 서서 권리행사를 지원하고 이익을 옹호하는 것”
“정신건강복지법 개정 핵심은 당사자 편에 서서 권리행사를 지원하고 이익을 옹호하는 것”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0.10.14 22:5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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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결정권과 지역사회 기반 학제 서비스 제공돼야
정신건강 서비스에서 동료지원의 전면화 필요
절차보조사업 통해 입원 당사자와 소통할 수 있어야
당사자 편에 선 서비스와 프로그램 개발 필요
약물치료가 회복을 앞당긴다는 명제는 모순...당사자 취업률 11% 불과
입원 초기부터 지역사회 자원과 연계해야 퇴원 후 고립돼지 않아
정신장애 국가책임제 실시해 치료의 문제를 국가가 책임져야
공공후견 근거 되는 법적 제도적 근거 마련해 예산 늘려야
동료지원 활동이 일회성 아닌 지속성 담보할 지원 필요

기존의 의료제공자 중심의 정신보건서비스가 이용자 중심으로 전환을 위해서는 동료지원가 활동을 강화하고 절차보조사업의 확대, 당사자 자기결정권의 지원, 중앙정신장애인권익옹호기관 등 법적·제도적 지지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왔다.

14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이용자 중심의 정신건강복지서비스 도입 방안 토론회’에서 기조발제를 맡은 이정하 정신장애와인권 파도손 대표는 “당사자들이 제일 잘하는 건 경험했다는 것”이라며 “회복의 경험을 갖고 있는 당사자들에게서 문제의 열쇠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당사자의 감수성으로 자리매김한 게 현장에 있는 당사자들의 삶”이라며 “이들의 감수성을 돕는 정신보건 시스템이 필요하고 과거에 머물러 있는 법률들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정신건강 패러다임 전환의 3대 원칙으로 ▲자기결정권 존중 ▲지역사회 기반 학제간 팀 서비스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자의 동료 지원의 전면화를 꼽았다.

그는 그러나 현재 동료지원가 교육이 의료 중심적 교육이라는 한계를 갖고 있으며 당사자 단체가 진행하는 교육으로 재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정신장애인 권익옹호에서 할 일은 동료지원가 교육과 활동, 전달체계의 중심으로 당사자가 들어가는 것”이라며 “당사자의 경험을 기반으로 한 평등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기존의 정신보건 시스템에서 국가가 예산을 투입해도 정신건강복지센터와 재활시설 등을 거치면서 예산이 소진되면서 정작 당사자 단체로 넘어오는 예산은 전무하다고 지적했다. 정신장애인이라는 전달체계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예산이 당사자에게 직접 전달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분석이다.

이 대표는 또 절차보조사업이 현재 시행되고 있지만 규모가 적은 만큼 이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병원 입원 환자가 통신의 자유 등 자기결정권을 박탈당하는 건 범죄적”이라며 “절차보조사업을 통해서 병원 바깥의 당사자들이 언제든지 병원 안 당사자들과 소통할 수 있게 법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당사자들이 당사자의 특수성을 가장 잘 안다”며 “당사자들이 가능성을 가지고 잠재력을 계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역시 발제를 맡은 제철웅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선진국의 경우 정신건강의 문제가 있을 경우 이를 지원하는 제도가 보편적으로 구축돼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한국의 경우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에서 서비스 제공자 중심으로 지원 제도가 만들어져 있어 당사자들은 소외된다는 지적을 내놓았다.

제 교수는 “현재의 정신건강 시스템에서 당사자들은 고립돼 있다”며 “당사자의 편에 서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이들이 없고 가족조차 당사자에게 힘이 되지 못한다”고 분석했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CRPD)에 따르면 질환이나 다른 이유로 사회생활과 개인생활을 하기 어려울 때 장애라고 규정한다. 하지만 한국은 장애로 규정되기 위해서는 신체적 정신적 무능력을 증명할 수 있을 때까지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모순을 담고 있다.

제 교수는 이 같은 장애 등록 체계를 넘어 정신건강상 문제가 있을 경우 이들을 모두 포함하는 장애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제 교수는 또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의 핵심 내용은 당사자 편에 서서 당사자의 권리행사를 지원하고 이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것”이라며 “이제까지는 서비스 제공자 편에서 제도들이 만들어졌는데 이제는 이용자 편에서 시스템들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의 정신건강복지법에서 빠져 있는 당사자 편에 선 서비스와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당사자 친화적 서비스 제공을 위해서 중앙정신장애인권익옹호기관 같은 기구가 구성되고 이 기관들이 광역별로 설치돼 이 운영을 정신장애인 당사자 단체가 할 수 있게 하자는 의견도 제기했다.

이용표 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회복의 개념과 관련해 “지금까지 정신치료와 약물치료 중심의 정신보건 시스템의 한계를 지적해야 하며 정신보건 내용을 전면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치료 중심의 정책에서 발견되는 오해로 약물치료를 잘 따르면 재활에 영향을 미친다는 명제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지난 2017년 정신장애인 실태 조사에 따르면 약물 복용 당사자는 전체의 97%를 차지했다. 또 90일 이내 재입원율 38%, 일을 하는 취업 고용률은 11%에 불과했다. 이는 약물치료가 회복을 앞당긴다는 명제의 모순을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이 교수는 “전문가들이 말하는 회복은 약물치료를 통한 기능력을 높이는 것이지만 당사자들이 주장하는 회복은 회복 그 자체가 정치적 목표”라고 말했다.

이어 “회복 개념 중에 핵심 개념은 자기 감각의 회복이라고 당사자들은 주장한다”며 “자기 감각이 왜곡되는 이유는 다른 질병과 다르게 강제적으로 가둘 수 있고 받기 싫은 치료를 받아야 하는 특수한 상황들이 당사자를 무능하고 위험한 인간으로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입원 치료 시스템은 정신과적 응급상황에서 바로 병원으로 가지 않고 위기쉼터와 같은 공간에서 며칠을 보낸 후 어려움이 계속될 경우 병원에 입원하는 절차를 골자로 하고 있다.

이 교수는 “현재의 치료 중심의 서비스는 극복돼야 한다는 메시지”라며 “병원기반 사례관리를 추진하고 있는데 지역사회를 베이스(근거)로 하지 않는 사례관리가 과연 사례관리일까. 그렇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도희 서울사회복지공익법센터장은 “권리옹호 체계 구축에서 절차보조사업, 지원조력인제도, 의사결정 지원제도가 함께 고려돼 적극적 권리옹호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서는 자기결정권이 보장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 센터장은 “자기결정권은 어떤 치료를 받고 어떤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전제하에서 보장돼야 한다”며 “인간 존엄과 평등, 차별 금지의 원칙에 대한 적극적 권리로 들여와서 권익옹호를 가능하게 하는 법령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의 권익옹호 활동인 절차보조사업은 비자의입원(강제입원)에 한정돼 있다. 이렇게 한정한 이유는 정신의료기관의 협조를 얻을 필요가 있기 때문인데 향후 자의입원에도 절차보조사업이 개입돼야 한다고 김 센터장은 주장했다.

그는 또 “사법 체계에서 국선변호사를 지원하는 것만큼 정신장애인에게 동료지원가들이 제도적으로 붙여줘야 한다”며 “동료지원가가 구체적으로 방문하고 면회와 통신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구체적 명시를 개정 법에 담아야 한다”고 전했다.

김성수 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장은 “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 위기대응센터에서는 비강압 치료, 즉 끈으로 강박하지 않는 치료 철학을 구현하려고 한다”며 “쉼터는 자발적이고 지역사회에 있는 당사자들에 의해 운영되는 게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또 “당사자가 위기에 빠졌을 때 지역사회에서 적절한 치료 연계가 어렵다”며 “병원에 입원하면 오래 치료받아야 하고 이로 인해 지역사회와의 관계가 끊어져 병원에서 고립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퇴원하면 지역에 기초 정신건강복지센터와 절차보조서비스, 전환시설, 사회복귀 사업들이 존재하지만 당사자는 이들과 연계가 어렵다”며 “이들과 제대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입원 초기에 연계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고립되고 다시 재발하는 악순환에 빠진다”고 조언했다.

이재성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수석부회장은 강제입원의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강제입원 시 보호의무자와 당사자 간 갈등이 커진다”며 “부모가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을 무시하고 강제입원시키면 철천지 원수가 되고 갈등이 빚어져 퇴원 후에도 부모자식 간 거리가 생겨 치료가 안 된다”고 우려했다.

그는 정신장애 국가책임제를 실시해 치료에 대한 문제를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수석부회장은 “당사자 가족들은 정신적·육체적으로 지쳐 있고 긴 세월 치료비 부담으로 경제적 빈곤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당사자와 같이 산다는 건 엄청난 스트레스고 삶의 질이 떨어진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치료의 부분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치료의 책임을 전적으로 부모에게 지게 하면 국가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부담할 수밖에 없다”며 “정신장애인 돌봄서비스를 활성화하고 변호사, 의사, 사회복지사 등이 참여하는 다학제 팀을 운영해 정신질환을 조기 발견하고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이 입원이 필요한 환자의 비자의입원(강제입원)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구 정신보건법 제24조는 보호의무자에 의한 정신장애인의 강제입원이 인신을 구속하는 등 불법적이고 인권침해적 소지가 있어 헌법불합치 판정을 받은 후 2017년 정신건강복지법을 시행했지만 오히려 개정된 법이 입원을 까다롭게 만들고 있어 위헌 소지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 수석부회장은 “보호의무자 제도는 선진국에서 벌써 폐기된 법들”이라며 “자·타해 위험이 벌어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현장에서 부모나 목격자 등 객관적 자료를 통해 빨리 응급입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의 정신건강복지법은 경찰에 의한 응급입원 요건을 갖추려면 정신질환이 있고 자·타해 위험이 현저하게 있어야 하는 등 두 가지 요소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일선 현장에서 경찰은 자칫 당사자 동의 없이 인신을 구속할 경우 소송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에 대한 지적이다.

최정근 한울정신장애인권익옹호사업단 국장은 공공후견 사업의 제도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국장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전국 59개 정신요양시설에 대한 전수조사를 통해 1800여 명의 공공후견 대상자를 선정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486명으로 축소됐다. 이들 중 70명이 사망했다. 현재 4개 법인이 이들에 대한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복지부는 예산을 늘리지 않고 있는 반면 추가 조사에서는 공공후견이 필요한 이들이 100여 명이나 늘어난 상태다.

최 국장은 “이처럼 공공후견 대상자들이 늘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대상자 선정을 운영 법인 등 서비스 기관이 하는 게 아니라 복지부에서 선정하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신요양시설에서 공공후견이 필요하다고 보건복지부에 요청한 정신장애인이 현재 대기자만 150명이 넘어섰다”며 “이들에 대한 공공후견 근거가 되는 제도적 미비와 예산의 한계로 서비스가 확대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발달장애인법 제9조, 치매관리법 제12조는 공공후견과 관련한 법적 근거가 마련돼 있지만 정신건강복지법은 환자가 최적의 치료를 받을 권리만을 선언적으로 명시하고 있어 이를 지원할 법적 제도적 근거가 없는 형편이다.

최 국장은 “정신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공공후견을 필요로 하는 대상자 문의가 있지만 현재까지 공공후견 서비스를 신청하고 이용하는 방법이 명확하게 안내되지 않고 있다”며 “공무원과 정신건강 시설 관계자들도 적절한 서비스를 연계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공공후견은 가족이 없거나 가족이 기능을 못하는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사회복지서비스법에 이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야 한다”며 “국가 및 지자체장은 대상자를 적극적으로 찾아 공공후견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경희 아주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는 “동료지원가와 함께 하면 고립돼 있던 집밖으로 나갈 수 있고 자존감의 회복, 독자적으로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하 교수는 그러나 “동료지원 교육을 받은 후에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냐는 질문을 많이 듣는다”며 “동료지원 활동을 통해 역량강화된 당사자들을 많이 봤지만 이 사업이 대부분 일회성에 그쳐 지속성을 갖지 못하는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고 토로했다.

이어 “2019년부터 절차보조사업을 시작했는데 비자의입원 환자들이 자신이 왜 입원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고 폐쇄된 공간에서 답답함과 외로움을 느낀다”며 “절차보조가 개입하면 처음으로 내 얘기를 할 수 있게 되고 무엇보다 내 편이 있다는 든든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고 전했다.

또 “비자의입원은 치료진과 가족과 당사자 셋 관계의 역동에서 당사자를 약한 위치에 서게 하는 것”이라며 “모든 선택과 판단이 치료자와 가족에게 위임될 때 절차보조사업은 당사자에게 힘을 실어줘 관계의 역동을 평형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신건강복지법의 개정 내용은 당사자들이 자기 삶의 주체로 최소한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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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혜경 2020-10-15 17:20:05
정말 좋은 내용입니다.
정리하신 박종언 편집국장은 대단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