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겁니다. 더럽고 병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아픈 겁니다. 더럽고 병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 박종언 기자
  • 승인 2018.07.11 19: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현병 관련 두 개의 청와대청원글 올라와
당사자도 가족도 포용하는 복지정책 요청
여론은 치료가 아니라 비난으로 흘러가
신경정신의학회, “중증정신질환 예방 시스템 갖추자”
집단 비난의 시간이 지나면 성찰적 담론이 형성될 것

인터넷 포털에 ‘조현병’을 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조현병 당사자들의 사건사고가 올라오고 있다. 최근 영양파출소 경찰이 조현병 당사자가 휘두른 흉기에 살해되고 치료감호를 받던 당사자가 폐쇄병동을 탈출했다가 잡히는 등 말 그대로 민심이 흉흉하다. 언론은 더 이상 조현병 환자를 사회에서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프레임으로 뉴스를 생산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조현병 당사자들을 격리시키라는 청원까지 올라오고 있다. 정신보건법이 시행된 후 20년, 어렵게 정신건강복지법이라는 개정안을 지난해 시행하게 됐지만 이렇게 조현병에 의한 사건사고가 나면 조현병 당사자들은 아픈 사람이 아니라 잠재적 범죄자로 전도돼 버린다.

조현병은 정말 냉혹한 범죄자를 양산하는 병적 징후일까. 또 국가가 이들을 위해 정말 사회 서비스 시스템을 갖추고 급성기의 조현병 당사자들에게 제도적 지원을 해왔는가에 대해 질문도 던지게 된다.

그러나 사건사고는 벌어졌고 조현병 당사자들은 숨을 곳도 없는 공동체에서 ‘조림돌림’을 당하고 만다. 어떻게 해야 할까?

 

두 개의 청와대 국민청원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두 개의 청원글이 올라왔다. 지난 10일과 11일에 각각 올라온 글이다.

‘조현병 환자 가족입니다’라는 제목의 청원글을 적은 청원자는 자신의 할머니가 조현병을 앓고 있다고 했다. 가족 형편상 요양원에 모시고 있는 중이다. 최근 매스컴에서 조현병 당사자들의 폭행, 살인 사건이 발생하면서 요양원에서는 조현병이 있는 할머니를 더 이상 맡을 수 없다며 퇴원시킬 것을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고 있다고 했다.

청원자는 “아무리 찾아봐도 이런 병을 앓고 있으면 입원 허가 해주는 요양원도 없을 뿐만 아니라 형편상 당장 할머니를 24시간 봐줄 가족도 없다”며 “그렇다고 가족을 포기할 순 없잖아요?”라고 심정을 토로했다.

이어 “저는 정말 묻고 싶습니다. 5년 전, 2년 전, 1년 전만 해도 조현병에 대해 다들 무섭고 두려울만한 인식을 가졌는지”라며 “사건 보도에 급급한 매스컴들에 의해 순식간에 이 병이 연쇄 살인마보다도 더 두렵다고(두렵게) 만들어졌습니다”라고 적었다.

청원자는 “복지는 제대로 갖춰져 있지도 않은 채 이들은 사회로부터 점점 고립당하고 있다”며 “조현병, 말 그대로 아픈 사람들”이라고 덧붙였다.

“그들이 내 가족이라면 무조건적인 손가락질을 할 수 있을까요? 심지어 아무 잘못 안 했지만 의사로부터 조현병 판단을 받았단 이유만으로 티비에서 그런 병을 가진 사람이 잘못을 했다고 말입니다. 이들은 전염병 환자가 아닙니다. 더럽고, 악의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그들 또한 이러한 병을 앓고 싶어 앓고 있는 게 아닙니다.”

청원자는 “무조건적인 수용, 혜택을 원하는 것 또한 아니”라며 “이들도 복지가 뭔지 느끼게 해 달라. 이들도 더 이상 사회로부터 외면 받지 않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아픈 겁니다. 더럽고 병적인 존재가 아닙니다”며 “이들에게도, 이들 가족에게도 수용해 주는 복지 정책을 부탁드립니다”라고 말을 맺었다.

11일에 올라온 또 다른 청원은 ‘조현병 환자에 대한 시스템을 마련해 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청원자는 “환자의 범죄는 환자의 증상”이라며 “아픈 사람이 통증에 소리를 지르는 것과 같다”고 적었다.

이어 “현재 조현병 환자의 범죄를 둘러싼 여론의 흐름은 치료가 아니라 비난으로 흐르는 경향”이라고 지적했다.

“조현병의 사회적 인식이 나쁘기 때문에 환자나 가족이 조현병을 숨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겨우 최근의 범죄와 같은 위험은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청원자는 “치매는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하는데 치매보다 더 본인과 가족이 힘든 병이 조현병”이라며 “조현병도 치매처럼 관심을 가져 달라”고 부탁했다.

이어 “조현병에 대한 국가 차원의 인도적 정책을 마련해 달라”고 호소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아픈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만든다

지난 10일 백종우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신보건이사는 경향신문에 ‘중증정신질환, 시스템을 바꾸자’라는 제하의 칼럼을 기고했다.

백 이사는 “치료 중인 환자의 위험성은 매우 낮지만 중증정신질환의 특성상 병식이 부족한 경우가 많고 외래치료는 흔하게 자의로 중단된다”며 “사회가 이를 해결할 시스템을 갖췄는가, 모든 책임을 보호자에게 맡겨놓는가가 운명을 결정한다”고 적었다.

백 이사에 따르면 선진국은 타해의 병력이 있는 환자는 외래치료명령제의 대상이 돼 ‘퇴원 후 사례 관리’나 ‘지역사회의 적극적 치료서비스’를 받게 된다.

퇴원 후 사례 관리는 입원 병원의 의료진이 집을 찾아가 상담하고 약을 거부하면 한 달 이상 장기지속형 주사제를 투여하며 이는 건강보험 서비스 항목이다. 미국, 유럽은 물론 대만에서도 20년 전부터 시행하고 있다.

이 서비스를 거부하면 지역사회 응급팀이 출동하고 필요하면 경찰과 연계해 지정 병원에 입원시켜 안전을 확보한다.

백 이사는 “우리나라에서 자·타해 위험이 있는 경우 지속적인 치료를 강제하는 외래치료명령제는 법조문으로만 존재하고 실행단위가 불명확해 시행 건수가 거의 없다”며 “중증환자가 퇴원한 이후에는 지역사회에 사례 관리를 제공하는 정신건강복지센터뿐으로 사회복지시설이 부족하고 의료진이 고위험군의 가정을 방문하여 투약과 스트레스 관리를 돕는 의료서비스는 전무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치매국가책임제가 시행되고 국가재난트라우마센터도 올해 발족했다. 그런데 유독 중증정신질환에 대한 대책과 서비스는 별반 변화도, 개선책에 대한 발표도 없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중증정신질환의 특성을 이해하고 보호자의 부담을 줄여주고 이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커뮤니티케어 시스템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또 정신질환자를 비난하며 격리하여 결국 이들이 숨게 만들고 치료와 지원을 받는 길을 막을 것인가?”

그는 “이대로라면 아픈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시스템”이라며 “더 이상 아픈 사람을 비난하지 말고 나쁜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이는 의료, 복지와 함게 국민 안전 차원에서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칼럼을 맺었다.

아픈 것이지 더럽고 병적인 존재가 아니다

어쩌면 지금, 조현병 당사자들은 자신의 병을 외적으로 드러내지 못한 채 집에서, 아니면 수용소 같은 요양시설에서, 병원에서 숨죽이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아니, 이들은 지금 사회가 자신들을 범죄자로 규정하고 집단 이지메를 가하고 있는지 느끼지도 못하고 있을 것이다.

정보가 차단된 공간에서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사회가 일시적 유행처럼 당사자들을 마녀사냥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그들은 더 깊이 병들어 가고 있을 것이다.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권리의 요구 없이 순응하고 어떤 시설에서는 학대당하면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국가는 이들이 사회로 나왔을 때 백 이사의 지적처럼 외래치료명령제를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지역사회 응급팀과 의료진 수도 확충해야 할 것이다. 또 정신건강복지센터와 같은 지역사회 인프라를 확충해 퇴원·퇴소한 이들이 언제라도 찾아가서 상담받고 치유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위의 청원자의 토로처럼 조현병 당사자들은 아픈 것이지 더럽고 병적인 존재가 아니다. 사회가 이들을 ‘더럽고 위험한 존재’라는 프레임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지금 사회가 조현병 당사자를 집단적으로 배척하고 비난하는 격한 시간이 지나가고 나면 어쩌면 조현병 당사자와 정신장애인들의 인권을 위해 사회와 국가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라는 성찰적 담론이 생산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그 담론이 힘을 얻게 된다면 조현병 당사자들, 정신장애인들은 아플 자유를 갖고 치유를 향해 걸어가게 될 것이다. 그것이 꿈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