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형 기자의 변론] 동서양 철학은 정신장애를 이렇게 해석해 왔다
[이관형 기자의 변론] 동서양 철학은 정신장애를 이렇게 해석해 왔다
  • 이관형 기자
  • 승인 2021.03.11 2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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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국가론에서 정신장애를 쓸모없는 존재로 규정
미셸 푸코의 광기학...정신장애 새로운 시각 제시해
군사정권에서 정신장애는 억압과 통제의 대상

“철학이란 무엇인가?” 이는 곧 “인간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연결이 됩니다. 즉, 철학은 인간 자체와, 인간의 삶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느냐에 대한 기준이 되는 것이죠. 철학은 동서양, 시대와 사람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세계관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출처 : pix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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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서양의 고대 그리스 철학은 여러 학파로 나뉘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사상가들에 의해 발전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중세철학은 그리스도교 철학이라 불릴 정도로, 기독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죠. 근대철학은 자본주의의 발전과 함께 진화론, 실용주의, 경험비판론을 탄생시켰으며, 현대철학은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 실존 철학 등을 발전시켰습니다.

동양에서는 공자를 시조로 하고, 맹자와 순자가 계승 발전시킨 유가(儒家)가 대표적인 철학이고, 노자로 대표되는 도가(道家) 사상, 고대인의 술수사상에서 유래된 음양가(陰陽家), 그리고 한비라는 사상가에 의해 완성된 법가(法家) 등이 있습니다.

이 같이 다양한 철학 사상에 따라,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도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달라집니다. 특히, 정신장애인을 포함한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고요.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국가론>을 통해 통치자, 수호자, 생산자로 구성된 이상 국가를 제시합니다. 그가 꿈꾸는 이상 국가는 우수한 혈통의 남녀가 우수한 유전자의 자녀의 생산을 통해 강하고 위대한 나라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는 우생학과 일통한 주장으로서, 당시 많은 장애아들이 유기와 죽임을 당하게 되었던 논리적 근거가 되었죠. 장애인은 전쟁에 참여할 수도, 생산 활동을 할 수도 없기 때문에 <국가론>에 따르면 아무런 쓸모도 없는 존재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서양 중세시대에는 기독교의 영향을 많이 받던 시대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많은 지적장애인들이 가정과 수도원에서 보살핌을 받을 수 있었죠. 하지만 정치적인 목적으로 인해 기독교의 본래 사상이 왜곡되면서 많은 폐해를 가져왔습니다. 장애인을 ‘신의 벌을 받은 사람’, 정신장애인을 ‘악마에 사로잡힌 자’로 해석되면서 마녀 사냥과 같은 잔혹한 일들까지 벌어졌습니다.

근대에 이르러서는 계몽주의가 시작되면서, 정신장애에 대해서도 기존의 종교적 미신을 벗어나 과학적 접근을 통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인본주의의 영향으로 장애인들도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장애 아동들에 대한 특수교육도 본격화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장애 아동을 열등한 존재로 인식하는 편견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현대철학은 마르크스, 키에르케고르. 니체, 하이데거, 푸코, 비트겐슈타인 등 수많은 철학의 대가들을 탄생시켰습니다. 정신장애에 대해 좀더 다양한 시각들이 생겨난 것이죠.

그중에서도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는 정신장애와 관련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대표적인 학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정신의학 권력에 대한 통찰과 역사적으로 이어져온 광기에 대해 설명함으로써, 정신장애에 대해 좀 더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DSM(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으로 대표되는 의료적인 모델에서 벗어나 정신장애인을 인간 자체로 바라보는 효시를 제공한 것이죠.

 

출처 : pix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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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대표적인 철학자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공자일 것입니다. 고대 동양의 사람들도 장애아를 낳으면, 부모의 잘못이나 재앙으로 여기곤 했습니다. 하지만 공자의 어록을 담은 논어(論語) 자한 편과 향당 편을 보면 공자가 장애인들에 대해 호의적이고 친절한 편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논어에 따르면, 공자는 시각장애인과 마주칠 때도 반드시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고, 의복을 정돈하는 등 예의를 갖추었다고 합니다.

맹자는 제나라에 갔을 때, 진정한 왕도 정치가 무엇인지 묻는 왕에게 환과고독(鰥寡孤獨)이라고 대답한 바 있습니다. 환과고독은 ‘늙어서 아내가 없는 홀아비, 늙어서 남편이 없는 과부, 늙어서 자식이 없는 사람, 어려서 부모가 없는 고아’를 국가적인 차원에서 보살펴야 한다는 뜻입니다.

조선의 3대 임금 태종도 환과고독의 정신에 따라, 가족이 없는 사람은 물론 독질자(篤疾者), 폐질자(廢疾者), 실업(失業)한 백성들까지 돌보도록 명령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여기서 독질자와 폐질자는 불치병이나 장애를 가진 이들을 뜻합니다.

공자와 맹자가 장애인을 돌보고 도와야할 대상으로 본 반면, 도가의 사상가 장자(莊子)는 『장자』의 제 5편 덕충부(德充符)에서 장애인을 “신체적으로 온전치 못하나 자신의 천부적 잠재력을 발휘하여 살아가니 불완전한 사람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즉, 동정과 긍휼의 대상이 아닌 자신의 역할을 다하며 살 수 있는 자립적인 존재로 보는 것이죠.

출처 : pix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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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유교의 재이관(災異觀)에서는 ‘민심이 곧 천심이다’라는 사상에 따라 왕들에게 “약자와 장애인들을 잘 보살펴야만 하늘에서 재난 재해와 같은 벌을 내리지 않는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실제로 정신장애인을 비롯한 장애인들은 국가는 물론, 지역사회에서도 보살핌을 받거나,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공동체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장애인들이 살기 좋았던 조선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또 다른 사상과 가치관이 이 땅에 상륙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일제 강점기와 산업화시대의 정신과 철학이 사회 분위기를 바꾼 것이죠. 이로 인해 정신장애인들의 삶도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의 철학은 제국주의와 군국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측면을 갖고 있었습니다. 천황제 파시즘에 가까운 철학은 대동아 공영권을 탄생시킵니다. 즉 “기존 열강에 맞서 아시아. 태평양을 해방시키기 위해 일본이 직접 다스린다”는 사상이죠. 이를 위해서는 전쟁을 위한 물자 생간과 병영 동원이 필요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장애인을 위한 복지나 지원이 소홀할 수밖에 없었죠. 일제는 제생원을 만들어 고아, 시각장애인 아동, 정신장애인을 수용합니다. 이는 기존의 환과고독이나 재이관의 사상과는 전혀 다른, 일제의 보여 주기용 선전 수단에 불과했습니다.

광복 이후로도 군사정권과 산업화 시대를 맞이하며 장애인들에 대한 처우와 시각은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철학으로 보긴 힘드나, “체력은 곧 국력이다”, “건강한 육체에서 건강한 정신이 나온다”와 같은 구호를 통해, 당시 시대가 장애와 장애인을 어떻게 바라봤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정신지체 장애인들이 삼청교육대에 끌려갔고, 형제복지원과 같은 인권 유린 사건도 발생했었으니까요.

이처럼 당시의 시대상이나 가치관의 기본이 되는 철학은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철학은 장애인들에게 도움과 지지를 보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목숨을 빼앗고 이를 정당화 시킬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올바른 철학사상을 갖기 위해, 이를 공부하고 연구하는 일도 게을리 할 수 없죠.

철학이라는 것이 어렵고 뜬구름 잡는 허상뿐인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많은 사상가와 학자들이 열변을 토하며 저마다의 주장을 하는 것도 그만큼 철학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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