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형 기자의 변론] 정신장애 여성의 젠더 폭력 경험과 낙인은 남성 권력과 분리해 생각해야
[이관형 기자의 변론] 정신장애 여성의 젠더 폭력 경험과 낙인은 남성 권력과 분리해 생각해야
  • 이관형 기자
  • 승인 2021.03.16 20: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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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불평등에 의한 여성의 정신장애 발병 높아
남성 중심 사회에서 차별과 불평등이 여성 심리 문제 낳아
폐경 등 여성 신체 변화에 사회가 이해 못하고 지원 없어
개별성 무시하고 동일한 약물 방법으로 치료하지 말아야

‘국가 정신건강현황 보고서 2019’에 따르면 일반적 정신건강 상태를 묻는 설문에서 남성의 9.9%가 스스로 ‘나쁘다’고 응답한 반면, 여성은 13.8%가 ‘나쁘다’고 응답습니다. 정신건강 문제에 있어서도, 남성은 57.9%가, 여성은 66.6%가 정신적 이유로 크고 작은 문제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통계청에서도 2017년 남성과 여성의 정신장애 평생 유병률을 조사했는데, 정신장애 경험이 있는 남성이 28.8%로 여성의 21.9%보다 높게 나타났지만, 니코틴과 알코올 사용 장애를 제외하면 남성이 9.1%, 여성이 17.2%로 여성이 남성보다 유병률이 월등히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 통계대로라면 정신장애 당사자도 남성보다 여성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출처: 통계청

그렇다면 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정신질환과 장애를 더 많이 경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계명대학교 심리학과 최윤경 교수는 논문 “여성의 정신장애에 대한 고찰”을 통해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정신장애와 그 진단은 개인의 생물학적, 심리적 특성뿐만 아니라 개인이 속한 사회와 문화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그 중 젠더 불평등과 여성 고유의 위험 요인 또한 성차가 나타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최 교수는 여성이 정신장애에 쉽게 노출이 되는 원인으로 불평등과 차별, 여성의 신체 변화에 대한 사회의 인식에 대한 부족, 성과 결혼 생활, 젠더 폭력을 예로 들었습니다.

많은 여성들이 남성 중심의 가정과 사회에서 차별과 불평등을 겪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좌절과 불안, 우울과 자신감 저하와 같은 정서적 문제를 안게 되죠(박경, 2003).

때로는 이런 차별과 불평등에 대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지만, 남성 중심의 사회와 남성 위주로 이루어진 기득권의 영향 속에서 이러한 목소리는 무시당하고 억압되기 마련입니다. 이로 인해 여성들은 감정의 억제와 감정의 폭발 사이에서 심리적 문제를 안게 되죠.

출처 : pixabay
출처 : pixabay

두 번째로, 여성들이 월경, 임신, 출산, 폐경 등을 겪으며 성 호르몬과 같은 내분비계 활동의 변화에 따라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겪기도 합니다. 산후 우울증이나 갱년기 우울증이 대표적인 예죠. 하지만 여성의 몸에서 이루어지는 호르몬 변화가 문제라기보다, 여성들이 겪는 몸의 변화를 사회가 이해하고 적절한 경제적, 사회적 지원을 제공하지 못함에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은 임산부를 위한 대체근무와 육아휴직 제도가 있지만, 과거에는 결혼과 임신, 출산은 곧 경력 단절로 이어졌기에 많은 여성들이 직장을 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여성의 사회적 경력과 지위가 박탈되는 것을 제도적으로 막아야 여성의 정신적 건강을 지킬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원인으로 결혼이 남녀의 정신건강에 차별적으로 미치는 영향입니다. 전통적인 가정에서 남성은 일을 하며 경제적 주도권과 자아 성취를 이뤄가는 반면, 여성은 주부와 어머니로서 가정을 돌보고 남편에 의존적인 삶을 살도록 요구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가정의 모습 속에서 여성에게 가정살림과 육아 외의 자아 성취와 사회적 활동은 이루기 힘들고 남성에 비해 불리한 조건에 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현실과 좌절감이 여성에게 우울감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젠더 폭력도 큰 원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회적 위치, 경제적 갑을 관계, 신체적 조건에 따라 여성과 아동은 남성과 성인으로부터 폭력을 당하는 피해자의 입장에 처해지기 쉽습니다.

2016년 전국 가정폭력실태조사에 따르면, 부부간의 폭력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피해자의 경우인 확률이 높았으며, 여성이 남성보다 폭력에 의한 부정적 영향을 많이 받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로 인해 같은 유형의 피해를 입어도 여성이 남성보다 큰 상처와 트라우마를 갖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이는 정신질환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출처 :
출처 : 여성가족부

여성들이 정신질환을 갖게 될 정도로 경험했던 아픔과 상처는 남성의 경험과 분리되어 생각해야 합니다. 즉, 남성들이 군대에서 받은 구타로 정신질환이 발병하는 경우처럼, 여성에게 정신질환이 발병되는 원인도 성별에 따른 특수성을 감안해야 합니다.

의사가 동일한 병명의 정신질환을 진단한다 할지라도, 환자만의 연령, 성별, 사회문화적 특성에 따른 개별적인 특성을 감안해야 합니다. 만일 개별성이 무시되고 ‘환자’ 혹은 ‘정신장애인’이라는 단어로 모두를 똑같이 묶어 취급하고 동일한 약물과 방법으로 치료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말이죠(Scheyett and McCarthy, 2006).

정신장애 여성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생애사를 연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성 정신장애인의 생애사 연구”(이혜경, 신희정, 2009) 논문에도 이러한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조현병, 조울증, 분열정동형장애 등의 정신장애를 가진 연구 참여자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인생 경험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A 여성의 경우, 집안의 갈등에 강간을 경험하면서 정신적 혼란을 경험했습니다. 이후 다단계 사업, 유흥업소, 사이비 종교를 전전하다 정신과 진단을 받게 됩니다.

B 여성은 아버지의 사업 실패 후, 여상을 졸업하자마자 취직했고 직장 동료의 강압적 혼전 관계로 원치 않은 결혼을 하게 됩니다. 남편의 폭력에 가출 후 망상과 환청을 겪었습니다.

C 여성은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로, D 여성은 직장 내 이성 교제를 했던 남자의 배신으로 정신질환을 겪게 되었으며, 그 외에도 고부 갈등과 경제적 위기, 학교 따돌림 등으로 정신질환을 겪는 사례들이 있었습니다. 개인별로 차이가 있지만, 주로 여성에게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이성 관계와 결혼, 이혼의 아픔 속에서 정신질환을 갖는 경우가 많았습니다(이혜경, 신희정, 2009).

정신장애 여성이 겪는 어려움은 장애 진단을 받은 이후로 더 커지기도 합니다. 이들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그중에서도 정신장애에 대한 편견과 여성이라는 약자의 입장으로 인해 더 큰 낙인을 겪기도 합니다. 정신장애 여성이 겪는 낙인은 크게 5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주찬미, 2020)

첫 번째로, 의료 영역에서의 낙인입니다. 정신병동으로의 강제 입원 과정에서, 많은 정신장애 여성들이 비인권적인 대우를 받았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이 논문에 참여한 한 여성 참여자는 “돼지를 잡아가지고 양쪽으로 해가지고는 이렇게 어깨에 짊어지고 오는 거 있죠. 똑같이 하더라고. 사람을 그렇게 하고 데리고, 들고 오더라고요”라고 밝혔습니다. 또한, 남성 간호사들이 화장실에 설치된 CCTV로 여성들을 감시한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 근로 영역에서의 낙인입니다. 2014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정신장애 여성의 고용률은 8.3%로 전체 여성장애인의 고용률(33.4%)이나 정신장애 남성의 고용률(9.8%)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취업을 하더라도 주로 청소, 사무보조 등의 제한된 역할만 주어졌습니다. 이러한 근무 환경 가운데서, 취객 등에 의한 성범죄에 쉽게 노출되는 위험성도 안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 사회 안에서의 낙인입니다. 한 참여자는 본인의 정신장애가 밝혀져 잘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당했고, 다른 참여자는 자신의 병이 밝혀져 남동생의 결혼이 파기되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사회적 악습으로 인한 “정신장애 여성은 무능력하고 의존적이다”라는 인식에 의해 성범죄를 경험하기도 합니다(Ottati et al., 2005).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장애인의 성범죄 피해 경험 수치가 1.4%인데 반해, 정신장애 여성의 성범죄 피해 경험 수치는 3.5%로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네 번째로 가족 안에서의 낙인입니다. 연구에 참여한 정신장애 여성들은 가족들로부터 투명인간 취급을 받거나 친동생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마지막으로 자기 낙인입니다. 정신장애 여성들은 위와 같은 낙인을 경험하며 자연스레 자존감과 자신감이 하락할 수밖에 없고, 사람과의 관계나 사회생활에 더욱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출처 : pixabay
출처 : pixabay

정신장애여성의 인권과 권리를 향상시키고 낙인을 지우기 위해서는 다양한 연구와 인식의 개선이 필요합니다.

먼저 정신장애 여성에 대한 연구와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저는 이 글을 쓰기 위해 나름대로 논문들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여성 장애인이나 정신장애인에 대한 논문은 많았지만, 정신장애 여성이라는 세분화된 카테고리 안에서의 논문은 손에 꼽힐 정도로 적었습니다.

앞으로 많은 연구에 당사자들이 직접 참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중에서도 여성 당사자들의 활발한 연구와 학업 활동이 필요함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여성이라는 특수성과 젠더 감수성을 가진 의료진이 더 많이 배출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11년 인력현황 통계에 따르면, 당시 전국 정신과 전문의 2121명 중 여성 전문의는 22.7%인 623명에 그쳤습니다.

물론 여성 전문의라고 여성에 대해 잘 이해하고, 남성 전문의라고 해서 여성에 대해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남녀 전문의 구분 없이 정신장애 여성에 대한 특수성을 고려한 교육과 인식개선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정인이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가정 안에서의 폭력과 문제점들에 대해 최소한의 국가 개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고통스런 아동기를 보내고 살아남은 제2, 제3의 정인이들이 건강한 정신으로 성인기를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마찬가지로 많은 정신장애 여성들이 모르는 남성뿐 아니라, 친부나 형제에 의해 친족 성폭행을 당하는 사례도 봐왔습니다. 그런 가정 환경 가운데 살아남은 당사자들이 정신질환을 안고 살아 가는게 이상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성 평등과 젠더감성 교육도 필요합니다. 가부장적인 가정 제도와 분위기 속에서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도 남자다움을 강요당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 평등과 젠더 교육은 여성의 인권은 물론, 남성들의 인권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여겨집니다.

또한 남성만이 아니라 여성도 젠더 폭력의 가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전통적인 가부장적 가치관으로 고부 갈등을 유발하는 시어머니도 과거에는 며느리로서 같은 피해를 경험했듯이, 성별과 세대를 가리지 않고 성평등 인식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더불어 정신장애 여성들에게 제한된 취업의 폭이 넓어져 성범죄로부터 안전한 직장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적인 장애에 대한 인식개선이 이뤄져 고용주가 아무런 거리낌과 편견 없이 정신장애인들을 고용하는 문화가 자리잡아야 되겠습니다.

출처 :  pixbay
출처 : pixbay

저는 당사자이지만, 남성으로서 그동안 정신장애 여성의 인권과 권리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못했던 게 사실입니다.

다만 앞으로 더 많은 여성 당사자들과 단체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또 학업과 사회활동을 통해 영향력을 높여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더 나아가 남성과 여성 당사자들이 때로는 연대로, 때로는 역할 분담으로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이 땅에서의 차별과 편견에 맞설 수 있는 멋진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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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연(So Yeon Lee). "정신장애 진단에서의 젠더 편향." 아시아여성연구 53.1 (2014): 153-190.

유영달. "남녀간 정신장애 유병률 차이에 관한 소고." 젠더와 사회 14.- (2003): 127-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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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경(Hye Kyung Lee),and 신희정(Hee Jung Shin). "여성정신장애인의 생애사 연구 경계 위에서 균형잡기." 정신보건과 사회사업 37.- (2011): 189-230.

주찬미. "정신장애여성의 스티그마 경험 : 정신장애여성의 통제와 배제." 비판과 대안을 위한 사회복지학회 학술대회 발표논문집 2020.6 (2020): 319-342.

최윤경(Yun-Kyeung Choi). "여성의 정신건강에 대한 고찰." 젠더와 문화 3.1 (2010): 203-232. 젠더 편향과 여성 고유의 위험요인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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