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형 기자의 변론] "정신장애 당사자로서 박사 학위 받는 모습 세상에 보여줄 것"
[이관형 기자의 변론] "정신장애 당사자로서 박사 학위 받는 모습 세상에 보여줄 것"
  • 이관형 기자
  • 승인 2021.05.07 20:2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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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드스터디는 '당사자주의'에 기반한 정신장애 운동
공부와 일에 강행군하던 중 신체 수술하게 돼
조현병 커밍아웃 후 박사 과정 동료들의 이해에 감사
'바울의가시' 이어 정신장애 관련 두 번째 책 출간 예정
부모님께 박사 학위 모자를 씌워드릴 상상하면 행복해

매드스터디(Mad Studies)의 기본은 당사자주의다. 정신장애 분야에도 많은 전문가와 연구가가 있지만, 정신장애 당사자로서 사명감과 책임감을 갖고 공부와 일을 해왔다. 최근 두 달간 온전히 쉬는 날이 하루밖에 되지 않았을 정도로, 열심히 활동해왔다.

지방 학교에서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장애 인식 개선 강의를 하던 때, 속옷이 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병원에 갔고, 엉덩이에 고름이 차서 빼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다음날 수술을 받았다. 항문 쪽에 두세 개의 작은 구멍을 뚫었고, 두 달간 진물과 피를 빼내야 한다. 그리고 반대 쪽도 의심돼 2달 뒤 경과를 보고 추가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다. 게다가 초음파 검사 결과, 두 달 뒤, 대장내시경 검사도 필요하다고 의사는 말했다.

 

앉아 있기도, 서 있기도 힘든 상황에서 여러 날 누워 지내다보니, 멘탈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마음이 흔들렸다. 대학원도 이번 학기를 포기해야 하나 싶었다. 서울에서 대구를 왕복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한두 시간에 한 번씩 화장실에서 거즈를 갈아야 하고, 세네 시간에 한 번은 좌욕을 해야 통증이 가라앉는다. 사실, 일도 학업도 욕심이 컸다. 만들고 싶은 책도 많았고, 강의도 잘하고 싶었다. 학교 성적도 괜찮았기에, 끝까지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과제도 논문도 완벽히 진행할 수 없게 됐고, 그나마 집에서 누운 상태로 온라인 수업을 듣는 것 정도가 최선이다.

사실, 여러 일들을 하느라 몸만 지쳐있던 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많이 힘들었다.

조현병 환자로서 사회적으로 받는 편견과 차별은 어느 정도 각오하고 있었다. 나 스스로 커밍아웃을 선택한 것이니까. 대구대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조현병을 숨기고 학업 생활을 하려면 나의 정체성과 활동의 계기까지 숨겨야 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조현병을 밝히면, 학교생활에 부담이 클 거 같았다.

그래서 입학 초기에 '바울의 가시' 책을 나누었다. 최근에는, 조현병에 대한 두려움과 상처를 조금씩 내려놓은 동기 분들을 보며 보람을 느꼈다. 아직 다른 석사 과정 신체장애 학생 분 중엔 내가 인사를 하면 쳐다보지도 않고 인상만 쓰는 분도 있다. 아마, 장애인단체 활동을 하며, 다른 정신장애인에게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거니 싶다.

나로선 같은 병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범죄자처럼 여겨지는 게 억울했다. 그래도 박사 과정 동기 분들이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여는 걸 보며 위안을 받았다.

내가 가장 아팠던 건 같은 당사자들로부터 받은 상처다.

과거 논문을 위해 설문 조사를 진행했던 한 당사자 카페에서 받은 공격적인 댓글들. 그리고 또 다른 카페에서 받은 여러 악플들. 이외에도 “뭐하는 분이세요?”라고 따지는 무례한 전화들. 나의 신앙심을 평가하고 재 보는 종교 중독에 빠진 당사자. 새벽에도 울려대는 전화와 문자들까지.

얼마 전에는 10년 전 장애운동에 몸담았고, 현재는 기초생활수급자인 한 명문대 출신 당사자 남성으로부터 전화로 온갖 고성과 욕설을 들었다. 뒷돈을 받고 기사를 쓴다는 둥. 지방 잡대에 다닌다는 둥. 세바시에 나온 게 자랑이냐는 둥. 그 사람은 당시 급성기 상태로 다른 여성 당사자들에게도 전화로 성적 발언과 협박을 일삼다 결국 강제입원 되었다고 한다.

내게 그런 상처를 잊고 스트레스를 푸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하고 있는 일과 공부에 더욱 전념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휴일도 없이 일했고, 결국 몸이 버티다 못 해 고장난 것이다.

다행히, 대학원 주임 교수님의 배려로, 온라인 형태의 수업은 끝까지 수강하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고 듣고 싶었던 김문근 교수님의 ‘정신장애의 이해’ 수업의 과제를 작성 중이다.

과제는 가톨릭대학교 송승연 박사가 쓴 “정신장애인의 대안적 접근으로서 매드스터디에 대한 탐색적 연구”라는 논문을 읽고 토론문을 쓰는 것이다. 비록 의자에 앉지 못하고 서 있는 상태에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지만, 논문을 읽으며 내 마음을 다시 다잡을 수 있었다.

출처 :  RISS
출처 : RISS

 

매드스터디는 우리나라에서 아직 생소하고 연구 실적도 거의 없다. 하지만, 정신장애 당사자들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하고 귀한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매드스터디는 광기와 관련된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기존 당사자의 ‘증상’ 중심의 의료 모델이 아닌 ‘권리’ 중심으로 다른 새로운 대안을 창출해 내는데 목적이 있다. 또한 당사자의 경험적 지식을 바탕으로 정신장애인의 억압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미 캐나다와 영국에서는 ‘민주적이고 실현 가능한 대안’으로서 매드스터디가 떠오르고 있다. 이전에도, 정신장애인 당사자운동은 1960년대 미국의 흑인 인권 운동과 반전 운동, 학생운동의 영향으로부터 출발했다고 한다. 

이러한 서양의 당사자 운동은 다양한 시도를 통해 사회에 영향을 끼쳤는데, 그중에서도 캐나다 토론토에서 1980년부터 발간된  ‘Phoenix Rising’이라는 잡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잡지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경험이 있는 칼라 맥카그와 돈 웨이츠에 의해 창간됐다. 주로 논문, 시, 그림, 인터뷰, 경험 수기, 사진, 뉴스 등의 컨텐츠를 담고 있다. 매드스터디가 본격적으로 알려진 계기는 2013년 캐나다에서 출간된 ‘Mad Matters’라는 책을 통해서다. 이 책에는 학자, 전문가, 활동가 뿐 아니라, 정신장애인들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적은 챕터도 포함되 있다.

언론과 출판 외에도, 많은 당사자들을 연구자로 양성하는 학교도 있다. 런던 킹스칼리지 정신의학연구소에 있는 서비스이용자연구사업단(Service User Research Enterprise, SURE)에서는 정신장애인 교육과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또한, 박사 과정에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을 모집하여 2012년까지 3명의 정신장애인이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출처 : 구글

이 논문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캐나다에 Phoenix Rising이 있다면, 한국에는 <마인드포스트>가 있다. 며칠 전 <마인드포스트> 창간 3주년 기념 행사가 있었다. <마인드포스트>를 사랑하고, 기자로 글을 쓰는 입장에서 그날만큼은 참여하고 싶었는데, 몸의 통증이 커서 도저히 갈 수가 없었다.

다만, 바라기는 4주년, 5주년 행사 때까지 <마인드포스트>가 좋은 콘텐츠와 양질의 기사로 유지되었으면 좋겠다. 아니, 그때까지 살아 남아줬으면 한다. 경제적으로 힘들고 어려운 상태에 있지만, <마인드포스트>는 우리나라에 단 하나뿐인 정신장애 당사자들의 언론이기 때문이다.

<마인드포스트>를 지키지 못한다면,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줄어들 것이고, 기성 언론의 보도로 인해 사회의 차별과 편견은 더해 갈 것이다.

그리고 캐나다에서 출간된 ‘Mad Matters’라는 책처럼, 나도 1인 출판사 대표로서 '바울의 가시'에 이어 두 번째 책을 공식적으로 출판해낼 것이다. 그동안 대구대에서 장애학을 배우며 써왔던 <마인드포스트>의 칼럼 기사들을 바탕으로, 정신장애 당사자의 관점에서, 장애학을 공부하며 쌓은 전문적인 지식들을 녹여 내어, 누구나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들어 낼 것이다. 전문가나 당사자뿐 아니라, 대중들에게 다가가기 쉽고 편한 내용의 책을 만들고자 하는 목표가 더욱 선명해졌다.

마지막으로 대학원 공부를 마치고 졸업해 박사 학위를 받고자 한다. 정신장애 당사자로서, 학업에 도전하고 끝까지 완주하는 모습을 세상에 보여주고 싶다. 정신장애인이라면, 와해된 생각과 언어로 논리적인 글이나, 책을 쓰는 것은 물론, 공부도 제대로 할 수 없을 거라는 세상의 고정관념에 소소하지만 큰 충격을 안기고 싶다.

그리고 공부를 통해 얻은 학문적 지식과 전문성을 무기로 편견에 맞설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장애학과 매드스터디는 내게 귀하고 중요한 학문이다. 사사롭게는 대학원 공부를 마치고 졸업하는 날 박사모 모자를 부모님께 씌워드릴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두 분 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하셨다. 한 번도 학교 졸업식을 경험해보지 못한 두 분께 박사모를 씌어드리는 순간을 상상하면 마음이 행복해진다.

학업과 일에 있어서 열심히 쉬지 않고 달리던 중에 뜻밖의 건강 문제로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쉼과 휴식을 통해 몸과 마음의 건강을 되찾고 다음 단계를 위해 숨을 고르는 시간으로 여기고자 한다. 물론, 나의 몸과 마음의 건강도 잘 유지하고 관리하며 더 길게 보고, 더 멀리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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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혜경 2021-05-09 13:48:11
정말 도전이 되는 기사입니다.
건강도 회복하시길 기원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

김영희 2021-05-09 00:33:33
신체건강도 정신건강도 중요합니다. 두 가지 건강을 잘 챙기시면서 학업을 이어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