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 칼럼] 노희정 "정신장애인의 사랑과 결혼?...'어떤 운명이 다가올지는 자신도 알 수 없어'"
[당사자 칼럼] 노희정 "정신장애인의 사랑과 결혼?...'어떤 운명이 다가올지는 자신도 알 수 없어'"
  • 노희정
  • 승인 2021.08.0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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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대상을 향한 무한한 포용과 이해, 희생을 받아들이는 것
SNS에 올라온 멋진 사진 뒤에 당면한 문제는 은폐돼
결혼한 이가 승자?...사랑은 결코 경기가 아니야
어떤 삶이 행복하고 옳은지는 정의 내릴 수 없어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아폴론은 에로스에게 화살은 전쟁터에서나 쓰라고 말한다. 화가 난 에로스는 사랑에 빠지게 하는 날카로운 화살을 아폴론에게 쏘고 다시 누구도 사랑할 수 없게 만드는 뭉툭한 화살을 다프네에게 쏘았다.

프란체스코 알바니의 '아폴론과 다프네'.
프란체스코 알바니의 '아폴론과 다프네'.

아폴론은 화살을 맞고 난 후 처음 만나게 된 이성 다프네를 사랑하게 됐고 다프네는 어느 누구도 사랑할 수 없게 되었기에 아폴론의 구애를 거절한다.

다프네는 영원히 혼자 살기를 원하며 숲속에서 사냥을 즐기며 살아간다. 이러한 다프네가 숲속에 있을 때 아폴론은 다프네를 쫓아 달렸고 아폴론을 피해 쫓기던 다프네는 자신의 모습을 영원히 바꿔주기를 간청한다. 그러자 다프네는 그 자리에서 한 그루의 나무로 변해버렸다. 다프네의 다리는 뿌리가 되어 땅에 묻혔고 다프네의 팔은 잎이 되었다.

다프네였던 이 나무가 바로 월계수이고 아폴론은 다프네가 영원히 변치 말기를 바라며 잎이 시들지 않게 하여 월계수 잎으로 월계관을 만들었다.

사람은 모두 다프네가 아닌 아폴론의 후예 속성을 지녔다. 사랑은 나이와 인종을 떠나 인류의 관심사이며 근원이어서 다프네처럼 거부하지도 못하며 아폴론처럼 자신의 사랑이 이뤄지기를 바란다.

정신장애인들도 이 사랑의 문제에서 예외일 수 없다. 많은 동료들이 이성 친구를 갖고 연애 사업을 하고 결혼하기를 원한다. 당연한 욕구다.

교제를 하고 있거나 결혼을 한 당사자들에게서 혼자일 때보다 더 행복을 누리고 있고 병도 좋아졌다고 말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참으로 아름답고 흐뭇하다. 이 경우 환자와 환자와의 결합, 환자와 비환자와의 결합이 모두 존재한다.

사랑은 사랑하는 이를 위한 무한한 포용과 이해, 희생, 인내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실행해야 하는 항해다. 항해의 바닷속에는 수없는 무리수가 존재할 수 있기에 현명해야 하고, 자신도 모를 수 있는 자신에 대해 알아야 하고, 예측하지 못한 상대의 받아들이기 벅찬 모습까지 감싸 안으며 지치지 않는 공감 능력이 필요하다.

세상의 많은 연인들과 부부들은 사랑이 변했다, 식었다, 속았다, 달라졌다고 말하곤 한다. 심지어 처음 만났을 때의 사랑의 느낌이 결혼 후에도 계속 이어져 살아가는 부부들은 전생에 나라를 구한 사람들이라고까지 말하는 사람들도 보았다.

조용필의 정의대로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가 누군가에게는 ‘아모르 파티’(Amor Fati·운명애)가 될 수 있는 것은 꼭 상대방이 잘해서, 내가 잘해서, 서로가 잘해서가 아닐 수 있고 상대방의 잘못도 나의 잘못도 서로의 잘못이 아닐 수도 있다.

노력하고 도를 닦는 종교의 힘으로 감사하게 사랑의 정의를 쓸 수 있고 그것 없이 행복한 사랑의 정의를 쓸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번 생은 한 번뿐이라’ 이 생에 나라를 구해야 다음 생에 영원한 소울 메이트(Soul mate)인 동반자를 만날 수 있을까?

다음의 세 노래에서 사랑의 정서와 사랑의 진행에 대한 시대적 변천사를 살펴보자.

‘네가 있으면 나는 좋아 네가 웃으면 나도 좋아. 넌 장난이라 해도. 널 보고 싶었던 밤 난 벅찬 행복인데. 널 볼 수만 있다면 그게 내가 가진 몫인 것만 같아’(토이-좋은 사람)

‘장가갈 수 있을까?’ 올해도 가는데 남들처럼 그렇게 통장 잔고 없는데 장가갈 수 있을까? 여자 맘은 진짜 진짜 모르겠다. 시집갈 수 있을까? 이러다 혼자 사는 거 아냐? 여자 맘은 여자도 모르겠다’(커피소년-장가갈 수 있을까)

‘나는 읽기 쉬운 맘이야 당신도 쓱 훑고 가세요. 그러다 밤이 찾아오면 우리 둘만의 비밀을 새겨요 추억할 그 밤 위에 갈피를 꼽고서 남몰래 펼쳐 보아요. 피고 지는 마음을 알아요 나 한동안 새활짝 피었다 질래. 내 사랑은 같은 꿈을 꾸고 그럼에도 난 꿈을 미루진 않을 거야’(잔나비-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

이제 좀 다른 쪽을 바라보자.

이 시대의 MZ 세대는 사랑도 결혼도 포기할 수밖에 없어진 그야말로 포스트 휴먼, 포스트 러브 세대들이다. 뱃속에서부터 동화책을 읽었고 걸음도 걷기 전에 영어 비디오를 봤으며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에 한글을 깨우쳤다.

12년간의 공교육을 받는 동안 부모들은 사교육에 올인했고 정육점의 고기처럼 매겨진 등급에 따라 대학을 갔으나 취업을 위해 지금까지 해 온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노력해도 쉽지 않다.

‘Aleph’

히브리어로 알파벳의 첫 자. 1을 칭하는 이름의 이 인디 아티스트는 MZ 세대의 사랑을 이렇게 노래한다.

‘내가 지금부터 할 말은 틀어지고 멀어진 것들의 울분. 포위당해 굴복한 사랑의 포효. 남겨진 것들의 축도. 여운이 남겠지, 가슴 벅찬 감정에 한 번 빠져보지 못하고. 또 술렁이겠지 어슬렁거리다만 마음은 쉬질 못하겠지. 그러니 낭만을 택한 널 위해 나 잠시 손깍지를 낄게. 부끄럼 많은 여정을 마치면 못다 한 얘길 나누자’

수많은 정신장애인 역시 이러한 MZ 세대처럼 이런 심경과 장애라는 조건으로 사랑도 결혼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 아닐까?

사랑은 우울증 환자에게 최고로 빠른 치료법이고 부부는 최고의 치료자라는 말이 있다. 사실 그런 경우를 많이 보았다.

그렇다면 주저할 것 없다. 하지만 사랑도 결혼도 정신장애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긴 항해요 수많은 경우의 수를 던진다.

플라톤 "사랑은 위험스러운 정신질환". (c)pensador.com
플라톤 "사랑은 위험스러운 정신질환" (c)pensador.com

사실 사랑과 결혼에 대한 이상은 미디어와 SNS의 영향이 지극히 크다. 모든 드라마와 광고에서 행복한 삶은 연인 같은 아내와 남편, 그리고 건강하고 예쁘게 자라는 자녀의 모습으로 고착화된다.

SNS는 이보다 더하다.

가깝게 있는 사람들이 연인과 찍은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올리고 맛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먹고, 어디인지도 모르는 멋진 곳에서 찍은 즐거움만 가득한 삶이 노출된다.

그곳에는 이탈리아에서 한 달을 여행했다며 스페인 광장에서 젤라또를 먹는 사진이 있고, 늘 웃기만 하는 아이의 얼굴이 있으며 비즈니스 클래스를 타고 해외여행을 떠나 호텔에서 조식을 먹고 스킨 스쿠버를 하는 아빠, 엄마, 아들, 딸만 있다.

그들에겐 벅찬 장애라는 짐도 없거니와 인생은 장밋빛으로만 가득하다. 그러나 결코 그들이 올리는 사진들이 그들 삶의 전부는 아니며 그들에게 당면한 문제는 은폐된다.

그러기에 SNS는 정신 건강을 힘들게 유지하는 이들에겐 그다지 좋지 않다.

점점 어려워져만 간다. 머리는 더 혼란스럽다.

그렇다면 이 글의 결론은 무엇이며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필자는 감히 결론을 맺지 못한다.

그 답은 독자들에게 있다.

어떤 삶이 행복한지 어떤 인생이 옳은 정답인지 그 누가 정의 내릴 수 있을 것인가?

사랑과 결혼은 경기가 아니다. (c)diariodeconteudojuridico.jusbrasil.com.br
사랑과 결혼은 결코 경기가 아니다. (c)diariodeconteudojuridico.jusbrasil.com.br

이 글은 정신장애인의 사랑과 결혼에 대한 담론을 위해 보편적인 이 시대의 사랑과 결혼에 대한 담론을 같이 곁들인 글이다.

다만 사랑과 결혼을 하는 사람은 승자이고 그것들에게서 동떨어진 사람은 패자가 아니라는 것. 사랑과 결혼은 결코 경기가 아니란 것.

정신장애인도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는 권리를 누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인생은 어느 것도 예측할 수 없고 어떤 운명이 다가올지는 자신도 알 수 없다는 것을 덧붙이고 싶다.

글을 쓰다 문득 궁금해졌다. ‘정신장애인의 사랑과 결혼에 대한 담론을 읽어준 독자들에게 지금 떠오르는 노래는 무엇일까?’

이 글을 읽어준 독자들의 댓글로 우리의 담론이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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