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형 기자의 변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진정성...당사자 언론에서 기자로 일할 수 있어 행복해"
[이관형 기자의 변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진정성...당사자 언론에서 기자로 일할 수 있어 행복해"
  • 이관형 기자
  • 승인 2022.01.12 19:26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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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상의 고통으로 새벽 내 쓴 글들이 '바울의 가시' 초고가 돼
말하고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한 건 진정성임을 깨달아
당사자와 가족 삶을 위로하고 경험에서 나오는 기사 쓸 것
출처 : pix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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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글 쓰는 걸 좋아합니다. 글을 조금은 잘 쓰는 편에 속하죠. 글을 통해 세상을 선하게 만들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해야 하고, 그 일에 능력을 발휘해야 하며, 세상에 도움이 되는 결과를 가져와야 하죠.

그런 점에서 전 행복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사회에 공헌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요. 바로 글을 쓰면서 말이죠.

제 인생의 첫 글은 일기장에 쓴 시였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선생님이 내준 숙제로 시를 써서 냈습니다. 제 시를 읽어본 선생님은 남의 시를 따라 쓰지 않고, 직접 쓴 게 맞느냐며 놀라셨죠. 이후로 전 시와 수필은 물론, 어린이 소설까지 쓰면서 글 쓰는 실력을 키워 나갔습니다.

학창 시절, 아이들로부터 괴롭힘과 왕따를 당하고 입시 경쟁에 시달리며 제 글은 점점 어두워졌습니다. 누군가를 저주하는 일기나 지옥을 연상케 하는 시를 썼습니다. 학교 설립자의 과거 친일 행위와 현재 교사들의 권위, 폭력과 경쟁이 팽만한 교실 문화를 주제로 글을 썼다가 선생님께 불려간 적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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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이 발병하고 나서는 살기 위해 글을 썼습니다. 새벽마다 찾아오는 불안과 두려움, 떠오르는 과거의 상처들로 인해 도저히 누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어떡하면 시간이 빨리 갈까? 어떡하면 아침이 밝아올까? 고민하다가 책상에 앉아 글을 썼습니다. 나는 연약하지 않고 강하다고, 인생에 절망만 있는 게 아니라, 희망도 있다는 수필과 시들을 썼습니다.

증상과 고통으로 인해 괴로웠던 새벽 동안 최면을 거는 듯이 제 마음을 달래고 희망을 품는 글을 썼죠. 글을 쓰다보면 새벽의 시간이 빨리 지나가고 아침이 밝아왔습니다. 이때 썼던 글들이 오늘날 ‘바울의 가시’라는 제 자서전의 초고가 되기도 했고요.

대학교도 언론학 전공으로 입학하게 되었죠. 글 쓰는 수업을 체계적으로 배운 건 아니었지만, 대학 생활 내내 글을 쓸 일이 참 많았습니다. 엄격하고 체계적인 기독교 동아리에 가입한 것이 계기였죠. 동아리에서는 매주 1회씩 성경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토요일마다 선후배들이 모여 성경을 공부하며 들었던 생각과 마음을 발표해야 했죠.

이 자리에서 많은 학생들은 인생 가운데 상처와 아픔을 이야기했습니다. 깨진 가정과 가난, 폭력과 트라우마 등등. 도저히 20대 초중반의 대학생들이 겪었다고 믿을 수 없는 인생의 사건과 경험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왔습니다.

울기도 참 많이 울고 위로도 많이 주고받았습니다. “나만 힘든 게 아니었구나.. 나보다 더 한 사람도 있구나..”하면서 충격 아닌 충격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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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아나운서 연습을 하는 수업이 있었습니다. 첫 발표 시간에 내성적이고 말 주변이 없던 저는 우려대로 연설을 망치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같이 수업을 들은 친구들이 위로해줄 정도였죠.

두 번째 발표 수업에서는 동아리에서 했던 대로, 제 인생의 아픔과 상처를 있는 그대로 연설했습니다. 연설을 마치고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한 건 진정성이라고 말이죠.

대학교를 졸업하고 기자 교육을 받는 사설 아카데미를 다녔습니다. 그때도 “너처럼 내성적인 성격으로 어떻게 기자를 하겠냐”며 무시하는 동기들도 있었죠. 저 역시도,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만남을 요청하고 질문을 던지며 인터뷰를 진행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많았습니다. 글 쓰는 건 어느 정도 가능하겠지만, 그 외에 기자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이 있을까 의심이 들었죠.

그러다 운이 좋게도 작은 기독교 언론사에 취업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곳과 달리 경쟁률이 치열하지 않았죠. 심지어 면접자도 저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목숨 걸고 일해야 하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사이비 종교를 취재하고 연구하여 잡지를 발행하는 게 주 업무였습니다. 처음 수습기간 1개월 동안은 사무실 책상에 앉아 사이비 종교에 대한 책들을 공부했습니다. 입사 초반엔 일도 안 하고 편하게 시간을 보냈죠,

하지만 2개월 차부터 본격적으로 잠입 취재를 다니게 됩니다. 10여개의 사이비 종교 시설에 직접 찾아가서 예배 같은 종교의식에 참여해야 했죠. 새 신도 자격으로 교주와 악수도 하고, 다른 신도들로부터 환영도 받았습니다. 물론, 틈틈이 볼펜 모양의 카메라와 소형 녹음기로 촬영과 기록 임무를 몰래 수행했습니다.

한번은 교주의 설교 시간에 카메라 후레시가 터졌습니다. 설교가 끝나고 시설을 나오려는데 관계자에게 붙들렸습니다. 너무 존경하는 교주님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었다고 얼버무려 위기를 넘기긴 했지만요. 그렇게 두 달 정도 잠입을 다니다보니, 책에서 배운 이론에 현장에서의 경험을 더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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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기자 생활이 쉽지는 않더군요. 사이비 종교에서 일어나는 폭력과 사기, 그리고 교주의 여성 신도에 대한 성범죄까지. 괴물을 잡으려다 나까지 괴물이 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이비에 빠진 자녀들을 구하기 위해 애태우는 가족들과 인터뷰를 하며, 기자로서 아무 도움도 줄 수 없다는 무기력함에 빠졌죠. 게다가 회사 내부적으로는 보수적인 업무 분위기에 권위적인 선배의 압박까지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재정적으로도 열악하여 한겨울에 난로 하나로 사무실에 온기를 채웠고, 오래된 컴퓨터와 느린 인터넷 속도로 업무에 지장이 컸습니다.

결국 저는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취재와 기사 작성은 물론, 기자로서 얼마나 공부하고 노력해야 하는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상심과 절망에 빠져있는 가족들과 공감하고 위로하며, 한편으론 거대한 사이비 조직에 맞서는 용기와 담대함까지 갖추게 되었죠.

하지만 당시에 너무 힘들어서 다시는 기자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사무실에서 혼자 앉아서 책이나 만들겠다고 말이죠. 출판을 하면 기자 생활에 비해 사람을 만나는 부담감도 없었으니까요.

그랬던 제가 지금 이렇게 <마인드포스트>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처음 ‘바울의 가시’란 자서전을 홍보하기 위해 메일을 보냈던 <마인드포스트>에서 역으로 기자 제안을 받아 기자가 된 것이죠. 2018년 6월, 처음 <마인드포스트>가 시작했을 때는 많은 당사자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도 기자가 되기 위해 교육을 받으면서 많은 노력과 준비를 해왔죠.

하지만, 몇 달 뒤 제가 기자로 합류했을 때는 대부분이 떠나가고 난 뒤였습니다. 누군가는 건강 악화로, 누군가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누군가는 이유 없이 떠났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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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3년이 지난 현재, <마인드포스트>는 시스템적으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습니다. 처음부터 사무실에 상주하며 수고해주셨던 박종언 국장님과 김근영 부장님, 그리고 저와 배주희 기자님이 간간히 기사를 작성하고 있죠. 이외에도 다른 전문가와 당사자 가족들이 외부 기고 글을 실어 주시고 있습니다.

이제는 주기적으로 양질의 기사가 쉼도 없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박종언 국장님과 김근영 부장님은 인터뷰 기사와 동정 기사를, 저와 배주희 기자는 칼럼과 해외 기사를 주로 생산해내고 있죠. 딱히 사전에 약속을 하거나 역할을 정한 것도 아닌데, 언론사로서의 시스템과 역할 분담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인드포스트>가 걱정 없이 순조롭게 운영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마인드포스트>는 오래전부터 사무실 없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각 기자들은 집이나 개인 공간에서 기사를 쓰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기자들은 모여서 회의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한, 기자들은 기사 작성 외에도 다른 생업을 하며 경제 생활을 해나가고 있고요. 필자도 건당 1~2만 원의 원고료를 받으며 기사를 쓰고 있죠. 강사와 출판같은 다른 일을 겸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최근에는 적은 급여와 홈페이지 서버 비용마저 계속 밀리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콘텐츠 제작에 따른 외부 지원금으로 겨우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필자는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공익적인 일을 동시에 하고 있으니까요. 그렇기에 <마인드포스트> 기자로서 계속 일 해나갈 수 있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쓴 글 세어보니 160건에 달하더군요. 대학원 공부를 하며 책과 논문을 읽다보니 기사 수준도 조금이나마 향상된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사회에서 폭력적이고 무능력하다고 여기는 정신장애 당사자들의 언론사에서 일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편견과 차별로 물든 폭력, 당사자의 회복을 가족들에게만 떠넘기는 사회의 무능력함에 목소리를 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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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목소리를 내기까지 과거의 인생 경험들은 제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사이비 종교에 대한 기사를 쓰기 전에, 먼저 여러 책들을 읽고 연구했습니다. 이를 통해 기자에게 전문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머리로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피해 가족들을 만나고 인터뷰 하며 그분들의 아픔을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새벽의 고통 가운데 희망을 썼던 제 책처럼, 당사자와 가족들에게 회복의 희망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대학 시절 발표수업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건 진정성임을 깨달았습니다.

새해에도 저는 기자로서 공부와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겠습니다.

대학원 공부를 통해 더욱 전문적이고 깊이 있는 기사를 생산해내겠습니다. 그렇다고 책과 논문에 나오는 정보와 지식만으로 기사를 쓰지 않겠습니다. 당사자와 가족들의 삶에 더욱 깊이 들어가 함께 울고 함께 위로하며 경험에서 나오는 글을 써나가겠습니다. 어려움과 절망의 환경 속에서 회복에 대한 희망을 전달하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슴에서 가슴으로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진정성을 갖춘 기자로 활동해나가겠습니다. 앞으로도 독자 분들께 <마인드포스트>를 잘 부탁드립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그리고 응원해 주십시오. 당사자를 위한, 당사자에 의한, 당사자의 언론사로서 역할과 본분을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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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저스티스 2022-02-17 10:55:25
이관형 기자님의 올곶은 성품에 찬사를 보냅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많은 노력을 통해 극복하셨군요

기레기 2022-01-24 23:41:17
속이뻔히뵈는책홍보좀그만하시죠

김영희 2022-01-13 18:46:21
위험부담안고 잠입취재까지 하셨다니!

글솜씨 좋은 이관형님 응원드리고 글 잘 읽고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