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불거진 정신병원 설립 반대…당신들에게 ‘혐오’지만 우리에게는 ‘권리’다
또 불거진 정신병원 설립 반대…당신들에게 ‘혐오’지만 우리에게는 ‘권리’다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2.01.07 1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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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에서 정신병원 건축에 지역주민들 ‘위험’ 논리 앞세워 반대
시, 건축법상 적법한 절차 거쳐 허가 내준 것…신청 반려 근거 없어
지역 주민대책위 “초등학교 인근에 정신병원 건축은 불안 안겨줘”
인권위 ”사고 발생 염려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대표적 편견“

충북 청주시에서 개원 준비 중인 한 정신병원이 역시나 지역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7일 <마인드포스트> 취재를 종합하면 청주시는 지난해 9월 상당구 방서동 방서지구 일대에 정신의료시설 건축 허가를 내줬다.

의료시설의 주체는 내년 1월까지 지하 1층·지상 6층, 연면적 3천893.4㎡ 규모로 건립해 시설 일부를 정신과 환자들의 외래에 활용하기로 했다. 이후 11월 초부터 건물 착공에 들어갔다. 완공 예정일은 2023년 1월이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난 1월 4일 청와대국민청원게시판에 이 건축을 막아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이어 5일에는 충북도교육청 청원광장에도 ‘초등학교 주변 정신병원 건립에 대한 교육감님의 답변을 요청한다’는 글이 게재됐다. 같은 날 시 홈페이지 시민의소리 게시판에는 ‘방서동 정신병원 허가 철회해 달라’는 제목의 글 역시 올라왔다.

건물이 들어서는 자리는 초등학교에서 260m 떨어진 곳이다. 이외에 공립유치원, 어린이집 4개소, 어린이 전문병원 1개소, 학원 등이 들어서 있다. 일대 방서지구에는 아파트 단지 주민 1만5000여 세대가 생활하고 있다.

청와대게시판의 청원자는 “만약 정신병원이 예정대로 세워질 경우 불과 300m도 되지 않는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 어린이집, 소아병원, 1만5000세대 아파트 등 안전은 어떻게 되는지 답변을 기다린다”고 요청했다.

이 병원이 알코올중독 환자들의 외래를 받을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일부 주민들은 “혹시나 해코지를 당하지 않을지 불안하다”는 발언도 했다.

이에 대해 청주시는 7일 보도해명자료를 통해 병원 신축이 문제 없다는 입장을 내보냈다. 시는 건립하는 정신병원은 종합병원, 병원, 요양병원 등과 같은 동일하게 건축법상 용도에 적합한 건물이라는 해명이다.

또 초등학교에 인접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교육 환경 보호에 관한 법률을 준수했다는 의견이다. 이 법에 따르면 교육환경보호구역은 학교 출입문으로부터 직선거리 50m를 절대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있다. 상대 보호구역은 학교 경계에서 직선거리 200m다. 시는 건물이 초등학교에서 270m 떨어진 곳이기에 법적 하자가 없다는 입장이다.

정신과 폐쇄병동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시는 “(병원 건축주가 병원을) 신경쇠약, 우울증, 불면증, 알코올중독 상담과 진료를 하고 필요 시 통원 또는 수일 정도의 입원을 하는 병원”이라며 “폐쇄형이 아닌 외래 진료형 병원으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병원은 43명을 수용할 수 있는 입원실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시는 “지구단위 계획과 관련 건축법상 적법한 절차를 거쳐 건축 허가를 내준 것이므로 건축주의 정당한 신청을 반려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고 밝혔다.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7일 상당구 방서동 방서지구 주민들로 구성된 ‘방서동 연합대책위원회’는 시의 발표를 비판하고 나섰다.

이들은 “시가 건축 허가에 문제가 없다고 했지만 ‘청주시 아동 친화도시 조성에 관한 조례’를 보면 ‘아동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항을 결정할 때는 아동 최선의 이익을 고려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며 “이는 탁상행정”이라고 반박했다.

또 “해당 병원은 외래진료 전문병원이 아닌 외래진료와 폐쇄병동, 일반병동을 겸해 운영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미 건축 준비 단계에서 200여 개의 폐쇄병동과 일반병동을 설계해 허가를 받아놓았으면서 문구의 차이로 주민을 우롱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청주시 관계자는 <마인드포스트>와의 통화에서 “해당 건축 허가는 적법한 절차를 거친 상태”라며 “지금으로서는 딱히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는 도시 미관(美觀)지구 안에 정신의료기관이 들어서는 것을 금지한 ‘도시계획조례’ 관련 규정을 차별로 규정했다.

당시 각 지자체는 외관상 지역 미관에 장애가 된다며 정신의료기관의 건축을 제한하고 있었다. 인권위는 서울시를 비롯한 전국 139개 지자체에 미관지구 조례 삭제를 권고했다. 서울시는 지난 2019년 도시미관지구를 전면 폐지했다. 1965년 종로와 세종로에 최초 적용된 후 53년 만이다. 이후 다수 지자체에서도 이 조례 삭제를 따랐다.

인권위는 당시 결정문에서 헌법 제11조의 법 앞의 평등, 장애인복지법 제8조의 차별 금지,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장애인 차별 금지를 위한 국가의 적극적 조치를 권고 이유로 들었다.

인권위는 당시 미관지구에 정신의료시설이 들어설 경우 사고 발생이 염려된다는 주장에 대해 “정신질환자에 대한 대표적 편견 중의 하나”라며 “정신질환자를 예측 불가능한 위험한 인물로 인식함으로써 정신장애 편견과 차별을 조장한다”고 판단했다.

또 미관지구 내 건축 제한은 미관에 지장을 주는 ‘시설’을 제한하는 것인데 정신질환자에 의한 사고 발생의 위험이 높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시설이 아닌 사람에 대한 제한임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정신질환을 치료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격리돼야 하는 규제의 대상으로 인식해 온 그릇된 사회적 관념의 소산”이라고 밝혔다.

한 정신과 전문의는 교통이 편리한 도심에 환자들이 자유롭게 산책할 수 있는 정원을 갖추고 넓고 고급스러운 시설에서 주민과 함께 어울리는 정신병원을 짓고 싶어 했다.

하지만 당시 지자체의 도시 미관지구 안에서의 정신의료기관 설립이 불허되면서 꿈을 포기해야 했다고 전했다.

그는 “정신병원을 도시 미관을 해치는 혐오시설로 못 박는 것은 정신질환자들을 차별하지 말아야 하며 인권을 중시해야 한다는 국가기관이 만든 정책적 오류”라고 말했다.

도심을 피해 한적한 시골 등 지방으로 내려가 개원을 하려고 해도 교통상의 문제와 숙식의 불편으로 직원들 채용이 ‘하늘의 별 따기’라는 토로도 나온다.

현재 정신병원들이 구인난에 시달리는 상황은 이 같은 정책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병원이 오지에 건축될수록 아무도 오지 않고 입원 환자는 주변 생활권을 누리지 못하고 병동 안에 가둬져 있어야 하는 악순환을 반복한다는 지적이다.

지난 2019년 정신과 전문의 제용진 병원장은 인천 서구에 186병상을 갖춘 정신병원을 건립하려고 구에 건축 허가를 요청했다. 하지만 구는 해당 지역에 공동주택·학교·학원들이 밀집해 있다며 “중증정신질환자에 의해 지역주민들에게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이를 불허했다.

제 원장은 병상수를 59병상으로 줄여 다시 개설허가를 신청했지만 이 역시 불허됐다. 당시 구는 서구 지역 폐쇄병동이 인구 1천 명 당 2개로 세계보건기구(WHO) 권고 기준인 1천 명 당 1명의 2배 수준이라는 ‘궁색한’ 이유까지 들이밀며 반대했다.

제 원장은 당시 구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진행했다.

7일 제 원장은 <마인드포스트>와의 통화에서 “소송을 진행했지만 안 돼서 포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서울의 한 정신건강의학과를 개설해 진료를 보고 있다고 했다.

제 원장은 “정신질환자들이 위험한 존재도 아니고 잘 치료받고 다시 사회로 복귀시키는 곳이 정신의료기관”이라며 “사회에서 격리시키기 위해 위험한 사람을 수용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라고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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