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그대야 어떠랴마는…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의 인권 치료 철학을 옹호하며
떠나는 그대야 어떠랴마는…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의 인권 치료 철학을 옹호하며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2.03.15 19:5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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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새경정 원장 최근 사의, 병원 봉직의들도 모두 사표
경기도·도의회·경기도의료원 카르텔이 새경정 인권 치료 가로막아
부정채용은 애초에 일어날 수 없는 구조인데 새경정 원장만 희생양으로 비판
김 원장 “어디로 가든 WHO 비강압 인권치료 철학 구현할 것”

“이제 떠나게 됐습니다. 지난 주 수요일(9일)에 사직을 했어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김성수 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장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다. 기자와 김 원장은 잠시 침묵했다.

지난 2020년 6월 인권치료를 지도 철학으로 개원한 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새경정)이 황량한 풍경으로 스러지고 있다. 김 원장을 비롯해 인권 가치를 보고 이 병원에 지원해 일을 시작했던 전문의들도 모두 떠났거나 떠날 예정이다. 새경정은 현재 신규입원을 중지하고 입원환자들을 대상으로 전원 조치를 하고 있다.

개원 당시 정신의료계에서도 낯선 오픈 다이얼로그(Open Dialgue·열린 대화에 의한 치료)를 도입하고 환자에게는 트라우마로 남는다는 이유로 강박 치료를 최소화하고 이해와 동의에 의한 입원 시스템을 진행했던 병원이었다.

“이제 떠나게 됐어요”라는 말이 주는 슬픔

세계보건기구(WHO)가 전 세계 정신의료 분야에서 정신위기의 치료 철학을 담은 퀄리티 라이츠(Quality Rights)의 이념을 구현하려 했고, 이 철학을 한국사회 정신보건 의료 현장에 적용시키기 위해 병원 내에 ‘QR본부’까지 설치했지만 이 병원을 관할하는 경기도의회는 여기에 들어가는 예산 자체를 막아버렸다.

그리고 새경정 김 원장을 비롯한 병원 진료진이 ‘부정청탁’을 했다며 이 병원 상급기관인 경기도의료원이 ‘태클’을 걸고 나왔다.

새경정이 여기까지 오게 된 데는 작은 원인과 오해, 혹은 새경정의 치료 철학을 못마땅해하는 권력의 개입이 있었다.

2021년 8월 말, 새경정은 조리원을 모집했다. 당시 정신장애인인 A(30대·여) 씨가 지원을 했다. 그는 조리사 자격증까지 있었다. A씨를 면접한 위원들은 도의원을 비롯해 가족대표, 지역 센터 상임팀장이었다. A씨는 무난히 합격하고 병원 조리실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취업 한 달가량부터 A씨는 조리실 직원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며 김 원장을 만나 심정을 토로했다. 김 원장은 원내 고충처리 절차를 권했고 A씨는 ‘직장 내 괴롭힘을 멈추고 전문가와 상담을 받게 해 달라’는 내용의 고충 신청서를 고충처리위원장인 진료부장에게 제출했다. 하지만 이 상담 내용이 외부로 알려졌다. 조리실 직원들의 정서적 학대는 더 심해졌고 결국 A씨는 입사 한 달 반만인 10월 중순 사직하게 된다.

문제는 여기서 더 나아간다. A씨가 떠난 그해 시월, 경기도의료원에 익명의 제보가 접수된다. 김 원장이 A씨를 채용하라고 진료부장에게 인사청탁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그해 12월 1일 경기도의료원 감사실은 병원장과 진료부장을 중징계하고 수사기관에 고발하겠다고 통보했다.

당시 경기도의회 의원들의 새경정 치료 철학에 대한 이해도는 무지(無知)에 가까웠다. 한 도의원은 도 행정사무감사에서 경기도의료원 관계자에게 “새경정에 너무 자율권을 주고 있다. 관리를 하라”고 호통쳤다.

또 다른 도 의원은 “새로운 거 하지 말고 기존 의료모델로 하라”고 말했다. 그리고 다른 도의원은 “너희 새경정만 인권 치료냐. 너희들만 리커버리냐”라고 따졌다.

도의회의 무지한 수준은 다음 사건에서도 드러난다. 2021년 도의회는 <경기도립정신병원 설치 및 운영에 대한 조례 일부 개정안>을 발의한다. 발의안은 새경정이 24시간 정신응급진료체계 병원으로 이 같은 목적 사업을 수행하지 않을 경우 병원장을 해임시킬 수 있도록 규정했다. 경기 지역 정신장애 단체와 가족단체들은 ‘비민주적 규정’, ‘의사의 임상적 자율권 침해’라며 강하게 저항했고 결국 발의안은 무산됐다.

권력의 정신질환에 대한 무지가 새경정 파탄 불러와

경기도 역시 새경정의 실험적 치료 철학을 곱지 않게 봤다. 도는 생경정이 인권 기반의 비강압 치료를 부정적으로 해석해 새경정이 도내 급성기 응급환자나 행정입원 환자를 단기간 응급 처방한 후 타 병원이나 집으로 돌려보내는 위기 대응 의료시스템으로 가기를 요구했다. 공권력이 구인한 응급환자를 신속히 수용하고 여타 정신병원으로 빠르게 분배하라는 ‘환자 택배 시스템’으로 가길 원한 것이다.

하지만 환자의 안정과 회복에 대한 심리적 시간을 주지 않고 ‘빨리 빨리’ 내보내라는 건 새경정 인권 철학에 도저히 맞지 않는 정책이었다. 새경정은 자신들의 치료 철학대로 환자를 받았고 회복기를 거친 후 지역사회로 내보냈다.

개원 일 년 후 새경정의 치료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나온다. 퇴원 후 한 달 내 재입원율은 6.6%였다. 이는 전국 평균 26.3%, 조현병의 경우 42.6%였던 높은 재입원율을 획기적으로 줄인 결과치다. 정신병원 입·퇴원 과정에서 깊은 트라우마를 겪는 정신장애인은 트라우마가 수치심과 두려움으로 전환되면서 일 년 이내에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할 비율이 비정신장애인의 8배에 이른다는 보고서도 있다.

정신응급의 환자를 안정시키고 대화를 통해 그의 욕구를 이해하고 환자의 권리를 최대한 존중하려 했던 새경정의 치료 철학은 사실 우리 정신의료계가 외면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김 원장에 대한 경기도의료원이 중징계를 경고했을 때, 그리고 새경정 치료 철학이 경기도와 도의회, 의료원에 포위돼 고갈되어 갈 때 새경정 봉직의들은 입장문을 냈다. 그들은 “전문의 1인이 환자 50명을 담당할 경우 환자에게 할애할 시간이 많지 않다”라며 “새경정이 표방한 인권 치료가 이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환자를 위해 선택한 강박이 상처로 남아 추후 정신과 입원 치료를 거부하는 결과로 나타나는 것을 수없이 봐 왔다”며 “최대한 이야기를 듣고 설득하며 강박을 최소화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강조했다.

정신장애인 당사자 단체와 가족단체들도 경기도의 행정에 문제를 제기했다. 이들은 “새경정에 대한 감사는 독단적으로 자의적인 해석”이라며 “채용에 관한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사람(김 원장과 진료부장)이 압력을 넣었다는 행위 자체도 우스운 일지만 설사 오해를 받을 언동이 있었다 할지라도 이를 채용 비리나 부정청탁으로 단정하는 것은 법리 해석의 오류”라고 주장했다.

당시 상황 전개를 잘 아는 설운영 수원시정신건강가족연합 대표는 <마인드포스트>와 인터뷰에서 “새경정 사태는 인권 기반 회복 치료의 선진 의술에 대한 합법을 가장한 조직적 탄압”이라며 “우리 사회가 정신장애인 인권에 무감각하고 회복 치료에 왜곡된 시선을 갖는 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새경정은 선진 의술에 대한 탄압의 상징으로 전환돼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기자는 최근 설 대표로부터 김 원장과 진료부장에 대한 경징계 처분이 요구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중징계가 아니니 다시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일까. 김 원장에게 전화를 했다.

“사직을 했어요.”

김 원장은 그렇게 말했다. 그는 자신과 진료부장에 대한 형사고발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전했다. 부정청탁이 있었는지에 대한 혐의를 벗어야 한다는 의미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는 이 사안에 대해 조사에 들어갔다. 김 원장은 “우리 장애인 직원이 입사하고 퇴직하는 과정 사이에 올바르게 (심리적) 지원이 됐는지 사건 발생이 제대로 처리됐는지를 인권위가 조사 중이다. 결과를 봐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인권위 담당자는 <마인드포스트>와의 통화에서 “새경정 조리원 사건과 관련해 제3자 진정이 들어왔다”며 “조사관들이 팩트 체크를 하고 보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제3자 진정은 피해자 대신 다른 관련 주체가 진정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기자는 전화기를 만지작거렸다. 다시 김 원장에게 전화를 할까 하다가 멈췄다. 그는 괴로울 것이다. 기자가 중립을 지키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한국사회에 인권치료 철학을 표방한, 망망대해의 구조선 같은 그 병원이 권력과 자본, 이해주체들의 시기심에 의해 좌초되는 것을 막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잖아도 지난달 말, 1990년대 최초의 인권 치료를 표방했던 성안드레아병원이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접한 참이었다.

기자는 김 원장 대신 인권위 관계자와 다시 대화를 나눴다. 관계자는 의미 있는 말을 남겼다.

“김 원장이 그래요. WHO(세계보건기구)가 요구하는 비강압 치료는 본인이 어디로 가든 하겠다고요.”

그리고 이렇게 끝나고 마는 것일까? 새로운 치료 철학의 한국적 도입이 이렇게나 어려운 것일까? 기자는 잠시 탄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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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경 2022-03-17 18:19:03
분해서 댓글을 남기지 않을 수가 없네요. 어디에 계시든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