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언니의 책방] 기다려, 네 영혼을 찾을 때까지
[삐삐언니의 책방] 기다려, 네 영혼을 찾을 때까지
  • 이주현 기자
  • 승인 2022.03.30 1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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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언니의 책방 ③ 잃어버린 영혼
올가 토카르축 글, 요안나 콘세이요 그림·이지원 옮김·사계절

얼마 전, 북한산 자락으로 이사갔다. 한창 신도시로 개발 중인 곳이었지만 그리 어수선하지만은 않았다. 집밖으로 50m만 걸어나가면 산봉우리가 하늘과 만나 이루는 섬세한 곡선이 펼쳐지니까. 

이사올 때만 해도 아침마다 그 풍경을 보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정작 출근을 시작하자 사정이 달라졌다. 정신없이 달려가 지하철을 타면, 이내 스마트폰에 고개를 박고 뉴스를 검색했다. 이사간 지 보름쯤 지났을까. 내가 지나치는 15개의 역 중 북한산을 볼 수 있는 것은 딱 한 구간이었는데, 단 하루도 북한산을 본 적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매일 북한산과 아침 인사를 나누자’고 마음 먹었다. 그리고 알게 됐다. 오전 7시57분. 같은 시각에 같은 곳을 지나지만 풍경은 매번 달랐다. 날마다 해가 조금씩 일찍 떴고 구름과 햇빛의 밀도가 늘 달랐다. 암석의 반짝임, 실루엣의 또렷함도 차이가 났다. 1분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발디딜 틈 없는 빼곡한 차량에 풍경을 담았다. 잠시 마음의 옷깃을 여몄다. 

<잃어버린 영혼>은 내가 매일 아침 만나고 싶어하는 ‘북한산의 시간’을 닮은 그림책이다. 첫장을 펼치면, 흰눈 쌓인 벌판과 숲이 나타난다. 드론으로 내려다본 듯한 원경 속에 사람들은 점점이 떨어져 부지런히 걸어가거나 멈춰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벤치에 가만히 앉아 있다. 

그 다음장엔 이렇게 씌어 있다. “누군가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본다면, 세상은 땀 흘리고 지치고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들로, 그리고 그들을 놓친 영혼들로 가득 차 보일 거에요…”

2018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폴란드 작가 올가 토카르축(60)이 쓰고, 역시 폴란드 출신 화가 요안나 콘세이요(51)가 그린 <잃어버린 영혼>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일을 아주 많이, 빨리 하는” 남자, 얀은 어느날 자신이 누군지 알 수 없게 된다. 거울을 보니 연기처럼 뿌옇게 변해 있었다. 의사는 진단을 내린다. 영혼을 잃어버린 거라고. 

“영혼은 주인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큰 혼란이 벌어져요. 영혼은 머리를 잃고, 사람은 마음을 가질 수 없는 거죠. 영혼들은 그래도 자기가 주인을 잃었다는 걸 알지만, 사람들은 보통 영혼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모릅니다.”

의사는 영혼을 잃어버린 데는 “약도 없다”면서 유일한 방법을 말한다. “환자분은 자기만의 어떤 장소를 찾아 편안히 앉아서 영혼을 기다려야 합니다.”

이후 시간은 조용히 흘러간다. 도시 변두리에 작은 집을 구한 얀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오로지 영혼만을 기다린다. 텔레비전 위에 올려두었던 작은 몬스테라가 얀의 키 높이만큼 자랄 때까지, 언젠가부터 돋보기 없이는 글씨를 읽을 수 없는 날이 올 때까지, 얀은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그 사이 얀이 어딘가에 놓고 온 영혼은 정처없이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드디어 얀의 집에 이른다. 지치고, 더럽고, 이곳저것 할퀸 상처가 남아 있는 아이의 모습으로. “‘드디어!’ 영혼은 숨을 헐떡였습니다.”

영혼을 찾은 얀은 정원에 구덩이를 파고 시계를 묻어 버린다. 그다음은 당연히 해피엔딩이다. “그들은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제 얀은 그의 영혼이 따라올 수 없는 속도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조심했어요.” 

내가 한창 조증 속에 빠져 있을 때, 가장 큰 변화는 시간의 속도였다. 시간이 너무 가지 않았다. 얘기를 한참 나누고 계단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다 꽤 시간이 지났다 싶어 시계를 보면 불과 십여분밖에 흐르지 않았다. 한참 잔 것 같았는데도 일어나면 겨우 삼십분, 그런 식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느린 게 아니었다. 내가 너무 빨리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폭주는 파국으로 끝났다. 마구 속도가 빨라지다 뒤엉켜버린 컨베이어벨트처럼. 꼬여버린 벨트를 풀고 제자리로 되돌려 정상적으로 가동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짙은 우울이 찾아왔다. 이렇게 조울의 궤도에 갇혀 인생이 끝나는 게 아닐까, 절망하기도 했다. 잠을 많이 자고 약을 먹고 운동을 했지만 결국은 기다려야 했다. 조울병에 대처하는 삶의 자세란 어설픈 희망도, 빠른 포기도 아닌 기다림이라는 것을 아주 나중에야 알았다. 하염없이 영혼을 기다리는 얀의 뒷모습을 보면서, 내 심장에서 커다란 종이 댕그렁, 울리는 기분을 느낀 것은 그때의 속절없는 기다림이 생각나서였다.  

물론, 올가 토카르축은 조울병 같은 정신질환을 떠올리며 ‘잃어버린 영혼’에 대해 쓰진 않았을 것 같다. 내가 누군지,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언지 잊고 살 정도로 정신없이 바쁜 현대인의 삶에 대한 보편적인 은유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잊어선 안 될 것을 잊고 사는 삶이라면, 몸이든 마음이든 어딘가 아픈(고장난) 거다. 그리고 올가 토카르축이 보기에 망각의 질병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내가 영혼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영혼을 찾는 데 온전히 시간과 마음을 쏟는 일이다.

아, 물론, 치유보다 중요한 건 예방이다. 영혼을 잃어버릴 정도로 바쁘고 정신없게 살지 않는 게 먼저다. 그러니 영혼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나는 내일도 북한산에 출근 도장을 찍을 작정이다. 

※<삐삐언니는 조울의 사막을 건넜어>를 쓴 삐삐언니가 매달 마지막주 수요일 <마인드 포스트> 독자들을 만납니다. 조울병과 함께한 오랜 여정에서 유익한 정보와 따뜻한 위로로 힘을 준 책들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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