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야기] 정신장애인, 우리도 꿈꿀 수 있을까?
[우리 이야기] 정신장애인, 우리도 꿈꿀 수 있을까?
  • 임형빈 기자
  • 승인 2018.11.06 1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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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하라...자신에 대한 학대를 멈춰라
몇번을 파도쳐야 우리는 존엄해지는가
동료와 주위 지지를 통해 부정적 자신을 넘어서
커밍아웃, 아프지만 필요한 우리의 인권

 

우리 이야기 (c) 마인드포스트
우리 이야기 (c) 마인드포스트

사람들에겐 수많은 꿈이 있다. 누구나 어릴 땐 대통령, 장군, 노벨상 작가 등을 꿈꾼다. 그러다 자라면서 그 꿈은 어느새 소박한 욕구로 바뀌어 나간다. 그래도 꿈이 있다는 것은 희망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삶은 때로는 고통스러워도 즐거울 여지를 남긴다.

조현병 당사자들도 꿈이 있다. 작가, 음악가, 선생님, 친근한 바리스타까지 꿈의 영역은 비정신장애인의 꿈만큼 다양하다. 책을 읽으며, 혹은 일을 하며 과연 내 꿈은 삶의 몇 페이지에 있을까라는 호기심도 가진다.

과연 그들의 꿈은 무엇일까? 그들의 꿈과 소망을 한번 알아보자.

정신장애인의 꿈 (c) Psychologium
정신장애인의 꿈 (c) Psychologium

일을 한다는 건 희망한다는 것

“지금은 약간 흥분 상태입니다. 조현병을 앓은 지 3년, 그동안 수많은 갈등과 아픔이 있었지만 주위의 배려로 잘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우연히 찾게 된 낮병원에서 저의 소망을 키우게 됐습니다. 여러 가지 교육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인문학이 나를 돌아봐’ 시간에 나의 현실을 보고 잠재력을 알게 됐습니다. 당사자 출신의 인권강사가 되는게 꿈인데 그것이 현실로 이뤄졌습니다. 지금은 인권수업 듣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과연 저에게 인권강사의 파노라마가 펼쳐질까요? 기대됩니다.”

조현병 당사자 민우혁(28) 씨 당사자 출신의 정신장애인이 하는 인권강사 강의를 듣고 감동받았다. 그 강사는 정신장애 3급에 조현병만 20년 넘게 앓고 있었다. 그런 그가 인권강사가 돼 전국을 돌며 순회강연하는 것을 보고 암울하기만 했던 우혁 씨 인생에 섬광이 비치는 것 같았다.

현재 그는 정부에서 1년에 한 번 진행하는 인권강사 모집 공고를 보고 간호사와 복지사의 도움을 받아 서류를 제출했다. 기다림은 곧 꿈이 됐다. 그는 정부의 연락을 기다리며 지역 내 당사자 모임에 참가해 아픔을 공유하고 미래의 활동 계획을 구상하고 있다.

김미균(33) 씨는 음악을 전공했다. 고등학교 때 조현병이 발병해 어렵게 학교생활을 보냈다. 친구들과 사이가 나빠졌고 이따금 돌출행동으로 집단따돌림의 대상이 됐다. 그는 학교를 그만두게 된다.

“그때는 죽고 싶었습니다. 나만 견제하는 선생의 교육지도에 울분이 터져 급우들과 많이 싸웠죠. 왜 나에게 이런 병이 생겼을까? 그땐 환청과 망상이 심했거든요. 버스를 타고 가면 뒷좌석의 사람들이 날 감시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들이 쫓아와서 날 해꼬지할 것 같아 괴로웠습니다.”

미균 씨는 20대에 검정고시에 합격한 후 28살에 대학에 들어갔다. 루터대학교 음대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했으나 다시 환청으로 휴학하고 병원만 왕래하게 됐다. 그러다 우연히 낮병원에 발을 디딘 그는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게 된다.

거기서 같은 병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사귀게 되고 병원의 교육프로그램에도 적극 참가했다. 이후 조금씩 삶의 안정을 찾게 됐다. 자기 또래의 청년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는 자신이 이토록 쾌활했던가 질문을 던지곤 했다. 낮병원은 그에게 삶의 감동이 됐다.

(c)라포르시안
(c)라포르시안

그는 낮병원 음악시간에 우연히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피아노 연주했는데 낮병원 동료들이 열화와 같은 지지를 해줘서 감동을 받았다. 이후 주위의 권유로 합창시간에 반주를 도맡게 됐고 병원 행사에서 독주와 합주를 연출해 동료들과 가족으로부터 적극적 지지를 받게 됐다.

미균 씨는 이렇게 피아노를 칠 수 있고 삶의 계획을 세우게 된 것이 낮병원 친구들과 병원 관계자들 덕분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장기 휴학을  했던 루터대에 복학을 해 작곡가로서 꿈을 키우고 있다.

“세상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 음악을 통해 자신감을 얻은 거죠. 처음에 피아노 치는 것이 공포스러웠으나 낮병원의 친구들과 동료들의 지지로 자신감을 얻은 것이죠. 조현병 당사자들이라 해도 그들은 나의 벗입니다. 같은 처지의 그들을 위해 음악치료사가 될 겁니다. 같은 당사자로서 그들을 이해하고 음악을 감동적으로 한 곡, 한 곡 전해주면 그들의 가슴은 따뜻한 봄날이 될 것입니다.”

현실을 침범하는 수많은 고통과 슬픔을 넘어

“저는 바리스타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지역센터에 나가 많은 교육 프로그램을 받으며 재활 의지를 키우던 중 바리스타를 알게 됐습니다. 이것이 내 인생의 작은 출발점이 될 수 있겠다 싶었죠. 처음엔 커피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어 어려웠는데 조금씩 교육과정에 적응하면서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습니다. 처음엔 너무 기뻤는데 막상 현장에서 일해 보니 제가 생각한 것과 차이가 많이 났습니다.”

수원 시내 모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는 조현병 당사자 도선의(24.여) 씨의 말이다. 그녀는 시험에 합격한 후 센터의 추천으로 카페에서 일하게 됐는데 출근한 첫날부터 매니저의 눈치가 탐탁치 않았다고 했다. 매니저는 자기를 조현병 환자라고 무시하면서 일터의 힘든 일만 시켰다고 했다.

(c) I-View
(c) I-View

매일 화장실과 홀 청소는 선의 씨 차지였다. 그래도 그녀는 자신이 꿈을 이룬 것에 만족해 허드렛일을 도맡아서 했다. 직원들과 친하게 지내기 위해 간식도 자기 돈을 들여 베풀었다. 그렇지만 그럴수록 싸늘한 눈초리만 돌아왔다.

어느 날 친한 직원이 신상 공격을 했다. “조현병자라면서요. 이런 일 해도 되는 거에요? 나중에 감정 폭발하면 일 수습할 수 있겠어요?” 그녀 또한 난감했다. 직장에서 이런 취급을 당하는데 끝까지 있어야 되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정신장애인에 대한 부정적인 사건 사고 등의 여파가 커지면서 사업체에서 이들을 채용하려 하지 않는다. 설사 채용하더라도 장애인 최저임금은 고사하고 다른 직원과 비교되는 50만 원만 지급한다. 정신장애인들은 이번 ‘제5차 장애인 고용촉진 및 직업재활 기본계획’에서도 배제돼 있다.

이는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의 정신적 사유에 대해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정신장애인들이 평균적으로 받는 월급은 50만 원 선이다. 그 이상은 예외가 적용되지 않는다. 다른 신체나 발달장애인들은 백만 원 선으로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이들에게 최저임금 150만 원을 보장해 줄 것을 집단적으로 요구하는 등 가족과 단체가 지원사격까지 해 준다.

그러나 정신장애인은 예외다. 선의 씨도 이와 같은 사항을 잘 알고 있다. 무거운 현실의 무게를 느끼지만 자신의 꿈꿔온 소망을 실현하기 위해 오늘도 차별받는 가운데 일하고 있다. 작은 카페를 만드는 것이 소망이라는 도선 씨에게 현실은 그렇게 녹녹치 않게 다가온다.

커밍아웃의 순간, 조금은 아팠지만 인권이 눈앞에

“제가 목사님에게 커밍아웃한 순간 새 세상이 열리는 것 같았습니다. 언제까지 숨겨야 할 지 모르는 조현병에 대해 교회에서 각별히 조심했었거든요. 그러다가 목사님의 무슨 병이 있냐라는 질문에 조현병 당사자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목사님은 사실은 알려줘서 고맙다며 자신이 사회적 기업을 만드는 게 꿈인데 이와 같은 사실을 참고하겠다고 다독여 주었습니다. 저에게 참 소중한 분이었습니다.”

조현병 당사자 송지현(44) 씨의 말이다. 그는 20대에 조현병이 발병해 20년 이상을 고통스럽게 지냈다. 의지할 사람은 어머니뿐이었다. 조현병을 숨긴 채 중소기업에 취직해 일하며 인간관계 등으로 깊은 스트레스를 받았고 환청과 망상에 시달리면 술과 담배로 해소했다.

그런 생활을 20년째 해오다 4년 전 동네 개척교회 목사님과 함께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이후 목사님은 지현 씨를 교회 전도사로 발탁해 지금껏 함께 일해 오고 있다.

목사님은 교회 옆에 카페를 마련해 평일에 카페 사업을 했고 일요일에는 교회를 사역했다. 개척교회치고는 신도가 50명이 넘었고 직원들도 5명이나 됐다. 지현씨는 이런 일터 분위기에 고무돼 커밍아웃을 했고소명감을 갖고 교회 일과 카페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됐다.

그런데 커밍아웃한 순간부터 카페 직원들이 자기를 이상한 눈초리로 대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한 직원으로부터 “지현 씨 조현병 당사자라면서요. 일하는 데 힘들지 않으세요? 어쩌다 그런 병에 걸리게 됐어요. 조심하셔야죠"라는 야유 같은 핀잔을 들었다. 그 후 직원들은 카페에 중요한 일이 생기면 그를 배제시키고 자기들끼리 모여 수군댔다. 힘든 영업 일이 생기면 그의 의중도 묻지 않고 책임 전가를 그에게만 시켰다.

결국 지현 씨는 “내가 괜히 커밍아웃을 했나. 이들이 어떻게 알았지. 정말 사람 취급 못 받는구나”란 심한 자괴감이 들어 전도사 일과 카페 일을 그만두려 했다. 하루아침에 그의 인권은 다른 직원들의 먹이감이 돼 버렸다. 조현병 당사자로 인권이 훼손되고 그의 사생활까지 직원들이 침해하자 그는 이 사실을 목사님에게 이야기했다.

목사님은 직원들을 한 명, 한 명 불러내 그에 대한 주의를 주고 경고했다. 어느 회식 날 지현 씨는 직원들에게 “내가 조현병 환자니 괘념치 말아 달라. 우리 똑같은 하나님 자녀가 아니냐. 우리 인생 그 뜻 안에서 함께 풀어나가자”라고 공개 발언했다. 이후 기적처럼 직원들과의 사이가 예전으로 돌아갔다.

지현 씨는 커밍아웃한 순간 새로운 삶을 느꼈지만 그만큼 가슴 아픈 차별도 당했다. 그는 이제 지혜롭게 삶을 시작하려고 한다. 비정신장애인과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모델을 만드는 데 그도 앞장서고 싶다. 무엇보다 그는 정신장애인이고 조현병 당사자이기에 존엄이 훼손되는 사회적 부당함에 대해 목소리를 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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