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왜 너는 방어하지 못했니? …그 사회적 시선이 두려웠어요”
“그때 왜 너는 방어하지 못했니? …그 사회적 시선이 두려웠어요”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0.08.20 21: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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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전국 정신장애인 당사자 컨퍼런스 이틀째 진행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정신장애 ‘몸’의 노동에의 성찰
‘다른’ 몸 때문에 차별되면 그것에 질문할 권리 있어
정신장애는 정치로써 풀어가야 할 억압이자 가능성
목소리를 높였을 때 편견 깨지고 문제 해결되는 경험해
정신의료에 없는 고유한 ‘고생’ 되찾아야 주체적 인간으로 성장
인간적 약함을 찾기 위해 우선 자기 자신과 화해해야

어린 시절, 그녀의 아버지는 조현병 환자였고 늘 골방에 누워만 지냈다. 그녀에게 아버지는 이상하고 위협적인 존재였다. 어머니는 그녀에게 ‘아버지를 빼다박았다’며 저주했다. 매일 폭언과 싸움이 오고가는 집이 싫어 떠돌았다. 그리고 스무 살, 푸른 청춘이 시작되는 그때, 그녀는 강제입원당했다.

“정신병원에 한 번 들어갔다 나온 것은 저를 비정상의 틀에 가두었고 그것은 일상의 압박이 돼 늘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저 자신에 대해 침묵하거나 정상성이라는 것에 동원되거나 두 가지 선택밖에는 없었습니다.”

20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호암교수회관 목련관. 제1회 전국 정신장애인 당사자 컨퍼런스 ‘새로운 대안’에 발표자로 참여한 정신장애인 당사자 박목우 씨는 자신의 이야기를 고통스럽지만 담담하게 끄집어내고 있었다.

목우 씨는 일반적인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발병 이후 겪게 되는 모순된 생애주기를 역시 겪는다. 대학 시절 고립되고 외로웠던 상황들, 병은 갈수록 악화됐고 마지막 발병 이후 15년 가까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던 시절들. 그때 누군가 정신장애인 등록을 했다고 말을 했을 때도 그녀는 이상하고 비정상적이 아닌 ‘완전한 몸’을 원했기에 등록을 거부했다.

하지만 발병 이후 20년 동안의 경력 단절과 빈곤 앞에서 처음으로 국가의 도움을 받을 생각을 하게 된다. 이후 정신장애 3급 판정을 받는다. 그리고 지인을 통해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있고 그곳에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의 글쓰기 모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목우 씨는 “저의 힘들었던 삶은 이들에게 닿기 위해 겪어야 했던 아픔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당사자들과의 만남은 저에게 감동을 주었다”며 “글을 쓰고 싶다는 오래된 열망은 이들을 만나면서 비로소 힘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삶은 깊은 통증을 주지만 때로는 길을 열어주기도 한다. 그녀는 장애인복지일자리로 취업을 하게 됐다. 하지만 잠이 쏟아져 간단한 문서도 작성할 수 없었고 강박 때문에 물건을 정리할 수도 없었으며 설거지조차 물소리가 말을 거는 환청이 들려왔다. 길이 좁게 열렸지만 몸이 이를 거부했다. 목우 씨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몸들의 노동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사회에서 ‘다른’ 몸 때문에 배제되고 차별돼도 우리에게는 그것에 대해 질문할 수 있는 권리가 있으며 우리가 우리의 아픔에 대해 더 많이 말하고 자신의 아픔을 의미화할 때 우리는 보다 정의롭고 자유로운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 정신병원에서 퇴원했을 때 그녀는 ‘나는 자유다’라고 외쳤다. 그러나 공허했다. 그녀는 “내가 다른 사람의 아픔과 처지에 공감하고 그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할 때 우리는 자유로워진다”며 “나와 타인의 자유는 서로 연결돼 있다. 제가 처음으로 입원한 병원에서 퇴원했을 때 외친 ‘나는 자유다’라는 말이 공허했던 것은 제 주변에 타인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삶은 정치적인 것이다. 정치적이 아닌 것은 세계에 없다. 우리가 발화하는 언어 하나에도 정치성은 숨어 있다. 아주 작고 느리지만 우리는 정치화된 세계 안에서 서로 발화하며 살아가고 있다.

목우 씨는 “우리의 존재 조건들, 사회적 계급들, 성적인 차이들 모두 정치의 장”이라며 “우리가 공통으로 경험하고 있는 정신장애도 정치의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정신장애는 단지 의료적 진단명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정치로써 풀어가야 할 억압이자 가능성”이라며 “그것이 억압인 이유는 우리가 침묵을 강요당한 채 주류 사회가 만든 틀 안에서 규정되고 관리되기 때문이며 그것이 가능성인 이유는 우리 스스로가 주체가 돼 그 억압의 사슬을 끊어내고 자유를 위해 투쟁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16살의 이서정 양이 ‘세상을 바꾸는 용기’를 주제로 발표했다. 서정 양은 현재 학교 밖 청소년이다. 그녀는 이 현재의 처지를 숨기지 않았다. 오래된 가정 학대의 경험,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일상적으로 벌어졌던 친오빠로부터의 성폭력. 이 고통을 이야기하기까지 그녀는 오랜 시간을 숨죽여 기다려야 했다.

서정 양은 “그 누구도 나의 말을 믿어주지 않을 거라는 생각, 사회적 시선과 보복이 두려웠다”며 “가장 무서웠던 질문은 ‘그렇게 할 때 너는 왜 방어하지 못했니’였다”고 토로했다.

그녀는 “나에게는 모두 사실이었지만 그들에게는 망상으로 취급될 것 같았다”며 “심한 불안과 우울을 겪으며 외부에서 바라보는 저는 ‘자해 청소년’, ‘학교 밖 청소년’으로 ‘문제’가 있는 아이로 여겨지게 됐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 폭력의 기억을 해체하기 위해 아동쉼터, 아동전문보호기관, 위클래스, 대학병원과 개인병원의 정신건강의학과를 전전하며 그들이 내미는 약물을 받아먹었다.

병명은 상황에 따라 바뀌었다. 대학병원에서는 분명히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우울증이었지만 다른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조현병’으로 바뀌었다. 병원에서 빨리 나가고 싶어 의료진의 지시에 순응했다. 그리고 얻은 것은 36킬로그램이나 찐 몸, 어눌해진 말, 굳은 표정, 축 처지는 신체의 기능들이었다.

서정 양은 “불행을 지우는 방법도, 무너진 감정을 세우는 방법도 몰랐던 저는 도움을 받으려 자발적으로 병원에 갔고 입원도 했다”며 “그러나 그들은 제가 집을 떠나 떠도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상처 주는 말과 태도로 저를 더 무너지게 했다”고 말했다.

불과 16살에 불과한 소녀. 저 배제와 소외와 차별과 낙인의 서사는 누가 만들어낸 것인가. 그녀의 말대로 그녀는 “엄청난 약들을 먹어야만 하는 조현병 환자로 만들어졌고” 집에서 쫓겨나 고시원, 친구 집을 전전했다.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피폐해졌고 생의 밑바닥에 가라앉았을 때 그녀는 비로소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오빠의 성폭행을 고발했고 미디어에 ‘친족성폭행’을 고발했다.

서정 양은 “저는 목소리를 높였을 때 저만의 편견을 깰 수가 있었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경험했다”며 “용감하게 행동했을 때 새로운 힘과 희망이 솟아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고 다음 번에 더 쉽게 고통에 맞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서정 양은 현재 정신적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또래를 돕는 멘탈헬스코리아 청소년 피어스페셜리스트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김대환 청주정신건강센터 관장은 일본 베델의집에서 시작된 ‘당사자 연구’를 주제로 발표했다. 당사자 연구란 당사자가 겪고 있는 환청·망상을 포함한 힘든 삶의 세계로 함께 다가가 고생을 공유하고 자기에게 맞는 삶과 생활방식을 연구의 관점으로 모색하는 집단적이고 개별적인 모색의 움직임이다. 이는 자신의 고통을 병원 입원이나 사회복지사에게 전적으로 위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고통의 주인공이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김 관장은 “일본 베델의집 사람들은 정신장애에의 접근 방법을 ‘말’에서 찾았다”며 “말의 병을 앓는 당사자는 정신의료 체계에서 말을 잃고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는 “판도라의 상자는 열려야 했고 인간의 고통도 발성돼야 한다”며 “인간이 자신의 내면을 드러낼 수 있는 말과 글, 그리고 몸짓 언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재앙이 아닌 축복”이라고 강조했다.

욕망이 몸 안에 쌓여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말로 발화됐을 때 그 언어는 욕망으로 전환되고 내가 하고 싶은 말과 직면하게 된다.

김 관장은 당사자 연구를 통해 되찾고자 하는 가치로 말과 고통, 약함을 들었다.

그는 “말은 치료의 맥락이 아니라 왁자지껄한 잡담과 당사자와 지원자가 일원화된 커뮤니케이션 차원에서 작동한다”며 “당사자연구는 자신의 경험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공간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간은 누구나 고통을 짊어지며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는 존재로 본다”며 “주체적인 인간으로 서기 위해 당사자가 기존 정신의료 체계로부터 잃어버린 ‘고생의 묘미’를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약함을 되찾는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김 관장은 “약함의 가능성과 저력을 인정하고 기존 정신의료 체계 속에서 당사자가 은폐해온 약함을 되찾아야 한다”며 “약함을 되찾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자신과의 화해에 주목하는 게 당사자 연구”라고 말했다.

이는 약함을 숨기거나 극복함으로써 사회로 복귀하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대신 약함을 드러내고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라고 존중했을 때 자신의 약함을 받아들이는 화해가 시작된다.

김 관장은 “당사자 연구는 자기 이야기로 정답도 없고 객관적으로 입증 자료를 갖춰야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며 “형식이나 순서가 정해져 있지 않으며 누구나 언제든지 끼어들기와 방향 전환이 가능한 평등한 말하기”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당사자 연구는 삶과 직결된 이야기”라며 “이를 통해 사람들은 서로의 삶을 표현하고 이해하게 된다”고 말을 맺었다.

제1회 전국 정신장애인 당사자 컨퍼런스 ‘새로운 대안’은 지나 19일부터 21일까지 서울대학교 호암교수회관에서 진행되고 있다. 마지막 날인 21일에는 ‘탈시설 및 지역사회 자립생활을 위한 대안적 정신장애 정책에 대하여’를 주제로 제철웅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발제한다. 이후 질의응답과 자유토론이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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