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형 기자의 변론] 페미니즘과 당사자 운동...억압에 대한 권리의 목소리들
[이관형 기자의 변론] 페미니즘과 당사자 운동...억압에 대한 권리의 목소리들
  • 이관형 기자
  • 승인 2020.09.11 20:16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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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은 여성과 장애인, 약자의 권리 운동
중세 마녀사냥은 여성을 희생양으로 만들어
미투운동에 언론이 본질 왜곡하고 극단적 이미지 조작해
당사자운동은 억압된 인권과 권리를 위한 목소리

2018년 봄이었던 것 같다. 마침 토요일이라 친구와 혜화역 대학로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약속된 시간에 혜화역에 도착하니 이상하게도 많은 경찰들이 집합해 있었다. 아니나다를까, 역에서 나와 보니 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시위하는 사람들이 모두 젊은 여성들이었다. 그리고 멀리 연단에서는 마이크를 잡은 여자의 연사가 이어졌다. 그리고 집회 연설자의 구호에 따라 그곳에 모인 수천, 아니 어쩌면 수만의 여성들이 구호를 외쳤다. 나는 그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여성들만의 함성 소리를 들었다. 보통, 집회현장에 가면, 남성들의 중저음 목소리만 들리거나 남녀 섞인 함성소리가 들리곤 했었다.

하지만 오직 여성들만의 고음의 함성소리는 처음 들어보았다. 그 소리가 왠지 낯설면서도 무섭게 느껴졌다. 그리고 난 궁금했다.

"무엇이 저들로 하여금 거리에 나와 분노를 표출하게 만든 것일까?"

그들의 함성 소리에는 내면 깊숙히 자리잡은 차별과 편견에 대한 반항이 진정성있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때, 난 처음으로 페미니즘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대체 여성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남자가 바라보는 세상과 어떻게 다를까? 그리고 어떤 차별과 편견을 겪게 된 것일까?

이후 난 짧은 기간이나마 교회에서 페미니즘 동아리 활동을 했다. 동아리 리더 누나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페미니즘이란 여성뿐 아니라 장애인과 사회적 약자 등, 모두의 권리를 위한 학문이자 운동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장애학에 관심이 많은 나 역시 페미니즘 동아리에 잘 들어온 것이라고도 말했다 (훗날 대학원 교수님께서도 '장애학'의 누나는 '페미니즘'이고, '장애학'의 동생은 '매드스터디'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그 누나의 말을 통해 교수님의 가르침이 쉽게 와닿을 수 있었다).

그렇게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시선 강간'이라는 생소한 단어를 처음 접했고, 사회의 잘못된 '여성다움과 남성다움'의 프레임이 여성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불편하고 억압당하는 삶을 살게 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이처럼 혜화역 시위를 통해 페미니즘 동아리 활동을 하게 됐고 그동안 여성들이 받아온 차별과 억압에 대해 조금이나마 공부하게 됐다.

사실 여성들의 차별과 억압의 역사는 태초부터 시작되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인류인 아담과 이브의 사례다.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에게 선악과 나무의 열매는 절대 따먹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여성인 이브가 뱀의 꼬임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었고, 또한 이브에게도 선악과를 먹게 하였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명을 어긴 아담과 이브는 낙원에서 쫓겨나는 저주를 받았다.

이는 원죄가 되어 인류 대대로 고통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물론, 남자인 아담보다 여자인 이브에게 더 책임이 크다고 보는 견해는 동의하지 않는다. 아담이나 이브나 결국은 하나님 앞에서 똑같은 죄를 지은 죄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동안 이 말씀은 은연 중 죄의 원인과 책임을 여성인 이브에게 돌리는 행태가 지속됐다.

중세 시대에는 여성에게 원인과 책임을 돌리는 행태가 실제적으로 일어난다. 바로 마녀 사냥이다. 당시 흑사병과 경제적 어려움을 존재하지도 않는 마녀의 탓으로 돌렸다. 이 과정에서 가난하거나 장애를 가진 여성들이 마녀로 지목돼 화형에 처해졌다. 당시 혼란스런 사회 속에서 지도자 층은 대중들의 분노를 자신들이 아닌 외부로 표출시키기 위해 마녀 사냥을 시행한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마리아를 성녀로서 숭배하는 사상도 널리 퍼지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여성인 마리아를 남성들이 숭배하는 게 여성의 위상을 높이는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성녀 마리아의 성적 순결이 칭송되고 모든 여성들의 롤모델이 되다 보면, 일반 여성들의 성적 욕구는 불결하고 천박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었다.

하지만 역사상 여성의 권익 향상과 권리를 위한 운동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 예로, 프랑스 혁명 때 많은 여성들이 봉기에 참여했다. 그중 여성 운동가 올랭프 드 구주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여성이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의정 단상에도 오를 권리가 있다"

그리고 남성들의 권리만 주장하는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대신,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선언문은 묵살됐고, 그녀 역시 단두대에서 처형됐다.

우리나라도 여성들의 사회적 참여가 전개됐다. 1980년대에는 군사정권에 맞서 많은 대학생들이 민주화 학생운동을 전개했다. 여기에도 남자 대학생뿐 아니라 많은 여자 대학생들도 운동에 참여한 것이다. 하지만 여성들의 주된 역할은 총무나 연락 수행, 대자보 작성같은 보조적인 역할을 주로 맡곤 했다. 프랑스 혁명 때처럼 의정 단상에 올라 운동을 주도하는 건 주로 남성의 역할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몇년 전부터 여성들의 용기있는 고백으로 미투(Mee Too)운동이 시작됐다. 지방에서 검사로 일하던 한 여성은 2018년 1월 뉴스 방송에 출연했다. 그리고 직장 내에 성추행과 성폭행 사건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자신 역시도 2010년 한 장례식장에서 간부로부터 강제 추행을 당했었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직장 내부 통신망을 통해 이 사실을 폭로했지만 간부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했다. 이후 여 검사는 사무 감사를 받은 이후 검찰 고위층의 경고를 받았고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인사발령을 받았다.

 여검사는 조직에 누를 끼칠 수 있다는 생각에 처음에는 간부의 부적절한 행동을 조용히 덮고 가기로 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인터뷰를 통해 “피해자가 직접 나와 이야기를 해야만 사람들이 믿어 줄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나왔다. 저는 간부가 피해자들에게 직접 사과해야 된다는 말을 전해드리고 싶었다”며 방송에 나온 이유를 말했다. 이에 대해 간부는 “술 마신 상태라 기억이 없다”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런 미투운동조차도 사회와 언론의 왜곡된 본질 흐리기에 그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위마드', '메갈'로 대표되는 극단적인 페미니즘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 시작한다. 언론은 천주교에서 예수의 몸으로 인식되는 성체에 낙서한 뒤 직접 불 태운 사진을 보도하기도 했다.

그렇게 페미니즘은 극단적으로 남성 혐오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로 이미지가 굳어져갔다. 심지어 같은 여성들에게조차 외면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결국 페미니즘이 본질적으로 주장하고자 하는 남녀 평등과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권익 옹호는 잊혀지고 일부 극단적인 이미지만 남게 된 것이다.

난 이런 페미니즘 운동을 보며 정신장애 당사자 운동을 떠올리게 됐다. 여성들처럼, 정신장애 당사자들은 사회의 억압과 편견과 차별을 당해왔다. 이로 인해 사회적 불이익을 받지 않고자 병을 숨길 수밖에 없지만, 일부 소수는 당사자 운동을 하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자주 등장하는 조현병 관련 범죄 뉴스, 특히 환자에 의해 정신과 의사가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하면, 그동안 해 왔던 운동과 목소리는 수포로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마치 워마드와 메갈, 성체 훼손으로 모든 페미니즘 운동이 평가절하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사실 나 역시, 정신장애인들의 당사자 운동이 지금 당장, 큰 성공을 거둘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 사회의 편견과 차별은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나 존재해 왔고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쉽게 포기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주저한다면 편견과 차별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그래서 더욱 목소리를 내려 한다. 마치 내가 혜화역 시위 현장에서 충격을 받고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처럼, 누군가는 정신장애인들의 목소리를 듣고 조금이나마 우리들의 인권과 권리를 위해 관심을 갖게 될 것이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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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d 2020-09-17 10:32:18
사회를 바꾸는 건 설득과 협력이지 혐오의 힘이 아닙니다. 소수의 혐오로 다수의 혐오를 이길 수는 없죠.

이호인 2020-09-16 23:08:00
정신장애 혐오에 반대한다는 사람들이 혐오가 넘쳐나는 혜화역 시위와 워마드도 옹호하시네요 박종언 기자는 극우인사 지만원도 옹호했고요. 실망감이 가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