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 언론 보도 가이드라인 시급히 만들어져야”
“정신장애 언론 보도 가이드라인 시급히 만들어져야”
  • 김근영 기자
  • 승인 2020.09.10 2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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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인은 위험하다는 편견에 기댄 기사가 편견 재확산시켜
정신장애는 삶의 한 요소일 뿐…언론이 낙인 조장 말아야
정신질환 기사, 긍정보다 부정 뉴스가 압도적으로 많아
범죄와 정신장애 연관 짓는 취재 방식 바꿔야

제13회 장애인 자립생활의 날 기념 2020 자립생활(IL) 컨퍼런스가 9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렸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가 주최한 이번 컨퍼런스는 ‘정신장애 언론 표현 문제와 해결 방안’을 주제로 비대면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주제 발표를 맡은 박종언 <마인드포스트> 편집국장은 “신체장애는 장애를 극복한 장애인으로 조작될 수 있지만 이성이 결여된 정신장애인은 그가 극복할 수 있는 주관적·객관적 대상은 없다”며 “이 경우 남는 것은 오롯이 ‘범죄’의 주체로만 구성된다”고 말했다.

박 국장은 “정신장애에 대한 두려움은 집단적으로 동일한 감정”이라며 “한 번도 접해 보지 못한 특정 장애, 그것도 이성이 훼손된 정신장애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는 건 너무나 당연한 감정”이라고 분석했다.

이 같은 두려움에 기댄 기자의 글쓰기가 정신장애에 대한 혐오와 차별, 배제를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박 국장은 “이 세계의 모순과 억압의 구조는 너무나 강력해서 이 모순은 결코 스스로 모순을 해결하지 못한다“며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기자에 의지하고 그들이 약자에게 고통을 주는 세계를 바꿔주기를 희망하게 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그 기자가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을 옹호하지 않고 더 깊은 낙인을 찍고 편견을 생산한다면 우리는 기자에게 걸었던 희망을 철회한다”며 “이는 국가가 자신의 생명을 보호해주지 못할 때 국가와 개인이 맺었던 계약을 파기하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전했다.

박 국장은 “정신장애 환자는 위험하고 사건·사고를 저지르는 사회적으로 무가치한 존재들인데 이들이 사고를 치는 것은 공동체의 질서를 훼손하고 선량한 시민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준다는 전제 하에 기자는 기사를 작성한다”며 “시민은 그 기사를 읽고 공포를 재학습한다. 이 모순은 순환적 고리를 갖고 연결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사건사고를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를 바꾸려면 정신장애 관련 미디어 가이드라인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 국장은 “정신장애 보도 지침은 세계인권선언이 규범적 강제력을 갖지 않고 이념적 토대로 작동하는 것과 같다”며 “강제성은 없지만 인간의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삶에 끊임없이 소환돼 공동체의 발전을 사유하게 만드는 방식”이라고 조언했다.

윤삼호 장애인아카데미 인식개선교육센터 소장은 영국의 전국언론인연맹이 제작한 ‘정신건강, 정신병, 자살에 관한 책임 있는 보도: 언론이 실무지침’을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문명사회는 정신병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처벌해서는 안 된다”며 “정신적 고통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도움 요청을 주저하는 것은 낙인과 차별이 두렵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윤 소장은 “정신건강 문제는 그 사람의 삶의 한 요소일 뿐”이라며 “정신건강 문제로 사람을 정의하는 환원주의는 협소한 것이자 낙인을 조장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울증’, ‘정신분열자’ 같은 낙인을 찍는 언어가 아니라 ‘우울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 ‘조현병을 가진 사람’으로 표현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를 가지고 있는 사람(person with)’ 형식으로 보도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윤 소장은 “정신건강 문제를 가진 사람보다 정신건강 문제가 없는 낯선 사람에 의해 살해될 가능성이 13배나 높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에 따르면 상당수 사람들(63%)이 정신병이 폭력과 관련이 있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치료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영국 전국언론인연맹 실무 지침을 소개했다.

윤 소장은 “그럴 경우 더 긍정적인 각도로 기사를 쓸 수 있다”며 “언론이 회복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조언을 보도하면 당사자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권고했다.

또 “치료 가능성에의 초점은 사실을 맥락화할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의 정신건강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며 “보도 전에 정신병과 정신건강 돌봄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승연 가톨릭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강사는 지난 2017년 진행한 지역사회 정신장애인 현황 조사에 대한 보고서를 중심으로 발표했다.

송 강사는 “정신질환 관련 기사 목적을 분석했을 때 정보 제공보다는 사건 보도가 57.3%로 비중이 컸다”며 “주제별로 범죄 관련 기사가 58.5%로 가장 많았고 부정적 뉴스(34.1%)가 긍정적 뉴스(9.9%)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고 분석했다.

그는 “정신장애인이 스스로 결정을 하기에 무능하다고 보는 사회적 편견이 반영된 보도 패턴이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정신장애인을 폭력성, 비정상성으로 표현하고 구별은 전문가의 진단으로, 문제 해결은 약과 치료라는 제도를 통해 구성된다”며 “이는 정신질환에 대한 주류적 패러다임인 전문가들의 생의학적이고 ‘치료’ 담론 신화를 재생산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는 결국 당사자는 정신장애 담론에서 주체가 아닌 변방에 머무르게 되고 치료의 대상인 ‘타자’로 명명되면서 배제된다”고 분석했다.

송 강사는 “당사자의 관점, 당사자의 입장, 당사자의 목소리가 보여지고 들려지는 것이 중요하다”며 “<마인드포스트>와 같은 당사자 언론은 기자의 관심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예리 미디어오늘 기자는 “기자는 취재를 하면서 입건돼 조사를 받는 피의자에 대해 경찰에게 정보를 캐내게 된다”며 “기자는 (피의자가) 정신장애 이력이 있는지를 물어본 다음에 이력이 있다고 하면 소위 기사의 핵심 포인트가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범죄와 정신장애를 연관 짓는 사고방식, 취재와 보도 과정 하나하나에서 기자가 오히려 적극적으로 (피의자의) 정신장애 여부를 확인하고 범죄와 연관 지을 근거를 취재해서 찾기도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토로했다.

김 기자는 또 “정신장애 이슈에 접근하는 관점은 왜 이런 편견이 생겼느냐를 따지고 들어가는 취재가 필요하다”며 “이 사회와 국가가 정신장애 이슈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더 밀착해 보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현장과 당사자에게 직접 접근하는 취재와 보도가 이뤄져야 한다”며 “정신장애인에 대한 주거 지원 문제, 강제입원과 시설화의 문제, 보호입원 심사의 문제 등을 점검하고 짚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기자는 자신이 쓴 기사가 정신장애인 당사자를 대하는 사회의 시스템에 어떤 일조를 하는지 모른다. 자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모른다”며 “결론은 언론이 ‘그래서는 안 된다’는 대항 프레임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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