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형 기자의 변론] 정신장애인 정체성 회복이 우리를 자유케하리니
[이관형 기자의 변론] 정신장애인 정체성 회복이 우리를 자유케하리니
  • 이관형 기자
  • 승인 2020.10.15 2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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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장애는 제도 개선됐지만 정신장애는 '제자리 걸음'
정신적 고통으로 사회 부조리에 대항 어려워...장애 특수성 이해해야
스스로 주눅들어 정신장애 당사자운동을 회피해
완치와 단약에만 집중하면 당사자로서의 삶 의미 못 찾아

약 100여 년 전인 일제 강점기부터 산업화를 거쳐 지금까지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대한민국 사회에서의 장애인에 대한 인권과 인식은 조금씩이나마 점차 개선돼 왔습니다. 일본 총독부는 장애인을 복지의 대상이 아닌 격리와 감금 및 친일화 수단으로 정책을 만들어 왔습니다. 1930년대에는 우생학마저 확산돼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흘러, 최근에는 장애인에 대한 법과 제도는 물론, 인권과 인식에 대한 개선의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1989년 장애인복지법 개정과 장애인고용촉진법 제정을 위한 투쟁을 시작으로 장애인 이동권, 당사자주의, 자립생활운동까지 장애인을 위한 운동이 이어졌습니다.

이를 통해 2000년대 이후에는 장애인연금법 제정, 장애인차별금지법, 활동보조 법제화, 발달장애인지원법, 장애등급제 폐지 등 수많은 운동이 성과를 냈습니다. 장애 인식개선을 위해서도 장애인고용공단은 수많은 장애인 인식개선 강사를 양성 중이며, 이 교육은 4대 법정의무 교육으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장애 전체적으로 바라볼 때 신체장애 유형에 속한 장애인들의 삶과 인식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정신장애인의 삶과 인식은 과거보다 나아지고 있다고 말하기 쉽지 않습니다. 과거 형제복지원, 장항수심원, 염전노예 사건 같이 정신장애인들이 겪는 물리적 폭력은 예전에 비하면 나아졌을지언정 뉴스와 미디어의 영향에 따른 사람들의 편견과 시선, 배제 같은 사회적 차별은 오히려 심해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에서 발간한 ‘2019 장애인경제활동실태조사’에 따르면 15세 이상 정신장애인의 고용률은 11.6%로 전체 장애유형별 고용률 중 최하위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재단

우리나라 정신장애인 등록 인구수가 10만 명이 넘는 상황에서, 등록을 하지 않은 당사자 수까지 합치면 그 수는 결코 적다고 볼 수 없습니다. 여러 언론은 대한민국의 실질적 조현병 환자 수가 5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측하는 기사를 발표해왔습니다. 이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치입니다. 하지만 다른 유형의 장애 당사자운동에 비해 정신장애 당사자운동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앞에 나서서 정신장애 당사자운동을 하는 단체와 개인은 전체 당사자에 비하면 극히 소수에 불과하죠.

열 사람의 당사자가 한 걸음씩 전진한다면 좋겠지만, 한 사람의 당사자가 열 걸음씩 전진해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다시 말해, 50만 보를 전진하기 위해 50만 명의 당사자가 한 걸음씩 나아가면 좋겠지만, 50여 명의 당사자들이 만 보씩을 걸어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처럼 정신장애 당사자운동에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지 못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정신적 고통과 증상에 따른 제약이 사회에 맞서는 데 어려움을 갖게 합니다. 우울감, 불안감, 초조함은 물론 망상과 환청, 환시, 환각에 시달리는 고통은 당장 주어진 학업과 일조차 감당할 수 없게 만듭니다.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 씻고 어디론가 향해 바쁘게 걸어가는 것, 밤마다 잠드는 것조차 너무나 버겁고 힘듭니다. 이런 상태에서 사회를 향해 인권과 목소리를 외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운 좋게 증상이 완화되고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건강을 되찾은 이후에는 사회적 장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학업과 진학, 취업과 근무, 연애와 결혼에 있어서 정신장애라는 낙인은 우리를 어떤 활동도 할 수 없게 만듭니다. 광화문에 나가 피켓을 들고 외치는 것도, 유튜브나 팟캐스트를 통해 목소리를 내는 것도, 장애 인식개선 강사로서, 장애 운동가로서 활동을 하는 것도, 사회적인 불이익을 각오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정신장애인이 당사자운동을 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정체성의 문제에 있습니다. 내가 나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보고 인식하느냐의 문제죠. 우리는 남들과 다른 형태로 아픈 것일 뿐, 엄밀히 따지면, 약자도 아니고 소수도 아닙니다. 누군가의 밑에 위치한 것도 아니며, 타인의 시선으로 인해 죄책감을 느끼거나 숨어 살아야 할 죄인도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를 주눅 들게 만들곤 합니다.

많은 당사자들이 자신의 인생을 의사나 병원에 맡기려 합니다. 그래서 더 유명한 의사, 더 큰 병원을 수소문하죠. 물론 치료나 약물에 있어서는 의사와 병원을 신뢰하고 따르는 것이 필요합니다. 의학적 판단에서 보다 전문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 진로나 방향, 결혼 문제 같은 인생의 주도권마저 의사에게 맡기고 의존하다보면 결국 주체적인 자세로 살아가기 힘듭니다.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삶은 개인의 주도권, 더 나아가 정신장애인이라는 집단의 권익을 주장하는 것을 더더욱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또한, 병의 완치와 단약에 모든 에너지를 쏟는 것도 당사자운동을 방해합니다. 현재 겪는 불행과 고통이 병 때문이고, 이 병만 사라진다면 내 삶이 180도 변화될 거란 소망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물론 병이 낫고 정신적 건강을 되찾는 것은 매우 행복한 일입니다. 그러나 완치와 단약에만 집중하다보면 현재 당사자로서의 내 삶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게 됩니다. 어서 빨리 이 병에서 벗어나고 싶은 바람만이 내 마음을 지배하죠. 그렇게 단약과 완치에 성공을 하고 나면 과거의 나와는 작별을 하고 당사자로서의 정체성은 잃게 됩니다.

처음부터 병의 증상이 가볍거나 당사자 감수성이 적은 사람들도 당사자 운동에 뛰어들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실제로 제가 메일과 전화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소통했던 조현병 환자들 중에는 서울대 학생들도 있었고, 대기업 직원도 있었고, 유학생들도 많았습니다. 모두가 자신의 역할을 다하며 사회에서 어느 정도 안정된 자리를 잡고 있었죠.

이는 고무적인 일이고, 그들이 앞에 나서서 당사자들의 권익과 인식 개선을 외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당사자운동의 필요성이나 의미를 갖는 건 쉽지 않습니다. 취지에 공감하더라도 굳이 자신을 드러내서 현재의 사회적 위치와 경력을 상실할 위험을 감당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정신장애 당사자들에게 정체성은 다른 장애 유형이나 다른 집단과는 다른 특수성이 있습니다. 다리가 불편하거나 앞이 보이지 않거나 들을 수 없는 신체장애인은 명확한 정체성을 갖기 쉽습니다. 휠체어나 보조기구처럼 그들은 대표성을 갖고 동시에 장애 소속감을 갖게 되니까요. 동시에 연대하는 것도, 다른 일원의 차별과 고통에 공감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더 나아가 과거 흑인 운동이나 여성들의 미투 운동이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던 것도 그들 집단에는 확실한 정체성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아무리 시간이 흐르고, 어떤 변수가 발생하더라도, 그들은 흑인이고 여성이라는 확실한 사실이 변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정신장애는 갑자기 발병되기도 하고 회복되어 벗어날 수 있으며, 눈에 보이지 않아 숨길수도 있고, 스스로 인정할 수 있지만, 끝까지 부인할 수도 있는 특수성을 갖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개인 스스로 확고하고 명확한 정체성을 갖는 것이 쉽지 않죠. 이러한 상황에서 개인들이 모여 연합하고, 동질성과 연대의식을 느끼며, 당사자 운동으로 나아가는 것이 어렵습니다.

따라서 당사자들에게는 올바른 정체성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해진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에게 병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나는 당사자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 합니다. 대한민국 사회가 말하는 위험하고 불쌍한 정신장애인 혹은 조현병 환자로서의 정체성이 아닌, 나 스스로의 고민과 경험을 통해 바른 정체성을 확립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올바른 정체성을 갖는다면 꼭 앞에 나서지 않더라도, 광장에 나가 피켓을 들지 않더라도, 우리는 저마다의 당사자운동을 할 수 있는 방법과 능력이 보일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소수의 당사자가 여러 걸음을 힘들고 외롭게 나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는 50만 명의 당사자들이 저마다의 방법으로, 저마다의 길과 방향으로 아주 조금씩, 단 한 걸음씩 만이라도 전진하여 나아가길 희망합니다.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한 걸음이 자신의 삶을 더 가치 있게, 세상을 더 아름답게 변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문헌

책 『장애이론 (장애 정체성의 이론화)』, 조한진 외(2020), 학지사

책 『근대 장애인사』, 정창권(2019), 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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