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지원가, 교육 때는 회복의 산 경험자지만 현장에서는 보조자 역할에 불과해”
“동료지원가, 교육 때는 회복의 산 경험자지만 현장에서는 보조자 역할에 불과해”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0.10.19 22:30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월급 받는 동료지원가는 소수…소액의 활동비만 지급돼
직장 내 실무자와의 갈등으로 그만두는 사례 늘어나
동료지원가 대하는 태도가 당사자를 대하는 바로미터
현 단계 동료지원가 교육과정은 ‘관리’에 초점...개선 필요
공급자 중심 전달체계에서 이용자 중심으로 재편돼야
자립생활과 인권 바탕의 정신건강 종합대책 논의돼야
당사자들의 심리적 불편 이해하기 위한 교육 필요
동료지원가는 회복 돕는 시스템 만들도록 실무자 변화시켜야

정신장애인 동료지원가 활동이 주목받고 있다. 동료지원가 제도는 먼저 치유된 정신장애인이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동료를 돕는 경험에 기반한 치유 역할을 의미한다. 의료 서비스 제공자인 전문가들의 영역과는 독립해 치유와 관련한 정신장애인의 고유한 가치를 담고 있다.

지난 10여 년에 걸쳐 각 지역과 민간단체에서 산발적으로 진행해온 동료지원가 제도는 현재 정신장애인 단체, 국립정신건강센터 등에서 조금씩 그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다.

그렇지만 현장에서는 동료지원가의 직위와 책임 범위, 실무자와의 갈등, 동료지원가의 재발 문제 등 복잡한 논의들이 뒤섞여 있다. 정신건강 서비스 전달체계에서 동료지원가의 주체적 참여가 무시되고 있다는 지적과 더불어 효율성과 성과만을 따지는 현재의 정신보건시스템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 같은 동료지원가의 역할과 경험, 전망을 모색해 보는 동료지원가 토론회가 송파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 주최로 19일 송파 한국광고문화회관에서 열렸다.

발제를 맡은 동료지원가 권혜경 씨는 “현재 동료지원가로 월급을 받는 이들은 소수에 불과하다”며 “그 외는 약간의 활동비만 받고 일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직장 내 인간관계 문제로 동료지원가 활동을 중도에 그만두는 사례도 늘고 있다는 지적이다.

권씨는 “의논할 사람이 없어 고립될 때 도와줄 수 있는 선배 동료지원가가 적고 동료지원가협의체 등 지원 단체의 부재, 지지받을 수 있는 연대 단체와의 연결고리가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교육 때는 회복의 산 경험자, 당사자의 롤 모델 등으로 배웠지만 현장에서는 보조자 역할이 대부분”이라며 “동료지원가의 필요성에 대해 현장 실무자와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정신보건 시스템 안에서 동료지원가를 대하는 태도는 바로 당사자를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한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며 “동료지원가의 협업 현장에서 일어나는 차별 사례와 좋은 사례를 모아 책으로 만들 것도 제안한다”고 밝혔다.

더불어 “‘상처입은 치유자’로 딛고 일어나서 우리의 목소리를 내고 문화예술로 표현하고 연대감을 키워야 한다”며 “새로운 치료공동체 패러다임을 위해 당사자가 회복의 주체임을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씨는 동료지원가 당사자들을 향해 조언도 내놓았다. 그는 “동료지원가로 일하다가 힘이 들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잠깐 쉬어가거나 그만두어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고 전했다.

또 “취업을 하게 되면 제발 열심히 하지 말길 바란다”며 “한 개인이 잘하는 것보다 조직의 흐름과 문화를 익히는 것이 더 중요하다. 무엇보다 지혜가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의사나 간호사, 사회복지사는 직업을 갖기 위해 많은 시간과 실습 등 고도의 훈련 기간을 가진다”며 “동료지원가도 당장 정규과정이 없다고 절망하지 말고 사례공부를 하고 훈련을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역시 발제를 맡은 가톨릭대학교 사회복지학 대학원생인 이한결 씨는 동료지원가 교육에서 당사자의 목소리가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립정신건강센터의 표준화 교육과정은 체계화돼 있지만 ‘관리’에 초점을 두고 있는 한계가 있다”며 “약물 관리에 방점을 두고 있어 실제 동료들의 경험은 잘 다루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동료지원가의 장점을 잘 발현할 수 있는 근로환경이 중요한데 실무 현장은 이를 발현하기 위한 전제조건이 갖춰지지 않았다”며 “전제조건은 평등한 권력 분배에서 출발한다. 현재 동료지원가에게 어떠한 권한이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기존의 전달체계로는 당사자의 권익을 옹호할 수 없고 동료지원가의 역할은 보조적 역할에 국한돼 있다”며 “전문가와 공급자 중심의 전달체계에 당사자와 이용자 중심의 전달체계가 새롭게 재편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전달체계가 의료전달체계와 재활전달체계로만 구성돼 있는데 대안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동료지원가가 법적 권리를 갖고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씨는 또 “당사자 단체가 교육협의회를 구성해 동료지원가 교육 과정을 개발하고 보급해야 한다”며 “이렇게 할 때 동료지원가에게 가치와 철학을, 실제 현장에서 활동하는 동료지원가의 경험을 전승할 수 있고 연대 역시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안적 전달체계 안에서 동료지원가가 소진될 경우 합리적 조정을 통해 업무시간을 조율하고 편하게 상담을 받아야 한다”며 “그 후 다시 현장에 복귀해 동료지원가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김선윤 은평늘봄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어떤 전문가의 조력보다 가족과 동료의 지지, 정신장애인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정신장애인도 경험을 동료들과 공유하고 정보를 나눔으로써 상호보완하고 증상 또한 완화된다”고 말했다.

또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면서 동료간 지지를 주고받음으로써 자기 효능감과 역량이 향상될 것”이라며 “이 모든 것의 중심에 장애인 자립생활이 보장돼야 하며 자립생활 이념인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이 주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토론시간에 강인영 사람사랑양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팀장은 “자립생활센터가 당사자 활동의 장으로서 갖는 장점은 당사자의 가치 체계의 변화, 장애의 다양성, 당사자를 대하는 센터 상근자들의 자세”라고 말했다.

강 팀장은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자립생활 이념을 바탕으로 다른 장애유형과 소통해 자신의 장애를 수용하고 긍정하는 과정을 거친다”며 “다양성 안에서 성장을 경험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또 “신체장애인들의 활동가로서의 삶은 동료지원 활동에 강력한 동기를 주고 차별과 억압의 경험은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에게 동료의식을 심어준다”고 전했다.

이 경우 자립생활센터의 상근자들 역시 당사자의 장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당사자의 속도와 장애 특성, 증상에 맞춰 지원하려는 자세를 갖게 된다는 분석이다.

강 팀장은 “당사자의 상태에 주목하는 패러다임을 넘어 자립생활 이념과 인권을 바탕으로 정신건강 종합대책이 논의돼야 한다”며 “치료와 서비스 과정에 당사자의 선택권과 자기결정권이 보장되고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정신건강 지원 체계가 촘촘히 구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혜경 한울정신장애인권익옹호사업단 당사자 활동가는 “동료지원 활동을 하며 어려운 점은 자립생활주택 입주자들이 어려움은 없는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에 대해 표현을 잘하지 않는다는 점”이라며 “자신의 욕구도 잘 모르는 상황에서 표현도 적극적으로 하지 않아 대화를 통해 직감적, 또는 저의 경험에 의한 추측으로 대체해야 할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이어 “잦은 만남과 깊은 상담으로 라포(상호 공감)가 형성됐다고 생각돼 만나다 보면 어느새 제자리인 모습을 보게 된다”며 “상담을 하다 보면 간혹 감정이 전이돼 힘들어지는데 그때는 저 스스로가 재발할 것 같은 두려움도 생긴다”고 말했다.

김 활동가는 “전문가와의 상담에서 깊은 본질적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지만 일반 사회에서는 그 이야기가 가치가 있음에도 드러내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사회에서 허용되는 말과 당사자가 털어놓는 고민거리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로 무시돼 버린다”고 말했다.

그는 따라서 “당사자 입장이 돼 바라보는 세상과 당사자 처지 등이 고려돼야 하고 공감을 받기 위한 서로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활동가는 “전문가들이 자신의 관점으로 당사자를 대하는 오류를 피하기 위해서는 당사자의 심리적 불편함을 이해하기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문가들이 보고 느끼는 관점과 다르게 당사자들은 감정적 상처를 많이 받았고 부정적 감정 경험이 많다”며 “말 한 마디에 심한 상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사전 교육을 통해 인지하고 당사자와 전문가의 갈등과 마찰을 미연에 방지하고 조화롭게 협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근희 국립정신건강센터 사회사업팀장은 “올해 8월부터 국립정신건강센터 동료상담실이 운영되고 있다”며 “동료상담에 대한 당사자, 가족의 요구가 높음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국립정신건강센터의 동료지원가 표준화 교육 과장이 체계적 ‘관리’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의견에 대해 “실제 동료들의 경험에 대한 충분히 다뤄져야 한다는 제안은 교육 과정 보완에 참고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동료지원가의 정의는 경험의 전문가이지만 교육받고 훈련된 경험의 전문가가 돼야 한다”며 “전문가가 변화돼야 할 많은 부분이 있고 더불어 동료지원가도 동료상담의 전문가로 같이 성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사라 송파어우러기(사회복귀시설) 사회복지사는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 송파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가 서울 외 지역 당사자들까지 높은 수준의 교육이 제공되도록 국립정신건강센터의 표준화 교육 과정 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국립정신건강센터와 협의회를 조직해 동료지원가에게 중요한 가치와 철학, 경험을 전승해야 하며 양성교육 이후 보수교육 개설까지 주도적 참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황 복지사는 정신건강 현장에서 동료지원가의 활동으로 일어나는 당사자주의 실현을 데이터 자료로 축적할 것도 제안했다.

그는 “정신건강 서비스 현장에서 동료지원가들이 내는 성과를 자료로 축적해야 한다”며 “이는 당사자라는 경험의 전문성을 인정받는 인력으로서 공공기관과 민간 영역까지 활동을 확장할 수 있는 근거 자료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동료지원가와 실무자가 협력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동료로서 알아가는 과정과 장치가 필요하다”며 “송파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가 정신건강복지센터 실무자들에 동료지원가를 알리는 사전 교육을 주관하면 동료지원가가 정신건강 서비스 현장에서 받는 괴리감을 감소시키고 소속감을 높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또 “회복의 산 경험자, 당사자의 롤 모델이 되고자 취업을 했지만 업무와 환경에 익숙해지기까지 불안과 스트레스가 고조되고 자신을 관찰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며 “이때 다른 동료지원가가 정기적으로 방문상담을 하면 동료지원가와 실무자 모두 소진을 방지할 수 있게 된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동료지원가는 회복의 모델로써 회복하고 있는 사람을 돕기 위한 정신건강시스템을 만들도록 실무자를 변화시켜야 한다”며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동료지원가가 다양한 정신건강 현장에서 일할 수 있는 역량과 기회를 제공하는 동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토론회는 사회복지법인 서초열린세상과 한울정신장애인권익옹호사업단이 공동주최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장우석 2020-10-20 08:15:57
좋은 내용입니다~^^
저도 국립정신건강센터 동료지원가양성교육 강연자이자 자문회의 참여자로서 늘 동료지원가분들을 응원하고 지지합니다.
동료지원가분들이 자신들의 주체성과 자리매김과 전문성과 협업을 잘 감당하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