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인은 “사고를 치거나, 사고를 당하거나” 뿐일까?
정신장애인은 “사고를 치거나, 사고를 당하거나” 뿐일까?
  • 임형빈
  • 승인 2018.07.17 19: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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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 관련 사고 나면 사회는 일제히 당사자 비난
두려움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정신장애인 독립 못해
심리적 위축 때문에 ‘커밍아웃’도 못해
국가가 정신장애인에 대한 복지 인프라 촘촘히 만들어야

최근 언론들이 조현병을 비롯한 정신질환에 대해 속속 보도를 하고 있다.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 상위에는 한때 조현병이 올라오기도 했다.

지난 2월 정신질환을 가진 아내가 병원 치료를 거부하자 국책연구원 남편이 홧김에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피해자인 아내는 20년 전부터 조현병을 갖고 있었다.

남편은 고심 끝에 아내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 했지만 아내는 “너가 가라, 집에 들어오지 마라”며 완강히 입원을 거부했다. 약을 먹는 것도 거절해 이웃과 갈등을 빚고 회복의 경계를 넘어선 지 수년째였다. 남편은 아내를 달래기도 하고 겁을 주기도 했으나 헛수고였다.

결국 그는 아내를 죽을 때까지 이렇게 관리하면 가정도 지켜낼 수 없다는 과중한 압력에 견디지 못해 아내를 목졸라 살해했다. 법원은 7월 “아내로 인해 정신적 스트레스가 누적됐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아내의 생사를 결정할 권한은 없다”며 징역 5년형을 선고했다.

다른 사건도 있다. 정신장애를 가진 남편은 아내가 자기가 먹는 약에 수면제를 가장한 다른 약을 먹여 자신을 살해하려 한다는 망상에 시달려 아내를 살해한 사건이다. 그는 수십 년째 조현병 당사자로 살았고 그를 수발하는 건 아내밖에 없었다. 남편은 아내가 자신을 버리고 도망가지 않나 전전긍긍하며 아내를 의심해왔다고 한다.

이 두 사건을 보더라도 정신장애인은 일방적으로 살인을 하거나 살인을 당한다. 비정신장애인들은 당사자들을 제대로 치료하지 않는다며 가족을 비난한다. “조현병자들을 격리시켜야 한다”는 분노와 “조현병자들은 언제든 터질 수 있는 범죄자”라는 조소는 조현병 당사자들을 자신의 정체성을 혼란스럽게 한다.

자신이 저지른 사고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장애인의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죄인 아닌 죄인으로 사회로부터 비난을 받아야 한다.

사회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던 조현병 당사자들은 자극적 소재를 찾는 언론에 의해 순식간에 매도당한다. 사회적 혐오 논리가 강화되면 당사자들은 잘 다니던 직장에서 쫓겨나고 독립하려던 의지도 사라져 버리게 된다.

혐오 논리 강화되면 피해는 고스란히 정신장애인의 몫

정신건강복지센터나 낮병원 등에서 재활프로그램을 하며 독립을 꿈꾸지만 사회의 싸늘한 시선 앞에 나서면 재기의 엄두도 내지 못한다.

가족들도 이런 사건사고와 집단적 비난에 지쳐가기는 매한가지다. 정신장애인과 가족은 사회로부터 지지와 온정의 시선을 받지도 못한다. 모두 격리시켜야 할 위험한 타자들이기 때문이다.

조현병 당사자들은 ‘사고를 치거나 혹은 사고에 당하거나’의 시선에 놓여 있다. 조현병 당사자를 비롯한 정신장애인들이 스스로 독립하는 것에 사회는 인색한 눈으로 바라본다. 그들이 재기를 할 수 없는 것이 더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가족과 정신장애인 당사자와의 협력도 이뤄지지 않는다. 조현병이라고 판명이 나면 당사자들은 초기에 강력히 이를 부인한다. “왜 내가 정신질환자야? 나는 정상인이야. 치료는 필요 없어”라며 치료를 강하게 거부한다.

가족은 지친 나머지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을 시킨다. 당사자는 가족이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해 그 앙금이 남아 퇴원 후에 가족과 심하게 다투게 된다.

구 정신보건법은 정신과전문의 1인의 진단과 가족 1인(혹은 2인)의 동의가 있으면 아무런 죄 없이 인신이 구속돼 정신병원에 강제입원 당해야 했다. 이 강제입원 조항은 가족 내 돈 문제를 비롯한 여러 범죄의 수단으로 악용된 적이 많았다.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은 이 같은 보호자에 의한 강제입원의 폐단을 막기 위해 정신과전문의 2인의 일치된 소견과 보호의무자 2인의 동의를 법적으로 지키도록 했다.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를 두고 입원 한 달 이내에 입원 당사자나 위원장이 이 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이 경우 서면으로 검토되거나 조사원이 직접 해당 병원으로 가 대면조사를 하게 된다. 입원의 위법성에 대해 의료적 안전장치를 만든 것이다.

하지만 이 법이 2016년 제정되면서 대한신경정신의학회를 비롯해 의료계는 최소 1만 명 이상의 환자들이 집단 퇴원해 지역사회에서 범죄를 일으키는 등 위험한 처지에 놓일 것이라며 이 법의 제정을 반대한 바 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퇴원자 수는 미미한 수준이었다.

심리적 위축 때문에 ‘커밍아웃’도 못해

퇴원한 당사자들도 퇴원만 했을 뿐 독립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된다. 낮병원이나 정신건강복지센터 등에 다녀도 효과를 미미하다. 사회적 비난이 일면 재활할 용기마저 빼앗겨 버린다.

조현병 당사자 K씨는 “아무리 독립하려고 해도 주위의 시선이 따가워 용기가 나지 않는다. 동네 마트에서 단순 노동을 하려고 해도 뒤통수가 뜨겁게 느껴질 때가 많다”며 “난 커밍아웃도 안 했는데 심리적으로 늘 위축돼 일할 의욕이 안 생긴다”고 토로했다.

K씨뿐만 아니라 다른 조현병 당사자들도 사회에서 독립을 꿈꾸지만 잇따른 강력사건 여파로 주변의 왜곡된 시선에 눌려 재기를 포기하기도 한다.

또 다른 조현병 당사자 Y씨는 몇 년 전만 해도 수동적인 삶을 살았다. 병원에 갈 때 작은 용기를 내서 남에게 들킬까봐 병원을 몰래 다녔고 집에 와서는 자기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나오지 않았다.

그런 그가 가족과 주위의 배려와 지지로 낮병원에 다니게 되고 거기서 당사자들과 교재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긍정적으로 보게 됐다. 사례담당자는 오랜 시간 Y씨를 격려했다. Y씨는 지금 낮병원에서 보조강사로 일하고 있다.

Y씨는 외출이 자유로워지면서 연락이 끊긴 선·후배들을 먼저 찾게 됐다. 모두가 그를 심각한 조현병 환자로 보았는데 Y씨 스스로 먼저 안부를 묻고 손을 내밀자 한 명, 두 명 나서서 그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Y씨는 “처음에 병원의 프로그램이 만사 귀찮았다”면서도 “사례담당자 선생이 먼저 다가와 주었고 여러 가지 행사를 같이 만들어 갈 때 내 안에 다른 잠재력이 있다는 것을 느껴 외부적으로 활발하게 바뀌어 다른 삶을 살게 됐다”고 말했다.

국가가 나서야…복지와 치료 인프라 촘촘히 만들어야

조현병을 비롯한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은 어떤 경우에 피해자가 되었다가 어떤 경우에는 피의자가 돼 버린다. 이들이 피해자와 피의자가 되는 것은 이들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이 아직 미비한 데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급성기의 당사자가 자신의 병을 인식하지 못하고 길거리에서 묻지마 폭행을 가할 수도 있다.

최근 대한조현병학회는 “조현병 환자의 범죄는 일반인 범죄에 비해 훨씬 적지만 크게 이슈화하는 문제로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성명서를 냈다. 이들은 “‘외래치료명령제’를 도입해 치료를 강화해야 하지만 우리나라는 인력과 시스템 부족으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조현병 당사자들은 사건사고에서 피해나자 피의자가 된다. 그러나 사회적 편견은 이들이 항상 ‘피의자’라는 고정된 시선을 갖고 있어 독립하려는 마음과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려는 대다수 당사자들의 의욕을 끊기도 한다.

아직 늦은 건 아니다. 국가가 정신장애인의 복지와 자립을 위한 체계적인 보호망을 만들어주고 정신장애인들이 자신의 주거에서 생활하고 일자리를 찾아 일을 하고 친구와 같은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하게 된다면 사회는 이들을 더 이상 배제해야 할 타자가 아닌 사회의 구성원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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