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형 기자의 변론] 시가 치유의 수단이 된다는 것..."나는 그것을 믿는다"
[이관형 기자의 변론] 시가 치유의 수단이 된다는 것..."나는 그것을 믿는다"
  • 이관형 기자
  • 승인 2021.02.23 22: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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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에 괴로울 때 밤새 시를 써...살고 보자는 마음으로 시에 접근
남들은 안 된다고 했지만...실패자로 낙인 찍히고 싶지 않아
시를 통해 자기 발견하고 관계를 회복하는 힘 느껴
"모든 인생은 책으로 낼 만한 충분한 가치 있어"
출처 :  pixabay
출처 : pixabay

 

과거에는 밤이 오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알 수 없는 불안함과 우울감이 제 몸을 사로잡았죠. 머릿속에서는 과거의 상처와 아픔이 떠올랐습니다. 가끔은 슬퍼하고, 가끔은 분노했죠.

몇 알의 약만으로는 내면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약과 함께 물 대신 한방음료를 매일 마시기도 했죠. 때로는 밥통과 냉장고를 열어 밥과 반찬들을 뱃속에 꾸역꾸역 집어 넣었습니다. 포만감을 통해 잠들기 위해서였죠.

가끔은 잠을 달라고 기도도 하고,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애원도 했습니다. 그렇게 겨우겨우 잠들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도저히 잠이 오지 않을 때가 있었습니다. 우황청심환을 먹고, 밥으로 배를 채우고, 기도를 해도 도저히 잠이 오지 않을 때가 있었어요.

온갖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들이 제 머리와 심장을 지배할 때가 있었죠. 그런 날은 밤을 꼬박 지새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정이 지나 새벽이 되고, 아침이 밝아오기까지. 전 살아있는 시체처럼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러다 제 생각과 감정을 도저히 견디지 못하면, 침대에서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아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시를 잘 쓰고, 못 쓰고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예술성과 문학성은 염두에도 두지 않았습니다.

제가 시를 쓰는 목적은 살기 위해서였죠. 아름답고 감동적인 내용이건, 어둡고 부정적인 내용이건, 일단 살고 보자는 마음뿐이었습니다. 내 안에 있는 그 생각과 감정들을 밖으로 표출하지 않고 속으로 담아 둔다면, 더욱 괴로울 것 같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시를 통해 그것들을 꺼내야만 했습니다.

출처 : <바울의 가시>

 

이렇게 제 안의 생각과 감정을 시를 통해 표출하고 나면 마음이 좀 나아졌습니다. 한 글자, 한 글자 많은 생각을 하며 썼던 것 같습니다. 지웠다가 고치고 다시 쓰다보면 어느덧 이른 아침 해가 밝아왔으니까요. 그리고 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기뻐했습니다. 지옥 같은 새벽의 시간들이 지나 아침이 왔으니까요. 그렇게 전 여러 날의 새벽을 시를 쓰며 버텨왔던 것 같습니다.

물론, 늘 어둡고 부정적인 시만 쓴 건 아닙니다.

조현병 당사자로서 세상이 절 편견과 차별의 눈빛으로 바라볼 때, 당당히 맞서고 싶었습니다. 물론 현실은 녹록치 않았죠. 20대의 제 삶은 실패와 좌절의 연속이었습니다. 대학교 학점은 4.5 만점에 2.6점으로 학과에서 거의 꼴찌에 가까웠습니다.

대학 졸업 후 회사에 취업했지만 수습기간만 겨우 채우고 퇴사하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다보니 20대 후반에는 방안에서 은둔생활을 했었습니다. 일주일에 하루는 상담을 받기 위해 센터에 가고, 하루는 약을 타오기 위해 병원에 가고, 주말은 교회에 가는 것이 제 외부 활동의 전부였습니다. 일주일에 3~4일 집밖에 나가는 것조차도 힘들었죠.

그저 독한 약에 취해 집에서 누워 지내는 생활을 반복했습니다. 하루 12시간씩 약에 취해 잠만 자는 저를 보며 주변 사람들은 한심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나약하고 의지력이 약한 사람으로 말이죠. 그래도 전 희망을 놓치 않았습니다. 다시 학업과 취업에 도전하고 싶었고, 언젠가 제 이야기를 책으로도 내고 싶었습니다. 물론 들려오는 반응은 모두 부정적이었습니다.

“니 나이에 도전하기엔 너무 늦은 거 아니야?”

“하다가 금방 힘들다고 관둘 것 같은데?”

“넌 성공한 사람도 아닌데, 자서전을 쓴다고?”

그래도 전 제 자신을 실패자로 낙인찍지 않았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망 없다고, 금방 포기할 거라고 부정적으로 말할 때, 저는 제 자신을 믿었습니다. 할 수 있다고 말이죠. 이번에도 아무도 봐주지 않는 시를 쓰며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건, 나는 할 수 있다고 말이죠.

 

출처 : <바울의 가시>

그렇게 전 많은 일들에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시를 통해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혼자만의 다짐일 수도 있고요. 그리고 희망에 대한 끈을 놓지 않고 싶었던 마음으로 시를 쓴 것이기도 합니다.

시를 쓰는 조현병 당사자는 저뿐만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인드포스트>에는 다양한 당사자들의 시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또한 당사자들이 직접 쓴 시집도 출판되고 있고요. 이러한 당사자들의 문학 창작 활동에는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자신이 느꼈던 특별한 경험과 솔직한 생각들. 그리고 다른 당사자들과 공유하고 나누는 과정이 회복에 큰 도움이 될 거라 믿습니다.

당사자들의 문학 창작 활동의 유익성은 논문을 통해서도 증명된 바 있습니다. 한국기독교상담학회지 2020년 8월호에 실린 “만성조현병 환자의 시치료 경험에 관한 연구 : 소외된 자를 향한 기독(목회) 상담적 접근”라는 논문에서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만성조현병 환자의 삶의 연구’ 분석 결과, 연구 참여자들에게 드러난 심리적 양상은 부정적 정서와 부정적 자아상, 자기 소외 및 사회적 편견과 낙인에서 비롯된 낮은 자존감, 관계의 단절, 현실 왜곡 등을 겪으며, 희망의 부재에 기반한 무기력하고, 기능이 저하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들에 대한 시치료 활동으로서 시적 공간(poetic space) 안에서 시를 통한 상호작용, 집단원 및 치료자와의 상호작용, 시치료 프로그램의구체적 활동 등을 통하여 참여자들은 ‘위로’, ‘정화’, ‘전환’, ‘이해’, ‘소통’, ‘성장’, ‘희망’ 등의 치료 요인들을 경험하였고, 집단 시치료 경험의 의미들을 발견하였다. 참여자들이 경험한 시치료의 의미의 핵심을 요약하면, ‘시를 통한 자기 발견 및 관계의 회복’으로서 ‘트라우마 해소, 긍정정서 회복, 자존감 및 정체성 회복, 자기와 타인 이해, 관계의 개선, 현실 인식, 꿈의 발견’ 등을 경험하여 궁극적 의미로는 “자신의 삶을 향한 희망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논문은 이외에도 시치료에 대한 다양한 정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먼저, 미국시치료협회인 NAPT(The National Association for PoetryTherapy, 2019.4.12)에서는 시치료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습니다.

"시치료(poetry therapy)는 몸과 마음과 영혼을 섬세하게 배려함으로써, 건강의 다양한 국면들을 존중하는 총체적인 접근이다. 시치료는 주요 치료수단, 혹은 보조적 치료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 잘 훈련된 시치료사(poetry therapist)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문제를 규명하고 감정을 표현하도록 하며, 내담자들의 오래된 문제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언어예술(language arts)을 사용한다."

국내에서도 ‘시쓰기는 무의식의 세계를 찾아가는 모험’(이승훈,2011) 그리고 ‘문학치료는 문학을 통해 자신의 유사한 마음 속의 욕망을 드러내게 하는 수단인 동시에 치유의 수단이 된다’(변학수,2006)라고 여러 책들을 통해 정의된 바 있습니다.

시를 쓴다는 것은 당사자로 하여금,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긍정적인 자아 정체성을 확립해나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특히나 외부 세계에서의 부정적인 낙인과 편견, 차별에 맞설 수 있는 가장 건강하고 평화로운 무기라고도 말할 수 있죠. 또한, 당사자들이 자신의 병과 아픔을 스스로 치유해가는 과정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저도 스스로 시 쓰기를 통해 많이 회복됐고, 다른 당사자들도 시를 통해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 1인 출판사 대표로서 당사자분이신 김수진 님의 <고난의 그루터기>와 김정철 님의 <우리 푸른 가슴에>라는 시집을 출판하기도 했습니다. 가능하다면 더 많은 당사자들의 시집과 에세이를 출판해내고 싶습니다. 하지만 1인 출판사로서 시간과 자본이 부족하다보니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점은 늘 아쉽고 죄송한 부분입니다. 그래도 더 많은 당사자들이 자신의 작품으로 출판에 도전하시기를 기대하고 소망합니다. 문학 창작활동과 출판은 자신의 건강과 회복에 도움이 되니까요.

저도 제 자서전을 출판하기 전에 많이 망설였습니다. “나 같은 사람이 책을 내도 되는 걸까? 내 수필과 시가 그만한 가치가 있는 걸까?”

그때 저와 친분이 있던 출판계의 한 선배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인생은 어느 하나 빠짐없이 책으로 낼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그때 그 선배의 말 한마디가 제게 용기와 도전을 주었고, 출판을 결심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그 선배의 말에 동의합니다. 사람의 인생이란 건, 누구에게나 한 번뿐이고 매우 짧으며 금세 잊혀 집니다. 하지만 시와 수필을 통해 책으로 출판되어 사람과 사람을 통해 전해진다면, 우리의 인생이란 건 영원토록 남겨져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출처 : <바울의 가시>

 

참고 문헌.

김채석,and 오화철. "만성조현병 환자의 시치료 경험에 관한 연구: 소외된 자를 향한 기독(목회)상담적 접근." 한국기독교상담학회지 31.3 (2020): 123-173.

이승훈 (2011). 라캉으로 시 읽기. 서울: 문학동네.

변학수 (2005). 문학치료 (1판). 서울: 학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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