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은 빠져나올 수 없는 감옥이며 산 채로 죽어 묻혀야 하는 무덤이었다”
“시설은 빠져나올 수 없는 감옥이며 산 채로 죽어 묻혀야 하는 무덤이었다”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1.03.17 21: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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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시설장애인당·비마이너 정책 합동 토론회 개최
가짜·위성 정당이지만 장애 의제 알리기 위해 1월 창당
이동권·발달장애권리·여성장애인 권리 등 11개 의제 제시
정신장애 의제 배제돼…정신장애 특수성에 기반한 외연 확장해야

그의 목소리는 비장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장애인들이 죽어나가야 이 사회에서 탈시설을 받아들이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나 같은 사람들이 죽어나가야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게 될까요.”

그는 이렇게 말을 맺었다.

“시설은 죽음이 보여도 빠져나올 수 없는 감옥이며 산 채로 죽어 묻혀야 하는 장애인들의 무덤입니다.”

17일 탈시설장애인당과 비마이너가 공동 주최한 탈시설장애인당 후보자 합동 토론회가 서울 대학로 유리빌딩에서 열렸다. 위의 발언은 이 당의 조상지 후보가 토로한 내용이다. 조 후보는 강원도 철원의 장애인시설에서 10년 이상을 살았다. 500명이 넘는 그 시설의 장애인들은 늘 배고팠고 물을 하루 세 번만 줘서 목이 말랐고 난방은커녕 이불도 넉넉하지 않은 곳에서 동상에 걸렸다. 그는 가족의 도움으로 ‘마침내’ 탈시설에 성공했다. 이후 탈시설 장애운동에 뛰어들었다.

탈시설장애인당은 지난 1월 창당했다. 4월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장애 의제를 정치권과 사회에 알리기 위해 창당됐다.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든다는 점을 표방한 가짜 위성 정당이다. 보궐선거 운동이 시작되는 이달 25일까지만 활동한다.

탈시설장애인당 11개 장애 의제 제시...정신장애는 배제돼

탈시설장애인이 공약한 장애 정책은 모두 11개다. ▲재난시대 장애인 지원체계 마련 ▲장애인 탈시설권리 보장 ▲최중증장애인 노동권 보장 ▲장애인 이동권 보장 ▲장애인 자립생활권리 보장 ▲장애인 평생교육권리 보장 ▲뇌병변장애인 의사소통권리 보장 및 종합지원체계 마련 ▲장애인 문화예술권리 보장 ▲발달장애인 권리 보장 ▲여성장애인 권리 보장 ▲장애인건강권 보장 등이다.

이번 합동토론회에는 이중 노동권, 이동권, 탈시설권이 주요 의제로 올라왔다. 그렇지만 정신장애 의제는 없었다. 모두 11명의 후보를 낸 탈시설장애인당에서 정신장애 의제를 갖고 출마한 이는 없었다. 딱 발달장애까지였다.

탈시설장애인당의 흔적을 보면 언뜻 기본소득당이 연상된다. 모든 국민에게 차별 없이 기본소득 월 60만 원씩을 지급하자는 기본소득당의 정책 의제는 비판과 동의의 지점을 상호교차했다. 지난해 21대 총선에서 이 정당 용혜인 대표가 의원에 당선됐다. 당시 기자는 기본소득당이 내건 슬로건이 원 이슈(one issue) 정책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

사회적 불평등과 계급간 빈부격차의 상승, 사회적 사각지대에 놓인 돌봄을 받지 못하는 노인들과 장애인들에게 이 기본소득은 삶을 살아가게 추동하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돈을 조금 못 벌어도 달마다 들어오는 기본소득으로 삶의 의지를 다시 일으킬 수 있는 사회적 모순 해결의 중심고리에 이 기본소득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번 탈시설장애인당도 그렇다. 복지와 노동권, 이동권, 교육권, 문화예술권, 장애여성 권리 등을 장애 의제로 내걸었지만 핵심은 ‘탈시설’이고 하위 범주로 나머지 의제들이 들어가는 것이라고 기자는 생각했다. 탈시설은 지역사회의 자립을 의미하는 것이고 여기에 노동권과 장애 서비스 등이 결합해 존엄한 삶의 의미를 재구축하는 의미가 담겼기 때문이다.

이날, 토론은 그래서 의미가 있었다. 다만 정신장애 의제가 없었다는 점을 빼고 말이다. 1995년 정신보건법이 제정된 이후 정신장애 진영은 정신장애인의 완전한 탈시설을 국가에 요구했다. 하지만 현재 전국 정신의료기관이 1670곳이고 정신요양시설도 59개소에 이른다.

장애 의제의 중심고리는 탈시설

의료계에서는 집단적이고 대안 없는 탈시설은 사회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의견을 내세워 탈시설화를 반대했다. 물론 이들은 점진적인 탈시설을 제안했지만 그 긴 20년의 세월 동안 왜 한 번도 정신장애인의 탈원화를 위한 의제 설정을 하고 실천하지 않았냐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신장애인에게도 탈시설과 지역사회 자립생활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인격의 회복을 위해 반드시 관철해야 하는 의제가 돼왔다. 지금도 그 요구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정신장애 운동 진영은 이 탈시설장애인당에 어떻게 결합되고 의제 공유를 할 수 있을까.

이번 토론은 진행자의 공통된 질문에 대해 참여한 7명의 후보가 각각의 의견을 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참여 후보는 장애여성 정책의 장주연 후보, 재난시대 지원 정책의 이희영 후보, 탈시설 김진석 후보, 노동권의 추경진 후보, 건강권의 박정숙 후보,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박현철 후보, 의사소통 권리보장 이미정 후보다.

장애인 노동권과 관련해 추경진 후보는 “장애인에게 노동권은 생명권”이라며 “비장애인에 비해 장애인의 권리가 적었고 고용률도 비장애인에 비해 2~3배 낮다”고 말했다.

이희영 후보는 “복지센터에 일하는데 처음 갔을 때 ‘너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그냥 우리가 월급을 줄 테니까 사랑방이라는 곳에서 생활하라’고 말했다”며 “나는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는 거였지 (동정을) 바라는 게 아니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저한테 맡겨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겠다고 말하니까 ‘너희가 이런 것도 할 수 있냐’면서 놀라더라”고 전했다.

김진석 후보는 “장애인들이 기초생활수급권자에 묶여서 일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이라며 “다양한 맞춤형 일자리를 만들어서 궁극적으로 탈수급을 하고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노동을 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박정숙 후보는 “장애인에게 노동은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것”이라며 “돈이 목적이 아니라 일하는 자체가 자립에 속하는 것”이라며 “내 능력에 맞는 일, 정말 누구한테 물 한 잔을 떠주는 일을 할 수도 있고 노래를 부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것 자체를 일로 인정해 주고 사람이 기쁨으로 그 일을 하고 자립하는 것”이라며 “지역사회에서 일을 하면서 내가 존재하는 걸 기쁨으로 여길 수 있는 게 바로 일자리”라고 강조했다.

박현철 후보는 “돈을 벌기 위해서 장애인도 일을 할 권리가 있고 장애인은 잉여인간이 아니”라며 “특히 발달장애인에게 노동권이라 돈을 벌고 생계를 유지하는 방법을 갖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전했다.

장애인 노동권은 존재의 의미이자 자립의 토대  

이미정 후보는 “꼭 사무실에서 하는 노동만 노동이 아니”라며 “장애인 당사자로서 장애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꾸는 노동을 해야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권과 관련해 장주연 후보는 “최근 지하철 타기 투쟁을 진행했을 때 나쁜 말도 많았고 악플로 많았다”며 “지하철이 정말 비장애인 위주로 운영되고 있고 장애인의 목소리는 전혀 담기지 않았다. 적극적인 이동권 투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진석 후보는 “비록 당장은 욕을 들어서 마음이 아프지만 시민들의 인식이 바뀌고 정책을 수행하는 정치인들의 인식이 바뀐다면 장애인 이동권 투쟁은 가치 있는 활동”이라고 설명했다.

추경진 후보는 “저상버스의 경우 운이 좋으면 한 번에 오는 경우도 오는 경우가 있는데 추운 날에는 3대, 4대까지 안 올 때가 있다”며 “장애인들이 휠체어 탔다는 이유로 벌벌 떨면서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굴욕스럽다”고 토로했다.

박정숙 후보는 “우리가 외출할 때 비장애인은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을 탈 때 목숨을 걸지는 않는다”며 “장애인은 저상버스가 있는지 검색해 봐야 하고 출퇴근 시간에 나가게 되면 욕을 먹을까 이런 것들을 고민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어 “이동권은 비장애인은 고민하지 않는다. 계단이 있으면 올라가면 되고 턱이 있으면 한 발짝 뛰는 것”이라며 “그러나 우리는 그걸 다 고민해야 하고 결국에는 포기하게 되면서 삶의 질이 굉장히 떨어지게 된다”고 분석했다.

박현철 후보는 “우리가 지하철에서 시위를 하면 시민들은 단지 지하철이 늦어진다는 이유로 짜증을 낸다”며 “하지만 사람들은 장애인의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은 보지 않는 것 가다”고 말했다.

또 “장애인 이동권은 발달장애보다 지체장애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발달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서는 정보 접근성이 제일 중요하다”며 “발달장애인을 위해 모든 교통 수단의 정보를 이해하기 쉽게 써 놓았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이미정 후보는 “장애인 이동권 투쟁 20년 동안 욕 먹어가면서 만든 게 지하철 엘리베이트”라며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도 리프트는 남아서 장애인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신길역 휠체어리프트에서 추락해 사망한) 한경덕 씨가 돌아간 것도 불과 3년 전”이라며 “지금 욕을 먹어도 투쟁해야 장애인이 편하고 교통 약자들이 편해진다”고 말했다.

탈시설과 관련된 후보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김진석 후보는 “사람이 집단적으로 모여서 살고 (시설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게 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며 “시설 자체가 없어지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이 지역사회”라고 강조했다.

인권침해적 시설 다 없애고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어야 

장주연 후보는 “시설은 당연한 권리를 되찾기 위해 사라져야 한다”며 “코로나19 상황에서 감염이 됐다면 그걸 막기 위해서 시설에서 나와야 하는 것이 맞고 죽지 않아야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또 “죽지 않을 권리, 자유로울 권리를 되찾기 위해 시설은 없어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장 후보는 “시설에서 장애여성들은 불임수술이나 자궁 적출 수술 같은 본인의 동의하지 않은 수술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며 “장애여성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도 시설은 빨리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정숙 후보는 “시설에 있는 분들 대부분이 동의를 해서 간 분이 없을 것”이라며 “부모에 의해, 주변 사람들에 의해 시설에 가게 됐는데 거기서 탈시설한 분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그렇게 오래 있을지 몰랐다고 얘기를 한다”고 전했다.

또 “시설을 만들어 놓고 국가가 책임져야 할 것들을 개인에게 돈을 주면서 ‘이 사람들 너희가 맡아달라’라는 식”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자기가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못 일어나고 꼭 정해진 규칙에 의해 그 시간에 일어나고 그 시간에 밥 먹고 그 시간에 자야 한다”며 “그걸 평생 한다는 건 정말 너무 힘든 일”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시설에 평생 사는 분들은 이유 없이 매 맞고 (시설 종사자가) 자기 기분 나쁘다고 때리고, 싸웠다고 가두고 이렇게 산다”며 “내 방이라는 걸 가져볼 수 없는 곳에서 평생 산다는 건 상상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신장애 의제가 전체 장애 의제에 어떻게 접속할까

그는 특히 활동지원가와 관련해 “이 제도를 국가가 만들어놓고 탈시설을 막는 건 이해할 수 없다”며 “활동지원사를 만들어놓고 정작 이용해야 할 이용자들은 안 만드는 거다. 탈시설을 해야 이들이 자립을 할 거 아닌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박현철 후보는 “시설에 사는 장애인 10명 중 8명은 발달장애인”이라며 “아무리 집이 좋아도 자기결정권이 없다면 소용 없다”고 전했다.

탈시설장애인당은 공식 선거 기간이 시작되는 이달 25일 자진 해산한다. 장애 의제는 선거 때마다 제시되는 거대 담론이 됐다. 그러나 그 대부분의 의제가 지체장애와 발달장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하위 의제로 분류된 정신장애 정책은 또다시 다수의 정치적 시선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걸 의미할 것이다.

문제는 그렇다. 정신장애 의제가 어떻게 이들에게 접속할 것인가. 그리고 정신장애 운동이 어떻게 독자성을 갖고 고유한 미시 담론을 만들면서 주체적으로 장애운동에 손을 내밀 것인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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