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형 기자의 변론] "조현병 있으면 의사 못한다고?...정신장애인도 모든 직업의 선택권 허락돼야"
[이관형 기자의 변론] "조현병 있으면 의사 못한다고?...정신장애인도 모든 직업의 선택권 허락돼야"
  • 이관형 기자
  • 승인 2021.07.23 22:3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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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인 실업률 장애유형 중 최하위...취업해도 단순노무직이 다수
바리스타 되는 게 조현병 극복한 성공 사례?...언론이 차별 부추겨
정신질환 있으면 의료인 결격사유라는 차별적 법률 바꿔나가야
존 내쉬, 다니엘피셔 같은 학자나 정신과 의사 배출돼야

정신장애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취업을 통한 경제 활동입니다. 취업을 통해서 생계수단을 얻고 빈곤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성인으로서 지역사회에 통합돼 권리와 의무를 다하며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이금진, 2010).

또한 당사자들의 사회적, 경제적 독립은 가족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고 당사자에게 신뢰를 갖게 하며 나아가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과 정체성을 통해 독립과 결혼생활로 나아갈 수 있는 첫 출발점이 됩니다(박명수, 2014).

하지만, 정신장애인의 취업 현황은 매우 열악합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조사한 2005년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정신장애인의 실업률은 40%에 달한다고 조사됐습니다. 이는 비장애인의 실업률 3.6%, 신체장애인의 실업률 23.1% 보다 훨씬 높은 수치입니다.

또한 2006년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의 조사에 따르면, 취업한 정신장애인의 직종의 92.3%가 단순노무직에 편중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지난 2021년 3월 9일, <마인드포스트>는 기사를 통해 2008년 이후 중증장애인 국가공무원 경력 경쟁 채용에 합격한 정신장애인은 총 10명으로 전체의 3.1%에 불과하다고 보도한 적이 있습니다.

통계 자료는 정신장애인들이 취업 시장에서 불리한 입장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비장애인보다도, 그리고 신체장애인보다도 훨씬 열악한 상황 속에서 취업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정신장애인들에게 취업이 어려운 이유는 정신질환을 겪었다는 이유만으로 타인과 동일한 스펙과 조건을 갖추었더라도 사회와 직장에서 편견을 갖고 차별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Arrow, 1973 :이금진, 2010에서 재인용). 언론도 정신장애인의 취업과 직장에 관심을 갖고 보도하기 시작했습니다.

2018년 3월 K언론사는 “조현병 극복한 청년 바리스타 '페퍼민트차 어떠세요'“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낸 적이 있습니다. 한 사회적 기업에서 정신장애인들의 사회복귀를 위한 직업 재활 중 하나로 카페 사업을 시작했고, 이곳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는 당사자를 조현병을 극복한 사례로 소개한 것입니다.

그리고 종합편성 채널 방송의 한 시사 교양 프로그램도 사회 적응 훈련 수업을 통해 사회복귀를 준비하는 한 당사자의 모습을 방송으로 내보냈습니다. 그리고 이곳의 담당 사회복지사는 “약물 복용을 많이 하다보면 사회에서의 적응 능력이 떨어지는데, 그것을 활성화하기 위해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라며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또한 화면 속 바리스타는 “(증상으로) 판단을 제대로 못하고 여러 가지로 힘들었죠”라고 말한 내용이 방송에 나왔습니다.

뉴스 기사와 방송 내용을 종합해 판단해 보면, “증상으로 인해 사회에서의 적응 능력이 떨어지고 판단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정신장애 당사자들이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는 것은 조현병을 극복한 성공 사례”라고 말해주고 있는 듯합니다.

분명, 바리스타도 훌륭한 직업이고, 전문성과 기술을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당사자는 그 외의 다양한 직업도 가질 수 있음을 말하고 싶습니다.

또한 사회적 기업과 사회복지사는 당사자들의 사회 복귀를 돕는 마음으로 카페를 만들고 바리스타로 채용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긴 시간의 인터뷰를 통해 다양한 입장과 생각을 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편집된 인터뷰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비추어진 조현병 당사자의 모습은 "적응력과 판단력이 떨어져 카페 바리스타가 할 수 있는 능력치의 최대 한계"라고 여겨질 수 있습니다. 조현병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바리스타를 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죠.

한편 이와 다른 관점에서 접근한 언론의 기사들도 있었습니다.

“치매.조현병 앓는 의사 버젓이 진료중..”

“치매.조현병 앓는 의사 버젓이 진료중.. 청구 진료명세서 156만 건”

이 두 기사는 같은 문장으로 제목 앞 부분을 채웠지만, 엄연히 다른 언론사에서 작성한 기사입니다. 기사의 핵심 내용은 정신질환을 앓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스스로 면허를 취소 신청하지 않고, 진료를 이어나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법에 정신질환을 가진 의료인은 결격사유에 해당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조현병이 있으면 환자를 진료할 수 없다는 법과, 이 사항을 두고 베낀 듯이 ‘버젓이 진료 중’이라는 표현을 제목에 쓴 언론을 선뜻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기자는 당사자로서 출판과 강연을 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메일과 문자를 통해 저에게 자신의 병을 커밍아웃하는 사람들을 많이 접했습니다. 그들은 주기적으로 상담을 받거나 약을 먹는 정신질환을 가진 당사자이지만, 각자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만 사회적 불이익 때문에 병을 감추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죠. 그중에는 대기업 직원도 있었고, 기업체 강사도 있었으며, 해외 명문대 유학생과 심리학과 대학생들도 있었고, 비행기를 운전하는 파일럿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사에서 나타났듯이, 수많은 의사와 간호사들 중에도 조현병과 같은 정신질환을 가진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하지만 언론과 사회는 정신질환이 있으면 직장을 포기하거나 평생 병을 숨기고 살라고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카페 바리스타까지는 허락해주고 박수쳐 주겠지만, 의사나 전문직은 당사자의 영역이 아니라며 허락해주지 않는 것이죠.

이러한 제한은 소수의 전문직에만 해당하지 않습니다.

많은 당사자들이 사회복지사를 꿈꾸고 있습니다. 자신이 겪은 어려움과 이를 회복한 과정을 통해 다른 당사자들, 혹은 경제적으로나 건강상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소명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같은 아픔과 고통을 겪었기에, 누구보다도 당사자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를 잘 알고 진심으로 대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땅은 정신질환을 가진 당사자에게 사회복지사의 꿈마저도 허락하지 않고 있습니다. 요양보호사, 보육교사 같은 직업은 물론, 심지어 자동차 운전면허증조차 자유롭게 취득할 수가 없습니다.

정신장애 당사자에게 법으로 이러한 직업을 금지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정신질환을 가진 의사나 간호사가 환자의 안전을 위협할 것이 걱정되는지, 철도나 비행기를 운전하는 당사자가 갑자기 경로를 이탈하여 승객들을 죽음으로 내몰 것이 걱정되는지, 약사나 영양사가 독약을 음식에 타서 누군가에게 해를 입힐 것이 걱정되는지, 어떤 부분이 염려가 되어 당사자의 직업에 제한을 두는지 궁금합니다.

물론 사회에서 강력범죄나 묻지마 살인을 저지르는 일부 급성기의 정신장애인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급성기의 당사자들이 쉽게 전문직 직종에 종사하거나 시험을 통과하여 어려운 면허를 따는 일은 거의 불가능할거라 생각합니다.

오히려 전문직과 면허를 취득한 당사자들은 꾸준한 치료와 약물, 자기 관리를 통해 공부하고 준비하며 자격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정신질환을 가졌다는 이유로 자격을 박탈할 수는 없는 것이죠.

정신질환을 겪은 사람들에게 직업을 갖는 것에 제한을 둔 법과 사회, 그리고 제한적인 법에 대해 지지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언론의 기사들.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카페 바리스타를 뛰어 넘는 극복 사례가 허락되지 않는 걸까요. 한국에서는 존 내쉬와 같은 당사자 교수가 나오면 안 되는 걸까요. 다니엘 피셔 같은 당사자 의사는 평생 병을 숨겨야 하는 걸까요.

정신질환을 가진 당사자들에게도 모든 직업에 대한 선택권이 허락되길 바랍니다.

더 이상 존 내쉬와 같은 사례가 다른 나라의 영화 속에서나 이루어지는 꿈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의 수많은 다니엘 피셔 같은 의사들이 당당하고 떳떳이 환자들을 진료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사자들에게는 다양한 꿈을 꿀 자유가 있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걸 사회와 언론이 알아 주기를 바랍니다.

참고문헌

박명수. "조현병 환자에게 직업재활이 미치는 긍정적 영향(인지력, 삶의 질) : 사례연구." 한국정신보건작업치료학회지 4.1 (2014): 37-42.

이금진(Lee Keum-Jin). "정신장애인의 취업경험에 관한 현상학적 연구." 한국사회복지학 62.1 (2010): 237-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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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2021-07-24 20:08:52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이관형 기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