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형 기자의 변론] 시몬 바일스의 올림픽 정신..."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보다 노력하는 것"
[이관형 기자의 변론] 시몬 바일스의 올림픽 정신..."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보다 노력하는 것"
  • 이관형 기자
  • 승인 2021.08.02 23: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 기계체조 선수 시몬 바일스, 심적 부담에 출전 포기...미 국민들 "응원"
바일스 "ADHD로 약 복용하는 건 부끄러운 일 아냐"
살아간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대단하고 강인해
출처 : olympics.com
출처 : olympics.com

현재 도쿄에서는 전 세계인들을 위한 축제, 올림픽이 진행 중입니다. 코로나 등으로 인해 개최가 연기되는 등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올림픽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대한민국 선수가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따고 환호를 할 때, 우리는 직접 경기에 뛴 것처럼 함께 기뻐하고 감동을 받습니다. 반면 아쉽게 은메달에 머물거나 경기에서 패할 때는 선수와 함께 속상해 할 때가 많습니다. 

올림픽의 기본 정신은 “스포츠에 의한 인간의 완성과 경기를 통한 국제평화의 증진”에 있습니다. 또한, 올림픽의 의의는 “승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데 있으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보다 노력하는 것”입니다.

올림픽은 단순히 메달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는 스포츠가 아니라 그 이상을 염원하는 인류의 축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저는 올림픽 의의에서 ‘성공보다 노력하는 것’이라는 문구가 와 닿았습니다.

금메달을 딴 선수도, 예선에서 탈락한 선수도, 결과와 상관없이 모두가 열심히 올림픽을 준비하며 노력해 왔다는 점에서, 충분히 박수를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출처 : getty images
출처 : getty images

지난 7월 27일, 한 미국 선수가 여자 기계체조 단체전 결승전을 앞두고 돌연 경기를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29일에 열린 개인전 종합 결승도 기권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시몬 바일스(Simone Biles)입니다. 지난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무려 4관왕을 달성했던 미국 체조팀의 에이스 선수로 이번 올림픽에서도 많은 기대와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런 선수가 경기를 뛰지도 않고 포기했다는 것은, 많은 미국인들로 하여금 실망과 비난을 받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 국민들은 돌연 경기를 포기한 시몬 바일스에게 박수와 응원을 보내주었습니다.

미국의 유명 팝가수 저스틴 비버는 SNS 서비스인 인스타그램을 통해 “아무도 당신이 받는 압박감을 이해하지 못할 것, 기권을 한 결정이 매우 자랑스럽다. 네가 사랑했던 것이 네 기쁨을 빼앗는다면 한걸음 물러나는 것도 중요하다”라고 글을 남겼습니다.

전 미국 체조선수 엘리 레이즈먼은 NBC 방송 인터뷰에서 “바일스도 인간이다. 가끔 사람들은 그 사실을 잊는다. 경기가 바일스에게 얼마나 큰 압박이었을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또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도 바일스에게 “여전히 GOAT”라고 트위터를 통해 표현했습니다. ‘GOAT’는 ‘Greastest Of All Time“의 약자로서 역사상 최고의 선수를 찬사할 때 쓰는 표현입니다. 바일스를 후원해 온 ’Athleta’라는 회사와, ‘VISA’라는 카드회사 역시 손해를 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몬 바일스의 기권을 지지했습니다.

출처 : nypost.com
출처 : nypost.com

어떤 이유로, 미국 전역은 시몬 바일스의 기권을 지지했을까요? 그리고 그녀가 경기에 나서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시몬 바일스는 텍사스에서 살던 어린 시절에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었습니다. 그녀를 낳은 생모는 자녀들을 돌볼 수 없었습니다. 마약과 알코올 중독자였기 때문이죠. 그녀의 아버지도 심각한 마약 중독자였습니다.

그래서 아직 어렸던 그녀와 3명의 남매들은 외할아버지의 손에서 키워질 수밖에 없었죠. 당시 외할아버지는 ‘넬리’라는 여성과 재혼을 했고, 넬리는 법적 입양을 통해 시몬 바일스를 사랑으로 감싸고 키워 주었습니다. 넬리는 시몬 바일스에게 늘 “시몬, 너는 최고다”라는 말로 언제나 응원하고 격려해주었습니다.

시몬 바일스는 유치원 시절, 동네 체육관으로 견학을 갔었는데, 그곳에서 체조 훈련을 하는 학생들을 목격합니다.

시몬이 훈련 모습에 반하고 관심을 보이자, 넬리는 시몬을 체조부에 등록시킵니다. 당시 체조부의 코치도 초반부터 시몬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본격적으로 선수로 육성시켰습니다.

하지만, 검은 피부를 가진 흑인이라는 사실과 운동 선수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무시와 왕따를 당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피부색과 운동을 하며 다져진 근육을 숨기기 위해 한여름에도 스웨터나 자킷을 입고 생활했습니다.

그러다 13살 때부터는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교육 과정을 이수했습니다. 매주 32시간씩 체조 훈련에 매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녀의 신체적 능력과 훈련을 통한 기술은 발전했지만, 심리적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시합에서 좋지 못한 성적을 거둔 이후 그녀의 자신감은 급격히 하락했습니다. 2013년, 16살의 나이에 심리학자에게 치료를 받기 시작할 정도였죠.

하지만 그녀는 연습을 통한 노력과 심리 치료를 통해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갑니다.

2013년 벨기에 안트베르펜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흑인 최초로 개인 종합우승을 차지했고, 2015년 영국 글래스고 세계 선수권에서는 사상 최초로 5관왕에 오릅니다. 그녀는 일찌감치 ‘체조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는 찬사를 받기 시작한 겁니다.

잡지 언론사 타임즈도 2016년에 열릴 리우 올림픽에서 가장 주목할 선수로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와 함께 시몬 바일스를 손꼽았을 정도입니다.

출처 : nypost.com
출처 : nypost.com

그렇게 19살이던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미국 체조 국가대표로 경기에 출전했습니다. 그리고 여자 마루 개인 결승과 단체전, 개인 종합, 도마 부분에서 모두 정상에 올라 금메달을 따냈습니다.

대회 4관왕에 빛나는 시몬 바일스는 미국 여자 기계체조 역사상 단일 올림픽에서 가장 많은 메달을 목에 건 선수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어릴 적 불우한 성장 과정까지 알려져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스포츠 팬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시몬 바일스의 시련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올림픽으로 스타가 되고 유명세를 타자마자, 해커들에 의해 그녀의 정신건강 상태가 미 전역에 공개됐습니다. 시몬 바일스가 어릴 적부터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를 겪고 있다는 사실이 폭로된 것입니다.

그녀는 이런 상황에 겁먹거나 위축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트위터를 통해 “ADHD가 있고 약을 복용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나의 병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다”라고 공개합니다.

NPR이라는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도 “많은 아이들이 장애를 갖고 있습니다. ADHD는 단지 우리가 좀 더 활동적이고 과도하게 만들 뿐, 그 병이 나를 몰락으로 이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더 많은 에너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어떤 일이든 멋지게 해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출처 : 트위터

미투(Me Too) 논란이 한창이던 2018년에는 시몬 바일스를 포함한 100여 명 이상의 여성 체조 선수들이 팀 닥터 ‘래리 나사르(Larry Nassar)’를 성추행 등으로 고발합니다.

이때도 그녀는 SNS를 통해 “여러분은 저를 행복하고 킥킥거리며 웃는 활기찬 소녀로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온 몸과 마음이 무너지는 느낌을 경험했고, 내면에서 부정적인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비명을 지르면서 고통을 차단하려 노력했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녀와 그녀의 동료들이 성추행으로 인해 받은 고통을 숨기지 않고 세상 밖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그 외에도 그녀의 남동생 ‘테빈 바일스 토마스’는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에서 열린 신년 파티에서 3명을 총으로 살해한 혐의를 받아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이 사건도 그녀에게 큰 상처와 충격으로 남겨지게 됩니다.

출처 : nypost.com
출처 : nypost.com

이러한 사건 사고를 겪은 뒤에도, 그녀는 다음 대회인 도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기 위해 훈련에 집중합니다.

그녀는 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에 맞춰 혼신을 다해 연습하고 노력해왔습니다. 미국인들은 그녀가 이번 올림픽에서는 6개 이상의 금메달을 가져올 거라 기대했습니다.

이런 기대와 믿음은 오히려 그녀에게 큰 부담을 가져왔습니다. 실제로 그녀의 기량은 다른 선수에 비해 압도적으로 훌륭했으나, 그녀가 경쟁하고 싸워야 했던 가장 무서운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올림픽에서 더 좋은 성적을 거두어야 한다는 중압감에 심적으로 매우 괴로운 상태였습니다.

게다가 코로나 19로 인해 올림픽은 연기되었고, 기약 없는 기다림 속에서 연습을 지속해야 하는 등,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해 우울증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됩니다.

1년의 시간이 흘러, 결국 도쿄 올림픽은 개최됐고 그녀는 모든 미국인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국가대표 에이스 선수로서 체조 경기에 출전하게 됩니다.

첫 종목인 단체전 뜀틀에 나선 시모 바일스는 뜀틀 위에서 한 바퀴 반을 도는 기술을 시도했지만, 예전의 완벽한 모습이 나오지 않았고, 착지 또한 불안전했습니다. 결국 그녀는 경기 직후 기권을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뜀틀 단체전에서 러시아에 밀려 은메달을 차지합니다.

그녀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눈물을 터뜨리며 “오전 운동을 할 때까지는 괜찮았는데, 막상 경기가 시작되니 멘탈이 나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제 정신건강에 집중하기 위해 기권을 결정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후로도 그녀는 자신이 뛰어야 했던 다른 체조 종목인 도마와 이단 평행봉마저 연달아 기권을 선언합니다.

하지만 미국 체조 협회는 시몬 바일스의 결정에 대해 “용감한 결정에 박수와 지지를 보낸다”라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아직 그녀에게는 다른 체조 종목인 평균대와 마루 운동 결선이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그녀의 정신적 회복 문제로 인해 출전 여부가 불투명한 상태입니다.

출처 : nypost.com
출처 : nypost.com

기자는 다시 한번 올림픽 정신과 의의에 대해 되새겨봅니다. “올림픽의 의의는 승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데 있으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보다 노력하는 것”.

시몬 바일스처럼, 많은 당사자들이 자신의 노력을 통해 재능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적 어려움으로 인해 포기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런 당사자들을 비난하거나 나약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겪어야 했던 고통과 아픔에 대해, 다른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고통과 아픔을 겪은 뒤, 지금 살아간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대단하고 강인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당장은 경기에 나설 수 없을 정도로 아프고 힘들지만, 이 시간이 앞으로 더 힘차게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해 잠시 숨을 고르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과정 중에 있는 모든 당사자들에게 여러분의 응원과 지지를 보내주세요. 본 기자가 ‘바울의 가시’라는 책에서 썼던 문장 한 구절을 인용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

“우리는 직접 겪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고통의 시간들을 보내왔다. 때로는 너무 힘들어서 생명조차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살아 숨 쉬는 건 그 고통을 잘 이겨내 왔다는 증거다. 결코 의지나 정신력이 약해서 병을 겪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강하고 슬기롭게 이 병을 감당하고 있다. 우리에게 조현병은 장벽이 아니라 장벽을 넘게 해주는 발판이 될 것이다.”

참고 기사

https://nypost.com/article/history-of-simone-biles-mental-health-issues/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