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형 기자의 변론] 인도네시아, 제3세계의 슬픔...아프다는 이유로 묶지 말라
[이관형 기자의 변론] 인도네시아, 제3세계의 슬픔...아프다는 이유로 묶지 말라
  • 이관형 기자
  • 승인 2021.08.27 17:5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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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인구 대비 정신과 의사 1인당 40만 명
사법적 검토 없이 정신질환자 강제입원 허용하고 있어
미신과 주술에 근거한 치료 방법으로 정신질환 더 악화돼
정신건강법 제정됐지만 자의입원 시스템 부재해

인도네시아에서는 정신질환에 대해 악령이나 마귀의 소행, 악행에 대한 업보, 신앙심 부족 때문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그래서 정신질환을 가진 환자들의 가족은 신앙인이나 전통 치료사와 먼저 상담하고, 최후의 수단으로 의학적 치료에 매달립니다.

인도네시아 보건부의 데이터에 따르면, 전체 인구는 2억5천만 명인데 비해 정신과 의사는 600에서 800명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한 명의 정신과 의사가 30만 명에서 40만 명의 사람들을 담당해야 함을 뜻합니다. 정신병원의 숫자도 전국에 48개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인도네시아 법에는,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을 강제적으로 시설에 수용되도록 정해져 있습니다. 정신건강법(Mental Health Act, 2014)에 따르면 가족 구성원이나 보호자가 사회 요양 기관의 동의나 사법적인 검토 없이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을 시설에 강제 입원시키는 것이 허용된 것입니다.

국제 인권감시기구(Human Rights Watch)는 인도네시아 자바 섬과 수마트라 섬을 중심으로 족쇄가 채워져 갇혀 지내던 상태의 정신질환자 175명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그리고 최근 문서를 통해 200여 명의 정신질환자에 대한 추가 정보를 얻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많은 정신질환자들은 종교적인 치유 센터에 수용됩니다. 이들의 입원과 퇴원은 전적으로 신앙 치료사에 의해 결정됩니다.

‘치안주르(Cianjur)’ 지역에서 개인 치유 센터를 운영 중인 이슬람 신앙 치료사 ‘하지 바리’는 자신의 종교적 치료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나는 13세 소년의 병명을 알아내기 위해 그의 머리와 가슴, 다리를 만졌습니다. 마치 초음파 검사를 하는 것과 같죠. 그 소년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해서 나는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소년의 몸에서 열이 떠나고 차가워지거나, 감기가 걸리면 우울증이 완치됐다는 증거죠.”

국제 인권감시기구는 7개의 사립기관, 치유센터, 정부 사회복지기관 등을 방문했고, 정신질환자들이 비위생적이고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수도 자카르타의 외곽에 위치한 사회복지기관, ‘판티라라스2’에서는 30명까지 수용 가능한 방에 90여 명의 여성들이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걷지도 못할 정도로 밀집되어 있었죠. 이동하려면 다른 여성들의 손과 발을 밟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대부분의 치유 센터들은 작고 낡았습니다.

여기엔 많은 사람들이 쇠사슬에 묶여 있었고, 화장실조차 이용할 수 없었죠. 그들은 1~2미터 이내의 반경에서 소변을 보고, 배변하고, 음식을 먹고, 잠을 자야 했습니다.

또 다른 기관에서는 어린이를 포함한 여러 정신질환자들이 지나치게 많은 약물을 복용하거나, 약초를 먹어야 했고, 치료사에 의해 마사지, 코란 암송 같은 대체 의학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만약 약을 삼키지 않으면 격리실에 갇힌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4곳의 정신병원에서는 환자들의 동의 없이 전기경련 요법(ECT)가 행해졌습니다. 하지만, 이중 3곳에는 전기경련 요법을 위한 마취과 의사가 없었고, 전기경련을 위한 기계도 매우 낡고 오래된 것이었습니다.

국제인권감시기구가 방문했던 기관과 센터의 직원과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정신질환자들이 치료진의 명령에 따르지 않거나, 도주하면 처벌과 징계의 일환으로 강제 격리에 들어갔다고 말했습니다. 이때 이루어진 신체적 학대가 25건, 성폭력이 6건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병원과 기관, 센터에서도 남성 직원이 야간에도 여성 병동을 마음대로 출입하여, 여성과 미성년 소녀들을 위험에 빠뜨리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성희롱과 성폭력 외에도 남녀가 함께 사슬로 묶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브레베스(Brebes) 지역의 치유센터에 거주하는 정신장애인 ‘타샤’는 “내가 샤워를 하면, 남자 직원들이 지켜본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오늘 아침에도 한 남성 직원이 제 성기를 만졌습니다. 그는 단지 재미로 그런 행동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2011년 인도네시아는 장애인의 자유와 안전에 대한 권리, 고문과 학대로부터의 자유를 포함한여 모든 장애인에게 평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했습니다. 그리고 3년 후, 의회는 심각한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족쇄와 감금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정신건강법(Mental Health Act)을 통과시켰습니다.

하지만 이 법은 여전히 정신질환자들이 스스로 의료 서비스와 입원에 대해 결정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권리법안 초안 역시, 의회에 계류 중이라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이에 국제인권감시기구는 인도네시아 정부에게 정신장애인들의 평등과 자기 결정권을 보장하고 강제 입원과 치료를 금지하라는 서한을 보냈습니다.

이처럼, 전 세계 곳곳에는 정신질환을 가졌다는 이유로 쇠사슬과 족쇄에 묶여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프다는 죄만으로 억압당해야 했던 그들이 자유를 누릴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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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 2021-08-29 14:40:36
정신장애인의 비인권적인 치료가 서구 정신의학이 도입되지 않아서인 것처럼 읽히는 오독의 위험이 있지는 않을까요. 비인권적인 치료는 그 사회의 역사와 정치적 상황, 경제적 정의, 민주화의 정도, 사회를 구성하는 세력 간의 폭력적 갈등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인데 논의를 단순화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서구 정신의학에 대해 신비화할 위험도 있고요. 서구 정신의학도 비판받고 수정되어야 할 폭력과 억압의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외면할 때 진정한 정신장애인의 연대가 이루어질 수 있을지 회의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