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기고] 정신질환, 고통의 저편에 있는 사람들
[가족 기고] 정신질환, 고통의 저편에 있는 사람들
  • 설운영 정신건강가족학교장
  • 승인 2021.09.06 18: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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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신장애 아들을 둔 아버지입니다' 저자
설운영 정신건강가족학교장. (c)마인드포스트 자료 사진.
설운영 정신건강가족학교장. (c)마인드포스트 자료 사진.

“병원을 수도 없이 들락날락했어요. 퇴원하면 그때뿐이고 다시 병이 도져요. 자꾸 돈만 달라고 하고 이제는 카드까지 훔쳐서…. 이러다가 집안이 거덜 날 것 같아요. 정말 이제는 무력해지고 지쳐요. 우울증 때문에 저도 약을 먹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어요. 차라리 잠들고 깨어나고 싶지 않아요.”

아들의 정신질환을 감당하지 못하는 그녀는 복받쳐오는 뜨거움을 목 안으로 밀어 넣는 듯이 간간이 손으로 입을 막고 말을 멈추었다.

그녀의 언어는 무력했고 항해사 잃은 배처럼 자주 흔들렸다. 가늘게 떨리는 그녀의 어깨는 머리카락같이 위태롭게 보였다. 그녀의 이야기는 견딜 수밖에 없는 세상을 견뎌내고,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내야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감당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를 체념하고 절망하는 독백처럼 들렸다.

딱히 그녀에게 들려줄 속 시원한 이야기는 없었다. 말하지 못해 가슴에 맺힌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으로 멈춰야 했다. 그녀의 고통스러운 사연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그 고통의 바깥에 있다는 사실이 나를 더 힘들게 했다. 내가 겪었던 고통을 회상하는 일이 나를 무섭게 만들었다

지난 몇 해 동안 수많은 정신장애인 가족들과 마주하면서 내밀하고 아픈 이야기들을 듣고 나누었다.

내 아이가 정신질환에 걸렸다는 사실은 친척한테도 말할 수 없었고 친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남한테 말할 수 없었고, 말하지 못해 타는 가슴을 아무도 알아주지 못해 더욱 괴로웠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은 의사 말고는 누가 있을까.

조현병, 범죄, 감금, 차단… 멸시와 주위의 싸늘한 시선을 받으며 음지에서 살아온 가족들이다. 밖에서는 차별과 혐오로 움츠리고, 안에서는 헛것으로 시달리고 당해야 했다. 자식이나 형제의 정신질환으로 인한 심리적, 물질적 고통을 가족이 고스란히 몸으로 감내하고 있었다.

내게 그들은 고통의 난민들로 보였다. 고통은 다 같이 아픔이라고 하지만, 세상과 교류할 수 없고, 세상과 화합할 수 없는 외로운 고통이었다. 타인에게 건너갈 수 없고 나눌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늘 고통을 안고 표랑하는 난민처럼 생의 가장자리에서 맴돌았던 그들이었다.

설운영 저 '나는 정신장애 아들을 둔 아버지입니다'
설운영 저 '나는 정신장애 아들을 둔 아버지입니다'

그들의 삶이란 바다에 떠 있는 한갓 부스러기 조각처럼 흩어져 있다. 가족들의 고통은 응답 없는 고통이고, 그들의 울음소리는 늘 시간 위에 떠 있었다.

그들에게 삶의 흔적들은 상처로 얼룩져 있다. 고통스러우면서도 고통을 이겨내는 방식을 모르는 가녀린 영혼들의 목소리는 안착하지 못하고 떨어져 내리는 꽃잎처럼 허공으로 스러져갔다.

인간의 몸 안에 영원히 머무는 것은 없을 것인데… 감각과 감정, 한때는 죽을 것 같은 고통까지도…그러나 가족들에게 그 고통은 흩어지지 않고 바위처럼 굳어서 풍화되어 끝내 그들의 가슴을 짓눌렀다.

고통에 대한 동참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타인의 고난이나 겪고 있는 고통에 진정으로 동참하는 것은 비를 맞고 있는 그들에게 우산을 건네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다는 것을, 그것이 진정한 구원의 길일 것이라고, 타인의 고통에 다가갈 때, 비록 그것이 그 고통이 내 안으로 전이되더라도…

그 고통의 테두리 안에 함께 있어 봄으로써 비로소 타인의 겪고 있는 고통이 바로 곧 나의 고통이라고, 고통은 나눔으로 가벼워질 것이라고, 어쩌면 그것은 같은 고통을 겪어왔던 나 자신의 회복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다.

조현병으로 삶의 윤곽이 흔들리면서 어두운 심연 속으로 빠져들었던 아들을 지켜보면서 불가해한 인간의 정신이 무엇인지를 고민했었다. 절벽에 갇혀 구원의 줄기를 파헤치며 더듬거렸던 것 같다.

정신의 질병도 인간이 겪을 수 있는 하나의 육체적인 질병에 불과할진데 이로 인해서 사회에서 외면되고 이웃과 단절되고 가족으로부터 버려진다는 것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처절한 고통이 아닐까 생각했다.

인간 정신의 불완전과 불가능 속에서, 그 숨막히는 육체에서 벗어나려는 영혼들의 목소리를 내 가난한 가슴에 담고 싶었다. 그 감내하기 힘든 정신의 통증이 한 사람의 단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사회와 긴밀한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아프게 깨달았다.

사진은 기고문과 관련 없음. (c)encolombia.com
사진은 기고문과 관련 없음. (c)encolombia.com

작년에 경기도정신건강복지센터에 제안하여 <가족나눔전화. 031.242.0337> 상담을 실시하고 있다. 전화를 매개체로 정신질환의 치유와 회복을 경험한 정신질환자 가족들이 초기 또는 만성 정신질환으로 고통과 혼란을 겪고 있는 가족들에게 치료와 회복에 대한 체험 정보와 경험을 나누고, 정서적 지지를 제공하여 정신질환의 원활한 회복과 자립을 돕는 일련의 가족동료지원 활동이다.

<가족나눔전화> 프로그램을 이용한 가족과 정신질환 당사자들이 무려 1천200명을 넘어섰다.

정신질환으로 인하여 사회에서 고립되고 피어보지 못하고 부스러져 내리는 사람들과 그 가족들에게 미약하나마 생기를 불어넣어 주고 싶었다.

“괜찮아, 세상에 완전한 것은 없어, 삶은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라고……”

그들에게 있어 삶은 무엇일까? 어쩌면 커다란 지옥일 수 있고 끔찍한 환영일 수도 있다. 비록 세상 밖에 있다 하더라도 우리끼리의 관심과 따스한 시선은 이 삶이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 줄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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