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오전 10시 현재 정신장애인들이 김두관 의원의 사과를 요구하며 시위 중”
[르포] “오전 10시 현재 정신장애인들이 김두관 의원의 사과를 요구하며 시위 중”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1.09.02 22: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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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관 예비후보의 ‘정신질환’ 발언에 당사자 단체 릴레이 일인 시위 시작
신석철 “코로나가 풀리면 더 센 집회로 단결력 보이자”

판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다.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직격하며 ‘정신질환’이라고 비난한 상황을 기사로 쓰기까지는.

앞서 김 예비후보는 지난 7월 17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광주 5·18민주묘지를 참배한 후 “5·18 정신을 헌법 정신으로, 희생자의 넋을 보편적인 헌법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발언에 대해 다음날인 18일 페이스북을 통해 “악어의 눈물이 따로 없다”며 “자신이 검찰 수장이었음도 기억 못하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기자는 그의 발언을 열흘쯤 후에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발견했다. 기사 가치가 떨어질 수도 있었지만 기자는 그 ‘정신질환’ 발언을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이건 아니지 싶었다.

공당의 대선 예비후보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질병명을 빗대 상대편을 공격하는 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약자의 희생을 담보로 하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치적 윤리가 있다면 김 예비후보는 ‘정신질환’ 용어를 사용해서는 안 됐다.

그런 문제의식을 안고 7월 29일 기사를 작성해 올렸다. 파장은 예상 외로 커졌다. 송파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를 비롯한 12개 단체는 다음날인 30일 김 예비후보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작성해 발표했다. 응답은 없었다.

그러자 단체들은 지난달 12일에 다시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번에는 강했다. 그들은 김 예비후보의 사퇴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준비위) 소속 단체들이 단체 카톡방에 의견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당시 신석철 송파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장(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준비위원장)이 김두관 예비후보 의원실에 전화를 걸어 항의했다. 그러자 더불어민주당 장애인위원회 사무국장 A씨가 신 센터장에 전화로 “김 의원이 대선 출마 때문에 면담 요청을 하기가 어렵다”고 전했다.

신 센터장은 다시 김 예비후보 의원실에 전화를 걸어 다른 직원과 대화했다. 의원실 직원은 보좌관이 부재 중이라 답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신 센터장은 단체 톡방에 “당사자 단체에서 김 의원의 행동에 강력히 규탄하는 행동을 해야 한다”며 “어떻게 대응할지 함께 논의하고자 한다”는 글을 남겼다.

지난달 12일 공동성명서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리고 같은 달 18일, 김 예비후보는 자신의 대선 캠프 활동을 돕던 아들이 코로나19 확진 판정되자 2주 간의 자가 격리에 들어갔다. 그는 아들과 식사를 함께 했었다.

신 센터장은 단체 톡방에 ‘김두관 의원 규탄 행동전략회의’를 가지자고 제안했다. 비대면 회의 건의였다. 그리고 지난달 17일, 비대면으로 단체 대표들이 참여해 한 시간의 논의를 가졌다.

논의 결과는 이렇다.

“김두관 의원실에서는 초기에 바로 사과하겠다고 했지만 면담 촉구에 대해 바쁘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책임을 미뤘다. 공문 발송에도 무응답으로 일관해 이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판단됨.”

전략들이 나왔다.

일인 시위, 트럭 운전 시위, 국민청원. 김 예비후보 후원 계좌에 1원씩 보내기. 광주와 부산 등에서는 지방에서 활동하기. 김 예비후보 의원실 항의 전화 등.

일인 시위 일정이 만들어지고 권용구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장(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간사)은 각 단체들에 일인 시위 참여 명단을 요청했다.

23일 김두관 예비후보 토론회를 유튜브로 생중계한다는 정보가 올라왔다. 단체들은 댓글 부대를 총동원해 ‘사퇴 및 사죄하라’는 메시지를 보내기로 했다. 이후 다른 의견이 올라왔다. 김 예비후보가 다른 방송사에 초청 토론회를 가진다는 정보였다.

각 단체들은 카카오톡으로 “여기가 더 사람이 많다. 여기로 이동해서 싸우자”고 독려했다.

기자는 다른 일정으로 인해 그 싸움이 어떻게 끝났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단체 카톡에 서로 ‘수고했다’는 의견을 적은 걸 보면 조금은 성과를 거둔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일인 시위 명단은 빠르게 접수됐고 그만큼 빠르게 일정이 정해졌다. 25일 권용구 센터장은 “김두관 의원과 통화가 됐다”는 정보를 카카오톡에 올렸다. 당시 김 예비후보는 코로나19로 인한 자가 격리 중이었다. 의원 측 비서들과의 대화가 와전된 것이었다.

신 센터장은 강돈수 부산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장과 주상은 경남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장에 부산 서면에 있는 김 예비후보의 대선 준비 사무실 앞에서 일인 시위를 요청했다. 그리고 27일 마침내 일인 시위 일정표가 만들어져 단톡에 공유됐다.

이들은 피켓을 만들었고 김 예비후보 사퇴를 촉구하는 글귀가 적힌 ‘근조’ 화환을 주문 제작했다. 31일 모든 준비가 끝났다.

그리고 9월 1일. 신 센터장은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 앞에서 일인 시위를 시작했다. 부산에서는 강돈수·주상은 센터장들이 교대로 일인 시위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그들 말에 따르면 일인 시위를 시작하자말자 김 예비후보 사무실에서 사람들이 나와 항의를 했다고 한다.

이날은 김 예비후보가 자가 격리에서 해제된 날이기도 하다.

그날 단체 톡방에는 이번 시위에 참여하지 못하는 이의 글이 올라왔다. “여러분의 투쟁에 조그마한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내용이었다. 기회가 되면 참여하겠다는 의지도 함께.

그리고 2일. 기자는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 앞에서 일인 시위에 동참했다.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다. 화환과 피켓을 들고 당사 앞으로 접근하자 경찰이 걸어와 시위에 제동을 걸려고 했다. 기자가 “일인 시위는 가능하지 않냐”고 물었다. 경찰은 순순히 동의했다.

자신을 영등포경찰서 정보과 형사라고 소개한 그는 당사 정문 오른쪽에서 하면 택배 차량이 들어오지 못한다며 왼쪽으로 옮기라고 건의했다.

기자는 그게 좋겠다 싶었다. 그리고 피켓을 세우고 화환을 뒤에 두고 한 시간의 시위에 들어갔다. 빗줄기가 굵어졌다. 기자는 괜히 기사를 써서 이런 고생을 하나, 라는 생각을 하며 쓴 입맛을 쩝쩝 다셨다. 정보과 형사는 기자 앞에서 피켓 내용을 보며 담당 정보과에 무전기로 보고를 하고 있었다.

“오전 10시 현재 정신장애인 관련 단체와 사람들이 김두관 의원의 정신질환 비하 발언을 문제 삼으며 이의 사과를 촉구하는 일인 시위 중.”

다시 비가 내렸다. 당사 정문을 지키던 경찰이 우산 하나를 건넸다. 고마웠다.

그때 신 센터장이 김 예비후보 보좌관과 통화를 했다는 내용을 카톡에 올렸다. 그는 “보좌관이 충분히 면담을 잡으려고 했는데 (단체들이) 먼저 (사퇴 촉구) 성명서를 낸 것은 자세가 안 돼 있다고 이야기를 했다”고 전했다. 이어 “극도의 분노감을 느낀다”고 적었다.

기자는 괜히 고생한다 싶어 다시 입맛을 다셨다. 괜히 기사화해서 이게 뭔 고생인가, 싶었다. 한 시간의 시위 후 다음 차례인 마포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 직원이 릴레이 시위를 이어갔다. 피켓을 건넨 후 기자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담배를 한 대 피웠다. 비는 조금씩 그치고 있었다.

그리고 오후 5시 무렵, 중재안이 나왔다는 메시지가 떴다. 3일 신 센터장과 권용구 센터장이 김 예비후보 보좌관과 1차 면담을 가지기로 했다는 정보였다.

신 센터장은 “면담이 잘 되지 않으면, 코로나가 풀리면 더 센 집회로 우리의 단결력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역시 올렸다.

기자는 판이 이렇게 커질지 정말 몰랐다. 회사로 돌아온 후 생각했다. 정신장애를 바라보는 거대한 편견의 시선들에 대해 정신장애 당사자 단체들의 정치적 운동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오랜 시간 더 차별받고 고통당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운동은 거대 담론과 같은 가치를 내세운 싸움이 아니라 일상에서 차별받고 배제받는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의 소소한 일상적 싸움에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그것이 곧 ‘진지전’이라고.

오후의 빗방울은 그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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