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도 학력도 묻지 않는 정신병원 보호사 채용 관행…법은 누구를 위해 작동하는가?
자격도 학력도 묻지 않는 정신병원 보호사 채용 관행…법은 누구를 위해 작동하는가?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2.02.09 21: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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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병동 내 미성년자 성폭행 사건을 통해 본 ‘보호사’의 폭력의 고리
정신건강전문요원 직군은 수련기간 등 엄격한 자격 요건 갖춰야
청와대청원 “보호사에 직제 부여하고 자격 취득하도록 해야”

정신병원 폐쇄병동에서 30대의 남성 보호사가 입원한 미성년자 여성 환자를 수차례에 걸쳐 성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연례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정신병원 보호사들의 성폭력과 추행, 폭력에 대해 국가가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부천 오정경찰서는 정신병원 보호사 A(38)씨를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과 미성년자 간음 혐의로 지난달 26일 검찰에 구속 송치했다고 지난 8일 밝혔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6~8월 부천시 한 정신과 병원 폐쇄병동에서 미성년자인 B양을 수차례 성폭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A씨는 또 지난해 8월 피해자 B양을 병원에서 탈출하도록 도운 위 모텔이나 월세방 등에서 지내도록 하고 여러 차례 성폭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A씨가 혐의를 부인하자 모텔 등에서 DNA를 채취한 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검사를 의뢰해 증거를 확보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절도 등 범죄 이력이 있었다. 하지만 정신병원에서는 그의 범죄경력조회서를 받지 않았다.

이처럼 정신병원 보호사들에 의한 폭력과 성추행, 성폭행은 사건이 발생해도 병원 측이 이를 숨기기 때문에 전모가 다 드러나지는 않고 있다. 다만 정신병원에서 나온 ‘생존자’들이 보호사의 부당한 폭력에 이의를 제기하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하면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왜 이런 식의 폭력이 반복되는 것일까.

현재 정신병원 보호사라는 직업의 정식 명칭은 ‘정신질환 치료 보조원’이다. 지원할 때 특별한 자격증을 요구하지 않는다. <마인드포스트>가 한 인터넷 구인 홈페이지에서 ‘정신병원 보호사’를 검색해 보니 ‘보호사 모집’이 눈에 띄게 많이 올라왔다.

대부분 정신의료기관이 모집하고 있었다. 이들 기관들은 보호사 응모 자격을 따로 두지 않았다. 경력 무관, 학력 무관이 많았고 일부는 고졸 이상을 자격 조건으로 내세웠다. 특히 남성을 우대한다는 내용이 많았다.

직무 내용 또한 환자 안전 관리나 간호업무 보조 등으로 나와 있었다.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은 정신병원의 인권적이고 전문적인 치료 환경 조성을 위해 정신건강전문요원 자격을 따로 규정하고 있다.

전문요원에는 정신건강임상심리사, 정신건강간호사, 정신건강사회복지사, 정신건강작업치료사 등 4개 직군으로 나뉜다. 특히 정신건강작업치료사의 경우 1995년 정신보건법 시절부터 전문요원 자격을 얻기 위해 노력한 끝에 지난 2020년 3월에야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에 따라 전문요원 자격에 오를 수 있었다.

이처럼 정신건강 직군의 자격을 따기 위해서는 정신건강 지식과 학력이 필요하고 1급을 따기 위해서는 1년 동안의 수련 기간을 거쳐야 할 정도로 자격 취득이 까다롭다. 보수교육 또한 따로 받아야 한다.

그에 반해 보호사의 자격은 채용에 필요 없다. 보호사 자체 자격시험이 따로 없는데다가 인권적 치료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정신병원들이 관례대로 ‘남성’ 보조사를 선호하면서 피해는 정신병원 입원환자들이 직접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보호사에게 당한 폭력으로 오랜 시간 트라우마를 겪었다는 정신장애인 당사자 C(43)씨는 지금도 병동에서 보호사에게 폭행당하는 악몽을 꾼다고 전했다. 그는 “사이렌 소리가 들려도 누가 또 끌려가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1990년대 말, 정신요양시설에 있었던 김덕수(50) 씨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거기서 우리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반장이라고 불리는 보호사는 우리가 작업을 할 때 말을 하면 뺨을 때리고 몽둥이로 구타를 했어요. 거기서 3년을 살다가 겨우 그곳에서 ‘탈출’했어요.”

여성 정신장애인 당사자 D(50대)씨는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있을 때, 옷을 갈아입으려고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병동 문 앞에 남성 보호사가 서서 바라보았다고 했다. 그저 문 앞을 지나는 듯했지만 실상은 옷을 갈아입는 시간을 알고 그 자리에 와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폭력에의 구조적 노출은 이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아직도 많은 정신병원에서는 정신장애인을 자본 축적의 수단으로 삼아 이들의 퇴원을 가로막고 있다. 정신병원이 치료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자본을 탐하는 병원장들, 그들의 신체 역할을 하는 보호사들이 정신병원 자체를 규율과 통제, 훈육의 공간으로 변질시켜 왔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그 공간에 치료는 없다.

정신건강복지법 제72조는 수용 과정에서 가혹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입원 환자에게 폭행을 하거나 가혹행위를 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그야말로 선언적 규정에 불과하다. 만약 이 법의 처벌 의지대로 집행된다면 대다수 정신병원은 어마어마한 징역과 벌금을 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법은 이념적 선언 이외에 구체적인 실행이나 적용은 작동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이 같은 부조리는 노인요양시설 등 유사 시설에서도 동일한 폭력과 규율에 의해 시설들이 작동되고 있다는 점을 유추해볼 수 있는 지점이다. 시설 폭력에 대한 정부의 안이하고 관성적인 대응이 구조적인 폭력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018년 1월, 청와대국민청원게시판에는 ‘정신병원 보호사 양성소를 개소해 달라’는 국민 청원이 올라왔다. 스스로를 보호사라고 밝힌 청원인은 정신병원 사건에서 보호사가 문제가 되는 것은 “(이들이) 의료에 대한 기초 지식조차 없이 각 정신병원에서 자체적으로 간단한 교육 후 보호사 업무에 바로 임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노인요양보호사라는 직제가 있듯이 정신병원 보호사에게도 정확한 직제를 부여해 달라”며 “간호조무사 자격을 취득하지 않은 이의 정신병원 보호사 취업을 금지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특히 인권친화적인 정신병원을 지역별로 선정해 그곳에서 정신병원 보호사 양성소를 설립해 달라는 의견을 냈다. 이 게시글에 참여한 인원은 5명에 불과했다.

같은 해 8월에도 ‘정신병원은 사육장’이라는 제하의 글이 청와대게시판에 올라왔다. 청원인은 “보호사에게 환우가 폭행을 당해 고소장을 제출하는 일이 발생하고 환우가 자살하는 등의 인권 사각에 빠져 있다”고 호소했다. 동참한 인원은 한 명도 없었다.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 폭력이 일상화되고 관행화된 공간은 이미 폭력에 대한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사유를 할 수 없게 만든다. 오직 하나의 신체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하고 뒤처지거나 반항하는 주체에 대해서는 더 강한 폭력으로 신체의 규율에 복종하게 만든다. 보호사가 인간을, 그것도 입원한 환자를 때려도 되고 성폭행을 일삼아도 되는 구조로 변질되고 은폐된 병원이라면 차라리 그 병원을 폐쇄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정신병원 보호사 자격에 대해 우리 사회는 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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