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전문의 4명 집단 사직한 국립법무병원 사태…상급자의 ‘폭언’ 때문만일까?
정신과 전문의 4명 집단 사직한 국립법무병원 사태…상급자의 ‘폭언’ 때문만일까?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2.02.08 19:3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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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법무병원 895명 수용자에 의사는 한자릿수…민간병원의 2배 넘어
조성남 소장 “정신질환 관리보다 약만 줄 수밖에 없는 구조”
억압적인 병원 치료 환경 개선과 적절한 급여 선행돼야 지원자들 몰릴 것

범죄를 저지른 정신질환자들이 교정시설 대신 수용되는 국립법무병원 소속 정신과 의사 4명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월 사이 집단 퇴직했다. 이 병원 간부급 직원의 폭언 등이 주요 요인이라는 이야기가 함께 병원의 구조적 문제에서 발생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립법무병원은 지난 1987년 사회보호법에 근거해 충남 공주에 설치된 치료감호소가 전신이다. 이후 1997년 정신건강복지법에 의해 의료기관 인증을 받고 2006년부터 국립법무병원으로 명칭을 변경해 현재에 이른다.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 산하에 있으며 현재 895명의 정신질환 당사자들이 수용 중이다. 수용할 수 있는 최대 병상수는 1천200병상이다.

이번 집단 사직에는 간부급 직원 A씨의 폭언이 원인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열악한 근무 여건과 민간병원 정신과 의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낮은 연봉 등이 문제를 키워왔다는 분석도 나왔다. 집단 사직에 따라 현재 병원은 병원장(소장)만 남긴 채 전문의 전원이 그만둔 셈이다.

<마인드포스트> 취재에 따르면 이 병원 소속 전문의인 A 전 과장은 지난해 11월 B 과장에게 치료감호소가 과밀 수용 상태이니 검찰과 법원에 미결수에 대한 치료감호 영장 청구와 발부를 자제해달라는 공문을 보냈는지를 물었다. 이에 B 과장은 “내가 과장님이 시키면 하라는 대로 해야 되는 사람이냐”며 따졌다.

의사 전원 사직은 낮은 급여 등 병원의 구조적 모순 가능성 커

B 과장은 2018년 법무부 인권정책과장 당시 부하 직원들에게 막말과 성희롱성 발언을 한 의혹을 받고 감찰 끝에 해임됐다. 하지만 2020년 해임처분취소소송에서 승소해 복귀했고 법무부는 지난해 7월 그를 치료감호소 행정지원과장으로 전보했다.

B 과장은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A 전 과장의 요구는 내 업무가 아니었다”며 “그가 먼저 여러 차례 나를 괴롭혀 언성을 높인 게 전부”라고 밝혔다.

법무부는 업무 수행 과정에서 의견 차이로 언쟁이 있었지만 이것이 집단 사직의 직접적 요인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병원의 근무 환경, 낮은 연봉, 개인 일신상의 사유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의견이다.

지난해 10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국립법무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현황’에 따르면 이 병원이 필요로 하는 적정 정신과 전문의 15명 중 8명만이 충원된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반토막이다.

정신건강복지법이 규정하는 정신과 의사 1명 당 적정 환자 수는 60명이다. 현재 수용된 895명을 대입하면 이 병원 정신과 의사 1명이 치료감호인원 118명을 맡아야 한다. 적정 인원의 2배에 달하는 수치이지만 이에 대한 해결책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또 충남 공주에 위치한 지리적 접근성의 어려움, 민간병원에 비해 낮은 보수와 편견, 정신과 전문의 부족에 따른 업무의 과부하가 소속 전문의들의 고충이 깊다는 분석도 나왔다.

조성남 국립법무병원장은 지난 2019년 한 일간지 인터뷰에서 “민간병원의 3분의 1인 수준에 불과한 급여가 제일 큰 문제”라며 “월급이 너무 적어서 정신감정이나 연구에 따른 수당을 추가해달라고 기획재정부나 법무부에 부탁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민간병원의 3분의 2 정도 정신과 전문의 급여를 맞춰준다면 우수 인재를 데려올 자신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c)enviarsolucoes.jusbrasil.com.br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c)enviarsolucoes.jusbrasil.com.br

국립법무병원에서 전문의로 일한 차승민 전문의 역시 “다른 병원들과 급여가 너무 차이가 난다”며 “공무원의 임금 체계나 처우 체계에 묶여 있기 때문에 쉽지 않다. 의사 구인 광고를 많이 내지만 안 온다”고 전했다.

그는 이 병원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나의 무섭고 애처로운 환자들>이라는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그는 “일반 병원에 비해 턱없이 낮은 처우나 열악한 진료 환경 문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며 “국립법무병원에서 일하는 이들이 의료진으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이 만들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열악한 처우만이 이 병원 전문의가 전부 사직하도록 만든 요인이었을까.

“민간병원의 급여 3분의 2 정도로 맞춰준다면 우수 인재 데려올 수 있어”

현행 법원이 선고하는 치료감호는 금고 이상의 형에 해당하는 죄를 범했지만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와 다시 죄를 범할 위험성이 있을 때 내릴 수 있다. 이른바 치료의 필요성과 타인을 해칠 수 있는 상황으로, 이는 정신건강복지법에서 응급입원 환자의 입원 요건을 치료의 필요성과 자·타해의 위험으로 규정한 구속적 이념이 겹치는 부분이다. 즉 사회 안전이 녹아 있는 대목이다.

따라서 이곳에서 일하는 전문의들은 치료감호 선고를 받은 죄수이자 환자를 죄인보다는 ‘환자’로 보려고 하지만 상급 기관인 법무부는 ‘감호’에 치중하라고 강조한다. 치료와 수용 사이에서 감금이 더 힘을 발하는 구조다.

의사 1명이 환자 100명 이상을 돌봐야 하는 상황에서 충분하고 적절한 면담이나 개입이 어렵다는 현실적 이유도 있다. 차 전문의 역시 “한때는 (혼자서) 매일 170명의 환자를 돌봤다”고 말한 바 있다.

국립법무병원은 환자들 특성에 따라 3가지로 나뉜다. 심신장애를 앓는 사람, 약물 등에 중독된 사람, 변태적 성욕을 가진 사람이다. 이들을 1호(정신질환자), 2호(약물 중독자), 3호(성도착증 환자)로 각각 부른다. 이들은 모두 전문의가 처방한 약물을 복용해야 한다. 조 소장은 “정신질환 관리는커녕 약밖에 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포화 상태’는 한국과 독일의 치료감호병원을 비교해 보면 규모와 인적 구성이 눈에 띄게 차이가 나는 걸 볼 수 있다.

한국 국립법무병원과 독일 함부르크 AKO 치료감호병원은 전체 직원이 389명대 360명으로 유사한 수준이다. 하지만 의사는 한국이 11명, 독일은 21명으로 두 배의 차이가 난다. 병상 역시 한국은 1200병상, 독일은 300병상 규모다. 의사 1인당 입원환자는 한국은 93명, 독일은 20명 수준이다.

정신건강복지법이 개정될 경우 가장 먼저 손을 대야 하는 게 강제입원 조항이다. 신체를 구속하는 절차에서 사법이 빠진다면 이는 불법 인신구속이 되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강제입원 구조는 보호의무자의 동의와 의사의 진단(판단)이면 된다.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은 철저하게 배제되는 구조다.

그래서 의료계에서는 사법입원제 도입을 강조하고 있다. 입원 주체를 의료와 직계가족으로 설정하면 입원한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이들에게 ‘억하심정’을 갖게 되고 이는 가족관계를 해체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의료는 진단만 맡고 법이 신체적 구속을 담당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그렇지만 일부에서는 사법입원제를 도입해도 충분한 검토 없이 일괄적으로 입원을 결정할 수 있어 자칫 졸속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는 한국과 독일의 사법 인력 체계를 비교해봐도 그렇다. 2021년 대법원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현재 판사 수는 2900여 명이고 독일은 2만4000여 명이다. 한국 인구 5천100여만 명, 독일은 8천400여만 명이다. 독일과 같은 수준이 되려면 우리나라 법관 수는 1만5000여 명은 돼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게다가 법관 1인당 사건 수는 독일이 89건인데 비해 한국은 464건으로 거의 5배를 상회한다. 이 경우 사법입원제가 도입될 경우 격무에 시달리는 판사들이 당사자의 환경, 육체적 건강, 정신적 상황에 대한 분석 등을 하기보다는 시간에 쫓기듯 입원(영장)을 남발할 우려가 있다는 의견이 나오는 지점이다.

독일의 치료감호병원과 비교하면 한국은 열악…치료보다 ‘감호’에 치우친 게 한국 상황

이처럼 사법입원제 논란뿐만 아니라 독일의 치료감호병원의 현황과 한국 법무병원의 상황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국립법무병원 소속 전문의들이 재소자이자 환자인 이들을 의료 규정에 맞게 진찰하고 상태를 파악하고 조금 더 환자 친화적 언어를 사용하고 퇴소 후의 계획을 함께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적어도 독일 정도의 수준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국립법무병원 내부 모습.
국립법무병원 내부 모습.

이번 국립법무병원의 전문의 집단 사직은 이처럼 불건강하고 과로에 시달려야 하는 환경이 불러온 예견된 사태라는 분석이 대두되는 지점이다. 게다가 교도소를 들락거리며 법에 ‘훤해진’ 환자들이 수시로 민원과 고소장을 내는 것도 의사가 자신의 치료 윤리에 회의를 가지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이는 환자가 양질의 치료를 받지 못하는 고리가 되고 이들이 사회로 복귀하면 치료 중단을 비롯해 범죄에 노출되면서 사회적 위험 비용을 더 만들어낸다는 분석이다.

게다가 정신건강복지법은 정신질환자를 ‘망상, 환각 등으로 독립적인 일상생활에 제한이 있는 사람’으로 규정하면서 기존 법인 정신보건법에 들어가 있던 알코올중독자, 마약중독자 등을 법적 주체에서 제외시켰다. 하지만 국립법무병원은 알코올중독자와 성도착자까지 모두 떠안고 있는 상황이다.

정신질환이라는 전문 부문을 넘어선 범죄자들의 치료까지 감당해야 하는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사명감’만을 내세우는 건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차 전문의 역시 가장 대하기 어려웠던 환자를 ‘성범죄를 저지른 환자들’이라고 답한 바 있다.

법무부는 올해부터 보호관찰 기간이 끝난 정신질환 보호관찰 대상자에 대해 관찰 종료 사실을 관할 경찰서와 지자체에 통보할 수 있도록 하는 보호관찰법 개정안을 시행했다. 기존에는 보호관찰 기간이 종료되면 정부의 감독 대상에서 제외되면서 대상자가 임의로 약물을 중단하는 등의 문제가 불거지고는 했다. 안인득이 일으킨 진주 방화 사건이 대표적 예다.

국립법무병원 환경이 건강해야 범죄로 인한 사회적 비용 줄일 수 있어

흔히 치료가 인권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간의 법 체계는 치료가 억압이라는 인식이 들게 만들었다. 정신병원에 동의 없이 묶여서 들어가고 규율과 훈육이 차고 넘치는 병동에서 격리실에 갇히는 등의 억압을 경험해 나온 이들은 정신병원을 ‘적대적’ 공간으로 해석하게 된다.

치료될 수 있는 공간에서 치료가 돼야 한다는 것은 모두가 동의하는 명제다. 죄 없이 아프다는 이유로 정신병원에 강제로 끌려들어가는 후진적 정신의료 시스템은 끝나야 한다.

또 아프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치유시켜 다시 사회로 복귀시켜 살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국립법무병원의 전문의 급여와 환경, 적정 수의 환자와 의료진의 관계 맺기 등 국가의 적극적 개입과 지원이 따라야 한다는 분석이다. 치유를 돌보는 전문의가 자기 병원 환경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정도의 국가적 자원 공급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차 전문의의 “그들은 사건의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치료받지 못한 정신질환의 피해자”라는 말을 허투루 들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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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2022-02-09 15:31:35
독일과의 구체적 비교 등 전문매체다운 심도있는 기사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