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대통령 당선인에게 보내는 ‘시무8조’…“정신질환 국가책임제 더 미룰 수 없으니...”
가족이 대통령 당선인에게 보내는 ‘시무8조’…“정신질환 국가책임제 더 미룰 수 없으니...”
  • 김영희 기자
  • 승인 2022.03.16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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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0위권 경제대국에서 정신건강복지는 후진국..정신질환 국가책임제 도입해야
비자의입원에서 가족 동의 요구하는 나라는 거의 없어...우리나라만 가족에 책임 떠맡겨
응급상황에서 만성적 병상 부족...응급병상 인력, 환경, 수가 개선해야
보호의무자 제도 폐지해야...당사자 자기결정권 침해하고 가족에게 불합리한 의무 안겨
동료지원·위기쉼터·가족지원활동가 제도 도입 필요...지역사회 서비스 확충

대선이 끝났다.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선거 중 가장 적은 득표율 차이로 승부가 결정된 초박빙 선거였다.

치열한 선거전을 겪고 당선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축하를 보낸다. 당선인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기존 대선 공약과 더불어 각계각층의 많은 요청 사항에 직면할 것이다. 거기에 필자도 간절한 마음을 담아 정신건강 복지 분야에 관한 요청 사항을 전한다.

윤석열 후보 공식대선공약집 발췌
윤석열 후보 공식대선공약집 발췌

 

이재명 후보 공식대선공약집 발췌
이재명 후보 공식대선공약집 발췌

 

세계 10위권 경제력을 가진 대한민국으로서 이제 그에 걸맞은 정신건강복지를 해야 한다. 이제는 후진적 법과 제도를 가지고 버틸 수 없다. <중증정신질환 국가책임제>를 도입해야 한다. 사실 정신건강복지 정책과 관련해 바라는 점이 많지만, 그래도 <중증정신질환 국가책임제>를 위해 정말 시급하고 꼭 필요한 몇 가지 핵심 사항은 다음과 같다.

자·타해 위험성이 있는 정신과적 응급 상황 대응 시스템 개혁해야

정신질환 당사자와 가족에게 가장 힘든 상황이 바로 정신과적 증상과 관련해 자·타해의 위험성이 있는 응급 상황이다. 그러한 상황을 최대한 예방해야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응급 상황이 발생하곤 한다.

현재 우리나라와 중국 정도를 제외하면 응급 상황시 비자의 이송 및 비자의입원(강제입원)에 가족 동의를 요구하는 국가는 없다. 무엇보다 응급 상황에서의 비자의 이송이나 비자의입원 필요성 판단과 실행은 보호의무자인 가족, 즉 사인(私人)이 아닌 정신건강 전문가와 공공이 전담해야 한다. 

공공이 아닌 사설이송단에 의한 비자의입원율은 전체 입원의 80%에 이른다. 이 같은 이송체계는 대법원 판례를 봐도 불법감금죄로 볼 여지가 크다. 당사자의 인권이 이송단계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가족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로 불법 논란 및 비용의 문제, 또 ‘내가 정말 지금 잘 판단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고민 등으로 인해 겪는 어려움이 있다.

비자의 이송 필요성 판단 권한을 정신건강전문요원에게 주자는 의견도 일부 있지만 이는 적절치 않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과 소방에게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실시간으로 전문의가 판단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이송 필요성 판단 제공을 전담할 전문의 인력을 배치해야 한다.

응급상황 대비한 ICT(정보통신기술) 시스템 활용 및 적정한 정신응급 병상의 확보도 시급하다. 

이송 판단이 내려져도 막상 어느 정신의료기관으로 가야 입원이 가능한 병상이 있는지 일일이 전화를 돌려가면서 헤매야 하는 시스템은 ‘원시적’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ICT인프라를 갖춘 우리나라와 어울리지 않는다. 이미 신체질환 응급 상황에서는 ICT 기술을 통해 어느 의료기관으로 갈지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 이는 정신질환 응급 상황에서도 적용돼야 한다.

정신응급 상황에서 가족이 요청하는 사설이송단은 전체 이송의 80%를 차지한다. 당사자는 폭압적 이송 과정에서 트라우마를 겪게 된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c)ambulanciasprivadas.net
정신응급 상황에서 가족이 요청하는 사설이송단은 전체 이송의 80%를 차지한다. 당사자는 폭압적 이송 과정에서 트라우마를 겪게 된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c)ambulanciasprivadas.net

또한 현재 우리나라의 인구수 대비 정신의료기관 병상수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최상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정작 정신응급 상황시 입원 가능한 병상은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그나마 있는 병상도 적정 치료와 인권 보호에 투입되는 인력과 시설환경이 작동하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정부는 응급 병상에 투입되는 인력과 시설환경 개선에 대한 투자, 적정 수가를 의료계와 협의해 방향성을 마련해야 한다.

병원 이송 후 가족에게 병원이 입원신청(동의)서 작성을 요구하는 절차 역시 폐지돼야 한다. 

비자의적 치료에서 가족에게 과도한 권한을 주어서는 안 된다. 비자의적 치료는 인권과 직결되는 사항이므로 전적으로 전문가와 공공이 결정하는 권한을 가져야 한다. 그에 대한 책임 역시 공공이 져야 한다.

보호의무자 제도 폐지

가족은 가족일 뿐이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가 아니다. 지금처럼 가족이 비자의적 이송과 치료에 판단과 결정권을 행사하고 그에 따른 책임까지 지게 하는 법과 제도는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가족에게는 불합리한 책임을 지우는 것이다.

현재 정신건강복지법상 가족(보호의무자)의 권한은 다음과 같다.

▲ 동의입원신청 동의권(법 제42조 제1항) ▲ 동의입원환자의 퇴원신청 동의권(법 제42조 제2항) ▲ 보호입원 신청권(법 제43조 제1항) ▲ 보호입원의 연장에 대한 동의권(법 제43조 제2항)
▲ 보호입원환자의 퇴원신청권(법 제43조 제9항) ▲ 입원환자를 위한 퇴원 및 처우개선청구권(법 제55조 제1항) ▲ 특수치료에 대한 보충적 동의권(법 제73조 제1항) ▲ 기록열람 및 사본발급을 위한 보충적 요구권(법 제30조 제3항) ▲ 각종 통지 및 고지를 받을 권리 등이다. 

이어 정신건강복지법상 가족(보호의무자)의 의무는 다음과 같다.

▲ 보호의무자는 보호하고 있는 정신질환자가 적절한 치료 및 요양과 사회적응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 보호의무자는 보호하고 있는 정신질환자가 정신의료기관 또는 정신요양시설에 입원 등을 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정신질환자 본인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여야 하며, 정신건강의학과전문의가 정신의료기관등에서 정신질환자의 퇴원 등이 가능하다고 진단할 경우에는 퇴원 등에 적극 협조하여야 한다. 

▲ 보호의무자는 보호하고 있는 정신질환자가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아니하도록 유의하여야 하며, 정신질환자의 재산상의 이익 등 권리보호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 노력 부족 인정 때 민사상 책임을 보호의무자가 대신 져야 함) ▲ 보호의무자는 보호하고 있는 정신질환자를 유기하여서는 아니 된다. (※ 위반 시 형사처벌 조항 있음)

앞서 얘기했듯이 보호의무자 제도는 우리나라와 중국 정도밖에 없는 제도이다. 그 외 국가들은 보호의무자 제도의 불합리성 때문에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거나 있었다가도 폐지했다.

소위 '신청입원제도'의 신설

신청입원은 선진국의 입원신청제도와 유사하다. 이는 특정 범위의 친족이나 후견인(이하 ‘신청인’)이 정신질환자가 당장의 자·타해 위험성은 없더라도 정신과적 증상이 심해 입원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 공공에 입원 신청을 하고, 전문의 1인의 진단하에 3~14일 정도의 단기간 비자의입원을 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또 신청인의 판단과 달리 전문의 1인 진료에서 자·타해 위험성까지 인정되면 타 기관의 전문의 1인의 추가적 교차 진단 및 독립적 심사기구의 심판을 통해 입원유형의 변경 및 입원 기간의 연장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비자의입원 유형 중 보호입원은 폐지하자면서 왜 굳이 이러한 비자의입원 유형을 신설하자고 하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질환이 그렇듯이 조기 진단과 치료가 중요하다. 지금처럼 자·타해 위험성이 나타날 때까지 악화되길 기다려야만 비자의 치료가 가능케 하는 것은 환자의 인권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치료받아야 할 환자의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치료권)도 인권이기 때문이다.

회복되고 훈련된 당사자의 ‘동료지원’ 및 절차보조 제도 도입. 위기쉼터 제도 도입

정신질환이 있으나 회복된 후 일정 훈련을 거쳐 자격을 갖춘 당사자들이 지역사회와 정신의료기관에 있는 당사자들을 돕고, 입원하는 당사자들을 위해 절차보조 및 모니터링 역할을 부여하는 제도를 도입했으면 한다.

정신질환의 경험을 갖고 회복한 당사자들의 동료지원 효과는 이미 여러 연구에서 긍정적 효과가 입증된 바 있다. 이는 당사자들의 괜찮은 일자리 제공에도 큰 의미가 있다.

입원 과정에서 당사자의 인권 침해(부실한 권리고지 및 과도한 강박과 격리 등)가 발생하지 않도록 보조하고 모니터링하는 역할 역시 동료 당사자에게 적합할 것이다.

또한 동료지원가와 정신간호사 등이 같이 있는 ‘위기쉼터’ 제도 도입도 필요하다. 굳이 정신의료기관 입원까지는 필요하지 않고 잠시 동료가 지지해주는 안정되고 편안한 환경에서 쉬어도 위기를 넘길 수 있는 정도의 상황이 있다. 이러한 위기쉼터를 각 지역사회마다 소규모로 운영할 수 있도록 촉진했으면 한다.

가족들에 대한 내실있는 정보제공 및 심리지원 제공 (가족지원활동가 제도화)

정부는 가족에게 정신질환에 대한 의학적 정보뿐만 아니라, 관련 법과 제도, 복지 및 당사자와의 대화 기술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또 당사자 돌봄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지친 가족에게 심리지원 서비스 역시 지원해야 한다. 이는 의료인뿐 아니라 먼저 경험했던 다른 가족들 중 훈련을 받아 자격을 갖춘 가족 및 정신건강전문요원(사회복지사) 등이 할 수 있다.

불필요한 장기입원 방지 및 퇴원 후 지역사회 서비스 확충

단순히 신규 비자의입원 건수 자체가 줄어드는 것이 절대선(善)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입원 환자의 전체 인원과 그들의 입원 기간이다. 필요할 때 원활히 입원하고 입원 치료가 필요하지 않을 때는 지체없이 퇴원시켜야 한다. 대신 외래 치료를 받도록 해서(조건부 퇴원) 환자의 인권 보호 및 사회적 입원 방지를 꾀해야 한다. 현재 보호입원과 달리 행정입원의 경우 비자의입원 기간이 지나치게 길다.

현재 사문화된 외래치료지원제(외래치료명령제)도 적극 적용해야 한다. 임의로 치료를 중단했을 때 급격한 증상 악화나 자·타해 위험성의 발생 우려가 있는 당사자들이 외래치료 지원을 통해 지역사회에서 이웃과 함께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비자의입원과 퇴원에 대한 최종 심사를 담당할 독립된 통합 심사 기구 도입

지난 2018년부터 모든 신규 비자의입원 환자에 대해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입적심)가 심사를 하고 있으며, 비자의입원 기간 연장 심사는 각 기초 지자체의 정신건강심의위원회(정건심)에서 하고 있다.

현재 입적심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 비자의입원에서 가장 문제시되는 구금의 적법성에 대한 해결책 될 수 없음. 환자의 심사 결정 순응도 강하지 못함 ▲ 심사위원의 환자 대면(화상 포함) 없이 서류만으로 판단: 강제입원의 악용을 막고 정신질환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측면에서도 입원 당사자 직접심리와 변론절차 마련이 가능한 독립심사기구를 두는 것이 적합 

▲ (소)위원장이 전부 의사: 사실상 최종심사인 입적심마저도 의사 의견이 절대적 영향력 가지는 구조 (독립성 의문) ▲ 입원부적합 판정된 사례 사유 중 대부분: 치료필요성 없거나 자타해 위험성 없음 때문이 아닌. 보호의무자 자격 부적격이나 관련 증빙서류 미비, 사적 이송과정 중 강압성 논란 때문 

▲ ‘입원 적합’ 또는 ‘입원 부적합’(즉시 퇴원) 단순 2가지 결정만 가능: 조건부(예: 외래치료명령 등) 퇴원 결정, 입원 기간 연장 심사 등 불가 ▲ 정신건강 선진국에서는 법원(사법기관) 혹은 정신건강심판원(준사법기관) 구성을 통해 독립심사기구를 규정하고 있음

현재 정건심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 부실한 입적심보다도 더욱더 부실한 심사: 위원회가 제대로 개최조차 안 되는 곳들도 있음 ▲ 입원실을 갖춘 정신의료기관이 전혀 없는 기초지자체의 경우, 해당 지자체에 주소를 둔 환자의 경우는 자신의 주거지가 있는 지자체가 있는 곳이 아닌 정신의료기관이 위치한 지자체의 정건심을 거침 

▲ 입적심에서처럼 의사의 의견이 절대적 영향력 가지는 구조 (독립성 의문) ▲ 특히 행정입원한 환자의 경우 설령 퇴원이 가능하더라도 관성적으로 입원 연장 허가를 반복하며 사회적 입원으로 가도록 방치.

따라서 현재의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와 정신건강심의위원회는 개선의 대상이 아닌, 폐지 후 (준)사법심사기관으로 통합 대체돼야 할 대상이다.

정신질환 당사자의 취업 적극 지원

앞에서 말한 동료지원가 및 절차보조, 모니터링 역할자로서의 취업뿐 아니라, 회복 단계 및 당사자의 욕구에 따라 그에 적합한 일자리 창출이 필요하다. 감히 ‘정신질환 회복의 완성은 일자리’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쉽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 장애 유형 중 취업률이 꼴찌이면서 동시에 기초생활수급자 비율 1위라는 현 상황을 벗어날 수 있도록 적극적 정책이 필요하다. 발달장애인의 취업도 어렵지만, 관심과 지원을 통해서 조금씩 개선되고 있듯이 정신장애인의 취업도 불가능하다고만 보지 말고 꾸준히 추진해야 한다.


이상 '시무8조'를 새 정부를 이끌 대통령 당선인에게 요청하니 부디 정신건강복지에 대해 많은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말았으면 한다. 당사자와 가족 등 관련 단체도 열심히 뛰겠다.

“도와주십시오!”


※ 필자는 현재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에서 정책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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