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위기쉼터 개소...정신위기 상황에서 정신병원 대신하는 대안적 회복 모델로 주목
마침내, 위기쉼터 개소...정신위기 상황에서 정신병원 대신하는 대안적 회복 모델로 주목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2.05.13 19: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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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 위기쉼터 개소식 진행…12월까지 시범 운영
예산 부족으로 야간담당자 1명만 채용…예산 늘어나면 인력 확충할 것
의료계, 정신위기(crisis)의 개념 모호해…자의적 해석하면 치료 시기 놓칠 수도
정신장애 운동 진영, 의료 이데올로기 넘어서 치유의 새 패러다임 만들어야
송파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13일 위기쉼터 개소식을 갖고 본격 운영에 들어갔다. (c)마인드포스트.
송파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13일 위기쉼터 개소식을 갖고 본격 운영에 들어갔다. (c)마인드포스트.

정신장애인의 정신과적 위기·응급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안전한 보호 공간에서 심리적 안정을취하고 회복을 돕는 위기쉼터가 본격 운영된다.

송파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는 13일 서울 송파구 센터에서 당사자 위기쉼터(회복마을) 개소식을 갖고 본격 운영에 들어갔다. 보건복지부 지원을 받는 이 쉼터는 시범사업으로 올해 12월까지 한시 운영된다.

개소식에는 장애인단체와 정신장애인단체, 보건복지부 관계자, 장애인재활시설협회 관계자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위기쉼터가 들어서는 장소는 송파센터가 있는 건물 4층이다. 센터는 건물 2층은 기존 용도인 사무실로 운영하고 대신 4층을 쉼터로 조성했다. 30여 평의 공간에는 소파와 침대가 마련돼 있지만 거실과 침실을 나누는 작업을 거쳐 조만간 공사를 완료할 예정이다.

24시간 운영되는 이 쉼터는 야간 담당자가 한 명이다. 예산의 한계 때문에 센터는 우선 한 명을 고용하고 향후 국가 예산이 더 반영되면 야간 담당자 수를 늘릴 계획이다. 비정신장애인인 야간 담당자는 일주일에 4일을, 오후 9시부터 오전 6시까지 일한다.

이후 낮 시간대에는 2층의 센터 동료지원 활동가들이 4층 쉼터를 방문해 정신응급으로 쉬고 있는 당사자를 만나 경험을 공유하고 정서적 안정을 도울 예정이다. 야간 인력이 일주일에 나흘간 일을 할 경우 나머지 사흘은 센터 직원들이 교대로 야간을 담당할 계획이다. 

지난 4월 국가인권위원회는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지역사회 정신장애인을 위한 위기쉼터를 설치하고 쉼터 내 지원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라는 의견을 표명했다.

인권위는 정신장애인의 정신과적 응급 상황에서 당사자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선택지 대신 정신의료기관으로 강제적으로 입원해야 하는 건 유엔 장애인권리협약(CRPD), 지역사회 치료 원칙을 규정한 정신건강복지법을 모두 위반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강제입원 과정에서 신체의 자유가 심각하게 제한받고 지역사회에 참여하고 교류할 기회가 박탈되는 등 행복추구권 또한 침해받는다는 이유 역시 위기쉼터 조성의 근거로 들었다.

그간 정신응급 체계는 사설이송단이 정신적 위기에 처한 정신장애인을 강제로 차에 태워 정신병원으로 입원시키는 경향이 주를 이뤘다. 이 과정에서 원치 않는 입원을 하게 된 당사자는 일명 ‘코끼리 주사’로 불리는 안정제를 맞고 강제적인 안정을 취해야 하는 등 인권 침해적 요소가 다분히 강했다.

특히 입원한 정신장애인이 자신을 강제입원시킨 가족에 대한 원망이 강해지면서 가족 관계 역시 파탄나는 경우도 많았다는 분석이다.

개소식 행사 모습. (c)마인드포스트.
개소식 행사 모습. (c)마인드포스트.

이 경우 정신장애인은 가족관계에서의 상실과 분노를 느끼게 되고 그 정서적 상황은 당사자에게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심리적 안정보다는 정신적 상황이 더 악화되는 부작용을 거치게 된다는 지적이다.

위기쉼터는 이 같은 강제적 입원 과정에 대한 반성적 토대 위에서 제기된 대안적 응급 대응 체계다. 정신병원 폐쇄병동 입원을 피하는 대신 잠자리와 휴식 공간이 마련된 위기쉼터에서 며칠 생활하면서 자신과 같은 질환을 겪어왔던 동료지원가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그들의 공감과 지지를 통해 정신 응급 상황을 완만하게 넘어서는 강점을 가진다.

미국은 정신병원으로 갈 인구의 28%가 지역사회 위기쉼터에서 회복돼 지역사회로 복귀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일각에서는 정신위기 상황에서 ‘위기’(crisis)에 대한 개념적 정의가 내려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정신위기 상황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위기쉼터로만 유도할 경우 자칫 정신과적 입원을 회피하게 돼 적절한 초기 치료를 놓치고 정신적 어려움을 더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개소식에 참여한 황운성 한울정신건강복지재단 이사장은 “위기쉼터를 가로막는 의료적 이데올로기가 많다”며 “지역사회 위주로 충분히 (정신응급 위기가)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위기쉼터 내부 침대. 송파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는 공간 리모델링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c)마인드포스트.
위기쉼터 내부 침대. 송파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는 공간 리모델링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c)마인드포스트.

고윤권 정신건강정책과 사무관은 “이 사업은 당사자의 노력으로 마련된 것으로 시대정신에 맞다”며 “첫 사업이라 잘 안 될 수도 있지만 시스템을 만들면서 내년에도 사업이 가는 방향으로 잡아야 한다”고 전했다.

신석철 이 센터 소장은 “위기쉼터는 국가인권위원회 권고 사항으로 병원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잘 살게 하는 것”이라며 “지역사회 중심의 서비스 인프라 구축을 통해 서울지역에 권역별로 위기쉼터가 만들어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정신건강 모델이 의료모델에서 재활모델, 사회모델, 인권모델로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시점에서 정신장애인의 지역사회 거주와 권리의 수혜를 강조하고 있다. 이번 위기쉼터는 아직 낯선 개념이지만 지역별로 확산될 경우 강제적인 응급입원을 막는 대안적 치료체계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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