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점태 “당사자가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책임은 가족이 아니고 국가에 있어요”
배점태 “당사자가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책임은 가족이 아니고 국가에 있어요”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2.05.10 18: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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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점태 심지회·한국조현병회복협회 회장 인터뷰
아들 전조증상 보일 때 빨리 조치했어야…병에 무지했던 아쉬움 남아
정신장애 편견 때문에 부모들이 앞장서는 걸 주저하고 있어
단체 리더가 사익을 추구하면 분열돼…정치적 목소리 낼 때는 뭉쳐야
정신질환은 의사 역할 중요하지만 가족도 전문지식 갖춰야 해
정부 예산 편성으로 가족지원활동가 양성해 센터에 투입해야
최소약물주의 강조하면 안 돼…적정약물주의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정신건강복지법 폐지하면 미등록 정신장애인에 대한 복지서비스 근거 사라져
초발 당사자의 적절한 치료, 가족 책임 넘어 반드시 국가가 책임져야
부모가 사회적 관계 잘 해야 자식에게 도움돼…우울해하면 부담주는 것
부부가 병의 원인을 상대방에게 돌리지 말아야…언어적 폭력도 금물
교과서 지식보다 당사자·가족 입장에서 치료하는 의사가 좋은 의사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아들은 고등학교 때 발병했다. 학교에 가기 싫다고 했다. 그 상황이 반복되면서 느낌이 이상했다. 천만다행일까. 그는 지인의 소개로 바로 대학병원 정신병동에 입원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자식이 발병하면 굿과 무속, 종교 의식, 비과학적 치료행위를 다 거친 후에야 한숨처럼 정신과 병동을 찾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는 바로 병원에 입원시켰다. 이후 31년간 일한 은행에서 퇴직한 후 본격적으로 아들의 치유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심지회(조현병회복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배점태(63) 심지회 회장을 인터뷰하면서 정말 묻고 싶은 게 있었다. 그건 왜, 정신장애인 부모들은 뭉치지 못하고 서로를 비난하면서 갈등하고 분열하는지였다. 최근 서울 종로 청와대 인근에서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모여 발달장애인 24시간 보호와 국가책임제를 요구하며 단체 삭발하고 단식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접한 터였다.

배 회장은 그러나 “그 질문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단체의 장(長·리더)이 사익을 추구할 경우 그 조직은 와해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무차별적으로 정신장애인 가족 조직은 분열된다는 건 일반화의 오류라는 지적이다. 대신 그는 미국의 가족과 당사자와 전문가가 함께 활동하는 나미(NAMI) 같은 조직이 한국에도 도입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또 가족들이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하는 이유가 정신장애에 대한 사회적 낙인 때문이라는 분석도 제시했다. 영향력이 있는 부모가 사회운동을 기피하고, 특히 아버지들이 운동을 피하면서 조직 역량이 강화될 수가 없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어머니들은 “아버지가 비겁하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일반적 병의 경우 의사의 판단과 치료에 맡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신장애는 다르다. 환청이나 망상은 약을 조절해 처방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의 문제 해결에는 한계가 있다. 망상에 의한 와해된 사고, 분절적 언어, 내면에 또아리튼 고통을 이해하고 돌보기 위해서는 가족은 의사 못지않은 지식과 행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가족에게만 부과된 돌봄의 의무는 그 요청이 강화될수록 가족은 심리적으로 탈진 현상을 보이게 되고 극심한 고통에 이를 경우 자식과 함께 사라지고 싶다는 극단적 생각까지 하게 만든다. 배 회장이 국가책임제를 주장하는 이유다.

배 회장은 또 가족교육을 통해 가족지원활동가들을 배출하고 이들이 지자체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배치돼 정신장애 당사자와 가족을 대면한다면 적은 예산으로 더 많은 효율적 심리지원을 해낼 수 있다는 분석도 냈다.

모든 부모는 정신질환을 가진 자식의 회복을 바란다. 아니, 염원한다. 자신은 쓰러질지라도 자식은 일어서기를 바라는 게 부모의 마음이다. 그래서 어떤 부모는 “자식의 저 병을 모두 나한테 주고 자식은 펄펄 날아다녔으면 좋겠다”라고 소망한다. 

배 회장도 그랬을 것이다. 다행히 아들은 회복돼 대학을 마치고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땄고 정신장애인 기관에서 일하고 있다. 무엇을 더 바랄 수 있을까. 자식이 치유된 후 심지회를 떠날 수 있었지만 그는 떠나지 않았다. 대신 남아서, 초발 가족들에 정보를 알리고 교육을 시키고 있다. 그를 만난 건 지난 3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다. 다음은 일문일답.

배점태 심지회 회장. ©마인드포스트.
배점태 심지회 회장. ©마인드포스트.

-아드님의 첫 발병 후 사람을 통해 도움을 받았습니까. 아니면 어떤 기관을 통해 도움을 받았습니까.

“아들이 고2 때 발병했어요. 어느 날 학교를 안 간다는 거예요. 무언지 모르겠지만 큰일났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인이 강남의 한 개인병원을 소개해주었고 거기서 대학병원인 중앙대병원을 추천해서 입원하게 됐어요. 쭉 중앙대병원을 다니고 있어요. 어떤 기관의 도움을 받은 적은 없습니다.”

-다시 돌아간다면 다르게 대응했겠지요.

“아쉬운 점은 발병 전에 전조 증상이 있었거든요. 그때는 제가 병에 무지해서 아들이 전조 증상 신호를 보내는데 모르고 방치했어요. 일찍 적절한 조치를 했으면 아들이 덜 고생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드네요.”

-발병 후 돌봄 과정에서 후회가 남는 부분이 있습니까.

“발병 후에 아내와 저는 정말 아들의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했어요. 지금도 눈물이 나요. 다행히 아들이 올해 대학 졸업하고 사회복지사 자격을 취득했어요. 취업도 했고요. 감사하죠. 부모로서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습니다.”

-특별히 심지회를 조현병으로 병의 스펙트럼을 제한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심지회는 조현병만으로 병의 스펙트럼을 제한하지 않습니다. 조현병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분들은 심지회 회원이 될 수 있어요. 단체 명칭 때문에 그런 오해가 발생한 걸 거예요. 심지회 이사회에서도 단체의 명칭 변경을 논의한 적도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어요.”

-최근 청와대 인근 효자동에서 발달장애인 어머니 수십 명이 24시간 국가 지원체계 구축을 요구하며 삭발하고 단식을 했습니다. 정신장애인 부모로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부럽다는 생각이 들죠. 정신장애인 부모들도 아이들을 위해 뭉쳐야죠. 제가 심지회 회장으로 일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역량 있는 부모님들을 모시는 데 어려움이 있어요.

특히 아버지들이 그래요. 정신장애의 사회적 편견 때문에 힘 있는 부모들이 앞장서는 걸 주저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특히 아버지들은 활동을 외면하고 있어요.‘아버지들은 비겁하다’고 말하는 어머님들도 있어요. 모든 아버지가 그런 건 아니지만, 일부 공감이 가요. 이런 현상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좀 근본적인 질문인데 왜 정신장애인 가족은 통합과 단결보다는 반목과 분열이 심한지 늘 의문점이었습니다.

“질문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습니다. 과거에 있었던 반목과 분열은 단체 리더가 당사자와 가족을 생각하지 않고, 개인적 이익을 추구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각 단체의 고유한 특성과 활동은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만 의사를 비롯한 전문가 단체, 정부 및 국회를 대상으로 목소리를 내고자 할 때는 뭉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저의 꿈은 미국의 나미(NAMI·전미정신질환연합)같이 가족단체들이 연합해 정부와 국회에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겁니다.

최근에 당사자, 가족, 전문가 단체로 구성된 정신장애인생존권연대가 출범했는데 여기에서 단결된 목소리가 나올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부모들이 서로 이간질하고 싸우는 것에 많은 이들이 상처입고 떠나는 것 같습니다. 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그건 가족단체뿐만 아니라 모든 단체가 그래요. 공적 이익보다 본인의 이익과 명예를 추구하게 되면 서로 이간질하고 싸우게 됩니다. 파벌을 만들죠. 그래서 개인의 이익보다 당사자와 가족을 위하는 이들이 단체의 장이나 임원이 되는 게 중요하죠.

또 단체가 특정 개인에 의해 운영되지 않고 이사회 등 시스템에 의해 운영된다면 그런 문제들이 극복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지회도 그렇게 운영되고 있습니다.”

-심지회가 초발 당사자 대상의 가족교육도 하고 계시더군요. 교육이 왜 중요합니까.

“일반적인 병 치료는 의사의 역할이 중요하고 가족의 개입은 별로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정신질환도 의사의 역할이 중요해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의사는 환청·망상같은 양성 증상을 조절하는 약을 처방해주지만 그 이상의 문제 해결에는 한계가 있어요.

당사자의 음성 증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재활기관뿐만 아니라, 가족의 도움이 무엇보다도 중요해요. 그래서 가족은 병에 대해 의사 못지않은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해요. 그래야 자녀를 회복시키는데 올바른 역할을 할 수 있어요. 정보와 사실을 알려주는 가족교육은 매우 중요합니다.”

배점태 심지회 회장. ©마인드포스트.
배점태 심지회 회장. ©마인드포스트.

-가족지원활동가 양성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들의 교육 커리큘럼은 누가, 어떻게 구성하는 겁니까.

“가족지원활동가는 한국보건복지인재원이나 서울시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각자 교육 커리큘럼을 만들어 교육시키고 있어요. 제가 주장하는 건 정부 예산을 투입해 양성된 가족지원활동가를 적절히 활용하자는 겁니다.

현재 지자체마다 하나씩 있는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는 인력이 부족해 정신장애인 당사자와 가족에게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어요. 보건복지부가 정신건강복지센터에 투입할 사회복지사를 증원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잖아요.

정부에서 관련 예산을 일부 전환해서 교육을 수료한 가족지원활동가들에게 활동료를 지급하는 거예요. 그럼 적은 예산으로 당사자와 가족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고 정신건강복지센터의 업무 부담도 덜 수 있어요. 또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족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방법으로도 활용 가능한 거죠.”

-심지회 자체적으로 동료지원가나 가족활동지원가를 양성하고 있습니까.

“현재는 없지만, 향후에 가능하다면 심지회 자체적으로 동료지원가 또는 가족활동지원가를 양성하고 싶습니다.”

-정신병원으로 절차보조인이 들어가야 하지만 병원의 폐쇄성으로 실행하기 어렵습니다. 이를 어떻게 바꿔야 할까요.

“영국의 독립건강옹호서비스와 같이 절차보조인이 병동에서 환자를 직접 만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법적·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절차보조인 활동이 활성화 될 수 있잖아요. 예컨대 절차보조인 활동에 협조를 하지 않으면 해당 기관에 불이익을 주는 법적인 근거와 제도가 있어야죠.

장애인복지법 제15조 폐지 후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는데 여기에 이런 내용들이 반영돼야 합니다.”

-최소 약물주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모든 의사가 그런 건 아니지만, 약물을 과다하게 사용하는 의사도 있죠. 임상 경험이 부족한 경우 그럴 수 있어요. 또 증상이 완화됐는데도 환자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거나 짧은 진료 시간 등으로 인해 약물을 조정해 처방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에 대한 반성 차원으로 최소 약물주의를 주장하시는 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최소 약물주의의 부작용으로 인해 재발로 어려움을 경험하는 당사자들도 있습니다. 저는 최소약물주의가 아니라 적정 약물주의를 주장하고 싶어요. 약물 변경 시 환자의 증상에 미치는 영향을 일정 시간을 가지고 면밀히 관찰하고, 이에 따라 조심스럽게 당사자에게 적절한 약물을 지속적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인복지법 제15조 폐지 이후의 정신인권 단체는 어떤 걸 국가에 요구해야 합니까.

“우리가 유의해야 하는 건 장애인복지법 제15조가 폐지된다고 정신장애인 관련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정신장애인의 자격 제한 관련 법령이 28개나 있습니다.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정신장애인에 차별을 둔 조례들도 많고요.

또 정신장애인 특성이 반영되지 않은 ‘장애인서비스지원 종합조사표’ 등은 제15조 폐지와 관계없습니다. 하루아침에 해결되지 않겠지만, 정신장애인 인권단체는 정신장애인을 편견과 차별을 조장하는 법·제도 개선과 함께 인식 개선을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신건강복지법 폐지를 요청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정신건강복지법에 문제가 많다는 건 저도 인정합니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등록된 정신장애인이 10만여 명입니다. 하지만 건강보험공단에 의하면 조현병으로 진단받아 지속적으로 약물을 복용하고 있는 당사자가 25만 명 정도 됩니다.

따라서 약 15만 명 정도는 사회적 편견, 당사자 및 가족의 병식 부족, 정신장애 등록 절차의 까다로움 등의 사정으로 인해 장애인등록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신건강복지법을 폐지하면 이 미등록 정신장애인에게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법률적 근거가 없어집니다. 예를 들어 서울을 비롯해 전국에 있는 8개 정신장애인자립센터도 정신건강복지법의 법률적 근거가 있었기 때문에 설립 및 운영이 가능했던 거죠.

물론, 장애인복지법에서 모든 것을 커버할 수 있다면 정신건강복지법 폐지에 저도 찬성입니다.”

-매주 수요일 심지회 사무실에서 대면 상담이나 화상상담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반응이 어떻습니까.

“그동안 심지회 카페나 전화를 통해 상담을 진행했는데 상담 활동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심지회 이사회에서 논의 결과 매주 수요일 심지회 사무실에서 대면상담을 실시하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시작한 지 아직 얼마 되지 않아 아직 홍보가 많이 부족합니다. 홍보와 관련해 마인드포스트의 도움을 부탁드립니다.”

-자식의 정신질환으로 내적 고통을 받으신 부모들이 종교로 귀의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회장님은 어떻습니까.

“저도 한때 내적 고통으로 인해 종교에 잠시 의존한 적도 있습니다. 현재도 종교에 관심은 많으나, 아들이 많이 회복되고 나서는 적극적으로 종교 활동을 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정신장애인 국가책임제의 핵심은 뭐가 돼야 할까요.

“사람마다 처한 입장에 따라 국가에 요구하는 내용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 국가에서 책임지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정신장애인 국가책임제를 주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 국가에서 제공하고 있는 장애인 복지 제도에서 장애인복지법 제15조 폐지와 같이 정신장애인이 차별받지 않도록 하는 활동도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초발 당사자가 중증정신장애인이 되지 않도록 조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는 가족이 그 책임을 지고 있어요. 이 문제는 반드시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배점태 심지회 회장. ©마인드포스트.
배점태 심지회 회장. ©마인드포스트.

-현재의 보호의무자 제도가 가족을 나락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이 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요청이 많습니다.

“당사자가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책임은 가족이 아니고 국가에 있습니다. 적절한 치료를 하지 못한 경우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하는 거죠. 현재 보호의무자 제도는 모든 책임을 가족에게 지우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개선돼야 하는 제도입니다.”

-환자의 최종 입원 결정은 누가 맡아야 합니까.

“자기결정권에 의해 환자 본인이 입원을 결정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하지만 이 병의 특성 중 하나가 병식이 없어 치료를 거부하는 겁니다. 이 때문에 많은 가족들이 어려움을 호소합니다.

어떤 가족은 이렇게 비유해요. 병식이 없어 입원을 거부하는 당사자에게 자기결정권을 존중한다며 입원시키지 않고 치료를 방치하는 건 어린아이가 낭떠러지로 기어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다고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것과 같다고요. 저도 그 의견에 동의합니다.”

-카페에서 활동을 하다가 자식이 회복되면 카페를 떠나더군요. 그때는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자녀가 어느 정도 회복되면 심지회를 떠나는 분들도 있습니다. 최근에 두 분의 어머니에게서 전화를 받았어요. 한 분은 심지회가 매월 교육 일정이나 정보를 문자로 알려주고 있는데 자기 자식은 회복됐으니 더 이상 문자가 필요없다는 전화였어요.

또 한 분의 어머니는 완전히 회복됐다고 생각했는데 7년 만에 재발해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며 도움을 청하는 전화였습니다. 이 어머니의 자녀는 최근에 문제가 된 ‘F20’영화를 보고, 자기는 저런 사람이 아니라고 하면서 단약(斷藥)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재발했어요. 조현병에 대한 편견이 당사자와 가족들에게도 엄청나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더 확인했습니다.”

-정신장애인은 질병적 특성상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직장에서 버티는 것이 굉장히 어렵습니다. 버틴다는 게 불가능할 정도죠. 무조건 취업하기를 요구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맞습니다. 심지회가 작년에 가족경영 기업인 미성테크를 통해 정신장애인 16명을 채용했습니다. 이들은 중증정신장애인 등급을 받은 분들입니다. 정신장애인 특성을 고려해 근무시간을 4시간, 8시간으로 구분했습니다. 본인이 가능하다면 8시간 근무하고, 힘든 친구들은 4시간 근무하는 거죠.

하는 일도 사람과 접촉하는 업무가 아니라 접촉이 적은 제조업에 투입했습니다. 약간의 어려움은 있었지만, 당사자들이 아주 잘 다니고 있습니다. 이처럼 정신장애인 특성에 맞는 업무를 맡기면 정신장애인들도 아주 잘 적응할 수 있어요.

직장에 다니는 것이 힘들 수도 있겠지만, 피하지 않고 일을 하는 것이 회복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회장님은 회복의 가치를 어디에 두십니까.

“정신적 문제가 있는 당사자가 약을 완전히 끊는 것을 회복이라고 생각한다면 매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하지만 당뇨병과 고혈압이 있는 사람들도 한평생 약을 복용하면서 사회생활을 잘 하고 있습니다. 당사자들도 정신과 약을 복용하면서 남의 도움 없이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면 저는 회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정신과 의사를 구별하는 개인적 기준이 있습니까.

“단순한 지식을 많이 가진 의사보다는 당사자와 가족 입장에서 치료를 위해 노력하는 의사를 개인적으로 좋은 의사라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기준을 더 말씀드리자면 교과서 지식보다는 임상 경험이 풍부한 의사가 환자와 가족 입장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정신건강복지센터에 가족지원활동가를 투입해 활동가의 경험과 지식으로 소비자들에게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센터가 이들을 받아줄까요.

“보건복지부가 동료지원가나 가족지원활동가를 제도적으로 도입하면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반대할 이유가 없어요. 가족지원활동가의 경험과 지식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해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센터의 업무도 경감시켜 준다고 생각합니다.”

-자식이 오래 아프고 치유의 길이 보이지 않을 때는 부모도 길을 잃을 정도로 힘겹겠지요. 회장님은 그런 경우가 있었습니까.

“저의 아들도 처음에서 병식이 없고 치료도 잘 되지 않아 5년 이상 입·퇴원을 반복했습니다. 진짜 깊은 우물에 빠져 탈출할 길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였어요. 아내와 함께 눈물을 펑펑 쏟은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치료와 재활을 했고 지금은 어느 정도 회복돼 새로운 희망의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자식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다는 심정으로 살아가는 부모들이 대부분이겠죠.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자식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택배로 보낸 한약을 먹고 있다는 혼자 사는 당사자의 글을 카페에서 본 적이 있어요. 그분에게는 자식이 귀중한 겁니다.

저는 심지회 활동을 하면서 나이가 많은 부모님들도 만나고 있어요. 그분들은 연세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본인 걱정보다는 자식 걱정을 더 많이 하고 있어요. 그게 부모의 마음 아닐까 싶어요.”

배점태 심지회 회장. ©마인드포스트.
배점태 심지회 회장. ©마인드포스트.

-자식이 아프면 부모는 기존의 사회적 인간관계를 다 포기한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식 문제와 본인의 생활을 엄격히 분리할 필요가 있어요. 미국의 대학교 연구에 의하면, 사회적 관계가 좋은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8~9년을 더 건강하게 산다고 합니다.

부모가 사회적 관계를 잘 해야 자식에게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부모가 우울하고, 사회적 관계 단절 등 안 좋은 모습을 보이면 아프고 힘든 자식에게 더 많은 부담을 주게 되거든요. 정말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라면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해야죠.”

-아픈 가족을 케어하면서 정말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나 생각은 어떤 게 있을까요.

“병의 원인을 상대방에게 돌리고 배우자를 원망하는 겁니다. 당사자들을 잘 이해하지 못해 언어적 폭력을 사용하는 부모들도 많습니다. 이런 행동은 정말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것들은 무지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모임 등을 통한 교육과 간접 경험이 중요합니다.”

-저는 아플 때 혼자 절을 찾아다녔습니다. 위로받으러 갔지만 오히려 상처를 입었지요. 부모도 나를 이해 못 하는데 누가 나를 위로하겠습니까. 그 후론 그런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회장님은어땠습니까.

“저도 한때 위로를 받기 위해 집사람과 같이 교회에 다닌 적이 있어요. 하지만 제 판단으로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아 현재는 교회에 다니지 않고 있습니다.”

-어쩌면 당사자를 돌보는 가족은 구원자가 내려와서 자신을 위로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렵고 힘들 때 구원자에게 의지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렇지만 현대 의학이 많이 발달해서 이 병도 적절한 치료를 잘 받으면 회복이 될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종교를 통해 위안을 받는 것은 좋지만, 치료를 포함해 모든 것을 구원자에게 맡기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드님이 어떤 삶을 살았으면 합니까.

“큰 욕심 없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를 희망합니다. 아들은 본인의 아픔 경험이 있기 때문에 당사자들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할 거라고 생각해요. 사회복지사와 동료지원가 자격증도 취득했으니 도움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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