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모 “부모한테 용돈만 받았는데 내가 몸을 움직여서 돈을 벌었다? 그럼 눈빛 자체가 달라져요”
김성모 “부모한테 용돈만 받았는데 내가 몸을 움직여서 돈을 벌었다? 그럼 눈빛 자체가 달라져요”
  • 박종언 기자
  • 승인 2022.05.24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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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경영기업 김성모 미성테크 대표 인터뷰
아들 발병 후 1년 지나면 제자리로 돌아올 줄로 생각..무지함 깨달아
당사자들에 일자리 제공하니 너무 좋아해…병 낮지 않아도 일이 중요하다 생각
장애인표준사업장은 최저임금 규정 준수해야…근로·보호작업장과 차별화
정신장애인 증상 1~10의 레벨 정해서 5레벨 이상은 4대보험 들게 해야
정신장애인 아웃풋 비장애인의 35% 불과…정부, 사회통합형 직업 개발해야
직무 실패는 당사자에게 트라우마…실패도 과정이라고 격려할 필요
발병해도 안정기 오면 직업재활 선택…3년은 치료 집중하고 이후는 직업가져야
직업이 가족 부담 덜고 당사자에 희망 안겨…주거와 직업 대두될 것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박종언의 만남: 길을 묻다 (c) 마인드포스트

아들은 음대 3학년 때 발병했다. 그때 아들은 독일 유학을 준비 중이었다. 국내 콩쿠르에서 입상하고 대학 음악제에서 금상을 탔다. 동아음악콩쿠르를 준비하고 있을 때 아들에게 급성기가 찾아왔다. 아들은 당시 살던 아파트 14층에서 뛰어내리려 했고 그는 아들을 껴안고 옆으로 같이 넘어졌다.

급성기 행동이 심해지면서 그는 아들이 뛰어내려도 무사할 아파트 4층으로 이사했다. 조현병 진단서를 들고 갈 곳이 없었던 그는 인터넷에 조현병을 쳐보았다. 거기서 심지회(한국조현병회복협회) 사이트가 딸려나왔다. 그곳에서 그는 조현병 교육을 받았다. 당시 그는 경기도 안산시에서 10여 명 규모의 작은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들이 질병을 이기고 제자리로 돌아와 다시 음악을 할 줄 알았다. 하지만 4~5년이 지나면서 물어야 했다. “도대체 이 병은 뭔가.”

아들은 음악의 길을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아들이 결정을 존중했고 회사에서 일을 시켜봤다. 하지만 인간관계에서 아들은 불화를 일으켰다. 회사에 혼자 일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을 주면서 주문이 들어온 오카리나 제작을 시켰다. 자기 속도대로 하라고 했다. 아들은 아프면 집에 가고 늦게 출근했다. 하지만 두 달 후, 아들은 300만 원의 이익을 냈다.

그는 그 사업 성과를 등록된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알렸고 센터는 사업성을 치켜세웠다. 그는 센터 정신질환자들 몇 명을 자기 회사에서 일하게 했다. 그때, 알았다. 이 당사자들이, 자기 존재감 없이 친구로만 표현되고 해석되던 이들이, 일을 하고 싶어했다는 것을.

그는 서울시 금천구에 미성테크라는 장애인표준사업장을 만들었다. 16명의 정신장애인들이 일을 시작했다. 8개월이 지날 무렵, 3명이 기초생활수급권 자격을 포기했다. 그들은 표준사업장은 장애인들이 일하는 장소이지만 최저임금법 제7조의 ‘정신장애인에게는 최저임금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규정을 거부한다.

그는 당사자들에 취업하고 노동을 하게 되면 어떤 방식으로든 그들은 독립생활로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노동이, 곧 치유다.

김성모(63) 미성테크 대표를 만난 건, 지난 12일 서울 금천구 미성테크 사무실에서다. 다음은 일문일답.

김성모 미성테크 대표. ©마인드포스트.
김성모 미성테크 대표. ©마인드포스트.

-처음에는 그 병이 뭔지 몰랐겠지요.

“1~2년 치료받으면 제자리로 되돌아올 줄 알았어요. 4년이 지나니까 도대체 이게 무슨 병이지 싶었죠. 의사 권유로 정신건강복지센터를 찾았는데 큰 도움은 못 됐어요. 답답한 마음에 인터넷에 조현병을 치니까 심지회가 뜨더라고요.”

현재 그는 심지회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특히 직업재활 쪽을 주시해왔다. 직업이 정신질환의 치유에 도움이 된다는 걸 개인적으로 체감하면서다.

-아들이 26살 때 발병하고 몇 년 뒤에 처음 입원했습니까.

“입원은 생각도 못 했어요. 최근에 경증으로 장애인 등록을 했는데 등록장애인에 대한 정책이 많더라고요. 아들이 스스로 음악의 길로 가지 않는다는 결정이 된 이상 뭔가 직업을 갖는 게 좋겠다 싶었어요. 등록장애인들은 사회복지사들이 붙어서 일을 가르쳐주고 복지 혜택도 있고요. 그게 등록자들에게만 자격이 있어서 장애 등록을 한 계기가 됐어요.”

-가족경영기업이 뭡니까.

“제가 안산에서 직원 일곱 명이 일하는 회사 사장이니까 아들에게 거기서 일을 시켰어요. 도저히 사람들하고 동화가 안 돼요. 싸우고 해서 사회적 관계 형성이 안 돼요. 4년 정도 있다가 포기하고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데 아들이 이런 말을 해요. ‘아버지, 제가 아파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지만 아프지 않은 친구들도 지금의 내 상태보다 더 안 좋은 친구들도 많다고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거 같았어요.

아들이 콩쿠르도 입상하고 두각을 보였으니까 (치료돼서) 돌아가 그 일을 할 줄 알았거든요. 그때 아들에게 맞는 일을 하게 해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때 우리나라에서 세계 오카리나 카니발이 열려서 오카리나 주문이 많이 들어왔어요. 손이 많이 가는 거라 포기하려 했는데 아들이 해 보겠다는 거예요.”

-안산에서요?

“공간을 마련해서 아들에게 네 속도대로 해 보라고 했죠. 납기까지는 두 달 여유가 있었거든요. 아들이 아프면 집에 가고 늦게 출근하고 하면서 두 달을 했는데 한 달에 150만 원의 이익이 나더라고요. 이렇게 하면 되겠다 싶어서 정신건강복지센터에 가서 얘기했더니 사업성이 좋다는 거예요. 그래서 정신질환자들을 우리에게 배치해 달라고 했죠.

격주로 이들에게 일을 시켰는데 이 친구들이 엄청 좋아해요. 이 아픈 친구들도 일을 하고 싶어 했구나라는 걸 처음 알았어요. 그 당시에 심지회에서 공부할 때였는데 병식에 대한 것, 약 복용, 회복의 개념 등을 들었는데 (제 생각이) 그 병이 낮지 않는다 하더라도 일을 하면서 경제생활을 한다면 이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게 시초가 돼서 일을 시작하게 됐죠.”

-정신장애인에 일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기업을 세운 겁니까.

“가족이 경영을 하면 좋은 게 정신장애인이라도 가족이기 때문에 근로보호작업장처럼 저임금으로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공공 일자리처럼 단기간 하는 것도 아니죠. 장기근속할 금액을 주고 무엇보다 아픈 질환에 대해 이해도가 높잖아요. 일하다가 집에 간다든지, 병원에 간다든지, 이런 건 일반인은 모르죠. 가족이 운영하면 이해도가 높기 때문에 이 친구들이 장기근속하는데 도움이 돼요.”

-비장애인도 같이 일을 합니까.

“비장애인도 똑같은 작업을 해요. 정신장애인들이 일을 하는 속도는 일반인들하고 비교해서 35% 정도의 능률밖에 안 돼요. 아들이 아프지 않았다면 몰랐겠죠. 이 친구들이 힘들어할 때를 이해하는 건 내 자식이 가장 힘들 때를 봐놓아서 그렇죠.

작업장 반장님이 38세 정도인데 처음 입사할 때 근무를 못 했어요. 왔다가 나갔다가 5분도 못 있고 또 나갔다가. 사회생활을 처음 했거든요. 지금은 엄청 좋아졌어요. 처음 속도는 35%지만 점점 이게 올라오는 거예요.”

-미성테크가 몇 년도에 만들어졌습니까.

“미성테크는 1993년에 시작했고요. 그때 개인사업자로 안산에서 했었고 여기서 서울에서 정신장애인들하고 하는 것은 2021년 10월 1일부터입니다. 이제 8개월 정도 됐죠. 서울시 지원이 조금 있었고 3월 이후로는 제가 독자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최저임금법 제7조는 정신장애인에게 최저임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규정합니다. 미성테크도 정신장애인에 이 법을 적용합니까.

“장애인 표준사업장은 최저임금 이상을 줘야 하는 조항이 있어요. 직원도 열 명 이상이 돼야 하고요. 또 임신부, 노약자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안 돼요. 근로작업장이나 보호작업장 요건하고는 또 다른 겁니다.

저도 최저임금 이하로 주기로 했다면 표준사업장 운영을 안 했겠죠. 이 친구들도 정상적으로 직장생활을 해서 지역사회로 돌아가려면 최저임금 이상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증상에 따라 일 능률이 안 올라온다 하더라도 직장이니까.”

김성모 미성테크 대표. ©마인드포스트.
김성모 미성테크 대표. ©마인드포스트.

-보호작업장은 최저임금법 적용이 안 된다는 의무가 있나요.

“그런 조항이 명시돼 있어요. 최저임금법 제7조가 있어서 대부분 근로작업장에 한해서 그래요. 장애인들이 갈 수 있는 곳이 장애인복지법에 따른 장애인보호작업장, 또는 장애인근로작업장이 있고요.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른 직업재활시설도 있어요. 이 세 군데는 최저임금법 적용에서 제외할 수 있어요. 그래서 보호작업장을 많이 하고 있죠.

저희는 시작할 때 최저임금을 준다고 했고 그걸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걸 못 지키면 저희 장애인표준사업장 자체 인가를 반납해야 합니다.”

-정신장애인 취업률이 9%로 전체 장애유형 중 가장 낮습니다. 특히 안정적 일자리보다 단기나 파트 타임 등 불안정한 일자리가 대부분입니다. 이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정신장애인들이 학력은 높은데 취업률이 낮고 소득도 낮죠. 제가 정신장애인들과 일을 처음 시작할 때 사업주 입장에서 생각해 봤어요. 정신장애인들의 직업 의식이 사장 입장에서 보면 가볍게 보여요. 부정적인 자기 생각을 갖고 있고 상황에 맞지 않는 행동도 하고요. 경직된 행동에 고집성까지 있죠.

보통 회사 들어가면 실패해도 좋다라는 말을 듣잖아요. 정신장애인들은 실패하면 다른 일을 하지 않아요. 발달장애인이나 일반 장애인들은 시설을 바꾸거나 기계를 넣어주면 능률이 일반인들하고 똑같아서 쉽게 써요.

하지만 정신장애인들은 한 번 쓰고는 거의 쓰지 않으려고 해요. 골치 아프다는 거죠. 사장 입장에서는 회사 이윤을 남기려고 하니까 정신장애인들이 적응하기 힘들죠.

현장에서 일을 해보니까 정신장애인들에 레벨링을 해야 할 거 같아요. 1에서 10까지 레벨을 만들고 1에 가까운 사람들은 병원 가는 횟수가 많겠죠. 그리고 10쪽에 있는 사람들은 동료상담사나 심리상담가를 만나면서 지역사회에서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주면 돼요. 정부가 만들어줘야 일자리가 늘어나겠죠. 막연히 기존 장애인 정책으로는 아니라도 봐요.

중요한 게 5레벨 정도 이상은 무조건 4대 보험에 들게 하는 거죠. 5레벨부터 10레벨까지는 4대 보험을 들어서 이들이 사회보험을 내게 되면 정부가 장애인을 지원해주는 것보다 스스로 국민연금 우산 속으로 들어가는 거잖아요. 10년만 넣으면 수급권자가 되죠. 또 4대 보험을 들면 부모님을 피부양으로 할 수 있어요. 일하면서 세금도 내죠. 세금 내면 애국자이잖아요.”

-기자는 정신장애를 갖고 일할 때 가장 힘들었던 게 인간관계였습니다.

“제가 아들의 현실하고 맞지 않는 행동들을 봐왔죠. 바리스타는 발달장애인들이 많이 하죠. 정신장애인도 자격증을 따지만 현장에서 안 맞는 사람들도 있어요. 서비스를 직접 해야 하니까요. 여기는 자기가 맡은 제조업 파트에서 그냥 일하면 되잖아요. 근무 과정에서 갈등이 있으면 근로지원인들이 업무 협조를 지원하기 때문에 제조업도 정신장애인들에게 맞는 직종이지 싶어요.

여기서는 가만히 내버려둬도 사회적 관계 형성이 돼요. 예를 들게요. 폭식을 해서 살이 찌거나 아니면 살이 많이 쪄서 밥을 안 먹는 친구가 있어요. 밥을 요만큼만 먹어요. 그런데 직장생활을 하면서 비장애인들이 밥을 먹는 걸 보고 자기 식단 조절이 자동으로 돼요. 폭식하던 친구도 자기 그릇이 크니까 스스로 줄이고.

엘리베이터를 타면 러시아워 시간대에 사람이 많이 타니까 내려야 할 데에서 내리지 못해요. 그런데 지금은 그냥 내려요. 이건 약으로 할 수 없잖아요. 직장을 다니면서 스스로 이게 되는 거예요. 여기 일하는 정신장애인 당사자들 부모들이 시설이 좋고 식사도 좋다고 그래요. 다른 근로보호작업장에 갔다가 거기 환경이 안 좋다고 울고 오는 어머니도 있어요. 여기는 너무 좋대요.

실제 여기서 변화되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지난 6개월 동안 증상으로 퇴사한 사람이 딱 한 명이에요. 이곳이 근로작업장하고 다른 건 일단 본인이 휴가나 월차를 써요. 그럼 휴가가 없을 때는 어떻게 하나. 그럼 엄마가 대신 와서 근무를 합니다.

잠깐 아들이 기분을 돌려서 하루, 일주일 지나면 다시 제자리로 오거든요. 그걸 최대한 활용해요. 직원이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하는데 출근했다 가면 정상근무로 해 주고 장기적으로 근속할 수 있는 부분을 챙기는 거죠.”

-정신장애인에게 일단 일자리를 정해 배치한 후 후속 작업으로 지지 상담, 일의 지식을 제공해야 한다는 이론도 있습니다.

“10레벨을 말했잖아요. 근무하다가 아프면 밑의 레벨로 내려와서 치료를 받으면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우리 특성상 이런 자리가 많이 만들어지면 좋겠죠. 외국에서는 지역사회 이마트 같은 곳에서 장애인들이 만든 제품을 원가가 100원이면 120원에 사 가는 지원을 해줍니다.”

-일반 장애인은 조금만 거둬주고 물리적 시설을 지어주면 스스로 살아갈 수 있지만 정신장애인은 앞으로 고꾸러져 있다고 말했었죠. 왜 그렇습니까.

“신체장애인들은 손만 잡아주고 물리적으로 조금 도와줘도 일을 해요. 물건을 넣으면 아웃풋이 그대로 나오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갈 수 있어요. 정신장애인은 똑같이 투입하면 35%가 아웃풋으로 나와요.

산업 현장에 가면 생산성을 내야 하는 부분에 이들을 투입하기가 힘들어요. 현실적으로 차이가 있는 걸 인정해야죠. 그럼 정신장애인들이 장기근속하고 정년까지 일할 수 있는 직업들이 개발돼야죠. 그냥 몇 년만 모으면 국민연금 수급자가 된다는 게 아니라 정부가 사회통합적 부분에서 직업 개발을 해야 하는데 장애인공단에서는 그 역할을 못 하고 있어요.”

-정신장애인의 직업 의식이 가볍다고 했는데 무슨 의미입니까.

“가볍다고 해서 나쁘다는 뜻은 아니에요. 현실을 직시하자는 거에요. 이 부분을 가둬놓고 우리를 써달라고 한다는 건 현장에서 한 달만 쓰고 우리(회사)는 안 써요라고 하게 되는 거죠. 독일에서는 중증 당사자에게 별도로 사회통합지원금이라고 고용지원금을 지원해요. 우리도 정신장애인을 고용해서 생산성이 떨어지는 부분에 국가가 보조를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요.”

-특히 직무 실패 경험의 과다가 가장 어렵다고 했는데 실패의 경험이 일을 못 하게 하는 겁니까.

“가령 회사에서 제품을 만들었는데 그중에 하나만 돼도 좋다고 하죠. 그런데 이건 정신장애인들에게는 트라우마로 박혀요. 이 작업을 했는데 내가 안 돼. 그럼 다른 작업을 아예 안 해요. 실패를 생각하니까 계속 실패를 하는 거죠.”

-실패하지 않는 방향으로 만들어야 한다?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이라든가 실패가 돼도 실패가 아니고 한 과정이라고 해서 다시 리프레시(재충전) 시켜서 성공하는 쪽으로 유도를 해줘야 직무의 연결이 쉽지 않을까요.”

미성테크 작업장에서 정신장애인 당사자 직원들이 일을 하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미성테크 작업장에서 정신장애인 당사자 직원들이 일을 하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아까 근로지원인 말씀하셨는데 사회복지사를 의미합니까.

“근로지원인은 장애인 제도에서 활동보조인과 똑같아요. 근로지원인은 사업장에서 근로하는 시간 내에서 도와주는 분이죠.”

-그들은 비장애인들입니까.

“장애인공단이 주관을 하는데 소정의 과정을 거치죠. 장애인공단에서 파견할 때 중증장애인 본인과 사업주의 허락이 동시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경우 하루에 4시간 하면 2만 원의 자부담이 있어요. 근로지원인들에게 지급해야 하는 돈이 부담이 되지 않을 정도로요.”

-왜 회사가 돈을 내야 합니까.

“남용을 막기 위해서 그런 거 같아요. 이건 중증장애인에 한해서만 쓸 수 있어요. 우리 작업장에서는 근로 시간에 중증장애인 옆에서 근로 활동을 도와주는 거에요. 회사 입장에서는 도움이 되죠. 더 큰 도움은 내 자녀가 이 근무장에 있으면 엄마가 여기서 근로대행으로 근무를 할 수 있어요. 근로 대행을요. 지금은 제도가 초기라 자격이 느슨한데 정신장애인 부모들이 이 부분에 참여를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정신장애인과 일을 하면서 온갖 합리적 이유로 현실적인 도피에 대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는 걸 느꼈다고 했습니다. 정신장애인의 자기합리화일까요.

“엄마들이 저한테 얘기를 해요. 출근을 못 하겠다고 할 때 얘기를 해서 당사자 자식을 이길 수 없다고요. 보통 사람들은 회사에 안 가는 이유가 뭔지를 묻는데 정신장애인은 안 간다는 논리를 계속 만들어요. 온갖 합리적인 이유를 만드는 거죠. 저는 그 부분까지도 공감을 해 줘야 된다고 생각해요.

일반인들이 회사에 고용돼서 일할 때 무단결근을 하면 경영주 입장에서는 같이 못 간다고 얘기하잖아요. 정신장애인에게는 그렇게 하기가 그래요. 출근 못 하는 이유가 나쁘다 좋다를 떠나서 당사자가 합리적인 이유라고 주장하는 그 부분을 받아줘야죠.”

-정신장애인은 익숙해진 일만 하고 새로운 것을 개척할 진보적 의식이 결여돼 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정말 그런가요.

“현실하고 맞지 않는 행동성이죠. 당사자들은 우스갯소리도 심각하게 받아들여요. 늘 긴장을 하고 있는 거죠. 직장인들은 아침에 구호를 외치는데 정신장애인들은 생각만 해요. 미성테크가 근무시간 유연성을 부여하려고 4시간 근무로, 9시 시작하고 11시 시작하고 오후 2시에 시작을 했어요.

그런데 자기가 어떤 일을 하고 다른 사람에게 연계하고 가야 하는데 자기 일만 해놓고 퇴근해요. 이걸 주지시켜도 안 돼요. 왜 그런 행동이 나왔을 때 생각해보면 음성증상의 연속성일까. 그런 특성들을 계속 갖고 있구나. 이런 행동이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부분이구나 싶죠.”

-지금 다 4시간씩 일을 하고 있습니까.

“처음 시작할 때는 4시간, 6시간, 8시간 했었어요. 지금은 일감이 줄었고 계속 고정비가 들어가잖아요. 금전적 지출 때문에 올해 일사분기부터는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로 통일했어요.”

-치료되지 않은 정신장애인에게 일자리를 달라고 국가에 요구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일까요.

“다시 물을게요. 어디까지가 치료가 됐다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일까요. 이건 병하고 상관없어요. 직장인이 몸이 힘들어도 나가서 일을 하잖아요. 정신질환 자체가 물리치료처럼 계속 받는 게 아니에요. 심리치료 받으면 시간이 들겠지만 가장 큰 문제는 사회관계 형성이잖아요. 집에만 있는다고 해서 사회와 단절되는 건 아니죠.

치료의 연장선에서 보면 직장생활 자체도 저는 치료라고 생각해요. 학자들도 직장을 병행했을 때 치료 효과가 높다고 데이터를 내놓고 있어요. 사회관계 형성에서 직장을 다니면서 치료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정신장애인들이 주체가 되는 특화된 장애인표준사업장을 쉽게 설립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정신장애인들만의 특화된 사업장이 더 많아야 하는 건 당연하고요. 지금 의료기술이나 약물, 사회복지사들에의 지원이 굉장히 많아졌잖아요. 그럼 그만큼 당사자나 가족들이 (치유돼서) 많이 나와야 될 거 아니에요. 사회적 비용이 투입됐는데 결과물이 없잖아요. 의미가 없잖아요. 정부 돈이 들어갔으면 결과물로 당사자가 나아졌다는 데이터가 있어야죠.

여기 온 16명 중에 3명이 수급권을 포기했어요. 월급을 최저임금 이상을 주고 일자리가 계속되면 수급권자를 포기하겠다고 해요. 그리고 발달장애인하고 비교를 많이 하는데 발달장애인은 계기가 있으면 쉽게 열 명을 모을 수 있어요. 정신장애인은 쉽지 않아요. 저도 몇 년 해봤지만 정신장애인 열 명 모으기가 힘들어요.

장애의무고용율이라고 해서 중증장애인은 2명에 더블 카운터를 해 주는 제도가 있어요. 즉 장애인사업장이 중증장애인 한 명을 쓰면 두 명으로 인정해주는 제도예요. 그럼 표준작업장을 중증 다섯 명이 해서 열 명으로 인정받아 쉽게 만들자는 거예요. 표준사업장은 여러 가지 정부 제도가 있잖아요. 케어팜의 경우 조건이 3년 동안 10명을 모으면 몇억 원씩 나가요.”

김성모 미성테크 대표. ©마인드포스트.
김성모 미성테크 대표. ©마인드포스트.

-자기 돈이 몇억씩 나간다고요?

“표준작업장을 하면 중증장애인 한 명 당 일억 원까지 지원금이 나와요. 그래서 한 15억 원까지 쓸 수가 있어요.”

-고용장려금 형식으로?

“표준작업장 시설 운영에 들어가는 자금하고 또 편의시설 제공 운영비. 거기 인원 인건비도 몇 개월분을 지급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개인사업자가 그걸 하기는 힘들죠.”

-정신장애인들이 단순히 장애인 일자리를 구하기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직업을 정하고 그와 관련된 곳을 찾아가 청소부터 시작하라는 조언도 있습니다. 맞다고 생각합니까.

“저는 정신장애인들이 일을 하는 것에 찬성해요. 엄마들이 하는 소리가 자식이 잠만 잔다는 거예요. 예전에는 기술을 배우려면 허드렛일을 먼저 배웠잖아요. 저도 그 허드렛일을 먼저 배웠어요.

기술을 배울 때는 헝그리 정신이라든가 기술에 대한 기본을 갖추는 게 유일한 방법이었어요. 요즘 친구들은 페이가 없으면 안 해요. 정신장애인들 학력이 높잖아요. 그들이 각 분야에서 실력을 발휘했으면 좋겠어요. 돈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혼자서라도 할 수 있는 거. 창업도 좋고요.”

-정신장애인들이 창업하는 것에 대해 찬성합니까.

“저는 굉장히 찬성하고요.”

-망상에 의해서 창업을 하려고 하는 이들이 많잖아요.

“그 부분은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뭔가를 하려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찬성해요. 다만 그게 병적인 부분하고 연결이 된다면 한 번쯤은 걸러져야겠죠. 특히나 금전과 관련된 부분이라면 가족이 개입을 해야겠죠.”

-미성테크에서 지난해 정신장애인 16명을 고용했지요. 현재 남아 있는 당사자들은 몇 명쯤 됩니까.

“13명인데, 이달에 한두 명이 더 그만둘 예정이어서 열 명. 표준사업장은 열 명이 최소 인원이거든요. 제가 목표로 하는 게 대기업이나 큰 업체에 장애를 고용 연계하는 거예요. 성공한다면 더 인원을 늘릴 예정이고요.

현재 1000명이 고용된 사업장은 장애인 20명을 고용해야 합니다. 중증장애인은 더블 카운터잖아요. 그럼 중증장애인 9명이 일하면 18명의 효과가 되는 거고 거기에 일반 장애인 두 명이 있으면 합해서 스무 명이 되잖아요. 그걸 조그만 회사가 한다는 건 무리죠. 대기업들이 계속 많이 해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공기업에서도 벌금을 낼지언정 장애인을 직원으로 고용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교육청의 경우 장애인을 직접 고용하도록 법이 바뀌었어요. 서울시는 장애인 고용이 충족이 됐어요. 관공서는 평가 때문에 장애인들을 직접 고용하는 추세로 가고 있어요. 아직 부족한 건 있어요. 군 연관된 관공서나 국방연구소는 아예 고용이 안 돼요. 대신 공기업들은 고용이 늘었어요.”

-결국 치유는 노동과 노동의 대가로 받는 임금이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건가 봅니다.

“엄마들이 얘기하는 게 평생을 내가 애한테 돈을 받아보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해요. 그걸 돈의 잣대로만 재는 건 의미가 없죠. 그동안 부모한테 용돈만 받았는데 내가 몸을 움직여서 돈을 벌었다? 그럼 눈빛 자체가 달라져요. 이걸로 대신할게요.”

그가 갑자기 천정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일자리, 우리에게 회복이고 새로운 출발이다’라는 표어가 걸려 있었다.

미성테크 작업장에서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미성테크 작업장에서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c)마인드포스트.

-언젠가 정신병원에 입원한 50대 아들을 위해 글을 못 읽는 70대 노모가 아들 간식비와 입원비를 내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생이 누추하다는 감정이 들었습니다.

“저는 화가 나는 게 하나 있어요. 보통 신체가 병이 나면 재활을 하잖아요. 의료보험도 본인 부담이 굉장히 적어요. 정신장애인은 재활기관 들어가려면 1년 이상 대기해야 돼요. 내가 아픈 것도 억울한데 시설에 돈을 내고 재활하는 거잖아요. 화가 좀 나요.

제가 표준작업으로 처음부터 가려 했던 이유도 일의 질과 상관없이 직장이라는 데를 들어왔으면 최저임금 이상을 주는 게 기본이고 그래야 적금도 들 거 아닙니까. 결혼했으면 애 과잣값을 내야 되고 아파트에 살면 관리비라도 내야 하잖아요. 이런 건 스스로 벌어야 되지 않을까요.

외국은 20세 성인이 되면 다 집을 나가요. 자연스럽게 독립이 되고 아플 때 정부 개입을 쉽게 하죠. 우리는 부모가 계속 데리고 있잖아요. 대학원 가고 군대 가고 그러다가 발병하죠. 저는 직업으로 가는 게 맞다고 봐요.

다양한 직업군을 만들어서 2시간이든, 4시간이든, 6시간이든 정규직으로 가는 길들을 만들어놓으면 정신질환 발병이 돼도 불안정한 시기를 지나 안정적 상황이 되면 직업재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최소 5년간은 치료에 노력을 하는 게 좋겠고, 발병하고 3년 후부터 재활 들어가고 빠르면 일 년이라도 빨리 일을 시작하면 좋지 않을까.

사회관계라는 건 모두 직업과 연결이 되잖아요. 독일 마스트 제도도 마찬가지죠. 직업을 갖는다는 건 단순히 돈만 번다는 게 아니라 사회생활의 기본적인 모든 게 들어가 있어요.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다 들어가 있는 거예요.

장애인복지법 제15조 폐지되면서 많은 변화의 부분들이 있어요. 걱정스러운 건 주거 문제와 직업 문제에요. 어머니들이 그래요. 집에서 잠만 자는데 활동보조인이 뭐가 필요하냐고. 그럼 직업을 갖고 일을 할 때 활동보조인들이 도와줘서 직장을 나가게 하는 게 맞지 않은가. 결국 직업이 가족 부담을 덜고 당사자는 앞날의 희망을 갖기 때문에 저는 주거와 직업이 크게 대두될 거라고 봅니다.”

-하실 말씀이 더.

“우리 현실을 인정하고 한 발자국이라도 나가야 해요. (국가) 탓만 한다고 되지 않아요. 당사자 단체나 전문가들이 응집해서 성숙한 태도로 정신장애인 관련 의제를 요구하면 (국가가) 저들에게는 절실한 무엇이구나 느낄 수 있는 큰 그림을 그려야죠. 이런 걸 할 수 있는 리더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가 기자에게 준다며 회사에서 만든 메모꽂이 판촉물과 오카리나를 바리바리 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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